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nk Rock: Regenerating World RAW novel - Chapter 279
27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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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성 바깥에 조사의 초점을 맞추자 모든 것이 빠르게 명확해졌다.
운모가 여기저기에서 예의 자재와 사람을 모아 귀수관 주위의 몇몇 장소로 보낸 정황이 밝혀졌다. 대부분 거석이 갑작스레 날뛰어 사람들이 못 버티고 다른 지역으로 피난한 빈 땅이었다.
문제는 여기에도 문림 노 스승의 손이 닿았다는 것이었다.
거석이 날뛰기 직전, 문림 본인이 직접 제자라는 사람 몇을 데리고 관성과 가까운 곳에 서원 지부 터를 알아본다며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피난을 망설이며 더 버티려는 주민들에게 정착 지원을 돕겠다며 다른 지역으로 이주를 권하고, 주민들이 똘똘 뭉쳐 잘 버틴 지역에서는 새 서원 터로 삼겠다며 일정 지역을 고액으로 매입하고 사람들의 출입을 막았다. 이 장소에도 문제의 마력회로 자재들이 대량으로 들어갔다.
“또 문림인가.”
보고를 받은 시현이 말하자 문림 학벌의 고관들이 모두 머리를 수그렸다. 그래도 스승과의 연관을 숨길 궁리를 하며 시간을 끌지 않고 바로 고해 바친 것은 긍정적으로 보아 주어야 했다. 시현은 질타하는 뜻을 담지 않고 차분한 음성으로 말했다.
“그대들은 줄곧 문림은 운모에게 이용당했을 뿐이라 했지만 여기까지 온 이상 그 주장도 접어야 할 것이다. 적극적으로 협조… 아니, 일을 주도했다고 말해도 과하지 않다.”
“최소한 스승님이 나쁜 뜻으로 그러신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귀수관에 법력을 되돌리면 그것이 사람과 세상에 이익이 될 것이라 믿으셨을 것입니다.”
총령부 태보가 안타깝게 말했다. 눈과 목소리에 바치는 진심이 제법 애틋하기까지 했다.
시현은 잠시 태보를 쳐다보았다.
태보는 문림서원이 배출한 극상으로 젊은 나이에 총령부에서 손꼽히는 지위에 오른 사람이었다. 자신을 극상에 달하도록 이끌어준 스승에 대한 그의 신뢰와 존경은 진짜였다. 갓 정계에 입문한 자신을 안팎에서 지원해주고 있는 서원 선배와 동기에 대해서도 이익 계산 이전에 정서적인 유대감을 갖고 있을 것이다.
항상 그 인간적인 진심이 문제였다. 이들은 자신들의 결탁과 파벌 놀음이 줏대와 믿음을 지키는 행위라고, 따뜻하고 인간적인 무엇이라고 굳게 믿곤 했다. 공공성이라는 도덕을 해치는 일이 아니라 의리인정이라는 또 다른 도덕에 따르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온갖 부정을 저지르면서도 수치도 느끼지 않았고 오히려 무리 중 이에 동조하지 않는 이를 비난했다.
사실은 전부 이익에 관한 일인데 집단 안에서는 그것이 도덕이고 인정이고 세상 이치라 주장하고 스스로도 그것을 믿었다. 외부의 비판은 질투와 모함이라 여겨 귀를 닫으니 자정도 불가능했다.
솔직하게 인정하자면, 배운 놈들과 있는 놈들은 말귀를 못 알아들어서 두들겨 패는 수밖에 없다는 단의 말에는 일말의 진실이 있었다. 시현 역시 힘으로 강압하고 엄벌로 규제하는 것 외에 이런 자들을 계도하는 법을 알지 못했다.
시현의 침묵을 어떻게 해석했는지 다른 고관들도 슬그머니 역성을 들고 나섰다.
“예. 문림 스승님은 누구보다도 귀수관과 귀수관의 미래를 생각하시는 분입니다. 기감이 늦게 트이고 성취가 늦어 젊어서는 많은 괄시를 당하셨는데도, 아무 한을 품지 않고 항상 세상에 공헌할 것만을 말씀하셨습니다.”
“맞습니다. 항상 우리 문림의 제자들이 귀수관을 잘 이끌어야 한다고, 그리하여 문림의 이름을 만 대에 전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만 대라. 운모와 협상하라고 그대들을 문림촌에 불러모았을 때에도 그이가 그렇게 이야기하던가? 세상 모두가 죽고 귀수관만 남아도 그것이 만 대를 갈 것이라고?”
