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nk Rock: Regenerating World RAW novel - Chapter 299
299화
* * *
“너랑 다니면서 배웠나 보다. 남이 선점한 기운 멋대로 뺏어 쓰는 거.”
“아니다. 나는 아무것도….”
“너는 왜 애가 안 진지할 때가 없니? 무슨 농담을 못 하겠네.”
시현은 약간 상처받은 얼굴을 했지만 지금은 진지하지 않은 사람도 진지해야 할 상황이라는 점을 지적하지는 않았다.
“이게에에!”
저쪽에서 모들이 고함치는 소리가 들렸다. 모들과 호란이 부딪히고 모들의 팔 한쪽이 또 부서져나갔다. 하지만 모들은 호란에게 잃은 팔다리를 곧장 다시 복구했다. 시현이 허물어뜨린 장군석과 거석들도 금강의 영향력 아래서 다시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시현은 주위를 흐르는 기운을 불러들이며 말했다.
“금강을 어떻게든 저지해야 한다. 저자가 건재한 동안은 결코 싸움을 끝낼 수 없다.”
“그건 우리도 옛날에 눈치 깠지. 근데 저 보호막이 안 뚫려.”
사예가 말했다.
“딱 발밑은 아니라도 저 녀석 서 있는 근처에 내가 묻어놓은 화약이 한 묶음 있거든? 발화시키려고 했는데 안 되더라. 땅 위든 땅 밑이든 저 녀석 주위에선 주문이 전부 무효화돼. 참석 제일 큰 걸 써서 집중했는데도 안 뚫렸어.”
“그래. 내 주문도 가로막혔다. 이전에 충돌했을 때는 저자의 능력이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시현은 금강이 더 강해졌다는 말을 하려다가 보류했다. 이제까지 그가 돌 인간의 힘의 크기나 능력을 가늠하던 모든 기준이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막연하게 들었다.
시현은 다시 한차례 주문을 외워 다시 접근하는 거석들을 밀어냈다. 장군석은 특별히 더 신경 써서 조각조각 박살 냈다. 하지만 이 역시 약간 시간을 버는 정도였다.
더 큰 문제는 이쪽이 시간을 끌 수 있는 입장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지하 모조 원천의 힘이 점점 다해가고 있었다.
운모가 죽으면서 기운을 귀수관 경계 안에 묶어놓던 영향력도 사라졌다. 넘치는 기운은 섭리에 따라 자연스럽게 사방으로 흩어지고 있었고 그것이 다하고 난 뒤엔 시현은 다시 마력석에 의존해야 했다.
시현은 단이 챙겨준 참석 주머니를 사예에게 내밀며 말했다.
“내가 더 강한 주문을 짜서 금강을 저격해보겠다. 다만 시간이 걸릴 테니 그사이 그대와 길이 귀수관에 진격해오는 거석 떼를 막아다오.”
“아니… 그 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부탁하지 않을래?”
“잠깐이라도 좋다. 할 수 있는 동안만이라도.”
“그니까 할 수 없다니깐.”
사예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주머니는 사양하지 않고 받아들었다. 사예가 물었다.
“난 남아 있는 마력 폭풍 때문에 복잡한 주문 짜기가 힘들어. 그나마 위쪽으로 갈수록 회오리가 덜한 것 같은데 내가 느낀 게 맞아?”
“맞다. 힘이 지하에서 올라오고 있기 때문에 지면 가까운 곳일수록 흐름이 격하다. 그것도 이제는 크게 신경 쓰일 정도는 아니지만.”
“이런다니까. 너한테나 신경 안 쓰인다고.”
사예는 말하더니 북동쪽 끝, 아직 무너지지 않고 남아 있는 성벽 끝의 탑루를 가리켰다.
“길아, 나 저기 좀 데려가 줘. 맨 꼭대기로.”
“넵!”
길은 재깍 대답하고 시현에게 물었다.
“나리, 같이 모셔가도 괜찮지요? 나리는 주문 사정거리 엄청 넓으시니까.”
시현이 곤란하게 웃었다.
“평소라면 괜찮지만 지금은 좀…. 두고 가다오. 내 몸은 지킬 수 있다.”
“뭘 지킬 수 있어. 너 지금 또 어지러워?”
사예가 눈을 부릅떴다.
“아니다. 아직은 완전히 괜찮다. 하지만 길과 함께 이동하면서 주문을 짜는 건 부담이 될 것 같다. 무엇이든 간에 빨리 해다오. 시간이 없다.”
시현은 말한 뒤 허공에 소매를 한 번 털었다. 간단한 동작만으로 또다시 선봉의 거석 무리가 우르르 폭발했다. 사예는 이번만은 시현이 주장하는 괜찮음을 인정해줄 수밖에 없었다.
길이 시현을 땅에 내려놓고 사예와 함께 몸을 솟구쳤다. 탑루 꼭대기로 올라간 사예는 곧바로 주머니에서 굵은 돌을 골라 들고 하늘 위로 손을 뻗었다.
