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nk Rock: Regenerating World RAW novel - Chapter 229
22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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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금상단 상인은 단을 보자마자 네겐 빚이 있다고 말했다. 윤한이 단의 피신 비용을 절반밖에 안 냈으니, 나머지는 단이 일해서 갚아야 한다는 거였다.
그때부터 단은 밤도 낮도 없이 혹독하게 부려 먹혔다. 계산을 어떻게 하는지 일은 죽어라 하는데 빚은 줄어들 낌새도 없었다.
별로 상관도 없었다. 닥치는 대로 손을 움직이면서 가족이 왜 죽었는가만 생각했다.
한 가지는 확실했다. 모든 게 단의 잘못이었다.
그런데 뭘 잘못했는지 알 수가 없다는 게 정말로 미칠 노릇이었다.
화기 기술이 죄라면 화기도감은 왜 있으며 왜 거기에 장인을 두는가?
민간 공방 가마로 무기를 만든 게 죄라 해도, 그렇게 다 죽을 정도의 일인가?
사실 그 총통은 무기라고 하기도 어려웠다.
화약은 만들지도 않았다. 탄자도 없었다. 그것만으로는 흔한 철대롱하고 마찬가지였다.
상단과 이동하는 중에 화약 밀매하는 상인을 한 사람 만났다.
그는 화약과 화기 기술, 특히 총통은 땅님들이 싫어하셔서 원래 죄가 되는 게 맞다고 했다.
화기는 도리를 흐트러뜨리는 흉물이라 하여 왕조시절부터 제작과 사용을 금한 전례가 여러 번 있고, 제작자와 소유자를 처벌하는 법령도 없는 건 아니라고 했다.
그러니까 단이 잘못한 게 맞았다.
여전히 납득할 수 없었다.
생각해도 생각해도 이해가 안 갔다. 무얼 봐도 무얼 들어도 납득이 안 갔다.
온 세상이 다 내 잘못이라는데 나는 왜 이게 이해가 안 가지. 내가 등신 머저리인가.
등신 머저리를 데리고 온강까지 내려간 만금상단은 온 길을 되밟아 대운관을 향했다.
원래 윤한이 상인에게 부탁한 것은 단을 남방행 상단에 넘겨 대운관에 못 돌아오게 하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막상 길을 돌릴 때가 되자 상인은 빚이 아직 남았다느니 뭐라느니 하면서 말을 바꿨다. 그동안 단을 부려 보고서 놓아 보내기가 아쉬워진 모양이었다. 단처럼 일머리가 좋으면서 뜻글자까지 다 아는 데다 부지런하기까지 한 일꾼은 큰돈을 주고도 얻기 어려웠다.
물론 그는 단을 대운관에 데리고 들어갈 생각은 전혀 없었다.
관성 밖에 상단 야영지를 차린 뒤 상인은 단에게 일주일간 짐수레에 숨어 있으라고 명령했다. 단이 거부하자 차꼬를 채워서 억지로 처박았다.
수레 짐칸에 갇히자마자 대운관에서 끌려 나오던 날의 기억이 벼락같이 살아났다. 단은 비명을 지르지 않기 위해 피가 날 때까지 입 안을 씹어야 했다.
갇힌 것보다도, 묶인 것보다도 아무것도 할 일이 없는 것이 더 무서웠다.
빛 한 점 안 드는 어둠보다 기억이, 생각이 무서웠다.
등에 닿은 짐수레 바닥에서 겨울의 혹독한 냉기가 느껴지지 않는 것이 무서웠다.
단이 같은 수레에 실려 대운관을 나온 것이 12월이었다. 모르는 사이 해가 바뀌고 날이 풀렸다. 단은 자신이 날짜를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이제껏 어디를 다녔는지, 누구를 만나고 무엇을 했는지 거의 기억이 없었다.
단이 아는 건 더 이상 가족이 세상에 없고 자신은 대운관에 돌아갈 수 없다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사실마저 의심스러웠다.
