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nk Rock: Regenerating World RAW novel - Chapter 254
254화
* * *
처음 보는 사내가 극상격을 자처하자 병사들은 모두 눈이 휘둥그레져 술렁였다. 바로 무릎을 꿇으려다 문의 앞이라는 것을 깨닫고 주춤거리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시현은 다른 것에 놀란 모양이었다. 그가 채원에게 급히 물었다.
“지은? 지은서원을 말하는 것인가? 귀수관 중시조 류해선 인의 학맥을 잇는?”
“예. 다만 이제는 서원이 아니고 지은학당이라 칭하고 있습니다. 서원이라는 명칭이 폐쇄적으로 들린다는 의견이 있어서. 다양한 이들에게 문호가 넓게 열려 있음을 드러내기 위함입니다.”
“명칭을 바꾸고 나서 사람이 늘기는커녕 줄었지만요.”
율비가 불만스러운 듯 중얼거렸다. 시현이 다시 물었다.
“류해선 인의 지은학파는 내내 세속 정치와 거리를 두고 구학과 수신의 길을 걸어왔다고 알고 있다. 그 학맥을 계승했다는 자들이, 어째서 타관의 환란을 틈타 이러한 일에 손을 뻗고 있는가?”
채원이 빙긋 웃었다.
“조사께서 이르기를, 인애의 마음은 높은 산에서 내려오는 물과 같나니, 이치의 둔덕에 막히지 않고 다다른 곳에 스미는 것을 되돌릴 수 없도다. 이미 고통받는 백성을 보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는데, 한낱 관성의 경계와 세속의 법리 때문에 일하기를 저어하겠습니까?”
시현은 더욱 마뜩잖은 얼굴이 되었다.
“그래서 그대들이 대운관 백성에 대한 인애의 마음으로 했다는 일이… 암시장을 열어 타관의 마력석을 유출시키고, 정식으로 부임하는 행정관을 바꿔치기하고, 대운관이 파견한 주둔군 부사들을 이간질하고? 그것인가?”
“이치의 둔덕을 다소 많이 넘기는 했지요. 저 아이가 너무 부지런해서, 놓아두면 항상 일을 지나치게 합니다.”
채원이 손을 뻗어 율비를 가리켰다. 율비가 바락 성을 냈다.
“제 탓으로 돌리시깁니까! 저 아니었으면 하씨 가산을 전부 구제 사업에 흩뿌리셨을 거면서!”
“당장 세상이 망할지 모르는데 재산은 남겨 무엇 하겠느냐.”
“최소한 연구 마칠 비용은 남기셔야 할 거 아니에요!”
채원은 성내는 율비를 천연덕스럽게 외면하고 다시 시현을 향했다.
“저희가 한 일이 법과 도리를 어기고 누군가에게는 해가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다만 저희가 이 일을 시작한 뜻도 인애요, 다다르고자 하는 곳도 인애임은 알아주소서. 저희는 귀수관과 대운관 백성은 물론이요 땅 위 모든 창생을 위하고자 합니다.”
시현의 표정이 약간 변했다.
“그대의 말뜻은…. 그대가 하는 연구란 것이 애초에 무엇인가?”
채원이 진지하게 말했다.
“저와 지은학당의 모두는 광활한 북방 끝터에서 돌 인간의 흔적을 찾고 기운의 변칙적인 흐름을 조사하고 있습니다. 돌 인간이 온 세상의 기운을 모아들인 곳을 찾기 위하여. 그리하여 최종적으로는 법력이 사라진 변고를 해결하고 온 세상을 환란에서 구하기 위하여.”
“아!”
호란이 감탄하는 소리를 냈다. 율비 일당이 참석을 가져가는 것이 시현에게도 좋은 일이라는 말뜻이 그제야 이해가 갔다.
시현도 놀란 얼굴이었다.
“그대들이 돌 인간의 근거지를 수색하고 있다고.”
“예. 미력하나마.”
채원이 미소 지었다.
“변고의 날에 세상 기운이 모두 북쪽으로 흘러갔기에 문께서는 그 종착지를 찾아 북행하실 뜻을 품으셨다고 들었습니다만.”
“그렇다.”
“하지만 문제의 변고 날, 북쪽 끝 귀수관에서 저희가 느낀 것은 다른 지역과는 달랐습니다. 기운이 ‘흘러갔다’기보다 ‘감추어졌다’에 가까웠지요. 그저 기감을 펼치는 것만으로는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종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당연히 저희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운이 간 곳을 찾고자 하였습니다.”
“그래서 연구를 시작했는가. 성과는 있었는가?”
시현이 물었다. 그의 목소리에서 감회 같은 것이 느껴졌다.
