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nk Rock: Regenerating World RAW novel - Chapter 231
231화
* * *
시현은 교연이 격분해서 어깨를 들썩이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가 차분하게 말했다.
“그대가 나를 공격해온 것이 명령패 때문은 아니겠지. 정말로 원하는 바가 무엇인가?”
“닥치라고 했어. 묻는 쪽은 나야. 패를 맡긴 수하를 어디로 보냈어?”
“패를 맡기지도 않았고, 무엇을 명하지도 어디로 보내지도 않았다.”
시현이 답답한 듯이 말했다.
“내가 여기 있는데 명령패가 무엇이라고? 그리고 내 명령패는 정말로 그냥 옥돌에 불과하다. 그대도 본 적이 있지 않는가.”
“없어!”
교연은 곧바로 반박했다가 입을 앙다물었다.
서격원 수학 시절, 동기들 사이에 시현의 명령패가 화제에 오르면 교연은 일부러 관심을 두지 않으려 했다. 당시엔 제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서였지만 집착을 드러낸 지금에 와서는 그것마저 꼴이 우습게 되고 말았다.
흔히 명령패라 하는 것은 사실 서격원에서 발급하는 격패다. 서격원이 소유자의 격을 보증하고, 관에서 벼슬아치의 명부에 이름을 올리고 총치총령이 직접 패에 표를 찍어 명령권을 부여한다.
격에 달하는 것은 법술사 스스로의 능력이라도 사람에게 명령할 권한을 가지려면 서격원과 팔대관성의 권위가 함께 받쳐주어야 했다.
그러나 문령패는 예외였다. 문의 격은 서격원이 인가하는 것이 아니었으므로 서격원이 보증할 수 없었다. 총치의 아래에 있지 않았고 관성과 속령의 경계를 넘어선 존재였으므로 관성에서 나온 모든 권위가 의미가 없었다.
문에게 권위를 부여하는 것은 문 자신뿐이었다.
시현의 명령패야말로 그것을 상징하는 듯한 물건이었다.
문에게 명령패가 필요하다 서격원에서 진언을 올렸을 때, 시현은 토 과목의 공부에 열심이었다. 앞에 놓고 공부하던 옥돌 여러 개를 섞어 납작한 패 모양의 돌편을 만들었다.
서격원에서 무엇을 새길까 고심하였으나 결국 아무도 손을 못 대었다. 그래서 완씨 시문의 명령패는 곱게 각이 진 여러 색 옥돌 그것뿐이었다.
옥은 자연 상태에서도 여러 빛깔이 섞이는 경우가 흔하다. 보기에 특별한 물건이라 명령패가 된 게 아니라 문이 직접 만들고 명령패라 하며 지녀서 문의 명령패였다.
문의 모든 권위가 문 자신에게서 나온다는 사실을 이보다 더 잘 보여주는 일은 없었다.
교연에게는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배알이 뒤틀리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교연의 속을 가장 불편하게 한 것은 시현이 이런 일들을 항상 의도하지 않고 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었다.
고작 열두 살 주제에, 아니면 열두 살이기 때문에 시현은 매사에 무작위하고 꾸밈없게 보였다. 그가 하는 말과 행동은 자연스럽게 문의 격에 어울리는 일이 되었다.
교연은 시현이 문으로서 가진 힘보다도, 권위보다도, 그 자연스러움을 가장 질시했다.
힘과 권세를 어떻게 얻는다 해도 자연스러움만은 제가 영영 가질 수 없는 부분이라 느껴졌다.
문을 자칭하고 난 뒤에 교연은 그걸 더욱 뼈저리게 느꼈다.
자신은 결국 명령패 하나 갖추는 데에도 남에게 어찌 보일지에 벌벌 떠는 인간이었다.
겉의 형식에 매달리고 속의 의미에 매달리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그렇게 매달려도 무언가가 부족하게 느껴졌다. 아무리 귀한 재료, 화려한 각인으로 패를 만든들 완씨 시문의 옥돌 한 개에 대면 조악하고 유치해 보일 것 같았다.
그렇다고 제가 그럴듯한 옥을 가져다가 패를 만들면 시문의 명령패를 흉내만 내는 것이 된다.
그러느니 차라리 명령패를 빼앗아 쓰는 게 모양이 나으리라 생각했는데, 그것조차 뜻대로 안 되었다.
교연은 이미 일그러질 대로 일그러진 자존심을 추스르며 표정을 가라앉혔다. 그는 거의 소망을 품고서 시현에게 물었다.
“남운관에 돌아간 뒤에, 네 명령패에 무언가 새기지 않았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하하, 그렇게 무작위를 꾸미고 젠체하는 건 여전하네. 사실은 다 의도한 거지? 순백색 옥은 왕의 돌이잖아. 백옥에 다른 옥을 섞어서 가치를 떨어뜨린 것도 무슨 비유 같은 거지?”
“더 검소했어야 한다고 꾸짖으면 내가 할 말이 없다만….”
시현은 짧게 한숨을 쉬었다.
