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nk Rock: Regenerating World RAW novel - Chapter 271
271화
* * *
호란은 실망 이전에 당황해서 말을 더듬었다.
“어, 저, 사예 님이 귀수관 사인 아니에요? 전에 본 의법사님은 귀수관 사인이 신이명을 고칠 수 있다고 했는데요….”
“귀수관 사인은 맞는데 신이명은 못 고쳐. 사람들이 원래 잘 모르면 아무 말이나 막 하잖니.”
단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사실은 돌팔이인 것도 모르고.”
“이게 자꾸?”
사예가 눈을 부릅떴다.
“신이명은 나 아니라도 아무도 못 고쳐! 애초에 그건 병이 아닌걸.”
“네?”
생각지 못한 반박에 단도 호란도 놀랐다. 시현만 별 반응이 없었다.
사예가 불만스럽게 말했다.
“신이명이 병이면 햇빛 볼 때 눈부신 것도 병이게? 신이명이라고 불리는 여러 증상은 전부 인체의 자연스러운 경고야. 과한 자극을 피하라는 신호라고.”
단이 인상을 썼다.
“감각 피로 같은 거라고요? 책 너무 오래 봐서 눈 침침해지는 것처럼?”
“꼭 같은 건 아니지. 기감은 눈이나 귀처럼 담당하는 감각 기관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니까. 무리한다고 닳지도 않고 강력한 기운에 노출된다고 손상을 입지도 않아. 느끼는 것도 다스리는 것도 극히 일부를 제외하면 초물리계에서 일어나는 일이라서.”
사예가 자기 머리를 손가락으로 툭툭 건드렸다.
“근데 감각에 한계가 없는 만큼 뇌에 부담이 직접 온다고. 예민한 사람은 그만큼 고생하는 거야. 그건 어쩔 수가 없어.”
단이 물었다.
“하지만 신이명은 마법에 재능이 있다는 증거란 얘길 여러 번 들었는데요.”
“기운에 대한 민감성이 재능인 건 맞아. 세세한 흐름에 예민할수록 기운을 남보다 더 정밀하게 읽고 정밀하게 다룰 수 있으니까. 정밀하면 정밀할수록 좋다는 게 요 이삼백 년 마법 판의 유행이기도 하고.”
사예가 계속 말했다.
“뭐냐면. 마법으로 강한 위력을 발휘하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어. 아주 대량의 기운을 쓰든지, 적은 기운이라도 아주 정확하게 쓰든지.”
곁에 있던 시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설명을 덧붙였다.
“더 넓은 영역에서 더 많은 기운을 읽어 모아들이는 지배력. 같은 기운이라도 더 정밀하게 읽고 더 정밀하게 조작하는 민감성. 세간에서 법술 재능이라 하는 것은 흔히 이 두 가지를 이르는 것이다. 학파에 따라서 그 두 가지를 하나로 보기도 한다마는.”
사예가 다시 말을 받았다.
“응. 옛날에는 무조건 양 많은 게 최고였는데 마법학이 발전하면서 점점 정밀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왔지. 같은 마력석 하나로 불길을 일으켜도, 아무 데나 무작정 불꽃 땡기는 거하고 최적의 조건을 찾아서 열과 공기와 압력을 한꺼번에 다루는 건 위력이 완전히 다르거든.”
“아아….”
호란은 감탄하는 눈으로 시현을 보았다. 그간 시현이 마력석 한두 개로 엄청난 위력을 발휘했던 이유가 그래서였다.
사예도 시현을 보았다. 하지만 그 표정은 감탄보다는 질린 것에 가까웠다.
사예가 시현을 손가락질하며 말했다.
“근데 보니까 얘는 둘 다를 한꺼번에 하더라? 아주 대량의 기운을, 아주 정밀하게, 동시에. 그러면 법력이 사라지기 전에는 어떻게 그 머리통이 안녕하셨는지… 나는 전혀 모르겠는데.”
시현은 난처한 미소를 지었을 뿐이었다. 호란이 물었다.
“그러면 안 되나요? 시문 님은 괜찮았잖아요. 그동안 줄곧, 남운관 계실 때도요.”
“그래. 괜찮았다.”
시현이 대답하자마자 사예가 소리쳤다.
“과연 그랬을까! 괜찮다의 말뜻을 너하고 나하고 좀 다르게 아는 거 같은데!”
“왜요? 뭐가 안 되는데요?”
호란이 물었다. 사예는 안 내키는 얼굴로 다시 설명하기 시작했다.
“생물의 감각은 범위가 한정되는 게 정상이라고! 뇌가 수용하고 반응할 수 있는 자극의 양에 한계가 있잖아. 그래서 원래 민감성과 지배력은 양립이 안 되는 재능이야. 한 번에 많은 기운을 다루는 마법사는 자연스럽게 세세한 데 무뎌지고, 정밀하게 기운을 다루는 마법사는 기운을 인지하고 다루는 범위를 알아서 좁힌다고. 그게 괜찮은 거지. 그게 정상적인 거고.”