열 줄기가 넘는 굵고 새빨간 불꽃이 꼬리를 길게 이끌며 하늘로 치솟았다. 불꽃 줄기들은 각자 구불구불 휘며 하늘 위에 유려하고 멋스러운 글씨를 커다랗게 수놓았다.
‘멍청한 꼰대들아 지원 좀 해라 대체 어디까지 도망간 거야’
‘마력 회오리도 아까보다 덜 후달리니까 후딱 튀어와’
‘안 온 놈은 나중에 다 뒤질 줄 알아’
사예는 허공에 두 팔을 뻗친 채 한동안 글씨를 유지하기 위해 집중했다. 탑루 반대편에서 관성 방향을 보고 있던 길이 말했다.
“아! 오네요. 법군 깃발이랑 하늘인 놈들 깃발이랑 둘 다 움직여요. 방어선 쳤던 부대가 전부 오는 것 같아요.”
“후딱 튀어오랬는데 깃발 이러고 있다. 대부대 병졸도 아니고 마법사가 깃발은 왜 필요해. 망해 먹을 꼰대들.”
사예는 후 한숨을 뿜으며 손을 내린 뒤 진땀을 닦으며 욕을 했다.
깃발은 챙겼어도 귀수관군의 움직임은 빨랐다. 방어선이 가까웠던 덕에 남여를 타고 하늘인 호위를 대동한 법군 고위진이 순식간에 전장에 도착했다. 곧 성 앞 여기저기서 부실하나마 불과 벼락의 화망이 생기고, 가까이 다가온 거석들이 다시 부서지기 시작했다.
사예가 탑루 서쪽을 가리켰다.
“된 거 같네. 이제 저기로 데려가 줘. 호란이 있는 데.”
“예? 시문 나리한테 돌아가는 게 아니고요?”
“길아, 알지? 나 주문 쓰고 나면 설명 귀찮아진다.”
“넵!”
길이 사예를 들어 올리고 훌쩍 몸을 날렸다. 그는 몇 번 뛰지도 않고 목적한 장소에 도착했다. 모들과 그나마 가까우면서 덜 무너지고 남은 성벽 위였다.
모들과 호란은 서로 진전 없이 호각세로 대치 중이었다. 호란은 모들과 부딪힐 때마다 그의 팔다리를 파괴했지만, 일격 일격에 공을 들이느라 공격을 연속시키지 못했다. 모들은 그사이 빠르게 몸을 수복하며 다음 공격을 계속했다.
한 차례 격하게 충돌한 후 두 사람이 틈을 벌리고 떨어졌다.
상황은 호각이라도 정신적으로는 호란이 훨씬 여유로워 보였다. 호란은 긴장과 집중으로 정색이 되어 있을 뿐 더없이 팔팔했다. 반면 모들은 완전히 악에 받쳐 있었다. 또다시 허물어졌다 복구되고 있는 두 팔이 부들부들 떨었다.
“인간이… 너 따위가 어떻게….”
“물어보지 마. 지금 내가 이거 어떻게 할 수 있는지 생각하기 시작하면 갑자기 헷갈릴 거 같으니까.”
호란이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말은 그렇게 해도 호란은 몸 주위에 안정적인 기운의 회오리를 만들고 있었다.
사예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호란은 모들과 거리를 둔 채로도 귀수관에서 흘러넘치는 기운까지 끌어들여 제 몸에 두르고 있었다. 쟤가 진짜 직관이 좋다니까. 자기가 뭘 하는지 모르고 하니까 저게 되지.
“한 대만! 한 대만 맞아도 넌 죽어!”
모들이 소리치며 다시 쿵쿵 달려왔다. 하지만 그가 내지른 주먹을 호란은 다시 마주쳐 깨뜨렸다.
사예가 굵직한 마력석을 꺼냈다. 금과 보석을 두르지 않고 각인만 되어 있는 금빛 돌이었다. 사예가 그것을 길에게 건네면서 말했다.
“세상에 터뜨리라고 있는 물건이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화약이고… 하나는 좋긴 좋은데 비싸서 터뜨릴 수가 없었지. 오늘 남의 돈으로 소원 좀 풀자.”
길이 전신을 틀었다가 휙 팔을 휘둘렀다. 금빛 마력석이 빛 같은 속력으로 돌 몸체 한가운데 박혀 있는 모들의 본신을 향해 날아갔다.
검지손가락을 총구처럼 목표물에 뻗고 있던 사예가 큰 소리로 외쳤다.
“빠―앙!”
모들의 상체 바로 앞에서 마력석이 산산이 부서지며 폭발을 일으켰다. 불꽃 너머에서 모들의 성난 비명 소리가 들렸다.
“크악! 마법사아!”
마력 폭발에 반응하는 것처럼 주홍색과 청색 빛이 거세게 솟았다. 빛줄기는 폭발의 여파를 밀어내는 동시에 돌 거인의 부서진 어깨 쪽을 더욱 빠른 속도로 복구했다.
