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nk Rock: Regenerating World RAW novel - Chapter 228
228화
* * *
단이 처음으로 만든 총통은 화약도 탄자도 없고 그냥 겉보기뿐이었다. 그래도 모양만은 꽤 그럴듯했다.
하지만 도감에 출근한 단이 완성된 총통을 내밀자 누나 영의 얼굴이 딱 굳어졌다.
“너 이거 당장 도로 녹여. 아버지 가마로 이걸 만든 거야?”
“어?”
“총포 기술은 민간에 나가면 안 되는 거라고! 아무 데서나 만들면 안 돼!”
“그런 거야?”
단이 어벙하게 말하자 영이 이마를 짚었다.
“너는 진짜 애가 어떻게 컸길래, 아무거나 저지르고 보고, 뭐든 하면 다 되는 줄 알고, 겁나는 것도 없고…. 아니 저게 사실 내 눈앞에서 컸지만, 어휴….”
혼자 한탄하던 영이 진지한 얼굴이 되었다.
“단아. 내가 생각해 봤는데. 너 이제부터는 이 일에서 빠져라. 지금까지 조사한 건 누나 혼자서 한 걸로 해둘게.”
“뭐? 그게 무슨 소리야?”
단은 어이가 없어서 되물었다. 영이 조금 망설이다 말했다.
“사실은 어제 위에 정식으로 보고 올렸는데, 거기다가도 이미 내가 혼자 한 거라고 말해놨어.”
단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런 게 어딨어? 문서 찾고 정리하고 내가 다 했잖아!”
“알아. 다 네가 했지. 그래도 지금부터는 빠지는 게 너한테도 좋을 거 같아서 그래. 그동안은 누나 도와준 셈 치자. 응?”
“싫어! 왜 그래야 되는데?”
단은 전혀 납득할 수 없었다. 한창 화포에 빠져 있는 참이었다. 애 달래는 듯한 말투에도 화가 났다.
영이 말했다.
“너 이젠 열여섯이잖아. 해 바뀌면 관에서 일한 지도 반 년 채울 거고. 그럼 더 이상 보조로 있을 수가 없어. 정식으로 관속 장인이 되어야 한단 말야. 그것도 화포장.”
“되면 되잖아?”
“쉽게 생각하지 마. 한번 화포장이 되면 평생 관에 매여야 돼. 내가 보장하는데 그거 너한테 안 맞아. 거기다가 넌 사람 죽이는 무기 만드는 것도 싫어하잖아.”
“그건 사람 죽이라는 게 아냐! 거석을 쏘려고 만들자는 거야!”
“그렇게 생각하니까 너더러 이 일 하지 말라는 거야. 넌 만드는 것만 알았지, 장인 손을 떠난 물건들이 어디 가서 어떻게 되는지는 생각해 본 적도 없지?”
“생각해, 나도. 할 거 다 생각….”
단이 더 말하려 했지만 영은 멋대로 결론을 지어버렸다.
“됐으니까 누나 말 들어. 이건 네가 다른 주물 다루듯이 장난처럼 할 일이 아니야.”
“장난처럼 일한 적 한 번도 없어!”
단은 목청껏 소리쳤다. 그가 탁자에 다가붙은 서슬에 총통이 왈그랑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졌다.
영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것을 줍더니 자기 걸낭에 넣었다.
“이거는 누나가 처리할게. 저녁때 집에 가서 바로 녹일 거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
“나 장난으로 일한 적 없다고! 누나가 날 뭐라고 생각하는지 몰라도, 이제까지 쉽게 한 것도 아무것도 없다고! 듣고 있어?”
영은 단의 항의를 모른 체하고 관사 입구를 향했다. 단이 영의 등 뒤에 대고 소리쳤다.
“사과해 누나! 나한테 사과해!”
영은 그대로 관사를 나가버렸다. 혼자 남은 단은 어이가 없고 분이 솟구쳐서 입만 벌렸다.
이렇게 화가 난 건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누구 잘못인지도 명백했다. 단은 망설이지 않고 어머니에게 일러바치러 갔다.
단의 어머니 문정은 공기서 다른 관사에서 근무 중이었다. 사람 없는 곳에 단을 데려가 이야기를 다 들은 어머니가 길게 한숨을 쉬었다.
말을 나눠 보니 어머니는 이미 누나가 화포 관련 보고를 위에 올린 걸 알고 있었다.
정이 심각하게 말했다.
“그래 단아. 네가 화낼 만해. 그럴 만한데…. 엄마가 상황을 좀 더 알아봐야겠다. 그다음에 영이랑 같이 셋이서 이야기하자.”
“알아볼 게 뭐가 있어! 누나 진짜 말도 안 돼!”
단이 화를 터뜨렸지만 정의 얼굴엔 수심이 깊어질 뿐이었다.
“그게… 이건 너랑 영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복잡한 일이야. 엄마도 이제껏 잘 몰랐는데, 화기도감이 옛날에 한 번 크게 문제가 있었던 곳이래.”
“무슨 문제?”
