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nk Rock: Regenerating World RAW novel - Chapter 266
266화
* * *
길과 사예가 주위를 휩쓰는 동안 단도 시현도 말을 잃은 채 서 있기만 했다. 직업적으로 사람 잡는 데 특화된 두 사람의 종횡무진에 끼어들 틈이 없기도 했지만, 반쯤은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을 믿지 못해서였다.
사예가 총을 쥐지 않은 손을 휘휘 흔들며 이쪽으로 걸어왔다.
“안녕, 단아! 도련님… 아니지. 문께서도 안녕하세요! 오, 그사이 키 좀 크신 거 같은데?”
“류사예, 최길…. 그대들인가.”
시현이 그제야 상황을 깨달은 것처럼 말했다.
단도 얼이 빠졌기는 마찬가지였다. 멍해 있는 그를 길이 확 잡아당겨 끌어안았다.
길이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야, 너 임마 대운관 교인을 완전 시원하게 조져버렸더라! 잘했어, 자식아!”
“어떻게… 어떻게.”
단은 길을 마주 끌어안으면서도 말을 못 이었다.
“뭐가 어떻게야? 내내 너 찾아다녔다고.”
포옹을 푼 길이 큰 손으로 단의 양어깨를 잡으며 씨익 웃었다. 어슬렁 곁으로 다가온 사예도 말했다.
“그래, 찾느라 진짜 오래 걸렸어. 돈도 하나도 못 벌고. 너 진짜 맛있는 거 해줘야 돼.”
그사이 귀수관군의 수레를 살피러 갔던 시현이 사색이 되어 뛰어왔다.
“호란! 호란이 안 보인다. 어디, 어디에….”
“어이쿠.”
넘어지려는 시현을 길이 가볍게 붙잡아주며 말했다.
“늘상 성벽 같이 침착하던 나리께서 왜 이리 혼비백산이 되셨어요. 무슨 일입니까?”
“호란이….”
시현이 말을 다 잇기 전에 이번에는 단이 반대쪽으로 뛰쳐나갔다. 단은 두 대의 군용 수레 쪽으로 달려가서 수레 뒤에 숨어 떨고 있던 마부 둘을 끌어냈다.
“우리 쪽 하늘인 호위님 어떻게 했어?”
단이 마부 하나의 멱살을 잡고 죽일 것처럼 으르댔다. 마부가 급히 털어놓았다.
“사, 살아계십니다! 호위님은 살아계십니다! 표인 나리께서 귀수관에 호송해 보냈습니다. 저, 저 높은 나리님 수레랑 같이요!”
“언제! 언제 보냈느냐!”
단을 따라 달려온 시현도 다른 한 사람의 마부에게 다그쳤다.
“어젯밤입니다….”
“보낼 때 무사한 상태였겠지?”
단이 험하게 묻자 마부들은 울상이 되었다.
“그건 저희가 잘… 저희는 그냥 말에 물 먹이고 가라는 대로 수레나 모는 놈들입니다. 관군 나리들 사정은 잘 모릅니다. 제발 살려주십쇼. 놔 주시면 근처 마을에 가서 숨어만 있겠습니다. 보고 같은 거 절대 안 하겠습니다.”
“…….”
단은 입술을 깨물고 잡았던 멱살을 놓았다. 마부들은 수레에서 말을 풀어내서 허둥지둥 도망쳤다.
단과 시현이 하는 것을 보고서 길이 눈을 둥그렇게 떴다.
“뭐야, 붙들려간 거야? 그 호위 양반이?”
“응….”
단이 얼굴을 떨어뜨렸다. 길은 히죽 웃었다.
“헹. 겁나 쌤통인데.”
단이 이거의 인성을 어쩌나 고민하는 사이 길이 머리를 긁적이더니 사예를 보고 말했다.
“그래도, 제가 시문 나으리님께는 신세 진 게 있으니까요. 사예 님, 어떻게 안 되겠습니까? 단이한테 손 빌려주는 셈 치고요.”
“좋아! 구출할 거면 도와줄게. 재미날 거 같고.”
