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nk Rock: Regenerating World RAW novel - Chapter 278
27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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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현은 길과 함께 귀수관 총치부 정원을 산책하고 있었다. 법술 치료로 갑자기 바뀐 몸 상태에 적응하는 데는 걷는 게 가장 효과적이라는 사예의 처방에 따른 것이었다.
오전에 문림촌으로 떠나기 전, 사예는 산책 이외에도 몇 가지 처방을 내렸다. 평소보다 훨씬 더 기력이 난다는 기분이 들겠지만 착각이니까 적당히만 깝칠 것, 정신에 불건전한 활동을 한 시진 이상 연속해서 하지 말고 중간중간 쉴 것, 더불어 찻잔 놓고 반 각씩 찔끔거리는 건 쉬는 게 아니므로 쉬는 때와 방법에 있어서는 길이의 의견을 따를 것 등이었다.
단어 선택은 다소 남달랐지만 모두 충실한 처방이었다. 정신에 불건전한 활동의 내역 역시 멸망하는 세상 걱정, 돌 인간에 관련된 각종 논의와 조사, 귀수관 꼰대들과 같은 공간에서 숨 쉬는 것 등 구체적으로 제시되어 따르기 쉬웠다.
시현은 걸음을 옮기며 편안하게 심호흡을 했다. 조사에 진척이 많지는 않았지만 초조한 마음은 없었다. 몸 상태는 여행을 떠난 이후 가장 좋았다. 주위를 채운 기운이 자연한 법칙에 따라 움직이는 감각도 마음에 안정을 주었다.
돌 인간이 인위로 만들어낸 상황이란 것을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이것이 그가 아는 완전한 세상의 모습이자 완전한 자신의 모습이었다. 처음부터 온 세상을 이 상태로 되돌리는 것이 그의 목표였다.
길은 보폭 차이가 큰데도 시현의 느긋한 걸음에 잘 맞춰주고 있었다. 시현이 그에게 말을 걸었다.
“관인들과의 면담 자리에 동행하는 것이 지루하고 귀찮지는 않았느냐.”
“전혀요? 기분 째지던데요.”
길이 싱글벙글하며 말했다.
“나으리 뒤에 있으니까 어딜 가든 온갖 놈들이 눈 깔고 머리 박지 않습니까. 그거 구경하는 재미가 아주 삼삼합니다.”
“너는 그것이 불편하지 않았구나. 호란이는 꽤 오래 부담스러워했는데.”
“그건 그 양반이 뭘 몰라서 그러죠. 큰머리니 뭐니 관성에서 행세하는 하늘인 놈들이 괜히 와서 절만 하고 입 한 번 못 열고 우물쭈물하다가 가는데, 야 이런 꼴을 또 어디 가서 보겠습니까? 앞으로도 그거 생각하면 밤마다 웃으면서 잠들 수 있을 것 같아요.”
“귀수관의 보고 체계에 쓸데없는 형식이 많고 내용 없이 사람만 오가서 답답했는데, 너라도 기쁘다니 다행이구나. 나와 함께 다니는 것을 어렵게 여기지 않는다니 나도 기쁘다.”
시현이 뿌듯한 것처럼 말했다. 군인들이야 곤혹스럽겠지만 어차피 시현은 귀수관의 관인과 군인들에게 한 톨의 이해도 베풀 생각이 없었다.
“단이 떠나기 전에 걱정을 많이 했다. 네가 화를 잘 내고 사람을 쉬이 때려서 관가에 대동하기 알맞지 않다고. 전부 괜한 걱정이었구나.”
“신경 안 씁니다. 걔는 걱정이 일이잖아요.”
“그래. 마음 써주는 것은 알지만 나도 이제 가끔씩은 들어 넘기고 있다. 사실 아까도 단이 다른 사람을 두고 화 잘 낸다고 뭐라 하는 건 이상하지 않을까 생각했단다.”
그 말을 들은 길이 총치부가 떠나가라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죠, 딴 놈은 몰라도 단이가 저더러 화 많다고 하면 안 되죠! 그 자식 나으리 앞에서 인성 다 꺼냈나 보네. 말은 뭐 절대 안 그럴 것처럼 하더니.”
그리고 길은 약간 눈치 보는 기색으로 덧붙였다.
“제가 사람을 좀 치긴 하는데 딱히 화가 나서 때리는 게 아닙니다. 그냥 팰 만한 놈이라서 패는 거지.”
“그것은 좋은 태도다. 무력을 사용할 때는 상황과 당위를 우선하고 감정적이 되지 않는 것이 맞다.”
길의 ‘팰 만한 놈’의 범위가 얼마나 넓은지 모르는 시현이 진지하게 수긍했다.
평생에 드물게 진심 어린 긍정을 받고 길의 얼굴이 헤벌쭉해졌다. 무력 사용 시 항상 ‘저쪽에서 내가 힘을 쓰게 만들었다’는 입장을 고수한다는 점에서 시현과 길의 정신세계에는 공통된 부분이 있기도 했다.
