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nk Rock: Regenerating World RAW novel - Chapter 253
253화
* * *
호란은 조금도 경계를 풀지 않았다. 그는 시현에게 부탁을 받고 이 자리에 왔고, 싸울지 말지를 상대에게 정하게 할 이유가 없었다.
“참석은 어디에 있어요?”
호란은 질문하면서도 대답을 기다리는 대신 주위를 살폈다.
대청 가운데에는 관인이 앉는 높은 의자 대신 쇠말뚝과 추가 어질러져 있었다. 무언가 육중한 것이 놓였던 흔적도 있었다. 문제의 참석은 방금 전까지 이곳에 있었던 게 틀림없었다.
“참석을 어디로….”
호란이 다시 물으려는데 동헌 창호가 벌컥 열리면서 하늘인 한 사람이 고개를 내밀었다.
“채 도련님, 군이 움직이고 있답니다! 어서 가셔야….”
하늘인은 키가 큰 여자로, 한 아름이 넘는 커다란 금덩어리를 한쪽 어깨에 이고 있었다. 금덩어리는 투박하게나마 마력석 패물의 형태로 세공되어 있었다.
“그 돌 이리 내.”
호란은 총알처럼 여자에게 달려들었다. 돌을 이지 않은 쪽 어깨를 향해 날카로운 발차기가 뻗었다.
“으앗! 안 돼!”
여자는 간발의 차로 공격을 피하느라 하마터면 돌을 떨어뜨릴 뻔했다. 두 팔로 돌을 끌어안으며 물러나는 여자에게 율비가 황급히 소리쳤다.
“떨어뜨리면 절대 안 돼요! 차라리 뺏겨!”
“아이고, 말이 쉽지…!”
여자가 불평하며 뒤로 빠지고, 대신 동헌 안쪽에서 남자 두 사람이 튀어나왔다. 율비가 처음 나타났을 때 대동했던 하늘인 호위였다.
둘은 기세도 좋고 합도 잘 맞았지만 공격에 살의가 없었다. 호란은 어렵지 않게 공격에서 벗어나 두 사람의 오른쪽으로 빙글 돌아갔다.
호란이 남자의 옆구리를 향해 주먹을 뻗는데, 옆에서 세찬 기운이 쇄도해와 호란의 주먹을 튕겨냈다. 끼어든 것은 그사이 돌을 바닥에 내려놓고 온 여자였다.
주먹을 거두며 다시 자세를 잡는 호란에게 여자가 소리쳤다.
“하나도 안 봐주네! 너무하는 거 아냐? 이쪽이 살살 하는 거 알면서!”
“나 봐주는 거 할 줄 몰라.”
호란은 그 말만 하고서 다시 쳐들어갔다. 일 대 다의 싸움인 데다 상대도 다들 실력이 있어서 호란이라고 여유로운 상황이 아니었다.
호란은 견제하듯 뻗어오는 남녀의 주먹을 피해 몸을 훅 낮추었다. 그리고 발차기를 할 듯 발을 고쳐 딛고 있는 왼쪽 남자의 다리 쪽으로 돌진했다.
축이 되는 다리를 호란에게 붙들린 남자는 그대로 호란과 함께 멀찍이 나동그라졌다. 호란은 일어나기 위해 몸을 굴리면서 남자의 명치를 팔꿈치로 힘껏 찍었다. 그리고 곧바로 튕겨 올라 다른 두 사람에게 덤볐다.
기세가 꺾인 두 사람은 호란이 쏟아붓는 주먹과 발길질을 막아내기 바빴다. 계속 물러나면서 여자가 외쳤다.
“채 도련님! 좀 도와주세요!”
채 도련님이라 불린 학창의의 남자가 근엄한 얼굴로 말했다.
“나는 문의 호위와 싸울 생각이 없다. 상황에 따라서는 그것도 위를 거스르는 일이 될 수 있다.”
“말씀은 알겠는데! 지금 쟤가 우리를! 패고 있잖아요! 좀….”
여자는 말을 끝맺지 못하고 황급히 입을 꽉 다물었다. 그 턱 끝을 호란의 주먹이 아슬아슬 스치고 지나갔다.
호란은 일단 거기서 공세를 멈추고 하늘인들과 거리를 벌렸다. 그가 학창의의 남자에게 물었다.
“나리께선 시문 님을 거스를 생각이 없으시다고요?”
“그렇단다.”
“그럼 참석을 원래 자리에 되돌려 놓고 시문 님을 기다리세요. 지금 여기로 오고 계시니까요.”
“그거 어떻게 좀, 보내 주면 안 될까?”
율비가 초조한 기색으로 끼어들었다.
“당장 설명은 못 하는데, 우리가 이 돌을 가져가는 게 사실은 시문 님께도 좋은 일이거든. 꾸물대다가 부사님들네 군인들에게 둘러싸이기라도 하면….”