사예가 흔쾌히 말했다.
시현이 어깨를 늘어뜨리며 긴 숨을 내쉬었다. 그가 맥 풀린 얼굴로 웃었다.
“고맙다…. 정말 고맙다. 방금도, 그대들이 아니었으면 어떻게 되었을지….”
단이 물었다.
“어떻게 알고 온 거야, 이 벌판 한가운데서?”
“쟤들이 찾아준 거지 뭐.”
길이 귀수관군 수레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어젯밤에 저 언저리에 막사 쳐놓고 자는데. 웬 관군 놈들이 줄줄이 와서 막사 안을 보여라 어째라 꼴값을 하더라고. 일단 조져놓고 도로 자려고 했는데 딱 잠들라 하면 똑같이 찍어낸 놈들이 또 오고 또 와….”
길이 늘어지게 하품을 했다.
“한 놈만 정줄 붙여놓고 대체 뭣 땜에 이 난리냐고 물어봤더니, 자기들이 완씨 시문을 잡으러 다닌다고 하는 거야. 그럼 얘들 따라가면 너 찾는 거잖아.”
단은 밤과 새벽에 왜 귀수관 병사들이 포위망을 좁혀오지 못했는지 깨달았다. 걔들이 수색을 안 한 건 아닌데 엉뚱한 막사에 불나방처럼 꼬여 들어가고 있었다.
사예가 길과 똑같은 얼굴로 하품을 하면서 말을 이어받았다.
“그래서 걔네 본진 있다는 데를 가서 저 표인이란 애를 만났어. 나더러 누구냐길래 대답해주고, 우리가 따라가서 좀 도와줘도 되냐고 물어봤더니 되게 좋아하면서 된다고 그러더라? 그래서 그렇게 한 거야.”
사예는 자신이 완전하게 언행일치를 했다고 생각하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표운 입장에서는 따라가다와 도와주다의 목적어가 다를 거라고는 꿈에서도 생각을 못 했을 것이다.
“근데 원래는 서쪽 광산촌 간다고 했잖아. 그건 어쩌고 여길 왔어?”
단이 묻자 길이 벙긋 웃었다.
“근이 있잖아, 그때 네가 부탁한다고 했던 애. 어찌저찌하다가 걔를 그냥 걔 고향 마을에 데려다주기로 했거든.”
“걔는 너 대신으로 삼기에는 밥을 영 못 했어.”
단은 사예가 끼워 넣는 말을 자연스럽게 무시했다. 길이 계속 말했다.
“가서, 그 동네 빈정 상하는 놈들 좀 조지고, 하는 김에 근처 읍성 놈들도 조지고, 잠깐 눌러앉아 있었는데 이상한 소문을 들었어. 그… 대운관 위씨 교인이 미쳐가지고, 자기가 문이라고 행세하고 다닌다고.”
사예가 끌끌 혀를 차며 다시 끼어들었다.
“그때부터 길이가 밤낮으로 안달을 하는 거야. 단이가 북방 갔다가 그거 알면 눈 뒤집힌다고. 혹시 무모한 짓이라도 하면 어떡하냐고. 하루에 열두 번씩 들들 볶여서 내가 먼저 미치겠길래 그냥 동태만 한번 보려고 위쪽으로 올라갔는데. 가 보니까 교인은 벌써 죽었더라? 말라붙은 머리통도 멋있게 걸려있고.”
사예가 단을 보고 활짝 웃었다.
“이거는 셋이서 술 먹어야 되는 사안이잖아! 술 먹으려고 너 찾아다녔어.”
단은 웃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가 말했다.
“그래요. 호란 호위님 구하고서 술 먹어요. 진짜로 진탕.”
“그래! 근데 술은 술이고, 그쪽 둘은 일단 밥부터 먹어야 되는 얼굴인데.”
사예가 단과 시현을 번갈아 보며 말했다. 단이 머리를 긁적였다.
“어젯밤부터 쫓기느라고. 끼니 챙길 계제가 아니었어요.”
