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nk Rock: Regenerating World RAW novel - Chapter 300
300화
* * *
“감람!”
모들이 소리쳤다. 얼굴에 놀라움이 스치면서 광란에 빠졌던 눈에 총기가 나타났다.
하지만 이성이 돌아왔다고 그를 지배하는 분노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가 날카롭게 소리쳤다.
“무슨 생각이야! 왜 네가 방해를 하는 거야!”
“그럴 일이 있어….”
감람은 마냥 쩔쩔맸다. 뒤에서 시현이 말했다.
“큰 신세를 졌군. 잊지 않겠다.”
시현은 곧바로 손을 휘저어 주위의 기운을 끌어올렸다. 다시 공중에 힘을 담은 빛의 덩어리가 나타났다.
“격멸하라!”
빛덩이가 압착되며 광선을 뿜으려 했다. 표적은 두 겹이 보호막이 깨지고도 원래 자리에 그대로 서 있는 금강이었다.
하지만 시현이 주문을 외치는 것과 동시에 감람이 오른팔에 차고 있던 석패에서 삐익 하는 소리가 울렸다. 감람이 선 곳을 중심으로 마력회로를 연상케 하는 빛무늬가 쭉 뻗고, 동시에 시현의 주문이 무산되었다.
감람이 배로 난처한 얼굴이 되어 시현을 돌아봤다.
“아니, 그것도 좀…. 널 죽게 하는 것도 그렇지만 동료가 죽게 놔둘 수도 없는데. 어떻게 하지.”
시현은 얼굴이 굳어져 몇 발짝 물러섰다. 직전까지 주위를 휘돌던 기운이 정지한 듯 묶이며 시현의 인지에서 사라지고 있었다.
감람의 발밑에서 계속 영역을 넓히고 있는 마력회로 모양 빛무늬는, 다천관에서 애를 먹었던 주문을 차단하는 법력진이었다.
“시문 님! 물러나세요!”
감람이 완전히 이쪽 편이 아니란 걸 깨달은 호란이 곧바로 시현 앞에 내려섰다.
모들도 시현이 무력화된 걸 깨닫고 다시 움직이려 했다. 하지만 감람이 조종하는 커다란 손 두 개가 뛰어오르려는 모들을 덥석 붙잡았다.
모들이 분노에 차 소리쳤다.
“방해하지 마! 네가 우릴 동료라고 생각하면! 마법사를 죽이는 걸 방해하면 안 돼! 마법사를….”
감람의 등장으로 다소나마 진정했던 모들이 다시 악귀 같은 얼굴이 되었다. 눈에서도 푸른 빛이 치솟았다. 그는 발버둥을 치면서 저를 붙든 흰 손의 손가락을 하나씩 파괴하기 시작했다.
감람은 미간에 주름을 잡았다. 그는 패를 찬 손을 쳐들더니 신중한 얼굴로 조작했다.
감람의 손가락이 움직임을 끝낸 순간 지면에 방사형으로 퍼진 마력회로에 붉은색 빛이 스치고 지나갔다.
“아악!”
날뛰고 있던 모들이 비명을 지르더니 몸을 딱딱하게 굳혔다. 그의 눈과 몸에서 솟구치고 있던 푸른 광채가 불을 끈 듯 사라졌다.
그가 휘청하더니 축 늘어졌다. 거의 다 파손되어 손가락이 하나밖에 남지 않은 지면의 흰 손은 그를 지탱하지 못하고, 모들은 그대로 바닥에 굴러떨어졌다.
“감…람…. 마법…사….”
모들은 얼굴을 아래로 하고 쓰러진 채로도 계속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감람은 눈 사이를 잔뜩 찌푸린 채로 고개를 돌렸다.
“금강, 모들을 얼마나 오래 연결시켜 둔 거야? 선 넘지 않았어?”
줄곧 같은 자세로 서 있던 금강이 그제야 손을 내렸다. 두 눈동자는 머금었던 빛을 잃고 원래의 청흑색으로 돌아와 있었다.
금강이 느린 걸음으로 다가오며 말했다.
“모들 본인의 뜻이었어. 그리고 시문 일행을 상대하려면 그 정도는 필요했어. 아니, 그 정도로도 부족하다는 게 방금 밝혀졌지만.”
“그래도 정도가 있지! 자아가 무너지고 있잖아!”