사람들은 단의 가족이 전부 죽었다고 했다. 대역죄를 받았다고 했다. 하지만 그건 전부 남에게서 전해 들은 이야기였다.
그리고 하나같이 말이 안 되는 이야기였다.
단은 아무것도 직접 보지 못했다.
“확인… 확인을 해야 돼.”
단은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굉장히 오랜만에 제 목소리를 들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
무엇을 확인해야 하는지는 스스로도 몰랐다. 하지만 무엇이든 두 눈으로 보지 않으면 영영 납득하지 못할 터였다.
마음을 정하자 몸은 저절로 움직였다. 단은 어렵지 않게 차꼬를 풀어버리고 밤중에 수레를 빠져나왔다. 상인의 막사에서 돈을 조금 훔치고, 야영지를 나와 성 밖 빈민촌의 폐가에 숨어 해가 뜨기를 기다렸다.
대운관은 사람과 물건이 들고 나는 데 제한이 많아서 그만큼 빠져나갈 구멍도 많았다. 신분패를 분실하면 벌을 받았기 때문에, 역으로 신분패는 집에 두고 돈푼과 안면으로 해결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어느 문에서 어느 시간대에 신분패 확인 대신 푼돈을 받는지 아는 사람들은 다 알았다. 부모에게 통행패를 자주 압수당하는 말썽꾸러기 아이들도 이런 일에 훤했다.
정오가 지난 무렵, 단은 학당 땡땡이친 아이들 무리의 꽁무니에 붙어 슬쩍 성에 들어갔다. 파수병은 단이 내민 동전이 진짜인지만 신경 썼지 단의 얼굴은 제대로 보지도 않았다.
여기까지는 일사천리였다. 하지만 집이 있는 장오거리를 향하던 단의 발길은 몇 걸음 못 가고 바닥에 붙고 말았다.
멀찍이 건이 아버지 구씨가 어정어정 길을 가는 것이 보였다. 뒷모습이었지만 단은 한눈에 알아보았다.
네가 붙잡히면 건이네 식구들까지 다 죽는다고, 절대 돌아오면 안 된다던 윤한의 말이 뒤늦게 되살아났다.
대운관은 큰 도시였다. 하지만 장오거리 근처만 가도 모든 사람이 다 단을 알아볼 것이다. 장오거리에는 갈 수 없었다.
애초에 집에 간들 뭘 한단 말인가. 아무리 단이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했다고 해도, 집에 가면 가족이 나와서 맞아줄 것이라 기대한 것은 아니었다.
단은 대역죄로 일가가 처형된 집이 어떻게 되는지 알았다. 집을 통째로 불사르고 그 자리에 죄목을 적은 푯말을 세워 일 년이든 이 년이든 놓아둔다. 대운관엔 그렇게 불살라진 장소가 수십 군데가 있었다.
자신은 그걸 보려고 돌아온 건가? 애초에 뭘 확인하고 싶었던 걸까?
단이 반쯤 망연해 있는데 길 건너편에서 북소리가 둥둥 울려왔다.
여러 개의 큰 북을 동시에 치면서 점점 박자가 빨라지는 이 소리를 단은 대운관에 살면서 질리도록 들었다. 매주 미시에 있는 죄인의 처형을 알리는 소리였다.
하지만 소리가 나는 방향은 대광장이 아니라 대운궁 쪽이었다. 대운궁 태화관 앞에서 대역죄인의 처형이 벌어지고 있다는 뜻이었다.
단은 홀린 듯이 소리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태화관 앞 소광장은 이미 사람으로 가득했다. 또래에 비해 키가 큰 단에게도 군중 너머 처형대가 다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처형되는 죄인은 열 사람이 넘었다. 관인이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죄목을 읊고 있었다.
“죄인은 민심을 소란케 할 목적으로 유언비어를 퍼뜨려….”
“올바른 풍속을 저해하고….”
죄목은 모두 귀에 익은 것들이었다. 하지만 단은 처음으로 그 죄목들이 하나같이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다.