현재 길의 업무 만족감은 전에 없이 최상이었다. 사예 님만 아니면 이 나으리를 평생 따라다니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오전에 단은 길에게도 사람 치지 말라고 당부에 당부를 늘어놓았다. 하도 유난을 하길래 길은 오늘 손맛 볼 일이 많겠구나 하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상황은 완전히 반대였다.
시현의 뒤에 선 길을 보고 사람들이 놀란 표정을 짓기는 했다. 특히 길의 기세를 느끼는 땅인들은 하나같이 아리까리한 얼굴이 되었다.
보통 이 표정이 나온 뒤엔 반드시 ‘저 사람은 반민이냐, 하늘인이냐?’는 질문이 따라오곤 했다.
그런데 아무도! 단 한 사람도 길이나 시현에게 그 말을 꺼내는 사람이 없었다! 땅인들은 길을 쳐다본 것이 엄청난 무례였다는 것처럼 송구한 얼굴이 되어 서둘러 눈을 깔고 용건을 읊었다.
이쪽이 손맛 보는 것보다 열 배는 더 만족스러웠다. 이제까지 경험한 적이 없어서 몰랐을 뿐이었다. 길은 사예 님이 항상 꼰대 짓이라고 질색하는 땅인들의 예의니 법도란 것이 생각 외로 쓸모 있다는 걸 깨달았다.
마음이 너그러워진 그는 자기가 무슨 행동을 할 때마다 안절부절못하는 시종관에게 물어서 호위의 법도를 속성으로 배웠다. 형식이 생소할 뿐 이해하기도 실행하기도 쉬웠다. 극상격 수행 법도의 반쯤은 힘을 과시하고 위세를 꾸미는 일이었고 길은 이런 행위의 필요성을 아주 잘 알았다.
시종관은 길에게 격식에 맞는 호위대 의복도 가져다주었다. 단이라면 불쾌해할 일이었지만 길은 이것을 전리품으로 이해했으므로 더욱 만족했다. 그만큼 털렸는데 내놓을 수 있는 건 다 내놔야지 그럼.
만족하고 유유자적한 산책을 마친 두 사람은 총령전으로 돌아갔다. 여러 관료들이 조사 내용을 모아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돌 인간 일이 급한데 서격원과 폐격 일로 울먹이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시현은 쓸만한 조사 보고를 가져온 사람에 한하여 한 가지씩만 보고 외의 청을 할 수 있게 했다. 덕택에 시간이 갈수록 조사에 구체성이 생기고 있었다. 운모와 교류가 잦았던 사람들이 몰려와 자기는 아무것도 몰랐다고 변명하면서 시간을 뺏는 일도 없어졌다.
짧게 정리된 개요를 읽으며 보고의 옥석을 구분하던 시현이 보고문 하나를 손에 들었다.
“운모가 땅인만이 아니라 반민들과도 교류했구나. 더구나 정체를 밝힌 후에도 이들을 찾아갔다고? 자세한 내용이 있으면 말하라.”
당 아래에서 기다리던 관인 무리 중 한 사람이 종종걸음으로 시현 앞에 나왔다. 그는 마음이 급했는지 하라는 보고는 않고 청부터 늘어놓았다.
“시문이시여, 염치없이 청을 올립니다. 폐격자는 같은 과목의 시험을 다시 볼 수 없다는 서격원의 규정이 있으나 이번에 한하여 예외를 명해주십시오.”
서격원 열어달라는 청은 다른 사람들이 많이 했다고 생각했는지 다른 이야기였다. 시현이 눈살을 찌푸렸다.
“당치 않구나. 그러면 모든 이가 제 원래 격을 되찾을 것이니 벌한 데에 의미가 없다.”
“그러나 당장 일 맡은 관리들이 모두 격을 잃었습니다. 관과 군의 혼란을 감당할 길이 없습니다.”
“귀수관은 학문이 융성하여 격 시험 합격자가 남아돈다 하지 않더냐. 이참에 모두 새 그릇으로 바꾸거라.”
“문이시여, 다른 관인은 그리 얻을 수 있으나 총치총령이 될 극상격만은 그럴 수가 없습니다! 이대로는 류씨 사인에게 귀수관의 총치총령을 맡겨야 합니다!”
모든 관인들을 냉정하게 대하던 시현도 여기에는 멈칫했다.
“…귀수관의 죄는 용서될 수 없는 것이나… 내가 귀수관에 그렇게까지 하려던 것은 아니었다. 방법을 생각해 보겠다. 이제 돌 인간에 관해 보고하라.”
“예!”
관인의 얼굴이 밝아졌다. 시현이 상황의 심각성을 이해해 주었으리라는 데 한 치의 의심이 없는 얼굴이었다.
