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nk Rock: Regenerating World RAW novel - Chapter 248
24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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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은 눈을 약간 크게 떴다.
“저자가 내놓은 물건 중에 약탈한 물건이라도 섞여 있어요? 어떻게 알아봅니까?”
“벽단목과 백금을 써서 공들여 세공한 노리개가 몇 개 보이더구나. 그런 물건은 비축했다 사용하고자 목적한 물건이 아니다. 법력을 빠르게 모으는 일에 서툰 땅인들이 만약을 위해 몸에 지니고 다니는 물건들이다. 항시 지니고 다니니 장신구 용도가 강하고, 보면 한눈에 구분이 간다.”
“그렇다고 그게 꼭 약탈한 물건이라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피난하다 형편 궁해진 땅인 양반이 팔아치웠을 수도 있고.”
“가문의 성씨나 상징물을 양각한 물건을?”
“아. 그러면 아무래도.”
단이 바로 수긍했다. 시현이 더 말했다.
“정말로 사정이 어려워 팔았다면 가문의 체면을 위해 성씨를 지웠을 것이다. 그리고 부모가 외지에서 유학하는 자식에게 선물하는 물건도 있었다. 그런 물건들은 보석과 세공에 의미를 담는다. 수복과 안전을 비는 것, 시험 합격을 비는 것…. 집을 떠난 사람이 가장 마지막까지 몸에 지닐 것들이고, 판다 해도 매듭술이라도 떼어 놓지 않았을까 싶다. 매듭의 색과 장식도 가문을 상징하는 경우가 많으니.”
시현은 씁쓸한 얼굴이 되었다.
“저런 물건이 저리 많이 돌아다니는 걸 보면 대운관에 변을 당한 이들이 많은 모양이구나.”
“함락당한 읍성이 수가 없으니까요.”
단은 그렇게만 말하고 입을 다물었다.
대운관에서 땅인들이 백성을 못살게 구는 것은 대관성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었다. 단의 입장에선 솔직히 상상만 해도 쌤통이었다. 하지만 시현은 약탈당한 것이 반민이든 하늘인이든 똑같이 안타까워한다는 걸 여러 번 보아서 알기에 굳이 어깃장을 놓을 마음은 들지 않았다.
시현이 광장으로 돌아오자 아까 나섰던 사람들이 다시 몰려들었다. 시현은 그들을 죽 둘러본 다음, 시현에게 다가올 생각 없이 멀찍이 서 있는 덩치 좋은 중년 여자에게 다가갔다.
“그대도 마력석 상인인가? 그대는 내가 약탈물 거래를 하지 않는 상인을 찾았을 때 나서지 않았지.”
“저야 물건을 받을 때 출처를 딱히 확인하지 않으니까요.”
상인이 퉁명스럽게 말했다.
“그리고 여기까지 직접 오는 나으리는 하나같이 순도 높은 특상품을 찾으시는데, 순도 높은 참석은 사람들이 제 품에 넣지 잘 팔지 않습니다요. 이런 시장까지 밀려 나오는 물건은 열 중 아홉이 뒷사정 구린 물건이에요. 출처 가리시려면 차라리 돈 좀 더 들여서 낮 시장에서 알아보시지요.”
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다. 네 상품을 보러 가 보자.”
“예? 출처는 보장을 못 드리는데요. 그리고 제가 취급하는 물건에는 특상품이 별로 없습니다.”
“나도 딱히 비싸고 귀한 물건을 찾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네가 상대적으로 솔직한 것도 이제 알지 않았느냐.”
“아하. 그런 거군요.”
상인은 피식 웃더니 갈 방향을 몸짓하고 걷기 시작했다.
그가 일행을 데려간 곳은 네 개 방이 붙어 있는 가건물이었다. 처음 찾았던 막사에 비해 훨씬 공간이 넓었다. 곧 그가 하늘인 한 사람과 함께 다른 방에서 물건들을 날라 왔다.
“보십쇼. 만져서 마력량을 확인하시는 건 괜찮습니다만, 아주 잠깐만 손대셔야 합니다. 돌 안의 마력은 절대 건드리시면 안 되는 건 아시죠?”
“물론이다.”
상인이 바닥에 늘어놓은 상자들을 열며 말했다.
“솔직히 이 시장에 장물 안 만져 본 사람 하나도 없을 텐데, 우르르 나서는 걸 보고 저치들이 다 돌았나 했습죠. 땅님네를 상대 안 해본 놈들이나 나이 어린 분들을 우습게 보지. 사실은 시험에 빨리 붙은 분들이 제일 무서운 걸 모르고.”
“내가 격이 없을 수도 있지 않은가. 어리다고 꼭 격이 높다는 법도 없고.”
