Drunk Rock: Regenerating World RAW novel - Chapter 225
225화
* * *
28. 거슬림
교연이 창가로 다가가자 시종이 창문을 반만 열고 옆으로 물러났다.
열린 문틈으로 겨울의 찬바람이 목덜미를 파고들었으나 교연은 상관하지 않았다. 아래에서 둥둥 울려오는 처형장의 북소리에 불쾌했던 기분이 조금 누그러지는 것 같았다.
창 아래, 궐 담 너머의 소광장에서는 대역죄의 처형이 진행되고 있었다. 오늘 아침, 관성에 돌아오자마자 교연이 직접 명령서에 날인했다. 죄목은 유언비어 유포, 풍기문란, 뭐 그런 것이었다.
사실 죄목이 무엇이거나 별로 중요치는 않았다. 중요한 것은 교연이 그것을 대역, 즉 위를 거스르는 일이라 결정했다는 것이었다.
대운관에 있는 세 곳의 처형장 중 태화관 앞뜰에서는 대역죄인의 처형만을 집행했다. 그리고 대역죄의 최종심은 항상 교연이 맡았다. 태화관 앞뜰에서 누군가의 목이 떨어진다면 그것은 언제나 교연의 뜻에 따른 것이었다.
태화관 5층의 이 자리에서 그 모습을 내려다보는 것은 교연이 삶에서 드물게 즐거움을 느끼는 일 중 하나였다. 창호를 유리창으로 바꾸자는 제안도 몇 번이나 물렸다. 높이 차는 있어야 하지만, 사이를 가로막는 것은 없는 쪽이 좋다. 이때야말로 교연이 타인의 삶에 온전히 관심을 보이는 순간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북소리가 고조되고 집행관이 도끼를 높이 쳐들고 처형대 위를 한 바퀴 돌았다. 지금부터가 교연이 좋아하는 부분이었지만 교연은 얼굴을 찌푸리며 창가에서 물러났다.
뒤에서 달갑지 않은 기척이 다가오고 있었다. 주름을 잔뜩 잡고 바닥에 끌리게 한 호화로운 스란치마가 사그락대는 소리를 냈다.
“뭐야. 대리만족이야?”
스스럼없는 투로 물으며 운모가 창을 활짝 열어젖혔다. 교연은 창가에서 더 물러났다. 그는 처형 광경을 직접 보고 싶어 하면서도 광장에 모인 군중 앞에 저를 완전히 드러내는 것은 좋아하지 않았다.
“창을 닫아. 군중 중에 너를 알아보는 자가 있을 수도 있어. 돌 인간을 태화관에 들인다는 말이 나돌면 곤란해.”
교연이 쌀쌀맞게 말했다. 운모는 입을 삐죽였지만 순순히 말에 따랐다.
운모가 물었다.
“그래서, 이런 처형 구경으로 만족이 돼? 네가 보고 싶어 하는 건 저런 아무나가 아니라 시문의 죽음이잖아.”
교연은 운모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창 앞을 떴다. 그를 운모가 졸졸 따라오며 재깔거렸다.
“왜 시문을 계속 살려두는 거야? 위험 요소밖에 안 될 텐데.”
“상관 마. 난 처음부터 그를 산 채로 데려와달라고 했어.”
“흐~음. 하지만 그건 살려두기 위해서가 아니라 죽는 광경을 보고 싶어서잖아.”
교연이 걸음을 멈추고 운모를 노려보았다. 운모가 어깨를 으쓱했다.
“왜? 사실이잖아? 내가 생포는 자신 없다고 하니까 굳이 심산까지 따라온 것도 그래서가 아니었어? 시문이 죽는 걸 직접 네 눈으로 확인하려고. 원래 넌 심산은커녕 태화관 바깥도 나가기 싫어하잖아.”
“상관 말라고 했어.”
“그럴 수가 있나. 시문의 생사는 나한테도 중요한 관심사라고.”
운모가 저고리를 헤쳐 제 기결을 다 드러냈다. 쇄골 아래쪽 나선무늬 가운데가 뭉개진 듯 깨어져 빛을 흘리고 있었다.
“나도 거의 죽을 뻔하면서 붙잡은 건데. 앞으로 어떻게 할 건지 정도는 들을 수 있지 않아?”
교연은 짜증스러운 듯 혀를 차고는 탁자 앞에 앉았다. 운모도 당연한 것처럼 반대편 자리를 차지했다. 시종이 의자에 등받침을 놓아주고 따뜻한 차를 가져왔다.
시종들이 탁자에서 떨어진 뒤 교연이 내키지 않는 투로 말했다.
“아직 명령패를 못 찾았어.”
“뭐?”
“시문의 명령패를 못 찾았다고! 어디를 뒤져도 없어!”
교연이 짜증을 왈칵 냈다.
“이게 다 네가 시문의 수하 두 녀석을 놓쳤기 때문이야. 거기다가 심산의 수색조차 제대로 못 하게 하고! 틀림없이 둘 중 누군가가 가지고 있었을 텐데!”