그가 더 자세한 보고문을 올리고 내용을 설명했다. 운모는 친교 맺은 땅인들이 싫어할 것을 알아 반민과의 교류를 대체로 숨겼다. 하지만 반민들과 어울리는 것을 봤다는 소문이 전부터 구구했다. 수소문했더니 꽤 많은 사람이 나왔고, 개중 몇 사람은 귀수관과 협의를 맺은 작년 말 운모가 저를 찾아왔었다고 증언했다.
명부를 넘기며 시현이 물었다.
“교류는 두서없이 한 듯하다만 작년 말 찾았던 사람들은 모두 상인, 거간꾼, 직인들이구나. 무엇을 취급하는 자들이냐?”
“예. 모두 석재와 금속을 다루는 이들이었습니다.”
“물건을 사거나 사람을 썼느냐?”
“직접 거래를 하지는 않았다 합니다. 다만 몇몇 희귀한 자재들을 말하며 관성 밖에서 대량으로 구할 방법을 물었습니다. 정련소와 정련 장인에 대해서도 물었습니다. 반민들이 소개했다 말한 거래처에는 조사할 사람을 보내 놓았고, 그가 원한 자재는 보고문 후반에 적어두었습니다.”
보고문을 넘긴 시현의 눈이 약간 커졌다. 적혀 있는 것은 다천관의 장유가 마력회로를 만드는 데 필요하다며 꼽은 소재들과 절반 이상이 겹쳤다.
“역시 운모는 귀수관에 법력을 되돌리기 위해 무언가 설비를 만들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재료를 사람에게서 샀다고? 정련 기술자까지 필요로 하고? 그는 대지를 제 수족처럼 다루는 돌 인간인데, 어딘가 맞지 않게 느껴지는구나.”
시현이 혼잣말을 하고서 사람들을 향했다.
“하지만 정말로 중요한 것은 설비를 둔 위치다. 작년 말 운모가 방문했던 장소의 조사는 진척이 없느냐? 자재 같은 것을 실어 날랐다면 더 파악이 쉽지 않느냐. 일에 손을 보탠 사람도 나올 것이고.”
조사의 총책을 맡고 있는 총령부 태보가 나섰다.
“송구합니다. 조사 중입니다만 아직 가닥을 잡지 못했습니다. 목격 증언은 여기저기서 숱하게 나오는데 하나하나 찾아가 보고 땅까지 파 보아도 특별히 수상한 것이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자주 찾아간 집도 몇 곳 있으나 모두 아무것도 모른다, 협조한 일이 없다고 잡아뗄 뿐이라….”
“조사단에 길사를 포함시켰느냐? 지하 깊은 곳도 기운의 흐름에 특이한 점이 없었느냐?”
“예. 말씀대로 매번 길사가 찾아갔지만 보고된 이상은 없었습니다. 다들 변고 전과 다른 점이 전혀 없다고 했습니다.”
“변고 전과 똑같아도 안 되지 않느냐.”
시현이 약간 어리둥절해서 말했다.
“관성 바깥에는 법력이 전혀 흐르지 않고, 오로지 관성 내부에서만 기운이 순환하는데 어떻게 그 흐름이 똑같을 수가 있느냐.”
“그, 그러고 보니.”
주위의 관인들은 모조리 멍청한 얼굴이 되었다. 시현이 다시 말했다.
“지금 허공의 법력만 보아도 그렇다. 관성 중심의 기운 흐름은 제법 자연스럽지만 성벽 밖까지 기감을 넓혀 보면 그 바깥이 텅 비어 위화감이 심하지 않으냐? 다들 느껴지지 않느냐?”
“…문께서는 여기서 성벽 밖까지 기감이 닿으십니까?”
태보가 더욱 멍청한 얼굴로 쓸데없는 소리를 했다. 시현이 약간 얼굴을 붉히고 말했다.
“모두가 닿지 않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길사들은 알아야 하지 않느냐. 멀리까지 기운 읽는 것이 길사들의 일이 아니냐.”
“죄, 죄송합니다!”
뒤에 섰다가 갑자기 유탄을 맞은 대길사가 허둥지둥 머리를 숙였다. 딱히 그를 책망할 생각이 없었던 시현이 난처를 숨기고 말했다.
“되었다. 귀수관은 법력이 돌아왔으니 땅속 기운을 읽기가 수월하지 않음도 알고 있다. 나도 미처 생각이 닿지 못했다. 이 관성 안에 있으면 모든 것이 정상으로 되돌아왔다는 느낌이 드니까….”
시현은 말을 멈췄다. 사람들에게 그렇게 생각하게 만드는 것이 운모가 바란 일이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우리가 찾으려는 것은 귀수관 안에 없을지도 모른다.”
시현이 깨달은 얼굴로 말했다.
“운모는 인간의 마음을 안다. 아무도 성 밖으로 나가고 싶어 하지 않을 테니까, 운모가 무엇을 숨기려고 했다면 반드시 관성 밖에 숨겼을 것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