무슨 뜻인지도 모르겠다. 기준이 무엇인지도 모르겠다. 설령 죄가 맞다고 해도 꼭 죽을 일인지도 모르겠다.
우리 가족만 그렇게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죽는 것이 아니구나.
원래도 세상은 그렇게 돌아가는 곳이었나? 내가 철이 없어서 몰랐던 것뿐인가?
처형의 순간이 가까워져 오자 작은 광장에 사람들이 우 몰려들었다. 맥없이 서 있던 단은 사람들에 이리저리 치여 거의 광장 바깥까지 밀려났다.
이제 단의 시야에는 처형대 대신 웅장하고 화려한 태화관의 모습밖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다른 사형수는 모두 대광장에서 처형되는데, 어째서 대역죄는 사람들이 모이기 어려운 태화관 앞 소광장에서 집행할까?
말이 안 되는 것 같았다. 대역죄인의 처형은 본보기의 의미가 클 터였다. 단이 어릴 때만 해도 대역죄 역시 대광장에서 집행했다. 태화관 앞으로 장소가 바뀐 것은 단의 기억에도 일이 년밖에 되지 않았다.
단은 현실도피에 가까운 잡생각에 빠진 채 공연히 태화관을 올려다보았다. 어차피 이 자리에서 보이는 것은 그것뿐이었다.
조금 후 단은 태화관 5층의 큰 창이 살짝 열려 있는 것을 깨달았다.
창 안쪽은 어두웠다. 하지만 안쪽에 사람 하나가 서 있는 것은 확실했다.
누군가 좁은 창문 틈으로 광장의 처형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단은 멍하게 생각했다. 저건 누구야…?
북소리가 최고로 고조되었다가 멎었다. 잠시 후 군중이 함성을 지르기 시작했다. 간격을 두고 북소리가 쿵쿵 울렸다. 죄인들의 목이 하나씩 떨어져 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단에겐 사람들의 소란이 들리지 않았다. 장대에 꿰여 올라가는 머리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어째선지 태화관 창가의 사람에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사람 그림자가 창가에서 물러나고 창이 닫힌 후에야 처형이 전부 끝난 것을 알았다.
그러고도 단은 바로 자리를 뜨지 못했다. 인파에 떠밀리면서 닫힌 창만 하염없이 올려다보고 있는데 누가 거칠게 어깨를 끌어당겼다. 만금상단 사람들이었다.
단은 그 길로 상단 야영지로 끌려 나와서 죽기 직전까지 매타작을 당했다. 이 새끼가 은혜도 모르고 사람을 잡으려고 한다고 고래고래 소리치는 상인의 목소리를 끝으로 기억이 끊겼다.
앓다가 제정신이 들었을 때는 이미 상단이 대운관을 떠난 뒤였다.
그 뒤는 똑같았다. 단은 또다시 밤낮으로 일하면서 상단과 함께 중부를 향했다.
하지만 이후로도 단의 머릿속에선 태화관 창가의 사람에 대한 생각이 떠나지 않았다.
그건 누구였을까. 왜 거기 있었을까.
궁궐의 높은 창에서, 죄도 아닌 죄로 죽는 사람들을 내려다보는 사람이 있었다.
거기에 사람이 있었다.
단은 몸서리가 쳐졌다.
그렇다. 가족들이 죽기까지 모든 과정에, 모든 장소에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화기도감 장인인 누나가 화기 제작을 제안했을 뿐인데, 어머니를 밉게 보고 끌어내릴 빌미로 삼으려 든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온갖 일을 안 좋게 과장하고 권영에게 역심이 있다며 위에 발고한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땅인 벼슬아치 여럿이 모여 이것이 죄냐 아니냐 논할 때 굳이 대역이라 말한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옛 제도에는 이유가 있으니 가족 모두에게 연좌를 적용하라 말한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누군가 말을 할 때 그것이 제 이득에도 맞다고 여겨 고개를 끄덕인 자가 있었을 것이고, 깊이 생각지 않고 아래로 명을 내려보낸 자가 있었을 것이고, 명에 따라 추포령을 내린 자, 처형대를 설치한 자가 있었을 것이고….