“우선 방향을 쉽게 못 찾는 원인은 확실히 알아냈습니다. 감람이 귀수관 속령과 북방 끝터 곳곳에 기운의 흐름을 가리는 장치를 묻어 두었습니다.”
“감람도 아세요?”
호란이 끼어들어서 물었다. 극상격을 대하는 예에서 저만치 벗어난 행동이었으나 행동이었으나 채원은 거리끼지 않는 듯 호란을 향해 친절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매우 애매했다.
“안다고 할까, 인지한다고 할까…. 우리의 학통은 평화를 중시해서, 가능한 적대적이지 않게 원거리에서 대응하고 있단다.”
“감람이고 누구고, 돌 인간을 만나면 무조건 튀는 게 방침입니다. 중간에 장치를 한두 개 찾아서 부쉈다가 혹독한 꼴을 봤거든요. 저희도 인력이 가장 귀해서.”
율비가 제대로 설명했다. 채원이 다시 말했다.
“여러가지 있은 뒤에, 지금은 탐색 중심으로 방향을 바꿨습니다. 진척도 꽤 있어서 감람의 장치에 무력화되지 않는 파장을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 탐색을 위해서는 아무래도 대용량의 마력석이 아쉬워서.”
“그래서 대릉읍 참석을….”
시현이 중얼거렸다. 호란이 반색하는 얼굴로 말했다.
“시문 님, 그럼 이 참석은 채인 님이랑 율지 님한테 가져가시라고 해요. 우리도 돌 인간의 근거지를 찾아야 하잖아요.”
시현이 복잡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쉬이 되는 일이 아니다. 처음 율지에게서 참석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돌이 그렇게 크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정말로 대단한 돌이 있다면 정보가 흘러가는 즉시 대관성에서 군대를 보내왔을 테니까.”
시현이 대청 위의 커다란 돌에 눈길을 주었다.
“하지만 막상 실물을 보니 생각과는 다르구나. 저 크기의 돌이 고순도의 참석이라면 저것은 경우에 따라 관성의 운명까지도 좌우할 돌이다. 지은학당이 함부로 사유했다가는 대운관과 귀수관 사이에 전쟁이 날 수도 있다.”
율비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당장은 괜찮습니다. 제가 중간에서 정보 교란을 잘해놔서. 지금 대운관 대관성에서는 두 분 부사님이 별것도 아닌 돌로 허풍을 떠는 줄 알고 있습니다. 두 분 부사님도, 돌을 털리고 나면 책잡히기 싫어서 사실 돌이 별로 안 컸다고 말을 바꾸실 겁니다.”
“그런 문제가….”
주저하는 시현을 채원이 부추겼다.
“문이시여, 전부 세상을 구하자고 하는 일인데. 거기서 이치의 둔덕을 살짝만 넘으시면.”
“류해선 인께서 인애가 이치의 둔덕을 넘는다 말씀하신 것은 그런 뜻이 아닐 터이다.”
“저희 학파에서는 그렇게 해석하는 것이 최근의 사조입니다.”
그때 바깥이 시끄러워졌다. 누가 호통치듯 목소리를 높이며 관아 정문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시문이라니! 말이 되느냐? 그자가 법술 실력을 좀 부렸기로서니, 그렇게 쉽게 사기꾼의 수작에 넘어가느냐?”
“허둥거리지 말거라. 내가 본때를 보일 테니! 그자의 정체는 내가 다 알아, 아무리 멸문지화로 궁지에 몰렸다지만 감히 문을 사칭하다니….”
각자 제 부하를 꾸짖으며 대문을 넘어온 것은 찰령부사 원진과 원곡부사 병치였다. 양쪽 군영이 관아에서 같은 거리에 있어 동시에 도착한 모양이었다.
“이게 다 무슨 짓들이오!”
원진이 대뜸 소리치면서 여기저기로 눈을 굴렸다.
원진과 병치의 시선은 동헌 대청에서 금빛을 흘리고 있는 커다란 돌에 제일 먼저 닿았다. 두 사람은 참석이 자리에 있는 것을 보고 약간 안심했는지, 휘하의 병사들에게 동헌과 뜨락을 먼저 포위하게 했다. 잠들어 쓰러졌던 병사들도 그사이 깨어나 비틀거리면서도 부대에 합류했다.
시현이 채원에게 말했다.
“그래. 저들이 더 문제가 아니냐. 너희는 나보다 저들을 먼저 설득해야 하지 않겠느냐?”
채원이 안타까운 듯 말했다.
“그것이… 제가 바보들하고 말하는 법을 잘 몰라서.”
율비가 핀잔했다.
“그렇게 못 한다 못 한다 하시니까 계속 못 하시는 겁니다. 막상 해보면 얼마나 쉬운데!”
