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nk Rock: Regenerating World RAW novel - Chapter 298
29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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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을 끌어올려 급조한 모들의 돌 육체는 조악하고 얼기설기했다. 크기도 어중간한 대장석만 못했고, 대칭도 잘 맞지 않는 몸체에 울퉁불퉁한 표면은 평범한 거석보다도 허술하게 보였다.
그러나 호란의 모든 감각이 지금 당장 도망치라고 말하고 있었다.
모들의 몸 안팎에서 폭발하듯 솟구치는 기운에는 끝이 없었다. 그 기세는 거의 하유관에서 본 지씨옥이 팔다리를 갖고 땅 위에 서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등 뒤에 귀수관이 없었다면, 그곳을 지키기 위해 싸움을 시작했다는 걸 일순이라도 잊을 수 있었다면 호란은 곧바로 시현을 낚아채서 달리기 시작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그랬다간 시현이 두 번 다시 호란의 얼굴을 보려 하지 않을 것 같았다.
거대해진 모들이 쿵 하고 발걸음을 내디뎠다. 호란은 자신이 적 앞에서 아무 판단을 못 하고 얼어붙어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치 서툴고 약하던 어린 시절, 약바위골 몫꾼들과 함께 처음 거석과 싸우러 갔을 때로 되돌아간 것 같았다.
모들이 금강의 방어막 밖으로 걸어 나왔다. 느리고 육중했던 것은 첫 한 발짝뿐, 새로운 육체에 적응한 것처럼 움직임이 빨라졌다.
하지만 모들의 발걸음은 성벽에 닿기 전에 가로막혔다.
“휘도는 영이여, 강벽으로 가로서라!”
시현이 외쳤다. 쿵쿵 위협적으로 달려오던 모들의 몸체가 보이지 않는 벽에 쾅 소리를 내며 부딪혔다. 시현이 앞으로 손을 뻗자 모들은 금강의 방어막 바로 앞까지 죽 밀려났다.
“아아아아아!”
이성이 있는지 없는지 모들이 분노에 찬 포효를 터뜨렸다. 시현은 모들을 억누르듯 앞으로 한 손을 뻗어둔 채 다른 손을 치켜들고 새 주문을 짜기 시작했다.
“별의 본태여. 태초보다 더 오랜 근원의 근원이여.”
귀수관의 마력 폭풍은 많이 수그러들었으나 완전히 그치지도 않았다. 하지만 시현은 두 개의 주문을 동시에 다루는 데 거침이 없었다. 모들의 머리 위에 순식간에 빛덩이가 모여들어 태양 같은 빛을 발했다.
하지만 빛덩이가 공격으로 변환되기 직전, 모들이 움직였다.
“해악이다!”
모들이 한 걸음 물러서더니 제 앞을 가로막은 장벽에 주먹을 휘둘렀다. 두껍게 압축된 기운의 장벽이 빛을 뿌리며 유리처럼 깨어져 나갔다. 모들은 그대로 시현에게 달려들었다.
“마법사아!”
호란은 곧바로 시현을 감싸 성벽 아래로 뛰어내렸다. 시현은 공중에 휙 끌려가면서도 이를 악물고 주문을 완성했다.
“격멸하라!”
굵고 매서운 빛줄기가 돌 거인의 한가운데 박힌 모들의 본신을 향했다. 모들은 피하는 대신 굵은 두 팔을 앞으로 뻗어 광선을 막았다.
은빛 광선이 돌 거인의 팔을 뚫고 들어가자 주홍색과 푸른색 빛이 맹렬하게 튀었다. 겹쳐진 팔 두 개가 다 산산이 부서져 내렸다.
하지만 시현의 광선도 모들의 본신까지 닿지 못했다. 힘을 다한 빛줄기가 흩어지자 모들은 두 팔을 잃은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날뛰기 시작했다.
성벽 아래로 내려간 호란과 시현에게 모들이 달려왔다. 그 몸체를 청색과 주홍색 빛이 휘감고, 발치에서 타고 올라온 토석이 새 팔을 만들었다.
모들은 거대한데도 빨랐다. 연잇는 발길질과 주먹질을 피하느라 호란은 정신없이 움직여야 했다. 시현이 호란의 옷깃을 꽉 쥐고 소리쳤다.
“녹렴 때와 마찬가지다! 금강과의 연계를 먼저 끊어야….”
그러면서 금강 쪽을 본 시현은 말을 다 잇지 못하고 숨을 삼켰다.
금강의 힘은 방어막과 모들의 새 몸을 만든 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금강의 발치로부터 뻗어나간 엷고 은은한 빛이 어느새 전장의 대부분을 뒤덮고 있었다.
금강이 허공에 손을 내민 자세 그대로 조용하게 말했다.