세상이 원래 그래서 일어난 일이 아니었다.
법령이니 전례니 하는 것 때문에 생긴 일이 아니었다.
관이니 군이니 하는 형체 모호한 집단이 한 일이 아니었다.
모든 것이 사람이 한 일이었다.
그것을 깨달았을 때 단은 처음으로 자신을 미워하는 걸 그쳤다.
비로소 갈 곳이 생긴 증오가 기름 먹은 불처럼 길길이 날뛰었다.
누구야?
누구야?
이깟 일로 사람을 죽이겠다 마음먹은 게 누구야?
제 마음대로 남들을 움직여서 결국 목숨을 빼앗은 게 누구야?
찾아야 했다. 알아야 했다.
알아서 어떻게 한다든가 하는 건 그때는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저 단에게서 모든 걸 앗아간 자가 땅 위 어딘가에 존재한다는 걸 확인해야 했다.
이름이 있고, 얼굴이 있고, 세끼 밥을 먹는 사람이란 걸 확인해야 했다.
다만 당시 단의 처지는 무얼 알기는커녕 살아남는 것부터가 급했다.
한번 손을 대고 나자 상인은 툭하면 단을 때리게 되었다. 단을 맡고 있는 사람이 그를 때리니 상단의 다른 사람들도 다 때렸다.
그때그때 이유가 뭐였는지는 기억도 안 난다. 아마 중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대로 있다가는 맞아 죽을 것 같아서 도망쳤다. 붙잡혀서 또 맞았다.
결국 이렇게 맞다가 죽나 했을 때 양곤호를 만났다. 곤호가 단의 빚을 대신 갚아주었고 단은 소속 상단을 옮겼다.
조금 숨통이 트이자 단은 원수를 찾기 시작했다.
곤호의 벽력상단은 대운관을 다니지 않았다. 단은 다른 상단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대운관의 정보를 사들였다.
대운관에서 일어난 대역에 관한 것, 그 밖의 것, 특히 공기서와 법관과 권력자들에 대한 모든 걸 파헤쳤다.
정보를 구할 때마다 돈을 쓰고, 빚이 늘고, 약점을 잡히고, 소문이 돌고…. 제 발치를 좁히는 것을 알면서도 멈출 수가 없었다.
곤호는 다 알면서도 내버려두었다. 단의 저축이 늘어나는 것 같으면 제가 넌지시 줄을 알선해주기도 했다.
사람 이름 하나에 도달하는 데 일 년 가까이 걸렸다.
사실은 처음부터 알고 있던 이름이었다. 그 사람밖에 없었다.
위교연 인. 대운관 중시조가 위씨 집안의 직계손. 태상사 위진선 예의 하나 남은 자식.
그는 아직 격에도 달하지 않았던 스무 살에 대운관의 사법서 법관 자리에 올랐다.
이후 수 년간 제 공적을 높이고 땅인의 위세를 떨치기 위해 매년 대역사건을 벌여왔다.
그가 화약과 화기는 물론 하늘인, 독약, 작은 무기 등 땅인의 신변을 위험하게 할 수 있는 건 뭐든 경기하듯이 싫어한다는 것.
대역죄 처형을 대광장에서 태화관 앞으로 옮기게 한 것도 위교연인 것.
태화관은 태상사의 공관이자 위씨 집안이 사택처럼 사용하는 건물이라는 것까지 알고서 단은 거의 운명을 느꼈다.
그가 주동하여 단의 가족을 죽인 자였다.
제 마음에 거스르는 것을 세상 도리를 거스른다 부르며 없애려는 자였다.
거스르는 자가 죽는 걸 꼭 제 눈으로 봐야만 직성이 풀리는 자였다.
그러면서 저는 건물 밖으로 발도 디디지 않고 위에서 내려다보길 좋아하는 자였다.
위교연이 태화관 창문의 사람이었다.
하지만 알고 난 뒤에야말로 단의 세상이 멎었다.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아무것도.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