“커흠!”
병치가 헛기침을 했다. 수많은 병사들에 땅인 법군 여럿까지 거느리고 몰려왔는데 사람들이 저를 거들떠도 안 보자 부아가 난 듯했다.
병치가 시현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말했다.
“무명의 손님 보시오! 그대가 병사들 앞에서 감히 무상을 사칭했다는 것이 사실인가?”
“시문 님은 시문 님이 맞아요!”
호란이 훌쩍 대청에서 내려와 시현 옆에 붙어 서며 말했다. 시현은 살짝 손을 들어 호란을 말리고 품에 손을 넣으려 했다.
그것을 본 병치가 바로 고함쳤다.
“손님은 옷섶에 손을 대지 마시오! 수상한 행동을 하면 목숨을 보장 못 하오!”
병치가 치켜든 손에는 커다란 마력석이 들려 있었다. 옆의 원진 또한 마찬가지였다.
시현이 손을 내리며 곤란한 얼굴을 했다.
“마력석을 꺼내려던 것이 아니다. 명령패를 보여주려 하였다만…. 되었다. 어차피 돌패일 따름이니.”
시현은 원진과 병치를 정면으로 보고 바로 섰다. 그가 말했다.
“작은 불편을 피하고자 처음에 신상을 숨긴 것은 미안하게 되었다. 내가 남운관의 완시현 문이다.”
“거짓말 마시오! 한씨 율지의 수작인 걸 다 알아!”
“대역죄가 두렵지도 않소? 그럴수록 죄가 커질 뿐이오!”
원진과 병치가 번갈아 소리쳤다. 시현이 단을 올려다보았다.
“보거라. 안 믿는구나. 이런 일은 처음인데.”
“그렇네요. 그런데 뭘 기뻐하고 계신 건데요?”
채원이 몇 걸음 걸어 나오며 말했다.
“저들이 용렬하게도 무상을 의심하는 건, 이 땅에서 세상 이치와 도리에 대한 최소한의 믿음조차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관리와 군인이 할 일을 하고 관의 권위가 똑바로 서면 사람들이 서로를 믿기가 쉬워집니다. 하물며 누가 감히 문을 사칭하리라 생각할까요. 바꿔 말하면 그런 상식조차 통하지 않을 정도로 대운관의 통치가 엉망이라는 뜻이지요.”
“닥쳐라! 그대는 누구기에 감히 대 대운관의 법군 앞에서 관성을 모욕하는 말을 입에 담는가!”
원진이 채원에게 분노를 터뜨렸다. 채원은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양 원진을 무시하고 시현에게 고개를 숙였다.
“소생이 미력하여, 도리가 온통 허물어진 모습을 보면서도 백성의 입에 풀칠이나 시키는 것이 다였습니다. 부디 문께서 바로잡아 주십시오.”
“아직도 거짓말을 계속할 셈인가! 죄를 인정하고 투항하시오! 극상의 사칭은 대역죄로 즉결 처분이 가능하니, 이건 마지막 경고요!”
원진이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시현이 그를 잠깐 쳐다보았다가 채원에게 고개를 돌렸다.
“세상에 대한 믿음이 사라졌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겠다. 하지만 대관성이 도리를 잃은 지 오래되어 여기에 이른 것이다. 어찌 하루아침에 바로잡겠느냐?”
채원이 고개를 숙인 채 엄중하게 말했다.
“질서와 도리가 태어난 처음으로 되돌아가야지요. 격을 보이소서.”
시현은 씁쓸한 얼굴이 되었다.
“내키지 않는구나. 항상 되돌아가는 것만이 답일까?”
“작작 좀 하시오!”
시현의 중얼거림은 병치의 고함에 묻혔다. 병치가 마력석을 흔들며 소리쳤다.
“수작을 계속한다고 속을 줄 아시오? 사람을 뭘로 보고! 내가 다 알고 있소! 대관성을 나서신 시문께서 어디쯤 오셨을지, 시문께서 어떤 일행으로 다니시는…지.”
버럭거리던 병치는 중간에 기세를 잃고 말이 점점 느려졌다. 시선이 시현과 그 좌우의 호란과 단 사이를 차례차례 왔다 갔다 하며 사정없이 흔들리고 있었다.
반면 원진은 거듭 무시를 당하고 완전히 폭발한 모양이었다. 그가 커다란 마력석을 양손으로 쥐며 외쳤다.
“나는 경고했소! 들으라! 육중한 진노여, 우뢰로 현현하여….”
원진의 손에서 마력석이 타들어 가고 대신 허공에 강렬한 기운이 일렁였다. 시현은 그쪽에 무심한 시선을 던지며 손을 저었다.
“퇴색하라.”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