하지만 그것은 호란에게 최고의 기회였다.
휘두르다 만 큰 팔을 피해 호란이 높이 뛰어올랐다. 그가 이제 제 몸과 똑같이 느끼게 된 기운을 전신과 주먹에 가득 담았다.
목표는 모들의 본신이 아니었다. 본신을 감싼 돌 몸뚱이 한가운데, 금강이 보내는 기운을 끝도 없이 빨아들이고 있는 흐름을 향해 호란이 힘을 부딪혀 갔다.
“야아아!”
주먹이 닿기 전에 의지를 담은 기운이 먼저 돌 몸뚱이를 꿰뚫었다.
굉음과 함께 주황색과 청색 빛이 터져 나왔다. 보호하거나 수복하기 위한 빛이 아니었다. 모들을 감싼 돌 거인의 몸체는 빛과 기운을 흩뿌리며 산산조각 났다.
“으아!”
소매로 얼굴을 가리며 쭈그리는 사예를 길이 등을 돌려 감싸며 뒤로 뛰었다. 폭발의 여파에 휘말려 두 사람이 서 있던 성벽까지 박살이 났다.
호란은 두 팔을 들어 폭발에서 저를 보호하며 바닥에서 내려섰다.
호란은 곧바로 자세를 잡았다. 적이 가진 거대한 기운은 대부분 파쇄됐지만 거대한 적의는 아직 생생하게 살아 있었다.
돌 몸뚱이가 산산조각 나 허물어진 자리에 모들이 두 주먹을 꽉 쥐고 서 있었다.
“인간 따위가… 하찮은 목숨… 너희는 내가 치면 죽어야 하는데….”
모들이 중얼거렸다. 시선이 어디에도 가 있지 않았다. 이성이 남아 있는지도 의심스러웠다.
눈에서는 아직 금강의 푸른 빛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너덜너덜해진 의복 안쪽의 기결에서도 원래 모들이 갖고 있던 주홍이 아니라 푸른 빛이 뿜어나오고 있었다.
그는 몸 안에서 뻗쳐나오는 기운을 감당하지 못하는 것처럼 부들부들 경련했다. 마치 사람이 숨을 몰아쉬는 것처럼 어깨가 들썩였다.
호란은 바로 공격해 들어가지 못했다. 돌 몸뚱이가 없는 모들이 오히려 빈틈이 없고 싸우기 어렵게 느껴졌다.
명확하게 깨달은 것은 아니었지만, 모들의 돌 몸뚱이가 내뿜는 기운이 사라진 만큼 자신의 힘에도 제한이 생긴 것을 그는 무의식중에 느끼고 있었다.
“죽여야 하는데… 마법사가 자꾸 방해를 해서…. 마법사….”
마법사라는 단어를 되뇌인 모들의 눈에 갑자기 초점이 돌아왔다. 모들이 시선을 휙 돌렸다. 그 끝에는 사예가 아닌 시현이 있었다.
시현은 두 손을 공중에 쳐들고 무언가 주문을 외우고 있었다. 그 머리 위와 몸 주위에 작지만 무수한 빛덩이들이 떠오르며 압축되고 있었다.
“마법사아아아!”
모들이 찢어지는 소리로 고함을 지르며 땅을 찼다.
호란도 동시에 땅을 찼지만 금강의 힘으로 강화된 모들이 더 빨랐다. 살기 그 자체가 된 듯한 푸른 빛의 덩어리가 시현에게 돌진해갔다.
시현의 시선이 살짝 모들에게 닿은 것 같았다. 하지만 시현은 그대로 주문을 완성했다.
“파하라.”
시현의 주위에 있던 셀 수 없는 수의 빛덩이는 광선을 뿜는 대신 그 자체로 금강의 보호막에 충돌해갔다. 구형의 보호막 전체에서 은색 빛줄기가 솟고, 날카로운 파열음과 함께 두 색 빛의 장막이 산산이 부서져 나갔다.
그 점멸하는 빛 속에서, 모들이 시현에게 곧게 달려들었다.
“안 돼! 시문 님!”
비명에 가까운 호란의 목소리는 뒤이은 굉음에 파묻혔다. 큰 기운이 서로 충돌할 때 나는 파열음이 전장 전체에 울렸다.
사력을 다해 시현에게 달려가던 호란은 눈앞에 벌어진 광경에 발을 멈추고 말았다.
시현의 바로 앞 지면에서, 금속질인지 석질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거대한 흰 손이 두 개 솟아나 있었다. 돌진해온 모들을 감싸는 듯한 형태로 막아낸 그 손의 표면에는 금속 선과 동심원이 여기저기 드러나 은빛을 내고 있었다.
흰 손 뒤에서 붉은 머리를 하고 풍안경을 걸친 한 사람이 사정하듯 모들에게 두 손을 모았다.
“어… 미안. 진짜 미안. 중요한 때 방해한 건 아는데, 그런데 내가 시문한테 못 지킨 약속이 있어서.”
“감람!”
모들이 소리쳤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