고관들은 모두 침묵에 잠겼다. 시현은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운모가 무엇을 꾸몄는가와 별개로, 문림 그자의 속내가 진정 무엇이었는가도 점점 더 신경이 쓰이는구나. 후에라도 한 번은 대면을 해야지 싶다.”
“무상께서 그리하여 주시면 저희가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일단은 운모가 귀수관에 무엇을 했는지 밝히는 것이 먼저다. 성 안의 지기가 교묘하게 조작되어 지기를 읽어서는 알 수 있는 것이 없으니 결국은 운모가 수작한 장소에 가 보아야 할 것이다.”
“확실히 수상하게 여겨지는 장소가 관성을 가운데 두고 예닐곱 군데쯤 됩니다. 이미 조사대를 꾸리는 중이니 오늘 안에 출발할 수 있습니다.”
총령부 태보가 지도와 조사대 구성 계획서를 올렸다. 지도에 표시된 장소는 모두 관성에서 멀지 않은 마을이었다.
지도를 들여다보며 생각에 잠겼던 시현이 마을 한 곳을 짚으며 말했다.
“이곳에는 내가 직접 가겠다.”
시현의 말에 둘러선 고관들은 눈을 크게 떴다.
“관성을 나가실 생각입니까?”
“그리하겠다. 운모가 언제 무슨 움직임을 보일지 모르는데 앉아서 보고를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을 수 없다.”
“하지만… 감히 위를 거슬렀던 저희가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도 우습게 여기실지 모릅니다. 하지만 문께서 관성을 나가는 것이 과연 안전한 일일지 잘 모르겠습니다.”
“예. 폐격을 당한 것에 반감을 품은 이들, 여전히 뒤에서는 돌 인간의 편에 서는 것이 더 낫지 않느냐고 말하는 자들이 생각보다 수가 많습니다. 그중 일부가 문께서 귀수관을 뜨신 사이 흉험한 마음을 품을 수도 있습니다.”
고관들은 꽤 진심으로 걱정하는 모습이었다. 태세 전환이 확실하다면 확실한 이들이었다.
시현은 슬쩍 웃음을 지었다.
“그리되면 곤란해지는 것은 사실 그대들이 아니냐.”
“예?”
“최소한 서격원 폐쇄령을 거둘 때까지는 내가 무사해야지. 나에게 무슨 일이 생기고, 그 뒤에 류사예가… 류씨 사인이 돌아와서 총치총령을 한번 해보겠다고 하면 곤란한 것은 너희가 아니냐.”
“아니, 그건….”
총치총령이 당황해서 더듬거렸다. 뒤에 있던 다른 고관이 반색을 하며 물었다.
“서격원을 열어주시겠습니까?”
“내가 그럴 마음이 되도록 너희가 잘해보거라. 출성하겠다.”
“노력하겠습니다….”
시현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고관들은 허리를 깊이 숙였다가 다들 서둘러 할 일을 하러 달려갔다.
서격원을 열어줄지도 모른다는 암시 때문인지, 귀수관 관인들은 시현의 호위에 진심이 되었다.
그동안 관부 안팎에는 폐격과 서격원 폐쇄에 항의하는 하급 관인들, 문림의 무고함을 호소하는 문림서원 제자들이 까맣게 몰려와 무릎을 꿇고 곡을 하고 있었다. 고관들도 내심은 그들과 다르지 않아서, 시현의 심기를 크게 거스르지 않는 선에서 읍소하는 이들을 내버려두었다.
하지만 시현이 출성을 결정하고 준비를 마치기도 전에 곡하고 시위하는 소리가 그쳤다. 회유했는지 강압했는지 모르지만 무너진 삼문 앞을 온통 틀어막고 있던 땅인들이 반 넘게 모습을 감췄다. 남은 이들도 대로 양옆으로 물러나 고개를 숙이고 엎드렸을 뿐이었다. 시현과 조사단이 탄 수레들과 호위 행렬이 그 사이를 빠르게 빠져나갔다.
수레 들창을 빼꼼하게 열어놓고 밖을 내다보면서 길이 기쁘게 말했다.
“나으리 따라다니는 동안 정말 좋은 구경 많이 합니다.”
“글쎄. 나는 이제 좀 그만 봐도 좋을 것 같구나.”
