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nk Rock: Regenerating World RAW novel - Chapter 261
261화
* * *
이야기를 들은 시현이 제일 먼저 한 것은 관에서 보낸 포고문을 가져오게 한 것이었다. 포고문의 내용을 살펴본 뒤 시현이 말했다.
“걱정한 것처럼 죄인 찾듯 하는 포고는 아니구나. 오히려 예를 갖추어 모시고자 하니 모든 주민이 협조하라는 내용인데.”
“하지만 포상까지 거는 건 유난스럽잖아. 네가 왔다는 건 놔둬도 자연히 소문이 퍼지고 보고가 올라갈 일인데.”
“나를 급하게 찾아야 할 이유가 있을 수도 있다. 귀수관에 돌 인간이 나타났다거나, 내 힘이 필요한 중대한 일이 발생했다거나.”
“물론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그 이유도 밝혀두지 않았잖아.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알 수 없을 때는 무조건 나쁜 일로 치고 대비해야 돼. 내 경험으론 그게 맞아.”
단은 확고한 태도로 말한 뒤 자신에게 측은한 눈빛을 보내는 호란에게 눈을 부라려 주었다.
시현이 말했다.
“하지만 그간 귀수관 관인들이 해온 일을 보면 그들을 꼭 나쁘게만 볼 필요도 없지 않을까? 여기 귀수관에서는 벽명관이나 대운관과는 비교도 할 수 없게 백성을 잘 돌보아 오지 않았느냐. 그러던 중에 혹시 큰일이 나서 나를 찾는 거라면, 내가 빨리 모습을 드러내고 협조하는 것이 옳다.”
“그건… 물론 관에서 잘하고 있긴 하지. 솔직히 기대도 안 했는데 동네마다 돌아가는 상황이 놀라울 정도야. 하지만 상대는 귀수관 꼰대들인데….”
단은 시현의 말을 인정하면서도 편견을 버릴 마음은 없어 보였다. 시현이 말했다.
“특히 속령의 땅인들이 주거지를 버리고 관성도시로 몰려들지 않도록 입성 제한을 건 데는 감탄했다. 그것은 이제까지 우리가 지나온 어떤 관성에서도 하지 않았던 일이 아니냐. 거석이 많은 지역인데도 이리 많은 마을이 살아남은 것은 속령의 땅인들이 도리를 다하도록 관성이 잘 이끌었기 때문일 것이다.”
“야. 결과만 놓고 보면 맞는 말인데, 네가 귀수관에 대해 오해가 좀 크다. 첫째, 속령 땅인 피난은 대운관도 안 받아줬어. 뇌물 먹이고 뒷구멍으로 다 들어와서 그렇지. 둘째, 귀수관이고 대운관이고 북방의 대관성에서 속령 땅인의 피난을 안 받아 준 건 도리 어쩌고 때문이 아니야. 관성도시 땅인들이 도시 밖 땅인들을 차별해서 그래.”
“차별? 같은 땅인을?”
시현이 눈을 크게 떴다.
“그렇다니까. 흰바위마을서 부사들 속령 출신이라고 한 맺힌 거 안 봤냐? 너는 남방 사람이라 북방 분위기 절대 몰라.”
“그래도 이번에는 그 정책이 속령 백성들에겐 구명줄이 되지 않았느냐.”
“그래. 결과적으론 땅인들이 속령에 붙어 있어서 동네 반민들도 같이 살아남았지. 근데 그게 꼭 윗대가리들이 좋은 의도로 한 일은 아니라고.”
단은 고민이 사라진 얼굴로 시현을 보았다.
“응. 역시 나쁘게만 봐도 돼. 귀수관 애들은 그래도 돼.”
“그러면 어째서 갑자기 속령 땅인들을 대관성에서 받아 주게 된 것이냐?”
“그걸 모르는 게 찜찜하다고 아까부터 말하고 있잖아.”
단이 팔짱을 꼈다.
“귀수관에 가기는 가되, 그 전에 꼭 정보를 얻어야 돼. 귀수관에 어째서 갑자기 물자가 넘쳐나서 구휼을 하고 병력을 밖으로 돌리게 됐는지. 완씨 시문을 왜 찾는지. 모르고 맞닥뜨릴 순 없어.”
호란이 단에게 물었다.
“하지만 정보를 어디서 얻어? 동네 사람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땅님들은 다 도망가버렸는데.”
“그것도 골치인데…. 소읍이나 읍성엔 남은 땅인들이 있겠지만 바로 우릴 알아볼 거고.”
단은 자리에서 일어서면서 호란에게 손짓했다.
“나랑 가서 동네 사람들한테 물어보고 오자. 관아는 없지만 땅인이 남아 있는 큰 마을이 어디 있을지 모르니까. 수소문도 하고, 그리고 마을에 반쪽짜리 하늘인 두 가족쯤 있던데, 그놈들 관아에 못 달려가게 네가 좀 윽박질러 놔.”
“윽박… 아냐. 알았어.”
호란은 내키지 않는 듯 터덜터덜 단을 따라나섰다.
