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nk Rock: Regenerating World RAW novel - Chapter 255
255화
* * *
그 말과 함께, 당장 벼락을 토해낼 듯 날뛰던 거친 기운이 순식간에 잦아들었다.
대신 인위적인 적요함이 공간을 차지했다. 눈앞에 보이는 수많은 사람들의 기색도 끊어졌다. 공기의 흐름마저 멈춘 것 같았다.
“내 적을… 어?”
원진은 주문을 읊다 말고 멍한 얼굴이 되었다. 손에서 타버린 마력석이 굴러떨어졌다.
시현이 한 손을 높이 치켜들고 원진에게 말했다.
“그대는 돌에서 법력을 꺼내는 것과 주문을 엮는 것 사이에 시간 차가 너무 길다. 누가 이렇게 기운을 가져가 버리면 어찌하려고.”
시현은 올렸던 손을 가볍게 뒤집으며 읊었다.
“성하라. 본령으로 펼치라.”
순간 그의 머리 위로 회오리처럼 기운이 몰려들었다. 그리고 빛과 소리가 폭발했다.
사람들의 머리 바로 위를 전광의 그물이 뒤덮었다. 병사들이 머리를 싸쥐며 아우성을 치는데 우렛소리에 묻혀 비명은 들리지도 않았다.
강뢰의 순간은 짧았지만 병사들은 한동안 고개를 들지 못했다. 다들 부신 눈을 껌벅이고 먹먹해진 귀를 누르며 정신을 수습하는 사이, 원진과 병치를 위시한 주둔군 법군들은 다들 석상처럼 딱딱하게 굳어만 있었다.
시현이 원진에게 말했다.
“알겠느냐? 마력석을 쓸 때는 돌에서 기운을 끌어내는 것, 그 기운을 의식으로 붙들어 지배하는 것, 주문을 엮는 것 이 세 가지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것이 이상적이다. 그것이 어렵다면 지배력을 유지하기 위한 주문을 한 구절 덧붙이는 것도 방법이겠다.”
시현의 말투는 제법 친절하기까지 했으나 원진은 핏기 내린 얼굴로 아무 대답을 못 했다.
침묵을 깬 것은 채원 쪽이었다.
“첫비 같은 자비시여! 살아생전에 코앞에서 문의 행사를 보다니.”
그가 벅차오르는 음성으로 말하며 다가왔다. 두 손이 가슴을 부여잡을 듯 앞섶에 올라와 있었다.
채원이 원진 쪽을 흘긋 보더니 말했다.
“허나 문이시여, 제게는 자비로우시나 바보에게는 너무 혹독하십니다. 저자는 분명 허공에 풀린 법력에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문께서 우격다짐으로 빼앗지 않으셨습니까.”
시현은 까다로운 표정을 지었다.
“그대도 방금 보았을 텐데. 원의가 한 것은 큰 덩어리의 한쪽 자락을 붙잡아 둔 정도였다. 그것을 지배했다고 말할 수 없다.”
“그 정도만 해도 기운의 제어권을 잃을 일은 없습니다. 보통이라면요.”
“변고가 난 지 반년도 더 되었는데, 법군이면 슬슬 마력석 사용에 숙달되어야 하지 않느냐.”
“하하하.”
채원이 졌다는 듯이 웃음을 흘렸다.
“무슨 말로도…. 문의 경지는 말로 형용할 바도 찬탄할 바도 없다 하더니 사실이군요. 오늘의 이 배알은 제 평생의 행운입니다. 변고가 일어난 것이 고맙게 여겨질 지경입니다.”
시현이 살짝 얼굴을 찌푸렸다.
“발언이 경솔하다.”
“용서하십시오. 저 불쌍한 자들을 용서하시듯이.”
채원이 부사들 쪽을 가리켰다. 시현도 그쪽을 보았다.
원진과 병치는 이제 사태를 파악하기는 했으나, 무엇을 어디부터 수습해야 할지는 감이 잡히지 않는 모양이었다. 다들 무릎을 와들와들 떨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시현이 말했다.
“그렇게 겁먹지 말거라. 방금 주문은 겉보기만 성대했지 아무도 다치게 하지 않았다.”
“그래서가 아닐 겁니다.”
채원이 피식 웃고 사람들에게 말했다.
“무얼 하느냐. 문께서 너희에게 두 번 이름을 대셔야겠느냐?”
말이 끝나는 순간 뜨락의 모든 사람이 떠밀려 쓰러지듯 무릎을 꿇었다.
“문을 뵙습니다!”
“무상을 뵙사옵니다!”
“감히 몰라뵌 어리석음을 용서하소서!”
“문이시여! 용서하소서.”
사방에서 통곡하는 듯 부르짖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머리를 땅에 대다 못해 바닥에 찍으려 하는 이도 있었다.
호란은 이제 이런 일이 익숙했으나 단은 곧바로 질색하는 표정이 되었다. 채원도 두 손을 공수하고 슬금슬금 뒤로 물러났다.
