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nk Rock: Regenerating World RAW novel - Chapter 265
265화
* * *
단은 지형을 살피면서 얼마를 더 간 후 후미진 곳에 수레를 세웠다. 별시계로 위치를 파악하고 아슬하게 남은 달빛으로 지도를 확인했다.
수레는 법군을 태우고 빠르게 이동하기 위한 것이라 수통과 유등, 모피 담요 외에는 실린 짐이 없었다. 그 빠르기 덕택에 당장은 놈들을 따돌렸지만 이후가 문제였다.
말을 잃지 않으려면 물이 필요하다. 놈들도 그걸 알아서 마을이나 샘터 주위를 찾아다닐 것이다.
단은 하늘인 추노꾼들에게 쫓겨 봤다. 하늘인들이 작정하고 수색을 하면 그 범위는 상상을 못 하게 넓고 세밀했다.
차라리 가까운 읍성에 들어가서 사람들 사이에 몸을 숨기는 게 최선 같았다. 그래야 물자든 방도든 구할 여지가 생길 것이다.
다만 마력석을 더 구하려면 돈과 인맥이 둘 다 필요했다. 단이 가진 돈은 운신이나 할 정도였고 시현은 신원을 숨겨야 했다.
어떻게 수단을 내더라도 시간이 상당히 걸릴 텐데, 그동안 호란이 무사할까?
하늘인은 웬만한 방법으로는 구속도 감금도 불가능하다. 붙잡으면 대개 죽였고 안 죽일 경우엔 몸을 성하게 두지 않았다. 시현의 협박이 있었으니 당장은 목숨을 붙여두겠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취급이 어떻게 될지 모른다. 생각할수록 속이 속이 아니었다.
달이 기울면서 그림자가 골짜기를 시커멓게 덮었다.
단은 수레로 들어가 방풍막을 여민 다음 수레 안에 유등을 낮게 매달고 덮개를 덮어 빛이 새지 않게 했다. 조명이 아니라 난방기구 용도로 쓸 생각이었다.
아직 추위가 한창이었지만 수레는 법군이 타는 것이라 바람막이가 잘 되어 있었고 공간도 작았다. 계속 온도를 보면서 제때 환기를 하면 하룻밤은 버틸 만할 것이다.
단이 상태를 보려고 이마에 손을 뻗자 시현이 고개를 들었다. 그나마 열은 오르지 않는 게 다행이었다.
시현이 물었다.
“어쩔 것이냐.”
“불을 못 밝히니까 동트기 전까지는 더 못 움직여. 넌 잘 수 있으면 자 둬. 속 가라앉으면 물 좀 마시고.”
단은 수통과 털가죽 담요를 시현에게 건네면서 덧붙였다.
“그리고 운을 빌든가 기도를 하든가 해보라고. 지금 우린 그거 말곤 아무 답 안 나오는 상황이니까.”
* * *
밤은 별일 없이 지나갔다. 새벽 어스름 무렵 단은 다시 수레를 출발시켰다.
오로지 기도하는 심정으로 들른 샘에는 적이 없었다. 이후 점찍은 읍성으로 향하는 동안에도 추적을 만나지 않았다.
단은 처음엔 다행으로 생각했지만 점점 기분이 이상해졌다. 그의 운수가 이럴 리가 없었다.
단이 찜찜하게 중얼거렸다.
“이건 운이 좋아도 너무 좋은데. 놈들이 거석 떼 만나서 전멸이라도 당했나?”
작은 중얼거림이 들렸는지 시현이 방풍막을 걷고 머리를 내밀었다.
“그럴 리가 있느냐, 그랬다면 호란은 어찌 되겠느냐!”
“그냥 해본 소리니까 심각해지지 마. 설마 그랬을라고.”
단은 눈살을 찌푸리며 멀리 구릉 너머로 시선을 던졌다.
“하지만 수색대가 전혀 안 보이는 건 역시 이상해. 설마 놈들이 서순읍성으로 가려는 내 계산을 읽었을까? 성문에서 진 치고 있는 거면 기껏 길을 돌아 온 보람이 없는데.”
“문제는 또 있다. 아까도 말했지만 읍성에 가까워질수록 주위를 오가는 하늘인이 많아지고 있다. 한둘씩 다니는 이들은 가까이 오지 않으면 감지하기도 어렵고, 무리 지은 자들도 우리를 추적하는 병사인지 읍성의 순찰병인지 구분할 수가 없다.”
“너 또 신경 곤두세우고 있냐, 여긴 길 제대로 안 나서 수레 많이 흔들리니까 쉬라고 했잖아.”
“일부러 하는 게 아니다. 생각을 안 할 수가 없어서….”
단은 뒤를 돌아보고 미간을 찡그렸다. 자고 나서 좀 나아졌던 시현의 안색이 도로 나빠져 있었다. 사람을 피하느라 험한 길로 다닌 탓에 멀미를 하는 모양이었다.