“놓친 건 사실이지만…. 넌 나한테 그 두 사람 이야기는 하지도 않았잖아. 명령패 이야기도.”
교연은 시근거리며 차를 들이켰다. 운모가 딱하다는 듯이 말했다.
“시문의 명령패라니. 그런 게 갖고 싶었어? 그럼 처음부터 소원을 제대로 빌었어야지. 솔직하지 못한 아이라니까.”
“닥쳐. 너와 내가 한 건 거래야. 일방적으로 무얼 해준 것처럼 말하지 마.”
“거래는 정 없게. 차라리 동맹이라고 하든가.”
운모가 손끝으로 찻잔을 어루만졌다.
“명령패가 왜 필요한지 모르지만 뭐하면 위조라도 하면 되잖아. 아니, 대운관에서 만들면 위조도 아닌 거 아냐? 어차피 관청에서 형식대로 찍어낸 물건인데.”
“모르면 가만히 있어. 문의 명령패는 달라.”
“그랬던가? 옛날에도 문을 몇 사람 알고 지냈지만, 특별한 얘긴 없었는데….”
운모의 말에 교연의 눈이 커졌다. 그가 탁자 위로 몸을 기울이며 급히 물었다.
“전 대의 문을 알았어? 그의 명령패를 봤어?”
“아니 못 봤어. 사실 그런 건 다들 별로… 신경을 안 쓰는 것 같았는데. 벼슬을 안 해선지, 쓰는 걸 본 적도 없고.”
교연이 입술 안쪽을 꽉 깨물고 몸을 뒤로 뺐다.
운모는 교연의 얼굴에 도는 붉은 기에 분노만이 아니라 수치심이 함께 섞여 있음을 눈치챘지만 별말은 하지 않았다.
까다로운 아이였다. 누가 봐도 알 만큼 집착이 강하면서 자신이 집착한다는 사실을 수치스러워했다. 누가 그 사실을 알고 있는 태를 내면 상대의 목을 잘라 버리는 것으로 수치심을 해결했다.
운모는 목이 잘릴 걱정은 안 했지만 굳이 그 폭탄을 터뜨릴 마음도 없었다.
그가 사근사근한 태도로 물었다.
“어떻게 해? 내가 심산에 돌아가서 그 두 사람의 흔적을 찾아봐 줄까?”
“됐어. 사흘이나 지났으니 살아남았다면 이미 심산을 떴을 거야. 어쩌면 다천관이나 벽명관 쪽에 도움을 청하러 갔을지도 모르지.”
교연이 입술 안쪽을 잘근잘근 씹었다.
“시끄럽게 되기 전에 대비를 해야 해. 역시 시문을 깨워서 심문을 해봐야겠어.”
“하아…. 결국. 그대로 죽이는 게 제일 낫다는데도.”
“결정은 내가 해.”
운모가 졌다는 듯이 한숨을 쉬었다.
“알겠어. 어쨌든 최종적으로는 시문을 죽여야 해. 그건 확실히 해줘.”
“물론이야. 명령패를 찾고, 문젯거리를 전부 해결하고 나면.”
“그렇게 모호하게는 안 돼. 시문이 의식을 찾고 일주일 안에.”
“…….”
교연은 불쾌한 얼굴로 입을 다물고 있었다. 운모가 두 손을 펼쳐 보이며 다시 말했다.
“열흘 안?”
“나는 누가 내게 이래라저래라하는 걸 좋아하지 않아. 하지만 네가 권한 날짜는 일종의 기준으로서 기억해 두지.”
“좋아.”
운모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교연이 물었다.
“너는 이제 어쩔 거지?”
“너랑은 협정을 맺었으니 다른 동네라도 공격하러 가야지. 그전에 사라진 금강을 찾아다가 달래 놓고…. 걘 내가 이번 일을 한 방식이 마음에 안 든다고 화가 잔뜩 났거든.”
“동료들에게 마음을 쓰는 거야?”
“써야지 그럼. 어쨌든 속인 건 나니까 다들 화내는 것도 어쩔 수 없고….”
“어째서 신경을 쓰는데? 너는 네 동료들을 미워하잖아.”
운모는 교연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교연은 당연한 말을 한 것처럼 태연한 모습이었다.
운모는 그게 마음에 들었다. 그는 인간을 읽는 것 못지않게 인간에게 읽히는 것도 즐거워했다.
“하하. 네가 인간을 미워하는 것만 하겠어? 시문을 죽이기로 한 거나 잊지 마.”
“알아서 해.”
운모는 교연에게 웃어주고 등을 돌렸다.
그는 교연의 약속을 믿지 않았지만 교연이 결국 시문을 죽이리란 사실만은 의심하지 않았다.
그는 집착만큼 수치심이, 야망만큼 불안이 강한 사람이었다. 시문에게 집착하는 만큼 그의 존재를 견디기 어려워할 터였다.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열흘은 너무 길게 부른 것일지도 몰랐다.
* * *
호란은 단의 걸낭에 뭐든지 다 들어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침반과 별시계. 지도, 물병과 건량과 약품, 부시와 반짇고리와 몇 가지 공구, 날붙이, 필기구, 여러 용도로 쓸 수 있는 깨끗한 천과 종이, 상당량의 돈과 패물까지.