“아니요? 척 보면 알겠는데요. 버릇없게 들리시겠지만 격 없이 행세하시는 땅님은 다 티가 납니다요. 특히 이렇게 낯설고 험한 데 오시면 내심 안절부절을 못하시지요. 나으리처럼 태연한 분은 다 믿는 구석이 있다는 얘긴데 땅님의 믿을 구석으로 격만 한 게 있겠습니까.”
“그런가.”
“그리고 땅님들 법술 실력은 어차피 다 재능에 달린 것 아닙니까. 스물 전에 시험 보실 마음을 먹으셨다는 게, 이미 다른 분들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뜻이죠.”
“과연… 그렇게 되는구나.”
시현은 살짝 시무룩하게 대답했다.
상인은 시현을 데리고 상자 앞을 걸으며 가격을 말하고 설명을 붙였다.
“가격대별로 상자를 나눠 두었습니다만, 같은 상자에 들었다고 꼭 마력량이 비슷한 건 아닙니다. 같은 마력량이라도 부피가 작고 가벼운 쪽이 훨씬 더 비싸니까요. 마력량이 일정 선 이상 커지면 부피 무게 상관없이 값이 팍팍 올라가는 건 아실 테고.”
“여기서는 돌에 등급을 안 붙입니까?”
단이 물었다. 단과 시현은 다천관을 나서기 전 온성에게서 마력석의 가치를 어떻게 헤아리는지, 시세가 어떻고 앞으로 가격 폭등 전망이 어떤지를 대충 들어 두었다. 다만 단으로서는 패물한 마력석의 겉모습만 보고 가치를 가늠할 수는 없었다.
상인이 비쭉 웃었다.
“등급 책정에는 감정료가 추가로 붙습죠. 등급이 정확하단 보장까지 받고 싶으시면 땅님을 모셔와야 하니 보증료가 붙고.”
“아하. 스스로 감정 못 하는 반민 보따리장사한테는 그런 식으로 돈을 더 뜯는군요.”
단이 실소했다.
“그 전문가란 땅님이 믿을 만한 분인지는 어떻게 압니까?”
“신용 있는 분이 이름 대고 감정해주길 원하면 돈을 더 내야지.”
“이 모양이라니까요. 없는 놈, 뭣도 모르는 놈일수록 더 뜯어먹히게 돼 있지.”
단이 어깨를 으쓱했다. 상인은 헛기침을 했다.
“무슨 말을. 땅님 어르신들도 감정사를 많이 이용하신다네. 아무래도 전문가가 좋은 법이니까.”
그러면서 그는 시현을 흘긋 보았다.
사실 같은 상자에 담겨 있는 마력석의 가치는 상인이 말한 것만큼 균등하지는 않았다. 손님의 마음을 사기 위한 실속 있는 물건과 적당히 바가지 씌운 물건이 섞여 있었다.
시현은 상인이 주의한 대로 아주 일순간만 마력석을 만져 보고 있었는데, 그러면서도 손대 본 돌을 분류하거나 장부를 만들 생각은 못 하는 것 같았다.
저러면 상품을 많이 볼수록 헷갈려서 가격 흥정을 어려워하게 된다. 결국에 귀찮아져서 감정사 불러오라 하는 손님도 많았다. 상인은 격 높은 손님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으면서 덮어씌울 수 있는 한도가 어딘지를 슬슬 고민하기 시작했다.
시현이 단에게 말했다.
“우리는 괜찮다. 내가 마력량을 가늠하니까. 가격도 온의에게 들은 예상치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 물건들이 꽤 있구나.”
“아, 구분이 가십니까?”
“온의가 견본을 여러 가지 보여주었으니까.”
상인은 눈을 껌뻑였다. 이 나으리가 말하는 온의가 설마하니 방씨 온의일까?
그가 그것을 물어도 되는지 아닌지 고민하는 사이 시현이 단에게 다시 말했다.
“내 경우엔 굳이 특상품을 사는 것보다 낮은 등급을 여럿 사는 쪽이 실전에서 쓰기가 더 나을 것 같다. 예산은 어느 정도 쓸 수 있느냐?”
“병급이나 사급 아래로만 사실 거면 예산 걱정 많이 안 하셔도 될 것 같은데요. 일단 골라 보세요. 예산 넘어갈 것 같으면 제가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러면 이제 고르마. 따라오거라.”
시현이 상인에게 말했다.
그는 죽 열려 있는 상자 앞을 다니면서 원하는 것을 하나하나 짚었다. 호위가 미리 준비한 함에 시현이 고른 돌을 옮겨 담고, 단이 뒤를 따르면서 물건들이 어느 가격대의 상자에서 나왔는지를 적었다.