“유구한 길을 함께 걸었던… 나의 동행자. 네 뜻과 바람을 나는 기억해.”
산산조각 나 사방에 흩어져 있던 돌더미에서 주홍색 빛이 솟았다. 하유관에서 녹렴이 했던 것과 똑같이, 부서진 거석들이 몸체를 이어 붙이고 기결을 덧그리며 다시 일어서기 시작했다. 수를 헤아릴 수가 없었다.
제가 멘 작은 주머니에서 마력석을 꺼내 들던 사예가 손을 내렸다. 길이 중얼거렸다.
“미친….”
“진짜 돌았다…. 너무 어이없어서 웃음 나와.”
사예도 어처구니없어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길은 언제라도 몸을 피할 수 있게 사예를 한 팔에 앉혀 놓은 상태였지만, 둘 다 도망칠 생각마저 안 나는 것 같았다.
둘의 앞에 호란이 쾅 하고 착지했다. 모들은 돌진하다가 성벽을 뚫고 들어가 잠깐 방향을 잃은 상태였다.
“최길! 시문 님 좀 부탁해!”
호란은 시현을 내려놓으며 그 말만 하고 다시 뒤돌아 뛰어올랐다.
“저게 돌았나, 지가 뭐라고 나한테 이래라 저래라야?”
길이 험악하게 인상을 썼지만 호란은 이미 모들을 향해 달려간 뒤였다. 거의 땅에 내팽개쳐지듯 한 탓에 휘청대던 시현이 중심도 다 못 잡은 채 소리쳤다.
“안 된다, 호란! 무모한 일은….”
“어이쿠, 넘어지십니다 나리.”
길이 한 팔로 시현을 덥석 안아 들었다. 그는 호란을 볼 때와 완전히 딴 사람 같은 얼굴로 시현을 향해 벙긋 웃었다.
“제가 있으니 신변 걱정은 탁 놓으시고 다 쓸어버리십쇼! 안 되겠다 튀자 싶으시면 그것도 언제든 말씀하시고요!”
“언제 또 시문한테 그렇게 마음을 다 줬니? 넌 애가 너무 쉬워서 걱정된다 진짜로.”
다른 한쪽 팔에 걸터앉은 사예가 투덜댔다.
시현은 초조한 얼굴로 성벽 쪽의 모들과 전장의 거석 떼를 번갈아 보았다. 거석은 작은 것부터 형체를 다 갖추고 이쪽으로 밀려오고 있었다. 그 앞에는 부상해 퇴각조차 하지 못한 군인들과 이미 성벽을 다 잃은 귀수관의 거리가 무력하게 펼쳐져 있었다.
시현은 남보다 강한 힘을 가졌지만 무적은 아니었다. 지닌 능력을 전부 발휘하려면 거리와 시간이 필요했고 지금 시현에게는 둘 다 없었다. 호란은 그것을 누구보다 잘 알았기에 그를 모들에게서 떼어놓은 것이었다.
시현은 표적을 정하지도 못한 채로 주문을 읊어 기운을 모아들이기 시작했다.
“마법사! 거기 있구나!”
성벽 잔해 사이에서 시현을 찾아 날뛰고 있던 모들이 이쪽을 보고 소리쳤다.
그 앞으로 호란이 뛰쳐나갔다. 그를 알아본 모들이 눈을 번뜩이며 팔을 휘둘렀다.
“날파리 같은 게! 비켜!”
하지만 호란은 멈추지도 피하지도 않고 직선으로 모들을 향해 뛰어올랐다.
호란은 두려웠다. 그리고 그 두려움에 익숙했다.
약바위골에 온 거석에게 주먹 한 번 못 내지르고 돌아온 호란에게, 석영은 싸우는 법을 가르쳤다.
강해지는 법을 가르친 게 아니었다. 석영은 언제나 약한 것도 약한 채로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호란에게 약한 채로 더 강한 상대와 싸우는 법을 가르쳤다.
호란은 언제나 무서웠다. 거석의 기운을 못 느낄 때는 무작정 무서웠고 그 거대한 기운을 느끼게 되자 더 무서웠다. 아직 뼈도 가늘고 힘도 부족하던 시절, 한 번만 실수하면 바로 죽음이 찾아올 걸 그는 언제나 알고 있었다.
호란은 점점 더 강해졌지만 언제나 앞에는 더 강한 상대가 나타났다. 그리고 모들은 이제까지의 누구와도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상대였다.
하지만 자신보다 더 강한 상대와 싸우는 것은 호란이 언제나 해오던 일이었다. 겁먹고 완전히 얼어붙었던 상대에게 다시 덤벼드는 것도 처음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는 모든 것을 잊고 전력으로 모들에게 덤빌 수 있었다.