시현이 한숨을 섞어 말했다. 그는 평생 사람들이 절하여 예를 차리는 데 익숙해져 있었지만, 이 여행을 하면서 그 예가 가진 다른 의미를 점점 더 의식하게 되었다.
수레가 성문을 통과한 순간 시현은 잠깐 숨을 멈췄다. 자신과 세상을 감쌌던 기운의 부드러운 흐름이 사라지고 공허 가운데 맨몸으로 내던져진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처음 세상의 기운이 사라졌을 때처럼 허전하고 막막한 기분은 아니었다. 그는 이미 이런 세상에서 반년 이상을 지냈다.
시현의 기분 변화를 느꼈는지 길이 말했다.
“아무 걱정 마십쇼. 제가 있으니까요. 마력 없다고 쉽게 알고 깝치는 놈들 있으면 다 날려버릴게요.”
성 안에서보다 부쩍 커진 길의 존재감을 느끼며 시현은 미소를 지었다.
“괜찮다. 이제는 기운이 없는 세상에도 익숙해졌으니까. 더 고요하다는 점에서는 꼭 나쁘지만은 않고.”
“아, 사예 님도 그 말씀 하신 적 있어요. 마력 없어진 다음엔 하고한 날 귓가에서 마력이 뽀시락거리지 않으니까 맘도 편하고 밤에 잠을 더 깊이 자서 좋다고. 덕택에 성격이 점점 더 좋아진다고요.”
“그래? 나는 류사예가 조금 괴팍한 데가 있어도 품성은 좋다 생각했는데. 원래 성격은 달랐느냐?”
“글쎄 잘 모르겠습니다. 저도 원래부터 사예 님 성격 좋다고 생각했거든요.”
동석한 관인은 두 사람의 대화에 눈을 크게 떴지만 끼어들지는 않았다.
시현이 더 말했다.
“그래. 더 조용하고… 어떤 면에서는 류사예의 말대로 그쪽이 더 편안하다고 할 수도 있겠다. 세상에 저리 많은 걱정거리들만 없었다면 나도 그것을 마음 편하다 불렀을지도 모르겠구나.”
시현은 멀리 보이지 않는 구릉 너머로 시선을 던지며 말했다.
시현이 말한 세상의 걱정거리들은 목적지인 마을에 가까워지고서야 눈으로 볼 수 있었다. 마을로 향하는 산길 앞에 수십 개의 크고 작은 거석이 진을 짜듯 늘어서 있었다.
거석들은 조사단 수레가 시야에 들어오자 바로 이쪽으로 달려왔지만 시현은 그들이 도달할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았다.
그는 수레를 세우고 맨 앞으로 나섰다. 손을 몇 번 휘젓고 주문 몇 마디를 외치는 것으로 거석 무리가 깨끗하게 내려앉았다.
조사대 중 직급 낮은 관리들은 시현이 마력석 없이 수많은 거석을 깨는 것을 보고 탄복하고 혀를 내두를 뿐이었다. 하지만 고관들은 시현의 얼굴이 굳어진 이유를 바로 눈치챘다.
총령부 태보가 달려와 황급히 변명의 말을 했다.
“이럴 리가 없습니다! 대관성에 법력이 돌아온 후, 속령 전체에 순찰대를 보내 거석을 퇴치하고 민생을 살폈습니다. 여기처럼 대관성에 가까운 마을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이리 많은 거석이 떼를 지어 다니고 있었다면 어제라도, 아니 오늘 아침에라도 보고가 들어왔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운모가 움직인 것이 오늘 아침이겠지.”
시현이 싸늘하게 말했다.
“하지만 운모가 약속하기를.”
태보는 말을 더하려다 황급히 멈추었다. 그의 말투에서 여전히 운모를 지인처럼 여기는 투를 느끼고 시현은 냉소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순찰할 때 문림이 사들였다는 땅의 상황은 어떠했는가. 농지와 수원이 포함된 상당히 넓은 영역이라 보고받았는데. 수원지의 상태를 확인했는가.”
“그것은…. 아마 사유지라서….”
태보가 말끝을 흐렸다.
시현이 직접 조사하겠다고 선택한 마을은 사람들이 피난을 가지 않고 끝까지 남은 장소였다. 문림이 마을 일부와 그 인근의 땅을 매입하고 사람의 통행을 금한 이래, 그 땅에 관해 대관성에 올라온 보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시현이 쓰디쓰게 말했다.
“마을 주위에 거석이 이토록 많다는 것은…. 남아있는 주민들이 무엇보다 걱정이구나. 서둘러 가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