“그것도 이미 늦은 것 같다.”
학창의의 남자가 무엇을 읽는 것처럼 허공을 둘러보며 말했다.
“관아 주위로 병사들의 기색이 몰리고 있구나. 마을 밖에서도 군대가 움직이고 있다. 두 부사의 대응이 우리 생각보다 훨씬 빨랐구나.”
그렇게 말하면서도 남자의 어조는 하나도 급하게 들리지 않았다. 율비가 한숨을 쉬었다.
“우리가 들킨 게 아니에요. 시문께서 강경하게 움직이신 데 자극을 받은 겁니다. 송이 이 녀석, 시간 좀 끌라는데 그것도 못 하고….”
“송이 탓이 아니다. 애초에 내가 약속한 날짜에 도착을 못 한 탓이지. 오히려 문께서 오신 덕에 없어진 줄 알았던 기회가 살아난 것이 아니냐.”
남자는 온화한 어조로 말하고 동헌 안쪽에 굴러 있는 금덩어리를 가리켰다.
“은실아, 호란 말대로 저 돌을 원래 자리에 가져다 놓거라.”
“…….”
여자가 호란의 눈치를 보더니 돌을 조심스럽게 들어다 대청 위로 올려놓았다. 율비가 호란에게 물었다.
“문께서 여기로 오고 계실까? 지금?”
“네. 곧 도착하실 거예요.”
호란은 답하면서도 경계 가득한 태도로 율비를 보았다. 율비는 거리끼지 않는 듯 싱긋 웃었다.
“고마워.”
그리고 율비가 채 도련님이라 불린 남자에게 말했다.
“제가 기다렸다 문을 맞겠습니다. 먼저 몸을 피하세요.”
“어떻게 이 아수라장에 너만 혼자 남겨두겠느냐. 그리고 이렇게 된 것 나도 문을 뵙고 싶다.”
“아휴, 나중에 또 기회가 있지 않겠습니까! 여기서 일이 더 꼬이면….”
남자가 고개를 저어 율비의 말을 끊었다. 그가 관아의 솟을대문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리고 말하지 않았느냐. 이미 늦었다.”
대문이 활짝 열리고 찰령부와 원곡부 병사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그들도 뜨락에 쓰러진 병사들을 보고 경악했다. 하지만 병사들이 흥분하기 전에 또렷한 목소리가 들렸다.
“멈춰라. 함부로 움직이지 말 것을 이미 명하였다.”
시현이 단과 함께 대문으로 걸어들어왔다. 뒤에는 찰령부와 원곡부의 병사들이 시현의 병사인 양 뒤따르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죽은 이는 없는 것 같은데.”
시현이 관아 안을 둘러보며 물었다. 호란이 동헌 대청으로 나오며 말했다.
“마법으로 하셨대요. 의법술로. 이분들이 병사들을 잠재워 놓고 참석을 가지고 달아나려고 했어요!”
시현은 의법술이란 말에 약간 놀란 듯 눈썹을 움직였지만 잠자코 율비와 대청 위쪽의 사람들에게 시선을 주었다.
학창의의 남자가 대청 아래로 내려와 시현에게 공손히 허리를 굽혔다.
“위 없는 이를 뵙습니다. 사정이 있어 당장 이름을 대지 못하는 것을 혜량하소서.”
상대방의 입에서 나온 것은 시현이 전날 저녁 내내 하고 다니던 말이었다. 시현이 미묘한 얼굴을 하고 말했다.
“이름을 대어야 할 것이다. 일을 이렇게까지 만든 이상.”
“죄송합니다. 그러면 일이 더욱 어려워집니다. 후에 사정을 아시면 문께서도 이해하실 것입니다.”
“아니, 나는 그대들의 사정이 무엇일지 짐작한다. 그리고 그것이 이해할 만한 사정이라 여기지 않는다.”
시현이 불쾌한 기색을 보이며 말했다.
“그대들은 모두 귀수관에서 온 사람들이겠지. 그대도, 저 하늘인들도, 한씨 율지도…. 아니.”
시현이 율비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대가 정말로 한씨 율지가 맞는가? 격에 달한 땅인의 사칭은 중죄다. 관성의 경계에 상관없이.”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율비가 순순히 머리를 조아렸다. 그가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문의 혜안대로입니다. 진짜 한씨 율지는 임지로 오다 말고 저하고 자리를 바꿔 귀수관으로 피난했지요. 명망이 없는 자라선지 바꿔치기가 됐는데도 아무도 신경을 안 쓰던데요. 하하.”
시현이 눈살을 찌푸렸다.
“죄를 고하면서 죄스러운 모습이라고는 전혀 없구나.”
“그야, 진짜 한씨 율지보다 제가 일을 훨씬 잘했을 게 틀림없으니까요.”