호란의 몸보다 몇 배나 커다란 모들의 주먹이 빛과 같은 속도로 다가왔다. 기결이 없는데도 몸 전체가 회오리처럼 기운을 내뿜고 있었다. 호란은 이 감각도 잘 알았다.
호란은 원래 할 줄 알았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주위의 세찬 기운을 팔에 휘감았다. 그리고 그대로 모들에게 주먹을 맞뻗었다.
빛과 파열음이 터졌다. 마법사의 주문보다도 강력한 힘이 서로 충돌하며 천지를 뒤흔들었다.
호란은 모들의 주먹과 자기 주먹이 맞닿았는지 아닌지는 몰랐다. 어차피 진짜로 부딪힌 것은 모들의 토석과 호란의 살과 뼈가 아니라 거기 담긴 기운이었다.
대신 자기 쪽이 이겼다는 것은 알았다.
모들의 거대한 오른팔이 산산조각 나며 흩뿌려졌다. 분노에 몸을 맡기고 날뛰던 모들이 제정신이 돌아온 것처럼 눈을 크게 떴다.
“너…! 어떻게….”
호란은 모들이 당황한 사이 바닥에 착지해서 자세를 잡았다. 정자세로 몸 안의 기운을 가라앉혔다가 확 끌어올리자, 사방의 기운이 주위로 모이며 들불처럼 함께 일어나는 것이 느껴졌다.
모들은 당황하면서도 적의를 놓지 않았다. 그가 땅에 선 호란에게 힘껏 발길질을 했다.
정면으로 들어오는 거대한 다리는 맞받아치기 나빴다. 호란은 두 팔을 뻗어 힘껏 막았다. 다시 충돌음이 울렸다.
호란의 몸은 모들 앞에서 조약돌만도 못했지만 그는 떠밀리지 않았다. 모여든 기운이 호란을 산처럼 단단하게 받치고 있었다.
“와 미친!”
호란과 모들의 대치를 본 길이 턱이 빠지도록 입을 벌렸다. 호란을 지원하기 위해 주문을 짜던 시현도 눈이 커다래졌다.
그래도 시현은 집중까지 잃지는 않았다. 그는 외우던 주문을 바꾸어 모았던 기운을 정면으로 넓게 뻗었다. 코앞까지 달려왔던 선두의 거석들이 쏟아지는 벼락 세례를 맞고 부스러졌다.
“정이여, 맥동하라!”
시현은 곧바로 다음 주문을 외웠다. 드높이 일어난 대지가 사태가 되어 앞으로 밀고 나갔다.
벼락에 맞지 않은 거석들은 거센 기운이 담긴 토석에 떠밀려 귀수관에서 열 장 밖에 내팽개쳐졌다. 거의 다 몸을 일으켜가던 장군석 두 개도 지면에 넘어지며 다시 두세 조각이 났다.
다만 두 번의 주문 세례에도 금강이 세운 넓고 둥근 보호막만은 여전히 멀쩡했다. 금강은 보호막 안에 똑같은 자세로 선 채 상황을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
시간을 벌어놓은 시현은 호란과 모들 쪽으로 눈을 향했다.
그 사이 호란이 다시 공격을 명중시켰는지 모들이 쾅 소리를 내며 한쪽 무릎을 꿇었다.
“호란이… 어떻게?”
다시 기운을 모으기 위해 한 손을 들면서도 시현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놀라지 않은 것은 사예뿐이었다. 길의 어깨에 척 한 팔을 기대고 있던 사예가 멀뚱멀뚱 시현을 보았다.
“시문이 네가 왜 놀라? 저거 쟤가 원래 하던 거 아니야?”
“원래라고?”
“엉. 문림촌 갔을 때, 거석이랑 싸우는 거 보니까 호란이는 자기 힘만 가지고 싸우는 게 아니던데? 자기 몸을 매개로 해가지고, 거석한테서 흘러나오는 기운을 지 것처럼 막 쓰더라고.”
시현도 기운을 읽어 지금 호란의 상황은 파악하고 있었다. 하지만 시현으로선 처음 알게 된 일이었다.
“호란이 전부터 저런 일을 할 수 있었다고? 문림촌에 갔을 때부터?”
“어. 그 갑병인지 하는 놈들한테서 새어 나오는 기운이 진짜 눈물만큼인데도 꽤 강해지던데. 저 모들이란 애는 무슨 돌아버린 것처럼 기운이 넘치니까, 호란이도 따라서.”
사예가 저걸 보란 듯이 손을 펴 보였다. 시현은 완전히 얼떨떨해진 얼굴이었다.
“호란이… 강해지고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너랑 다니면서 배웠나 보다. 남이 선점한 기운 멋대로 뺏어 쓰는 거.”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