정리하자면 단은 느닷없이 황야에 혼자 내팽개쳐져도 살아 돌아올 수 있는 준비를 언제나 갖추고 다녔다.
그래서 호란은 단이 심산에서 대운관군을 피해 다니는 동안 걸낭에서 뭐가 나와도 놀라지 않았다.
단이 골짜기 깊은 곳에서 지도에도 실리지 않고 관에 알려지지도 않은 산간 마을을 곧바로 찾아내고, 거액을 주고 수레와 식량을 척척 사들이고, 회군하는 대운관군과 마주치지 않을 경로를 골라 이틀 만에 대운관 인근까지 돌아온 것도 그렇게 놀라지 않았다.
하지만 단의 필기구함 밑바닥에서 대운관 시민 명의의 신분패가 튀어나왔을 때는 역시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게 네 신분패야. 누가 물어보면 속령에 옷감을 팔러 갔다가 돌아오는 길이라고 해. 적힌 이름은….”
“이런 게 어디서 났어?”
“나기는 어디서 나. 당연히 내가 만든 가짜지. 그래도 민적에 실제로 있는 이름이니까….”
“대운관 가짜 신분패를 미리 만들어둔 거야? 단 거랑 내 걸 둘 다? 언제?”
단은 곤란한 것처럼 시선을 피했다.
“그냥 전에….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
“하지만 이런 건 이유 없이 준비하는 게 아니잖아. 대운궁 안에 총을 놔두고 온 것도 그렇고…. 혹시 이런 일이 있을 걸 미리 알았던 거야?”
“알았으면 이 꼴이 나게 뒀겠냐.”
단의 음성이 긁혔다. 당연한 말이었기에 호란도 입을 다물었다.
“솔직히 상상도 못 했어. 위교연이 나리님한테 이렇게까지 집착할 줄은…. 나리님 때문에 대운관을 나오기까지 할 줄도. 그걸 알았으면 좀 더….”
중얼대던 단의 말이 느려졌다. 그가 생각을 털어 버리려는 것처럼 머리를 흔들었다.
“아니, 됐다. 가자.”
대운관의 검문은 엄격하면서 대강이었다. 수레에 실린 짐까지 샅샅이 뒤집어보면서도 파수병들의 얼굴엔 열의가 없었다.
안 보던 얼굴이라며 단과 호란에게 신상 질문을 하기는 했지만 돌아오는 대답에 귀를 기울이는 것 같지도 않았다.
수레에 곡식이 잔뜩 실린 것을 보자 파수병들의 태도는 더 유해졌다. 단이 당연한 것처럼 동전 꿰미를 찔러주자 검문은 그대로 끝났다.
돈과 물자가 관성 밖으로 나가는 것에는 엄해도 들어오는 것에는 너그럽다는 단의 말이 사실이었다.
관성에 무사히 들어오고 나니 이미 오후가 늦어 있었다.
단은 망설이지 않고 싸구려 술집과 가게가 잔뜩 늘어선 골목으로 호란을 이끌었다. 길을 다 아는 것처럼 서슴없는 걸음이었다.
호란이 단에게 바짝 붙으며 물었다.
“들어온 건 좋은데, 이제 어디 가?”
“일단은 자리를 잡고 한숨 돌려. 나리님 행방을 알려면 정보부터 찾아야 하는데, 그건 시간이 걸려.”
쉬라는 이야기였다. 피곤한 것은 사실이라 호란은 고개를 끄덕였다. 길을 빙 돌아 오느라 밤낮을 가리지 않고 달려온 참이었다.
단은 걸음을 재촉해 객주 하나에 들어갔다. 위층은 여관, 아래층은 음식점 겸 주점인 가게로 사람이 가득했다.
점원을 불러 방부터 잡은 단이 호란에게 말했다.
“식사는 방에서 먹지요. 나리가 좀 받아가지고 올라와 주시겠습니까?”
“아, 응.”
“부탁드릴게요.”
단은 주문만 하고는 사람을 피하는 것처럼 금세 위층으로 올라가 버렸다.
호란은 길게 한숨을 쉬며 한쪽 벽에 기댔다. 교문을 쫓아 대운관에 온 것까진 좋았지만 아직 시현이 무사한지 어떤지조차 몰랐다. 움직임을 멈추면 바로 초조가 밀려왔다.
호란이 음식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는데 근처 탁자에서 한 여자의 소곤대는 목소리가 들렸다.
“방금 계단 올라간 젊은 애 봤어? 키 큰 애.”
“안경 쓰고 훤칠한 놈? 걔가 왜?”
호란은 무심코 쳐다보았다. 사람들이 단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말한 것은 탁자에서 음식을 먹고 있는 반민 세 명 일행이었다.
셋 다 예순 가깝게 나이가 들어 보였고, 머리칼이 짧은 걸 보면 다들 장인들이었다.
처음 말한 여자가 망설이다 목소리를 더 낮추어 말했다.
“걔 아무래도… 그, 철이 아들놈 아녀?”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