“그럼 어디다 바람막이 치고 밥부터 먹자. 우린 아침 두 번 먹어도 돼. 누굴 구출을 하든 어쩌든 밥은 먹고 해야지.”
마침 멀지 않은 곳에 샘이 있었다. 단은 귀수관군 수레에 매인 말을 모조리 풀어주고 시현과 함께 사예의 큰 수레로 옮겨탔다.
사예는 어젯밤 수면 부족 어쩌고 하더니 샘에 다다르기도 전에 잠들었다. 시현도 긴장이 풀렸는지 안쪽 자리에 등을 기대고 맥을 놓았다.
단은 차라리 잘됐다 싶었다. 그는 길에게 할 이야기가 있었다.
* * *
“그 사람이, 시문 나리를 살리고 죽었다고….”
서형에 대해 다 듣고서 길이 피식 웃었다. 둘은 수레를 멀찍이 세워 두고 샘터 앞에 와 있었다.
“그참. 평생 쓰레기 난봉꾼으로 살았는데, 그래도 마지막엔 하나 좋은 일을 했네.”
길의 말투는 시큰둥하다 못해 태평했다. 단은 대답하기 어려워서 말없이 있었다.
둘 사이의 침묵은 길지 않았다. 길이 곰곰 생각하더니 다시 말했다.
“거 뭐야, 난 저번에 시문 나리한테 은혜를 쪼금 입었잖아. 그 사람이 그걸 나 대신 갚았다 치지 뭐. 그러니까 난 이제 시문 나리한테 갚을 거 아무것도 없는 거야.”
“아. 네가 그런 결론을 내렸다면야….”
단은 그냥 수긍했다. 항상 보면 이 새끼는 머릿속이 참 편안했다. 들어가서 살아보고 싶어질 정도였다.
그런데 길이 고개를 기우뚱하더니 뭔가 깨달은 것처럼 말했다.
“어? 내가 나리한테 갚을 게 없으면, 난 그 호위 양반 구하는 거 도와줄 필요도 없어지는데?”
단은 덜컥했다. 이 자식 진심이다. 놔두면 진짜 발을 빼버릴 것이다.
단은 자기와 길 사이 우정의 무게를 신중하게 가늠해본 후 말을 골랐다.
“같이 귀수관 쳐들어가는 거, 사예 님이 재밌어하실 거야.”
“그럴까?”
“그럼. 귀수관이 사예 님 고향이잖아. 고향 동네 다 뒤집어엎는 일인데 세상 재밌지.”
“아 진짜 그러네. 그럼 할래!”
길이 눈을 반짝였다. 그는 단을 보고 탄복한 목소리를 냈다.
“넌 진짜 똑똑해…. 아니, 내가 바본가? 여즉 그 생각을 못 했네. 이번 일 끝나면 나도 가서 그놈의 고향 동네 다 뒤집어버려야지.”
단은 마음속으로 호대마을 사람들에게 최소한의 애도를 표했다. 사실 좀 쌤통이지만. 계기 제공자로서 최소한만.
불쌍한 놈들. 거석이 떼로 쳐들어오는 게 낫지.
단과 길은 샘에서 물을 떠다가 점심 준비를 시작했다. 하지만 춥고 비좁은 수레에서 밤을 지새운 피로가 갑자기 몰려왔는지, 단은 물이 끓기도 전에 졸음에 휩싸였다. 밑 준비를 하다 말고 꾸벅거리는 단에게서 길이 칼을 뺏어 들었다.
“나 주고 수레 가서 자라. 밥 다 되면 깨워주든가 할게. 아니면 밥은 미루고 푹 자도 되고.”
“아냐. 지금 우리가 시간이 별로 없어. 호란 나리가….”
단이 거절하는데 사예가 고개를 불쑥 들이밀었다. 사예가 칼을 건네받고 말없이 턱짓하자 길은 바로 단을 들쳐메고 수레를 향했다.
단은 잔뜩 짜증스러운 얼굴을 했지만 저항할 의욕도 없는 듯 길의 등판 위로 축 늘어졌다. 사예가 조리대 앞에 서면서 욕을 했다.