머물고 있는 마을은 워낙 작고 외진 곳이라, 단은 정보에 대해서는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의외로 말을 걸자마자 답이 돌아왔다.
“땅님? 멀리 갈 것 없소. 이 마을에도 계시는데.”
마을에서 이장 노릇을 한다는 노파가 무뚝뚝하게 말했다. 단은 놀라서 되물었다.
“네? 이 마을에요?”
“왜. 집들이 다 초라해서 귀한 분은 안 사실 것 같어? 허기야 그짝은 그렇게 생각허겠지. 뜨순 옷 입고 큰 수레 앞세우고 으스대는 양반이니. 그런데 아시는가? 진정 훌륭한 어르신은 돈 있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네.”
단의 표정이 무척 복잡해졌다. 노파는 무언가를 자랑하는 듯한 태도였다. 옆에 있던 집주인이 서둘러 노파를 말렸다.
“아이고 할매, 왜 외지 분들 상대로 다짜고짜 시비야? 정건 어르신은 어르신이고 손님이신 나으리는 또 그분이지!”
집주인이 단과 호란을 향해 말했다.
“정확히는 마을 안에 사시는 건 아니고, 저어기 꼭대기에 암자에서 사십니다. 안 그래도 좀전에 왔다 가셨는데.”
집주인은 마을 앞쪽의 산봉우리를 가리켰다. 마을과 거리를 두고 우뚝 솟은 봉우리는 가파르고 바위투성이라 사람이 사는 데가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단이 물었다.
“마을에 왔다 가셨다고요? 우리가 도착한 다음에 말입니까?”
집주인은 계면쩍은 듯이 말했다.
“예, 저기 그, 미안합니다만…. 실은 저희가, 손님 나으리가 마을에 오시자마자 정건 어르신께 상의드리러 하늘인 나리를 보냈거든요. 손님으로 오신 나리마님 일을 관에 알리느냐 마느냐 여쭤볼까 싶어서…. 그랬더니 직접 내려와서 우릴 타이르고 가셨습니다.
관의 영을 따르지 않는 것도 잘못이기는 하지만, 무상에 대해 확실하지 않은 말을 옮기는 것은 훨씬 더 큰 죄가 된다고. 손님을 받고서 신상에 관해 수군대는 것은 나그네 맞는 법도도 아니라고. 듣고서 반성했습니다. 그러니까 저희가 더 귀찮게 굴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둘러선 마을 사람들도 공감하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건 어른이란 사람 덕택에 갑자기 마을 사람들을 단속할 필요가 없어져 버렸다. 호란은 다행이라고 생각했지만, 단은 혼란스러운 얼굴이었다. 그는 안개에 싸인 산봉우리를 한 번 더 올려다보고 사람들에게 물었다.
“그 어르신은 기껏 마을에 내려오시고서 우리 나리님도 안 뵙고 가신 겁니까?”
“공연히 귀찮게 해드릴 필요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단과 호란은 서로를 마주 보았다. 단이 다시 물었다.
“정건 어르신 사시는 암자가 대체 어디입니까?”
잠시 후, 호란은 단을 짊어지고 바위투성이 산비탈을 뛰어오르고 있었다. 말이 비탈이지 절벽에 가까운 급경사였다.
발 디딜 자리를 찾아 좌로 우로 뛰며 순식간에 꼭대기에 이른 호란은 곧바로 암자를 찾아 달리려 했다. 하지만 단이 등을 두드리는 바람에 멈출 수밖에 없었다.
바닥에 내려 헛구역질을 하고 난 단이 질린 얼굴로 말했다.
“나 시문이 신이명 재발한 원인 알 거 같은데. 네가 들고 뛰어다녀서 그런 거 아니야?”
“아니거든! 시문 님은 원래 이런 거 아무렇지도 않았거든! 뛰는 도중에도 주문을 척척 짜셨는데.”
“허. 원래 사람이 아니었네…. 아파서 겨우 사람 수준으로 내려온 거고.”
호란은 단의 말을 무시하고 비탈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봉우리에는 안개가 걸려 있어 아래쪽 마을의 모습이 뚜렷이 보이지 않았다.
“시문 님을 마을에 혼자 두고 온 게 잘한 일일까? 마력석 대련은 안겨 드리고 왔지만.”
“몸 상태도 괜찮아 보이고. 자기 몸 정도는 지킬 수 있겠지. 여기를 끌고 올라오는 것보다는 낫잖아. 돌아서 오르는 길은 한참 걸린다고 하고.”
단은 앞장서서 절벽 위 둔덕을 오르기 시작했다.
그 정건이란 땅인의 행동을 보면 그가 무언가를 알고 있는 것은 틀림없었다. 아마 시현의 정체도 짐작하고 있을 것이다.
정건이라 호로 불리는 것을 보면 격은 없다. 백성에게 인망이 있지만 시험도 안 치고 벼슬도 안 하고 산속에서 은거 기인 노릇 하는 꼰대. 전형적인 귀수관 특산물 중 하나였다. 보수적이고 도리 따지는 땅인 꼰대들은 격을 신성시하는 만큼 문인 시현에게 우호적일 가능성이 높았다.