“이런 이야기는 그만두자. 고작 명령패 따위가 이 상황에 무엇이 중요한가? 그대가 정말로 원하는 바를 말하라. 운모와 손을 잡고 나를 붙잡아 무엇을 어쩌겠다는 것인가?”
“고작이라고 하지 마….”
교연이 작게 중얼거렸다. 불붙은 듯한 눈길이 시현에게 박혔다. 선득한 적의는 그 자체로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하지만 시현은 포기하지 않고 교연에게 말을 건넸다.
“운모가 그대에게 무엇을 약속했는지 모르나 돌 인간은 종국에 인간의 멸절만을 바란다. 빠르거나 늦거나 대운관도 그들과 싸워야 한다.”
“내가 그걸 모를까? 착각하는 모양인데, 돌 인간과 싸울 수 있는 것은 너만이 아냐. 이제는 내게도 너 못지않은 힘이 있어.”
“그렇다 해도 전력을 합쳐서 돌 인간부터 무너뜨리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그대가 나를 위협으로 여긴다면 후일에 대해 약정을 맺는 방법도 있다.”
“내가 왜?”
“생각해 보라. 그쪽이 그대에게도 이익이다. 알지 않는가. 나는 돌 인간이 거둬간 법력을 세상에 되돌리고자 하고 있다. 돌 인간을 멸하고 법력을 되돌리고 나면….”
“그러니까, 내가 왜?”
교연이 심술궂은 냉소를 가득 띠었다. 시현은 말문이 막혔다.
“대체 왜, 내가 세상에 법력이 되돌아오길 바랄 거라고 생각하는데?”
“무슨….”
“알잖아? 마력석 없이는 법술을 못 쓴다고 평생 무시를 당하다가, 이제야 내가 유리한 판이 되었다고. 그 판을 엎으려는 너를 내가 대체 왜 내버려두겠어?”
“말이 되는 소리를 하라!”
사색이 된 시현이 침상에서 벌떡 일어났다.
“이것은 그대 한 사람 유불리의 문제가 아니지 않은가! 법력이 사라져서 온 세상이 파멸로 치닫고 있다. 사방에서 백성들이 거석에게 죽고 물길이 끊기는데 땅인들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다. 돌 인간들은….”
“괜찮아. 대운관엔 마력석이 있으니까.”
“그것이 언제까지 가리라고 생각하는가!”
“글쎄? 모르겠지만, 영원히 갈 필요도 없잖아? 내가 영원히 사는 것도 아닌데.”
시현은 또다시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교연은 시현이 경악하는 모습을 즐기는 것 같았다. 그가 밝아진 목소리로 말했다.
“가장 이상적인 건 내가 팔관성 전체의 주인이 된 뒤에 돌 인간을 모두 처치하고 세상에 법력을 되돌리는 거지. 하지만 그렇게 안 되어도 괜찮아. 나한테는 최악의 사태를 막는 게 가장 중요해.”
“그 최악이란 게 무엇인가.”
“몰라서 물어? 네가 돌 인간을 물리치고, 법력을 되살리고, 온 세상의 영웅이 되어 역시 시문이시라 칭송받는 꼴을 두고 보는 거지.”
시현은 하릴없이 주위의 시중꾼들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그들은 교연이 늘어놓는 얼토당토않은 말이 들리지 않는 것처럼 가만히 서 있을 뿐이었다.
교연이 무언가 떠올린 것처럼 장난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아, 그래. 너한테 뭘 원하느냐고 물었지?”
“그렇다.”
“방금 재미난 생각이 났어. 대운관의 모든 백성 앞에서, 네가 내게 서격하는 예식을 해주면 어때? 법력이 없으니 너는 더 이상 문이 아니고, 내가 진정한 문이라 선언하는 거야. 그러면 네 목숨만은 붙여 놔 주지.”
시현의 얼굴에 허탈한 빛이 돌았다.
“무슨 말을 하는가 했더니. 격은 왕위가 아니다. 어떻게 계승을 하는가.”
“안 될 게 뭐야? 문이란 건 세상 누구와도 비할 수 없이 강한 법술사를 말하는 거잖아. 한때는 그게 너였지만….”
교연은 가슴에 두 손을 얹으며 꿈꾸는 듯한 얼굴을 했다.
“이제 너는 마력석 없이는 아무것도 못 하고, 세상 마력석의 적어도 절반 이상이 내 손에 있어. 지금 세상에서 가장 강한 건 나야. 그러니까 내가 문이야.”
“그래서 그대는 이미 스스로 문을 칭하지 않았는가. 그것으로 부족한가?”
교연이 약간 움찔했다. 시현이 그를 노려보았다.
“사람들 앞에서 문으로 인정받는 것, 겨우 그게 그대의 목적이었나?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을 죽음과 고통과 두려움에 빠뜨려서, 원하는 게 고작 그것인가?”
생글거리던 교연의 낯빛이 갑작스레 바뀌었다.
“고작이라고 하지 말랬지!”
교연은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지르며 시현에게 달려들었다. 양팔이 부자유해 제대로 움직일 수 없는 시현은 그대로 교연에게 밀려 침상 위로 쓰러졌다.