율비가 당당하게 어깨를 폈다.
“제가 대릉읍과 흰바위마을에서 한 일은 모두 좋은 일뿐이거든요! 거석을 쫓고, 물길을 살리고, 행정을 바로잡고, 교역을 늘리고…. 얼마나 뼈가 휘게 일을 했는지, 처음엔 좀 쫄렸는데 시간이 갈수록 죄책감이 사라지더라고요. 야, 내가 이만큼 고생을 했으면 대운관에서 나한테 벌이 아니라 상을 줘야지….”
“허나 그대는 대운관을 위해 그 일을 한 것이 아니다. 전부 귀수관을 위한 것이었지.”
“…….”
율비는 웃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대신 조용히 듣고 있던 학창의의 남자가 입을 열었다.
“어떻게 아셨습니까, 저희가 귀수관 사람인 것을.”
“단, 네가 말하거라.”
시현이 옆을 보고 말했다. 단이 공수한 자세로 한 발짝 앞으로 나섰다.
“다들 율지 나리더러 푼돈 밝힌다고 욕하는 것을 보고 반대로 의심이 들었습니다. 그건 율지 나리가 그렇게 보이도록 한 것일 뿐이고, 나리의 진짜 목적은 돈이나 이문이 아니라 다른 데 있지 않을까 하고.”
율비가 억울한 듯이 말했다.
“아니, 나 돈 진짜로 좋아하는데. 푼돈 무시하면 안 돼.”
“네. 하지만 율지 나리는 이곳에서 돈을 버는 게 아니라 쓰고 계셨으니까요.”
단이 율비를 똑바로 보았다.
“황폐해가는 대릉읍을 살리고 시장 마을이 만들어질 만큼 지역을 안정시키는 데 돈과 마력석이 얼마나 들어갔을까요? 거석을 쫓고 물길을 뚫었다는 법술사는 또 어디서 데려왔고요. 암시장 거간 노릇으로 메우기엔 규모가 컸을 텐데요.”
“장기적인 안목에서의 투자라고 볼 수 있지. 그리고 이제 거의 다 회수했거든.”
율비가 헤헤 웃으며 아무도 믿지 않는 변명을 했다. 단은 신경 쓰지 않고 말을 이었다.
“그러면, 이 장소에 시장이 활성화되어서 궁극적으로 이득을 보는 건 누굴까. 하필 대운관과 귀수관의 길목에. 그것을 생각하면 배후는 좁혀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단의 시선이 율비에게서 학창의의 남자에게로 옮겨갔다.
“대운관의 거래 금지령을 뚫고, 마력석을 귀수관으로 유출시킬 통로가 필요했던 것이 아닙니까? 그것도 상당히 장기적으로.”
학창의의 남자가 미소를 지었다.
“나는 꼭 대운관의 마력석, 그것도 가능한 한 여러 산지에서 온 돌들을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필요가 있었단다. 마력석은 산지별로 특성 차이가 크다는 걸 알고 있니? 군인들이야 상관 없겠지만 연구자에겐 중요하거든. 그런 점에서 위교연의 처사는 정말 너무했지.”
“원곡부와 찰령부 외의 다른 지역 돌까지도 끌어왔다는 뜻이군요.”
“그럴 것이 아니면 이렇게까지 일을 벌일 필요는 없지.”
율비가 말했다.
“하지만 여기서 이루어진 건 결국 거래였어. 항상 대가를 치르고 마력석을 구해갔는걸. 대운관이 그렇게 손해 본 건 없잖아?”
“제값을 치렀을 리가 없지 않습니까.”
단이 딱딱하게 말했다.
“아까 시문 나리님이 밤 시장에서 마력석을 샀을 때 예상한 것보다 비싸지 않았다 하시더군요. 대량 거래에서 값이 어떻게 매겨졌을지 누가 알까요. 대운관 대관성에서는 제값을 쳐주지 않고 돌을 무작정 몰수해가고, 지역 경제는 점점 파탄에 이르러가는데, 목숨 걸고 마력석을 빼돌린 사람들이 값을 받으면 얼마나 받았겠습니까?”
“아니, 그렇게까지 후려치진 않았다고….”
율비가 투덜거렸다. 시현이 학창의의 남자를 보았다.
“알고 있겠지. 이 일은 두 관성 사이에 큰 문제로 비화할 수 있다.”
“무상 앞에 도무지 면목이 없습니다. 다만 이것은 제가 개인적으로 저지른 일로, 귀수관 대관성은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학창의의 남자가 다시 한번 시현에게 허리를 굽혔다. 고개를 든 그가 이름을 댔다.
“다시 인사드리겠습니다. 귀수관의 하채원 인입니다. 불민하나마 류씨 지은학당에 학사로 있습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