사예는 범위라고 말하면서 두 손 사이에 아주 좁은 공간을 만들었다.
“아기들이 신이명에 많이 걸리는 건 자극에 약해서만이 아니야. 아기들은 스스로 인식의 범위를 조절할 수 없기 때문이야. 그러니까 타고나길 자극에 너무 민감한 아기는 인위적으로라도 그 범위를 좁혀 줘야 돼. 항상 같은 방에 두고 밖에 안 내보내고, 규칙적으로 같은 사람만 만나게 하면 아기는 세상이 좁고 한정된 곳이라고 인식하니까 신이명이 훨씬 나아지거든. 다들 그런 식으로 해.”
호란은 대충 알아들었지만 사예가 무얼 문제 삼는지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가 물었다.
“남들이야 어쨌든 시문 님은 넓고 큰 거랑 좁고 세밀한 걸 둘 다 하실 수 있다는 거잖아요. 좋은 거 아닌가요? 그러니까 문이 되신 거잖아요?”
“너도 나하고 생각이 다르구나. 사람이 꼭 그렇게까지 해서 문이 되어야 할까?”
사예가 고개를 흔들었다.
“완씨 시문 대단하다 말은 많이 들었지. 근데 나는 시문이 신이명을 앓았다는 이야기를 한 번도 못 들었어. 그래서 오히려 타고나길 남보다 기감이 둔한 체질이 아닌가 생각했다고. 막대한 기운을 크게 크게 다루되 아주 독하게 노력해서 경험으로 정밀함을 보완한 게 아닌가 하고. 인이나 무에 달한 사람 중엔 그런 유형이 종종 있으니까.”
“내 아버지가 그런 편이시다. 꾸준하고 흔들림 없는 노력가이시지.”
시현이 말했다. 사예는 코를 찡그렸다.
“근데 너는 아니잖아. 난 네가 마법 쓰는 걸 오늘 처음 봤지만 하나하나 읽고 하는 거 같던걸. 거기다 사실은 신이명도 예전부터 있었다는 거지? 언제부터?”
“태어났을 때부터라고 알고 있다.”
대답을 듣고 사예가 못 먹을 걸 먹은 얼굴을 했다. 사예가 물었다.
“사실은 조금도 알고 싶지 않지만 의술사이자 양생술사의 양심상 물어는 볼게. 함씨 경인이 너한테 뭐를 한 거야?”
시현이 미소 지었다.
“어머니께선 의법사로서나 모친으로서나 최선을 다해 보살피고 이끌어주셨다. 더 많은 걸 견딜 수 있게 도와주셨지. 내게는 남과 달리 항시 감수해야 하는 것이 있음을 가르치셨고. 그것이 전부다.”
“와, 질려.”
사예가 툭 뱉었다. 시현은 마음이 상한 것 같지는 않았다. 그가 주위를 돌아보았다.
“여기서부터는 류사예와 둘이서 이야기하고 싶다만. 모두들 잠시 자리를 비켜주겠느냐.”
“나 이 얘기 더 하기 싫은데.”
“내가 이야기하고 싶다. 그대가 들어주면 좋겠다.”
“싫다고!”
사예가 정색했지만 나머지 셋은 그냥 자리에서 일어나 슬쩍 방을 나갔다. 사예가 발을 뻗으며 칭얼거렸다.
“아 나. 혼자 놓고 가지 말라고. 간식이라도 주고 가! 보나 마나 얘기 듣고 나면 당 떨어질 거야!”
방문이 닫히자 시현이 말했다.
“그렇다고 대단하게 할 이야기가 있는 것은 아니고. 그저… 나는 어머니께 감사하고 있다.”
“시작부터! 시작부터 당 떨어져!”
사예가 바닥을 때렸다. 시현이 말을 이었다.
“그건 내게도 쉽진 않았지만 어머니께도 힘들고 어려운 일이었다. 어릴 때 나는 숱하게 아팠고 그때마다 증상을 재워주시느라 어머니가 고생을 정말 많이 하셨다. 그렇게 하면서 끝까지 재능을 지켜주신 거다. 덕택에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이고. 나는 전부 감사한다.”
“너네 엄마는 미친 사람이야.”
사예가 직설적으로 말했다.
“눈앞에 아픈 아기가 있고, 고통의 근본 원인을 제거할 능력이 자기한테 있는데, 계속 증상만 억누르고 상한 데만 고쳐주면서 아기가 결국에는 견디고 적응할 수밖에 없도록 놔둔 거라고. 제정신으로 할 짓이 아냐. 그건 너를 위한 게 아니야.”
“안다. 그건 어머니가 당신 자신을 위해 하신 일이었지. 하지만 나는 어머니가 그렇게라도 스스로를 위해 무엇을 하신 것이 더 감사하다.”
시현이 조용히 말했다.
“어머니는 자기 자신을 위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런 일을 어떻게 하는지를 잘 모르시는 분이기 때문에.”