“아직 아무것도 몰라. 오늘은 도감에 있지 말고 그냥 집에 가렴. 그리고 만약에 엄마 없는 동안 누가 와서 물어보면.”
정이 안경 아래 같은 색 눈동자로 단의 눈을 보며 부탁했다.
“화포니, 화약이니, 그런 거, 하나도 모른다고 해. 너는 아무것도 안 했다고 해. 꼭이야. 엄마하고 약속이야.”
단의 눈이 휘둥그레해졌다. 믿을 수가 없었다. 그가 따지듯 소리쳤다.
“엄마도 누나 편이야?”
“아니, 아니야. 영이도…. 아… 일단은 엄마가 좀 더 알아보고… 알아보고 와서 나중에 설명해줄게.”
정은 근심스럽게 이마를 짚고 일어섰다. 자리를 뜨려던 그가 도로 돌아와서 양손으로 단의 뺨을 감쌌다.
“단아. 우리 단이는 착하지? 약속, 꼭 지켜야 돼.”
심지어 애 취급을 했다!
울화통이 터진 단은 집에 안 돌아가고 가출을 감행했다. 친구 건이네 집에 가서 엄마든 누나든 누가 데리러 올 때까지 안 돌아올 생각이었다.
가출을 했으면 탈선도 해야 하기 때문에 단은 건이를 꼬셔서 건이 아버지가 숨겨둔 술동이를 털었다. 뒷마당 광에 숨어서 둘이 술 한 동이를 다 비우고, 깜박 잠들었다가 깨어보니 바깥이 캄캄했다.
건이 아버지 구씨는 이미 돌아왔는지 밖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어째 분위기가 험하고 안 좋았다.
지레 찔린 단과 건은 슬금슬금 광 밖으로 머리를 내밀었다.
단을 본 구씨의 얼굴이 돌덩어리처럼 굳어졌다.
“단이 너, 우리 집에 있었느냐.”
친구 아버지의 험상궂은 얼굴에 단이 어깨를 움츠렸다. 가뜩이나 잘못한 게 있었다.
“아. 저. 죄송해요. 돌아갈게요.”
단이 슬쩍 빠져나가려는데 구씨가 앞을 막아섰다.
“안 된다. 지금 너네 집 가면 안 돼. 공방에도 가면 안 돼. 가면 죽는다.”
단은 반문조차 못 하고 구씨의 입을 멍하니 보았다. 방금 무슨 소리를 들은 건가 싶었다.
“얘를 우리 집에 둘 수도 없고. 어떡하지. 이걸 어떡하지….”
구씨는 안절부절못하더니 건이는 놔두고 단을 방금 나온 광에 도로 밀어 넣었다.
“너, 여기 들어가 있어라. 절대 나오지 말아라. 소리도 내지 말고. 꼭이다.”
“뭔데요? 무슨 일인데요?”
단이 물었지만 구씨는 대답하지 않고 단을 억지로 광 안에 밀쳤다.
문이 닫히기 직전에 구씨가 빠르게 말했다.
“대역이랜다. 네 누나랑 아버지가 대역으로 잡혀들어갔다.”
쾅 소리를 내며 문이 닫히고 밖에서 자물쇠 걸리는 소리가 들렸다.
단은 어둠 속에 멍하니 서 있었다.
대역이라니.
그게 왜.
그게 우리 가족하고 무슨 상관이야.
대역이 무슨 뜻인지야 안다. 땅님들을 거스르고 관에 반역하는 게 대역이다.
언제부턴가 대운관에서는 해마다 한두 번은 대역 사건이 터지고 사람이 죽어 나갔다.
단이 보던 기술서를 쓴 장인도 서문에 불량한 뜻을 숨겼다며 작년에 죽었다. 어머니가 단의 방을 샅샅이 뒤져 책을 뺏고 이름이 비슷한 책까지 다 가져다가 불태웠을 때 단은 무척 불평했었다.
대체 뭐가 문제라서 그러냐고 단이 묻자 어머니는 굳은 얼굴로 대답을 피했다. 모르는 쪽이 좋다고, 너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만 했다.
그래. 상관없는 일이었다. 단과도 단의 가족과도.
더구나 누나와 아버지만은 그런 일에 얽힐 수가 없었다.
누나가 평소에 윗전들한테 잘 보이려고 얼마나 애를 썼는데.
아버지도. 아버지는 쇳물 말곤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인데.
뭔가 오해가 있었을 것이다.
곧 구씨가 돌아와서 단을 내보내 주고 잘못 안 것이라고 말해줄 것이다.
구씨는 새벽이 다 되어서야 왔다.
그는 절대 소란 부리지 말라고 단에게 몇 번을 약속시킨 다음에야 소곤대는 소리로 사정을 가르쳐주었다.
전날 오후 늦게쯤 단의 누나, 어머니, 아버지가 차례로 체포되었다. 단도 수배되었다.
권영이 배역하게 위험한 화기 기술을 손대어 기강을 어지럽혔고, 그 아버지 권철은 가마를 열어 총령부의 허가 없이 흉험한 무기를 만들게 도왔으며, 가족의 죄가 크니 문정과 권단 역시 연좌한다는 것이 죄명이었다.