수라장이 된 뜨락을 보며 시현은 한숨을 쉬었다.
“되었다. 고개를 들거라.”
겨우 뜨락이 조용해진 뒤 시현이 다시 말했다.
“난시에 복잡한 사정이 겹치고, 내가 신분을 숨겼던 잘못도 있다. 이제까지 법도에 어긋났던 일은 모두 용서하마. 다소간의 탈법 행위도 불문에 부치겠다.”
사람들은 다시 울고불고하며 은혜와 감사를 주워섬기기 시작했다. 모두를 조용히 시키기 위해 시현이 목소리를 키워야 했다.
“되었다고 하였다. 고개를 들라!”
두 번 말하고서야 사람들의 이마가 땅에서 떨어졌다. 시현이 말했다.
“내가 누구냐보다, 너희는 해결해야 할 중요한 일이 있지 않으냐? 찰령부사와 원곡부사는 일어서라.”
“며, 명을 받듭니다….”
원진과 병치가 엉거주춤 일어섰다. 둘은 울상을 하고 시현에게 고개를 꾸벅이면서도 틈틈이 대청에 놓인 돌에 시선을 보내는 걸 그치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보고 시현이 눈살을 찌푸렸다.
“아직도 참석 생각밖에 없느냐. 이 모든 분란은 두 부사가 공적을 탐내 서로 다툰 탓이 가장 크다. 인정하느냐.”
“예에….”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두 부사는 변명하고픈 얼굴을 하면서도 일단은 죄를 빌려 했다. 그때 단이 급하게 말했다.
“잠깐만요 나리님. 한씨 율지는 어디로 갔습니까?”
단의 말에 모두가 대청 쪽을 보았다. 어느새 한씨 율지와 두 남자 호위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대청 위에 있는 것은 덩그러니 놓인 참석과 은실뿐이었다. 그리고 채원이 슬금슬금 대청으로 오르려 하고 있었다.
병치가 기겁하며 소리쳤다.
“저, 저! 법술사가 참석에 손을 대려고 한다!”
“막아! 당장 막아라!”
원진도 외쳤다. 말이 떨어지자마자 병사들이 우르르 대청으로 몰렸다.
“잠깐, 진정하라!”
시현이 말리려 했으나 이미 찰령부와 원곡부의 병사들이 한데 얽혀버린 뒤였다. 병사들은 주먹만 안 나눈다 뿐 원수처럼 밀치고 우격다짐하며 돌을 둘러쌌다. 다들 윗전의 명을 따르기 위해서가 아니라 상대 진영에게 돌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움직이고 있었다.
온통 시끄러운 아수라장 속에서 단이 목청껏 외쳤다.
“채인 나리를! 채인 나리를 잡아요!”
병사들이 돌을 향해 몰려든 사이 채원과 은실은 오히려 대청 반대편으로 멀어졌다. 은실이 채원을 번쩍 둘러업는 것을 보고 시현도 소리쳤다.
“호란, 채인을 따라가거라!”
동시에 은실이 채원을 업고 열린 창호로 뛰어들었다. 벽이라도 뚫었는지 동헌 안쪽에서 뭔가 부서지고 무너지는 소리가 연이어 났다.
호란은 바로 움직이려 했지만 뜨락과 대청이 흥분한 병사들로 가득해서 가로지를 수가 없었다. 병사들의 실랑이는 점점 진짜 난투로 흘러가고 있었다.
호란은 할 수 없이 뜨락을 빙 둘러 동헌을 뛰어넘었다. 기와지붕 너머로 훌쩍 사라지는 호란을 보며 단이 작게 투덜댔다.
“아 나 이런…. 붙잡을 수 있을까요?”
“호란이 저들을 따라잡기는 할 것이다. 그런데 붙잡아올 것 같지는 않구나.”
“알 만하네요….”
단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시현도 똑같이 고개를 저으며 대련에서 마력석 하나를 꺼내 들었다.
“귀를 단단히 막거라. 머리를 숙이면 더 좋고.”
단이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로 꿍얼거리며 큰 키를 수그렸다.
시현이 손에 든 마력석을 높이 치켜들자 산이 무너지는 것 같은 굉음이 관아를 흔들었다. 직전의 우레보다 더 큰 소리였다.
“모두 멈춰라!”
시현이 날 선 목소리로 고함쳤다. 굉음에 놀라 움직임을 멈췄던 병사들 사이에서 빠르게 살기가 수그러졌다.
“모두 대청에서 내려와 제 위치로 돌아가라. 사람이 상하지 않도록 신경을 쓰는 것은 이번까지다.”
병사들은 서로 눈치를 보며 느릿느릿 물러났다. 그 와중에도 돌을 붙잡고 있던 병사들은 마지막까지 눈싸움하다가 동시에 손을 떼었다.
시현이 원진과 병치에게 눈총을 보냈다.
“이 꼴이 무엇이냐. 두 부사가 어떻게 했길래 양 부의 병사들 사이가 저 모양인가? 찰령부나 원곡부나 모두 대운관의 관군이기는 마찬가지 아닌가.”