사예가 떫게 얼굴을 찡그렸다. 코와 턱에 이상한 주름이 잡혔다.
“어머니를 이해한다고 말할 거야? 나 그 소리 싫어해. 양생술적 관점에서, 내 생각엔 자식이 30세 이전에 부모를 이해하는 걸 법으로 금지해야 해.”
시현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사예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았다.
열두 살 때 온강에 간 것은 시현의 삶에 중대한 기로가 되었다. 어쩌면 문에 달한 것보다 더 중대한 기로였다.
함씨 저택에서 반년을 지냈기 때문에 시현은 어머니 함경재를 이해하게 되었다.
경재가 말로 한 적은 없다. 하지만 시현은 어머니에게 두 가지 인생의 목표가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았다.
한 가지는 함씨 가의 계승보다 더 대단한 성취를 이루는 것이었다.
다른 한 가지는 자식을 통제하고 파괴하지 않는 부모가 되는 것이었다.
경재에게 시현은 그 두 가지를 모두 달성시켜준 자식이었다. 그 사실은 어떤 면에서 경재보다 시현에게 더 큰 의미를 가졌다.
36. 달하였다
완시현의 할아버지이자 함경재의 아버지인 함원규에게는 두 가지 중요한 성격 특질이 있었다. 둘을 합쳐 한 가지로 볼 수도 있었다.
한 가지는 분노, 한 가지는 통제욕.
흔한 기질이지만 원규를 둘러싼 환경이 흔하지 않은 것이 문제였다. 그는 극단적인 부와 권세를 지닌 함씨 가의 가주였기에 그 특질이 남들만큼 억압되거나 좌절될 기회를 갖지 못했다.
아마 원규에게도 특징이나 개성, 장점과 단점 같은 것들이 더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들은 모두 이 두 가지 특질에 매몰되었다. 그는 넘쳐나는 통제욕과 분노만으로 자기 삶을 살았다.
영향을 가장 크게 받은 것은 원규의 자식들이었다.
원규는 세 자식을 차례차례 통제했고, 통제되지 않으면 분노를 터뜨렸고, 그러면서 자식들의 삶을 똑같고도 다른 방식으로 파괴했다. 부분적으로나마 스스로를 지켜낸 것은 시현의 어머니 경재뿐이었다.
경재는 원규의 걷잡을 수 없는 통제욕과 끝 간 데 없이 분노하는 기질을 그대로 이어받고 태어났다. 그래서 집안에서 유일하게 원규와 맞설 수 있었다.
그는 뢰화수토 중 하나를 잡으라는 원규를 끝까지 거슬러서 의과에서 인에 이르렀다.
하지만 온강에서 극상격에 달해봤자 그에게 함씨 가의 계승권을 건네주는 것은 결국 아버지였다. 함씨 가를 계승하면 둘 중 하나가 죽어도, 아니 둘 다 죽어도 아버지의 통제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걸 깨달은 경재는 계승자 자리를 버리고 함원규의 왕국 온강을 나오리라 마음먹었다.
물론 빈손으로 나올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계승을 거부하더라도 경재는 여전히 자신이 함씨 가에 대해 아버지 못지않은 권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땅인이 가문을 벗어나면서도 위상을 잃지 않고, 동시에 집안의 재산을 최대한 밖으로 끌고 나올 수 있는 방법은 당연히 결혼이었다.
완선보 예는 마침 경재와 사정이 잘 맞는 반려 상대였다. 선보는 자질이 넘치는 명문가 자제였지만 바로 그 자질 때문에 손윗누이의 견제를 받아 집안의 지원이 끊어진 처지였다.
경재는 선보와 혼인하고 온강을 벗어나 남운관에 왔다. 그 후 선보의 입지를 키우기 위해 함씨의 돈과 위세를 아낌없이 퍼부었다. 선보의 아버지 다른 누나와 형을 밀어내고 그를 완씨 집안 계승자 자리로 밀어 올렸다. 동시에 경재는 선보에게 벼슬자리를 반납하고 공부를, 특히 화 과목의 공부를 더 할 것을 종용했다.
화 과목은 시작은 쉽지만 깊이 들어갈수록 돈이 드는 공부였다. 일정 경지 이상의 스승 구하기도 어려웠다. 지원하느라 그 막대한 혼수가 바닥을 보였다.
선보는 무 격에 달했고 완씨 가의 가주가 되었고 남운관의 총령이 되었다가 총치총령이 되었다.
이만하면 경재가 실패한 것은 아니었다. 그래봐야 함씨 가를 계승하는 것만은 못하겠지만.
경재와 선보는 줄곧 서로에게 괜찮은 반려가 되어주었다. 생각도 목표도 달랐지만 언제나 목표에서 공유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서 함께 집중했다. 결과는 항상 성취로 이어졌다.
다만 한 가지 맞출 수 없는 부분이 있었다. 경재는 자식을 원하지 않았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