잠깐 쉴 곳을 찾아 속도를 줄이고 있는데 시현이 마부석으로 몸을 내밀었다.
“멈추면 안 된다. 후방에서 하늘인 한 무리가 다가오고 있다. 속도가 빠르다.”
“뭐? 추적이야?”
“우리 쪽을 향해 직선으로 달려오는 것을 보면 그럴 것이다. 숫자는 스물 정도 되는 것 같다.”
“젠장. 좀 전에 지나친 채집꾼 놈들이 일러바쳤나?”
단은 말의 속도를 높이면서 소리쳐 물었다.
“솔직히 말해 봐. 지금 수레 세우고 내려서 기다리면 너 싸울 수 있어?”
“주문은 짤 수 있다. 하지만 최선의 상태는 아니다. 마력석도 너무 적다. 여러 변수에 대응하기가 어렵다.”
생각한 대로의 대답이었다. 단은 혀를 찼다.
표인이 거느린 하늘인 병사들은 전날 밤에 본 놈들만 쳐도 쉰은 되었다. 그것보다 숫자가 적은 것을 보면 본대는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놈들이 부대를 나눴다고 해서 그 안에 마법사가 없다는 보장이 없었다.
시현이 팔을 뻗어 단의 어깨를 잡았다.
“거리가 빠르게 좁혀지고 있다. 이대로는 곧….”
어차피 따라잡힐 거란 이야기였다. 단은 도주를 포기하고 고삐를 당겼다.
수레의 속도가 줄어들기 시작하는데 단의 어깨를 쥔 시현의 손에 힘이 콱 들어갔다. 그는 마력석을 넣어둔 앞섶에 손을 대었다가, 때를 맞추지 못하겠다고 생각했는지 단을 수레 안쪽으로 확 끌어당겼다.
다음 순간 콰릉 소리와 함께 벼락이 떨어졌다.
벼락은 수레가 아니라 말을 직격했다. 말 두 마리는 울음소리도 못 남기고 쓰러졌다. 작고 가벼운 수레도 그 힘에 이끌려 함께 쓰러졌다.
방금 전까지 단이 앉아있던 마부석도 벼락의 여파가 튀어 탄 흔적이 나 있었다. 시현이 온 힘을 다해 끌어당긴 덕에 겨우 벼락 세례를 면한 단은 시현을 끌고 황급히 쓰러진 수레를 빠져나왔다.
“이런 시발!”
단은 수레 밖으로 나오자마자 욕을 뱉었다. 둘이 탔던 것과 같은 작은 군용 수레 두 대가 앞쪽 구릉을 넘어 내려오고 있었다.
시현은 하늘인 병사들의 접근은 감지할 수 있어도 땅인 마법사나 반민 마부, 말이 모는 수레는 찾을 수 없었다. 놈들도 그걸 알아서 양쪽에서 포위를 좁혀온 것이었다.
“오래된 정… 산멸하라!”
앞섶에 손을 얹고 수레를 가리키던 시현이 중간에 급히 주문을 바꿔 외웠다. 수레 쪽에서 뻗어온 벼락과 불의 마법이 시현이 쳐든 손 위쪽에서 맥없이 흩어졌다.
하지만 시현은 바로 다음 주문을 잇지 못했다. 기울어질 듯 말 듯 하는 그의 상체를 단이 뒤에서 붙잡았다.
“시발. 어지러워? 못 설 정도야?”
“금방 괜찮아질 거다. 조금만…. 조금만 있으면 다시 주문을….”
하지만 말과는 달리 단의 팔에 실리는 무게는 점점 더 무거워지고 있었다. 답 없는 상황에 단은 머릿속이 아득해졌다.
전방의 법군 수레가 구릉을 내려와 가까워졌다. 후방의 추격자들도 모습을 드러냈다. 시현이 말한 대로 스물 남짓한 하늘인 무리 뒤에 수레 몇 대가 뒤따르고 있었다. 무리 가운데의 커다란 수레에는 표운이 타고 있을 터였다.
시현이 품에서 끈으로 연결해 둔 마력석 셋을 끄집어냈다. 하나는 이미 불타 색을 잃고 있었다.
그가 작게 말했다.
“단, 내가 설 수 있다.”
“웃기지 마. 놓으면 바로 주저앉을 것 같은데.”
단은 핀잔하며 시현을 더 당겼다. 지금 그가 적을 상대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최소한 이 녀석이 사람들 앞에서 바닥에 구르지 않게는 해줄 수 있었다.
양쪽에서 다가온 수레가 두 사람과 멀지 않은 거리를 두고 섰다. 표운이 법군 한 명을 거느리고 맨 앞으로 나왔다.