“호구새끼.”
길은 금방 돌아왔다. 엉성하게 칼질을 하고 있던 사예가 물었다.
“따뜻하게 해주고 왔어?”
“예. 사예 님 주무시던 자리에 고대로 파묻었어요. 데운 돌도 아직 안 식었고. 위에 이불 쌓는 것도 모르고 푹 곯아떨어졌던데.”
“벌써 잠들었느냐? 단은 신경이 곤두섰을 때는 피곤해도 쉽게 못 자는데.”
풍로 앞의 시현이 놀란 것처럼 말했다. 사예가 어깨를 으쓱했다.
“습관 비슷한 거예요. 상단 시절부터 뻑하면 우리 막사에 자러 왔거든요.”
“이러니까 내가 쟤한테 술을 먹일 수밖에 없다고요. 맨정신일 땐 일거리 만들든가 졸든가 둘 중 하나밖에 없거든. 쟤는 내 얼굴만 봤다 하면 잠이 오나 봐.”
길이 투덜거렸다. 사예가 말했다.
“너랑 말하는 게 재미없어서 조는 거야. 너 맨날 한 얘기 또 하니까.”
“아 사예 님 저 진짜로 상처받아요….”
멀지 않은 수레에서 단이 자고 있다면서도 길과 사예는 전혀 목소리를 줄이지 않고 떠들어댔다.
시현은 그 모습을 보면서 천천히 어깨에 힘을 뺐다. 이상하게 마음이 놓였다. 눈코입 달린 사람이면 무조건 불신하고 보는 단이 아무것도 안 따지고 두 사람을 신뢰하는 모습을 보아서일지도 모른다.
당장 호란 걱정이 태산 같고 앞일도 전혀 보이지 않았지만, 왠지 어떻게든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 * *
“아니 제발. 이래서 뭐가 되겠어요? 가더라도 뭘 좀 알고 가야죠.”
단이 머리를 싸쥐었다. 그는 기분이 나빴다. 넋 놓고 자는 사이 들르려고 계획했던 읍성을 수레가 한참 지나쳐버렸기 때문이었다.
해가 진 뒤였고 바깥에서는 바람 소리가 윙윙댔지만 사예의 막사 안은 따뜻했다. 풍로 위에 올려놓은 탕국 냄비가 끓으면서 달달 소리를 냈다.
사예가 탕국을 저었던 숟가락을 흔들면서 말했다.
“정보 수집 같은 게 왜 필요해? 호란이는 귀수관에 끌려갔다며. 그럼 귀수관에 쳐들어가면 다 끝나는 거잖아.”
“뭘 쳐들어가고 뭘 끝나요…. 인생이 쉬워서 좋겠다 진짜.”
단이 한숨을 쉬었다. 길이 말했다.
“근데 지금 귀수관 안에 마력이 펑펑 넘친다면서. 그럼 뭐, 일단 성안에 들어가 버리면 끝이잖아. 너 니가 누구랑 다니는지 까먹은 거 아니냐?”
길이 엄지를 세워 제 옆을 가리켰다. 단은 그 손끝을 따라 시선을 보냈다가 시현과 눈이 마주쳤다.
시현은 작은 접이 의자에 앉아 무릎 덮개를 하고 따뜻한 물을 조금씩 마시고 있었다. 눈빛도 또렷하고 혈색도 원래 빛이었다. 수레로 장거리를 이동했는데도 몸 상태가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 분명 다행스러운 일인데 묘하게 팔자가 좋아 보여서 성질이 났다.
단은 억하심정을 억누르고 다시 처음으로 이야기를 되돌렸다.
“그러니까 어떻게 들어갈지를 생각하자는 거 아니야….”
“가서 보고 생각하자.”
“가서 보고 생각해.”
길과 사예가 차례로 말했다. 사예가 신난 얼굴로 탕국 뚜껑을 열었다. 단은 얼굴을 덮었다.
최소한 호란을 구하는 데 시간을 너무 오래 끌 걱정은 안 해도 될 것 같았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