이런 재야 선비들은 주로 수원을 지키는 것을 은거의 명분으로 삼는다. 물 흐르는 소리를 따라가자 곧 사람 발길 닿은 흔적이 늘어나고 예의 암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풍광을 따졌는지 비탈에 불쑥 튀어나온 형태로 지어진 암자는 크지는 않았지만 버젓한 형태였다.
호란은 마음이 급해졌는지 성큼성큼 단을 앞질러 암자로 다가갔다. 그러자 닫힌 창호 안에서 불쑥 호통이 터져 나왔다.
“왜 다시 왔느냐! 방문하신 어르신 일은 이미 알아듣게 일러두었거늘!”
“어, 저기요….”
호란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렸다. 창호가 덜컹거리며 열리고 안에서 한 남자가 고개를 내밀었다.
남자는 머리가 하얗게 세고 두꺼운 누비 창옷을 입고 있었다. 호란과 단을 본 그가 얼굴을 굳히며 일어나 섰다.
“위를 모시는 이들이신가.”
“그렇습니다. 어르신을 뵙습니다.”
단이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정건이 무뚝뚝하게 말했다.
“중한 책무 맡은 이들이 무엇 하러 여기까지 왔는가. 산골에 틀어박힌 노인네에게 위께서 관심 가지실 이유가 없네.”
“여쭐 것이 있어서 왔습니다. 어르신께서는 귀수관 관인들이 시문 나리님을 찾는 이유를 알고 계실 듯합니다만.”
“모르네.”
정건은 지나치게 빠르게 대답했다.
“그러면 어째서 마을 사람들이 관에 못 가게 막으셨습니까? 시급을 다투는 일일 수도 있는데.”
“시급은 무슨 시급.”
정건의 얼굴이 꿈틀했다. 단은 정건의 눈에 짧게 스쳐 간 것이 경멸의 감정임을 눈치챘다. 정건이 말했다.
“시급한 일 따위는 없네. 문께서 마음 쓰실 일도 아무것도 없네. 물정 모르는 촌민들에게 공연한 일에 나서지 말라 조언한 것뿐이네. 나는 더 아는 것도 없고 할 말도 없으니 해 기울기 전에 내려들 가시게.”
정건은 그대로 창호를 닫으려 했다. 단이 급하게 물음을 던졌다.
“잠깐만요 나으리. 문께서 마음 쓰실 일이 없다는 게 무슨 뜻입니까?”
뒤를 돌려던 정건이 움직임을 멈췄다.
“말 그대로의 뜻이네. 오는 사이 보았겠지. 귀수관은 이미 잘 돌아가고 있지 않나? 관인들은 촌마을 한 곳 백성 한 사람까지 세심하게 돌보고, 거석도 물러가고. 아주 태평성대 아닌가. 그러니 문께서 굳이 살피실 일이 없다는 뜻이네.”
말하는 내용과는 달리 정건의 음성에는 조소가 가득했다. 귀수관의 무언가가 그를 무척이나 불편하게 하고 있는 것 같았다.
호란이 불쑥 물었다.
“정건 나리는 왜 관성도시로 피난 가지 않으셨어요?”
“뭣이?”
정건이 눈을 부릅떴다.
“이제 귀수관에는 식량도 많고 마력석도 많은 것 같던데요. 다른 땅님들은 전부 관성도시로 가셨는데 정건 나리는 가고 싶지 않으셨어요?”
정건은 모욕이라도 당한 것 같은 반응이었다. 그가 흰 수염을 떨면서 역정을 냈다.
“누구를 그런 소인배와 같이 보느냐! 도리도 양심도 팔아먹은 놈들이나 할 짓이지!”
“왜 그렇습니까? 이런 난시에 피난을 간 정도로.”
기회를 놓치지 않고 단이 물었다.
“백성을 살피는 위의 도리는 못 했다고 해도 식솔을 안전하게 지키는 가주의 도리는 하는 일이 아닙니까? 그것이 도리와 양심까지 파는 일입니까?”
정건은 쓴 것을 머금은 것처럼 수염 아래서 턱을 움직거렸다. 표정에는 더 이상 숨길 수 없는 경멸과 혐오가 흐르고 있었다. 단이 다시 한번 물었다.
“말씀해주십시오. 귀수관의 땅님들 전부가 한마음이 되어서 숨기고 있는 비밀이 뭡니까?”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말하는 것은 귀수관의 땅인으로서 관성의 군 기밀을 외부에 파는 일이 된다.”
정건이 무겁게 말했다.
“하지만 어르신께서는 귀수관이 하는 일이 옳지 않다고 여기고 계시지요.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그렇다. 관성에 대한 충성도 위가 위 같을 때에 하는 것이지. 세상에 이 무슨….”
정건은 한탄하더니 결국 입을 열었다.
“귀수관 대관성에 법력이 돌아왔다고 들었다. 변고가 나기 전과 똑같이.”
“네?”
“그리고 그들은 그것을 바깥 세상에 철저히 비밀로 하고 있지. 창생의 명줄이 말라붙어가는 이 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