쓰러진 수레 앞에서 꼼짝 못 하고 있는 두 사람을 보자 표운의 표정이 풀어졌다. 시현의 손에 있는 마력석에 잠시 눈이 가긴 했지만, 그것도 이제 큰 위협으로 여기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가 깊이 허리를 숙이며 공손하게 예를 갖췄다.
“불초한 자가 무상을 뵙습니다.”
그는 무슨 회한이라도 느끼는 사람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가 어조를 간곡하게 해서 말했다.
“문이시여. 이제 포기하소서. 불가항력입니다. 비록 저희가 다른 도리가 없어 위를 거스르고는 있으나, 창생을 위해 애써오신 무상께 처참한 끝을 맞게 해드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시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표운이 다시 말했다.
“마음 쓰시는 수행들도 결코 불필요한 고통을 겪지 않게 하겠습니다. 예를 지켜 장사지낼 것이고 만대에 충성이 기려질 것입니다.”
단이 어이를 잃고 중얼거렸다.
“시발 쟤는 저거를 우호적인 제안이라고 하는 거냐?”
“최대의 선의 표시지. 저자의 머릿속에서 나올 수 있는.”
시현은 가볍게 웃고 단에게 기댔던 몸을 떼었다. 그가 똑바로 선 채 입을 열었다.
“내가….”
그때 구릉 쪽 작은 수레 앞에 있던 법군이 손을 쳐들며 주문을 읊기 시작했다. 마력석을 쥔 시현의 손이 움직인 것을 공격할 의도로 오해한 것 같았다. 기운의 흔들림을 느낀 표운이 급히 구릉 쪽을 향해 손을 저었다.
“안 돼, 잠깐….”
법군의 주문을 막은 것은 표운의 제지가 아니었다. 표운의 뒤쪽에서 느닷없이 한 발의 총성이 울렸다.
열 장 넘는 거리에서 법군이 머리에서 피를 뿜으며 고꾸라졌다. 연이은 총성과 함께 그 곁의 법군도 같은 신세가 되었다.
“아, 아니!”
표운이 혼비백산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귀수관군 맨 뒤쪽에 세워둔 수레 사이에서 사예가 건들건들 걸어 나왔다. 손에는 두 뼘 길이의 단총이 들려 있었다.
사예가 활짝 웃는 얼굴로 총구를 표운에게 겨누었다.
“얍!”
총성이 울린 순간 표운의 호위가 그를 붙잡고 아슬아슬하게 몸을 피했다. 사예는 아쉬운 기색 없이 그 옆의 화법술사에게 총을 발사했다.
“얍, 얍!”
사예는 동전만 한 크기의 마력석 열댓 개를 구슬 목걸이처럼 한 줄로 꿰어 목에 걸고 있었다. 사예가 ‘얍’이라고 말할 때마다 마력석이 불타면서 단총의 포신이 불을 뿜었다.
사예의 뒤에는 길이 싱글싱글 웃으면서 바짝 붙어 따라오고 있었다. 그는 사예에게 덤벼드는 귀수관 병사들을 여유롭게 한 손만으로 쳐서 날려버렸다.
“자아자아. 비키자 좀!”
일이 잘못된 것을 깨달은 표운이 마력석을 들며 급하게 소리쳤다.
“시문을! 시문을 쳐라! 억….”
표운의 주문이 시작도 하기 전에 다시 총알이 날아들어 그의 가슴팍을 꿰뚫었다. 호위도 주문을 방해하지 않으려고 물러나려던 참이라 제때 반응하지 못했다.
갑자기 지휘관을 잃은 병사들은 당황하면서도 이쪽을 향해 땅을 박찼다. 하지만 그들보다 먼저 길의 거구가 시현과 단의 앞에 번개같이 뛰어들었다.
두 사람의 앞을 태산처럼 가로막은 길이 주먹을 휘둘렀다.
“약하고! 느리고! 맷집도 없고! 이런 놈들이 대체 뭘 믿고 목에 힘을 주고 다녀? 관병 뭐? 몫꾼 뭐?”
길이 말할 때마다 퍽퍽 소리와 함께 귀수관 병사들이 나가떨어졌다.
상황은 순식간에 뒤집어졌다. 이미 법군들은 주문보다 빠른 사예의 총에 맞아 모두 쓰러지고 남은 것은 병사 몇뿐이었다. 놈들은 길이 사예 곁을 비운 사이 사예에게 덤비려 했지만 그것도 통하지 않았다.
“박살 대잔치! 우르릉 콰쾅!”
화염 법술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무성의한 주문과 함께 사예의 주위에 성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연기가 가라앉자 수레 앞에 서 있는 것은 사예뿐이었다.
주문의 여파에 장포와 머리칼을 나부끼며 사예가 산뜻하게 웃었다.
“안녕, 단아!”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