교연이 시현을 누르고 멱살을 잡으며 소리 질렀다.
“네가 쉽게 손에 넣었다고 해서 그걸 바라는 사람까지 바보 취급하지 마! 아무리 노력해도 얻을 수 없는 사람의 마음을 네가 어떻게 알아!”
시현이 이를 악물었다. 그가 마주 소리쳤다.
“그러면 너는, 살아남으려고 노력했지만 살아남지 못한 사람의 마음을 생각했느냐? 벽명관 백성들, 대운관 백성들, 그 많은 목숨, 그 많은 고통 앞에서 고작이 아닌 일이 어디 있느냐! 죽어버린 이들에게 누가 문이든 무슨 의미가 있느냐!”
“하하! 물론 그렇게 나오시겠지! 남운관에서 왕 노릇하기는 저도 똑같은 주제에!”
교연이 날카로운 웃음을 터뜨리며 몸을 일으켰다.
그가 손짓하자 침상 옆의 시중꾼들이 양쪽에서 시현을 붙들어 앉혔다. 교연이 늘어진 머리칼을 걷어올리며 물었다.
“계승식, 해줄 거야 말 거야?”
“하지 않는다. 네 바람은 이미 그릇되었고 어떤 형태로든 이루어지면 더 그릇되어질 것이다.”
“흥. 마지막 문으로 죽으시겠다?”
교연은 팔짱을 끼더니 침상에서 조금 물러섰다. 그가 침소 마루를 빙빙 돌면서 독살스럽게 중얼거렸다.
“그렇게 놔둘 줄 알고!”
시현은 악과 분노에 찬 교연의 모습을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내 쪽에서 묻겠다. 그만둘 생각은 없는가?”
교연의 걸음이 멈췄다. 시현이 낮은 소리로 말했다.
“그대를 인정하라고 수많은 이들을 핍박하고, 그렇게 해서 인정을 받으면 오히려 마음이 괴롭지 않은가?
남의 괴로움을 생각해서 그만두라는 말은 그대에게 닿지 않겠지. 그럼 그대의 고통을 멈추기 위해서라도 그만둘 생각이 없는가?”
교연은 놀란 것 같았다.
시현을 멍하니 보고 있던 그가 배시시 웃었다. 입꼬리가 천천히 길게 찢어졌다.
교연이 얼굴 가득 미소를 띤 채 중얼거렸다.
“네가 감히, 내 고통을 운운해? 네가?”
교연의 웃음을 보면서 시현은 소름에 몸이 굳었다.
이제까지 그가 교연을 상대로 설득하고, 설명하고, 협상하고자 입에 올렸던 모든 말은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었다.
교연은 이미 오래전에 미쳐버린 사람이었다.
그것은 이해할 수 있었다. 사람은 누구라도 미칠 수 있었다.
그러나 저렇게 미친 사람이 어떻게 대운관 정점의 권력을 손에 넣었는지, 그가 전권을 휘두르는 동안 왜 모두가 그를 방치했는지, 그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교연이 사뿐사뿐 시현에게 다가오며 말했다.
“너는 모르겠지. 고통을 멈추는 방법 같은 건 없어. 그런 건 없어.
대신에 기쁨과 쾌락은 있지. 인정받는 건 기뻐. 나한테 설설 기는 놈들을 보는 것도 기뻐. 꼴 보기 싫은 놈들이 사라지는 거? 그건 최고 기쁘지!”
바로 앞까지 다가온 교연이 시현을 내려다보았다. 흐트러진 머리칼 사이로 그가 황홀한 듯 웃었다.
“지금 제일 기쁠 것 같은 건…. 그래. 네 잘난 낯짝을 부숴버리는 거야. 너를 꺾고 꺾고 또 꺾어서… 다시는 내 앞에서 고개도 못 들게. 그렇게 만들 거야. 하하. 얼마나 쉬운지 알면 넌 깜짝 놀랄걸.”
시현은 낯을 굳혔지만 목소리를 바꾸지 않고 말했다.
“사람 마음은 뜻대로 못 할 것이다.”
“응, 마음은 필요 없어. 그거 말고도 내 맘대로 되는 거 많으니까.”
교연이 검지 끝으로 시현의 어깨를 꾹꾹 밀치며 말했다.
“일단은 울리는 거부터 시작할까? 기대가 많이 돼. 서격원 강학회 시절부터 죽 생각했거든. 너 강론장 못 찾아서 두리번거리고 다니는 거 볼 때마다. 울려야 되는데. 저걸 꼭 한 번은 울려야 되는데.”
시현이 교연을 노려보았다.
“어디까지 바닥으로 떨어질 셈이냐. 위라는 자가 수치심도 없느냐.”
“아 저런. 그런 거 한참 전에 다 내다버렸어. 열셋이나 먹은 게 기운도 제대로 못 읽는다고 종놈들 앞에서 회초리질 당할 때.”
교연이 날카로운 웃음을 터뜨렸다. 시현은 저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