원진과 병치는 송구한 듯 고개를 숙였으나, 서로를 흘금거리다 눈이 마주치자 곧바로 억울한 표정이 되어 변명을 시작했다.
“참석이 나온 대릉읍 광산은 찰령부의 관할입니다. 애초에 원곡부사가….”
“어찌 남의 탓을! 문이시여. 저희 부사들에게는 주둔지만 있지 관할이라는 것은 사실 없습니다. 처음에….”
“그만하라.”
시현이 짜증스럽게 말했다.
“이 마당에 와서도 반성할 마음이 조금도 없는가? 그대들이 관군의 소임을 방기하고 다툼만 일으킨 탓에, 대운관의 귀중한 자원으로 귀수관 좋은 일만 하지 않았는가.”
“귀수관이라니요?”
원진과 병치의 눈이 커졌다. 병치가 알았다는 듯 소리쳤다.
“그 남자 법술사가 귀수관 사람이었군요? 한씨 율지 그 배역한 자가 타관과 손을 잡다니! 이 일이 수습되면 총령부에 발고하여 혼쭐을 내겠습니다!”
원진도 눈을 부라렸다.
“그 귀수관 법술사도 무사히 도망칠 수 없을 것입니다! 귀수관 방향에는 이미 우리 찰령부 군사들이 몇 겹으로….”
“그 몇 겹의 군사들을, 그대가 모두 이 마을로 불러들이지 않았는가? 마을 앞뒤에서 하늘인 무리들이 다가오는 것이 느껴지는데.”
시현의 핀잔에 원진은 아차 하는 얼굴이 되었다. 원곡부 쪽의 군대도 이쪽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을 보면 양쪽 다 소동이 나자마자 위세 다툼을 위해 전군을 불러들인 모양이었다.
시현은 이번에는 병치 쪽을 보았다.
“그리고 내 추측이 맞다면, 이 일은 그대가 원하는 방식으로 수습될 것 같지 않구나. 유감이다만.”
“예?”
병치는 말뜻을 몰라 어리둥절했다. 시현이 대청 쪽을 가리켰다.
“그대 둘이 가서 저 물건을 확인해 보거라. 싸우지 말고 동시에.”
“예? 안 됩니다! 원곡부사는 믿을 수 없는 놈입니다! 저런 자가 참석의 기형을 알았다간….”
“찰령부사가 돌에 손대게 하면 안 됩니다! 저 성질에 당장 돌을 써버릴지 모릅니….”
두 부사는 동시에 반대했으나 시현이 말없이 얼굴을 찌푸리자 바로 목소리가 졸아들었다. 두 사람은 어깨를 부딪치고 서로 눈총을 쏘아 보내면서 대청에 올라 돌 앞에 섰다.
그리고 합창하듯 목소리를 맞춘 비명이 관아에 울려 퍼졌다.
원진과 병치가 금장된 덩어리를 허둥지둥 쓰다듬으며 소리쳤다.
“기운이…! 기운이 없어! 문이시여! 이건 마력석이 아닙니다!”
“그냥 금… 아니 도금한 돌입니다! 이건 대체….”
“저런. 도금이라니 그것은 너무했구나. 참석 값으로 금덩이라도 놓고 간 게 아닐까 기대했는데.”
시현이 별로 안타깝지 않은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눈치채는 것이 늦어서 미안하다. 진짜 참석은 내가 도착하기 전에 관아를 빠져나간 모양이다. 바꿔 칠 물건까지 준비했다니 놀랍구나. 저런 거창한 물건을 만드는 것도 들여오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을 텐데.”
단이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뭐가 어렵겠습니까. 암시장이 있으니 세공사야 발에 차일 것이고, 관아 내부에 땅굴이라도 파 놓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병치가 소리쳤다.
“말도 안 되는 소릴! 참석이 이 마을에 들어온 후로 양 부 병사가 동헌을 빈틈없이 둘러싸고 감시했는데, 언제 땅굴 같은 걸….”
“어차피 이 마을을 만든 건 한씨 율지잖습니까. 저라면 관아 지을 때 파 놨을 겁니다. 그 꿍꿍이에 참석이 아니라도 비밀 통로를 쓸 일은 얼마든지 있을 테니까요.”
그때 동헌 안으로 들어갔던 법군 두엇이 헐레벌떡 뛰쳐나왔다.
“바닥에… 내실 바닥에 땅굴이 있습니다!”
병치가 털썩 바닥에 주저앉았다. 원진은 뒤늦게 병사들을 몰며 놈들을 쫓으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쳤다.
그 광경을 남의 일처럼 쳐다보며 시현이 말했다.
“정말로 땅굴이 있었구나. 율지와 네가 생각하는 것이 비슷한 모양이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생각이거든요? 자꾸 그 작자한테 갖다 붙이지 마시죠!”
단이 눈을 홉떴다. 시현은 웃으며 시선을 피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