상인은 시현이 가격 맞게 붙은 물건, 돌의 순도가 균일해 쓰기 좋은 돌이라 감정받은 물건만 딱딱 골라내는 것을 보면서 속으로 혀를 찼다.
덮어씌우기는 누굴. 나이 어린 땅인을 무시하면 안 된다고 자기 입으로 말하고서, 정작 쉽게 생각한 것은 저였다.
물건을 다 고른 시현이 상인을 보고 물었다.
“표정이 좋지 않구나. 이 거래가 탐탁지 않으냐? 가격을 더 붙이고 싶은 것이냐?”
“나리님, 깎지는 못할망정.”
단이 핀잔했다.
“내가 좋은 물건을 다 골라가는 것 같아서 미안해서 그렇다. 네가 예산이 충분하다고 하기도 했고.”
“필요한 데 쓰시라는 것이지 이유 없이 퍼주라는 뜻이 아닙니다.”
“아, 아닙니다! 손님 안목에 감탄해서 그렇습니다.”
상인이 황급히 끼어들어 손을 저었다. 어차피 그에게도 시현과의 거래가 손해는 아니었다. 어차피 마진은 붙일 만큼은 붙였고, 경매 전후로는 한동안 손님이 없을 것을 생각하면 이거든 저거든 당장 물건을 팔 수 있다는 건 좋은 일이었다.
호위가 등에 지고 온 커다란 함을 내려 금폐와 보석으로 값을 치렀다. 마력석 한 주머니를 사는 데 그 수 배 이상의 금이 들어갔다.
“혹시 물건을 더 보실 거면 제가 헛짓거리 안 하는 상인을 몇 더 소개해드릴까요?”
정확히는 사람 가려가며 헛짓거리를 하는 상인이었지만. 어쨌든 상인은 그렇게 말했다. 시현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네가 생각보다 좋은 물건을 많이 팔아주었다. 덕택에 오래 돌아다니지 않고 끝났구나.”
“음, 소개를 해주실 거면 다른 쪽으로 부탁을 좀 드리고 싶은데요.”
단이 말했다.
“혹시 화약이나 화포를 취급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화약 재료도 좋고요.”
척 봐도 벼슬하는 사람 같은 땅인의 수행자가 화약을 입에 올리자 상인은 조금 놀란 것 같았지만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 있지. 그 정도야 소개해 줄 수….”
“잠깐만.”
그때 시현이 말했다.
“하늘인 한 무리가 가까이 오고 있다. 병사들 같은데. 혹시 꼬투리 잡힐 말은 잠시 멈추거라.”
“예?”
상인은 겁먹은 얼굴이 되어 허둥지둥 바닥에 놓인 상자를 닫기 시작했다. 아무리 뒤로 허가를 받고 하는 장사라지만, 밀매 현장에 병사들이 와서 좋을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시현은 자기가 먼저 문을 열고 가건물을 나왔다. 그가 말한 대로 병사 한 무리가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병사들의 맨 앞에는 털가죽과 피갑으로 된 무복을 입은 땅인이 한 사람 있었다. 짧은 갈색 수염이 나고 사십 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남자로, 허리에는 청색과 검은색 부절 주머니가 두 개 달려 있었다.
그는 원래도 험상궂은 인상인데 더해 잔뜩 불쾌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큰 걸음으로 성큼성큼 다가온 땅인이 시현에게 대뜸 물었다.
“그대가 소빈당에 들었다는 자인가?”
“그렇소.”
“나는 찰령부사 이원진 의다.”
“아.”
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원진에게 보통례로 인사한 뒤 율비와 말을 맞춰 둔 대로 자기소개를 했다.
“나는 사정이 있어 귀수관으로 피난하는 자로, 이곳의 한씨 율지와 작은 연이 있어 잠시 마을에 의탁하게 되었소. 벼슬아치가 되어 도망하는 것이 가문에 수치가 되어 이름은 밝히지 못하는 것을 양해하시오.”
원진의 뺨이 실룩거렸다. 제 신분을 밝히고도 충분한 예를 받지 못한 것이 불쾌한 듯했다.
하지만 상격에 찰령부사란 말을 듣고도 고개가 내려가지 않는 것은 상대에게도 그만한 격과 뒷배가 있다는 뜻이었다. 정변 때문에 일시적으로 몸을 피하는 세도가 집안 누구일 수도 있었다.
그가 불쾌한 낯을 바꾸지 않은 채 말했다.
“이야기를 좀 하고 싶은데. 여기는 자리가 좋지 않군. 함께 장소를 좀 옮기시겠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