가족과 친척이 모두 잡혀들어갔고 공방 직공들도 줄줄이 끌려들어 갔다고 했다.
단은 들으면서 두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내가 했어. 그거, 전부 다 내가 했어….
숨줄이 막혔다. 어머니의 목소리가 머리를 빙빙 돌았다.
‘화포, 화약, 그런 거. 하나도 모른다고 해. 너는 아무것도 안 했다고 해. 꼭이야. 엄마하고 약속이야.’
‘착하지? 약속, 꼭 지켜야 돼.’
단이 숨을 못 쉬자 구씨가 단의 등을 퍽퍽 두들겼다. 단은 입을 딱 벌리고 헉헉거렸다.
벌어진 입에서 말이 나와야 하는데 나오지 않았다.
말하는 방법을 잊어버린 것 같았다. 평생 아무 말도 못 할 것 같았다.
단은 며칠을 건이네 광에서 지냈다.
구씨는 문을 걸어 잠그고 단을 절대 밖에 못 나가게 했다. 더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 숨겨준 걸 들키면 자기들도 다 죽는다고만 했다.
숨어 있는 건지 갇혀 있는 건지 분간이 가지 않았다.
열흘 만에 공기서 방직공 윤한이 단을 찾아왔다. 한은 누나의 애인이고 건이에겐 어머니 쪽 삼촌이었다.
그 역시 영이 끌려간 다음 날 끌려가 심문을 받았다 했다. 관에 연줄이 있어 풀려나오기는 했으나 나름 고초를 겪은 것 같았다.
그가 맥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영이가 그동안 그런 거 하고 있는 줄 나는 전혀 몰랐다. 너는 알았니?”
누나는 사실 아무것도 안 했어요. 단은 말하고 싶었지만 여전히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아니다. 알아도 말하지 마라.”
한은 손을 젓더니 진지하게 말했다.
“한탄하러 온 게 아니야. 겨우 잠깐 봤을 때 영이가 나한테 너 부탁했다. 혹시 너 보면 어떻게든 살려서 도망시켜 주라구.”
단의 가슴이 철렁했다.
그럴 리가 없었다. 누나는 지금 자기를 제일 원망할 사람이었다.
단이 부들부들 떨면서 물었다.
“누나가요? 누나가 진짜 그랬다고요?”
“그래. 너한테 전해달랬어. 누나가 미안하다고. 잘못했다고. 너는 꼭 살라고.”
한은 말을 전하면서 침통한 얼굴을 했다. 그는 영이 무슨 의미로 단에게 사과의 말을 했는지 상상도 못 할 터였다.
한이 말했다.
“성 밖에 곧 떠날 상단이 하나 있다. 거기다가 너를 넣어주마. 그대로 어디든 멀리 가거라.”
단은 고개를 저었다.
“안 돼요. 어떻게 나만. 어떻게 나만 도망가요….”
전부 다 내 탓인데. 어떻게 나만 도망가요.
한이 눈물을 글썽였다.
“너라도 살아야지. 내가, 영이랑 좋아하는 사이 아니라고, 우린 아무 사이 아니라고, 그렇게 말하고 거기서 나왔는데…. 부끄러워서, 낯부끄러워서. 영이 부탁이라도 들어줘야지.”
단은 다시 고개를 저었다. 한이 눈물을 닦고 단의 팔을 붙들었다.
“단아. 제발 부탁이다. 도망쳐라. 이건 건이랑 내 누님을 위한 일이기도 해.”
그가 무겁게 말했다.
“네가 이제 와서 붙잡히면, 군인들이 그동안 어디 있었냐고 물어볼 거야. 너는 고문을 못 견딜 거고. 그럼 건이랑 건이 식구들도 다 큰일이 난단다.
한 사람이라도 더 살려면 네가 대운관을 나가야 한다. 나가서 다시는 돌아오면 안 돼.”
팔을 잡은 한의 손이 꽉 죄어들었다. 단은 이게 자기가 선택할 수 있는 일이 아니란 걸 깨달았다.
한이 돌아가고 두 시진도 안 지나 만금상단에서 보낸 일꾼들이 들이닥쳤다.
일꾼들은 이런 일에 아주 익숙해 보였다. 단은 건이네 식구들 얼굴도, 저를 맡아준다는 상인의 얼굴도 못 본 채로 신새벽에 짐수레에 실렸다.
그리고 여전히 숨은 건지 갇힌 건지 알 수 없는 상태로 대운관을 떠났다.
단을 맡은 상인은 닷새 길을 가고서야 단이 짐수레에서 나오도록 허락해주었다.
상단에 상품만큼 많은 것이 소문이었다. 땅에 발을 대기가 무섭게 대운관 대역죄 이야기가 귀에 와서 박혔다.
윤한이 건이네 집 광에 찾아와서 누나의 말을 전했을 때, 그때 이미 단의 가족들은 모두 처형된 뒤였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