“힘이 모자라서 죽게 만드는 것보다는 낫잖아.”
금강의 음성과 표정은 그답지 않게 딱딱했다. 그가 바닥에 쓰러진 모들을 끌어안아 일으켜 세웠다. 모들의 작은 몸이 금강이 품에 기댄 채 까부라졌다.
금강이 감람을 보았다.
“넌 우리가 이번 대절멸을 시작했을 때 잠에 들어 있었지. 입장을 존중받고 싶다면 우리랑 대화부터 해. 대화 상대가 안 남아서 시간도 얼마 안 걸릴 거야.”
긴장한 채 돌 인간의 대화를 지켜보고 있던 호란이 움찔했다. 금강이 선 밑에서 땅이 말라붙으면서 새하얀 모래 수렁을 만들고 있었다.
모들을 안은 금강의 몸은 곧 모래무지 안으로 푹 가라앉아 사라졌다.
“쟤도… 어째 정상이 아니네. 몇 명을 데리고 있는 거야….”
감람이 혼잣말을 하더니 이쪽을 돌아보았다. 그의 얼굴에 아까의 난처한 표정이 돌아왔다.
그가 제 발밑의 마력회로를 가리키며 시현과 호란을 향해 물었다.
“너희는 우리랑 아주 심각하게 적대 중인 거지? 혹시 내가 이 회로를 정지시키면 마법으로 날 공격할 거야?”
“그러지는… 않지…. 어쨌든 시문 님을 구해줬는데.”
호란이 더듬거렸다. 하지만 뒤에서 시현이 냉랭한 음성으로 말했다.
“상황에 따라서다. 넌 방금 우리에게 치명적인 숙적을 도주시켰다. 그리고 이곳 귀수관을 심각한 위험으로 몰아넣은 모조 원천 역시 네가 운모에게 만들어준 것이겠지.”
“네?”
호란은 깜짝 놀라 시현을 돌아보고 다시 감람을 보았다.
“진짜야? 네가 모조 원천을 만들었어?”
“만든 건 운모야. 난 연구와 설계만 했어. 그리고 난 운모가 기운을 압축하는 실험을 해보려는 줄 알았지 도시를 파괴할 목적인 건 몰랐어. 그걸로 시문을 위험에 처하게 할 줄도 몰랐고. 알았으면 안 했을 거야.”
감람이 두 손을 모아 사죄하는 표시를 했다. 적의가 없다는 말은 진심 같았지만 호란은 여전히 납득이 안 갔다.
“하지만 대체 왜 운모를 도운 거야? 운모는 심산에서 널 공격했잖아!”
“화해했어.”
감람이 너무 간단하게 말해서 호란은 반은 어이없고 반은 화가 났다. 호란이 할 말을 못 찾고 있는데 시현이 말했다.
“그것이 문제다. 네가 운모와 화해했듯이 금강과 모들과 화해한 뒤 우리와 다른 사람들을 공격해올 거라면 나는 너를 이대로 보내줄 수 없다. 네가 방금 내 목숨을 구했다 할지라도.”
“응. 그런 거구나. 알겠어.”
시현의 결연한 태도에 비해 감람은 아주 여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나는 네게 갚아야 할 게 둘 있어. 하나는 심산에서 했던 해치지 않겠단 약속을 너한테만은 지키지 못한 것. 널 적의 손에 넘겨준 건 운모지만 난 책임감을 느껴. 그리고 또 하나는 네가 원천에서 사출구를 빼내는 데 도와준 것. 그것 역시 감사를 하고 싶어. 그러니까 네가 나를 근원으로 돌려보내고 싶다면 이 두 가지 사죄와 감사가 끝난 다음에 해주면 좋겠어.”
호란은 어째 맥이 풀렸다. 이쪽 감람에게 죽음이 아무 의미가 없고, 그래서 죽고 죽이는 것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는 게 새삼 실감이 되었다.
시현도 조금 당황했는지 바로 대답을 못 했다.
감람이 손에 찬 패를 내려다보고, 넓게 퍼진 마력회로를 죽 둘러본 다음 말했다.
“음, 어쨌든 난 이 마력회로를 너무 오래 켜 두고 싶진 않아. 매설된 다른 회로에 악영향을 미치거든. 그렇다고 끄면 너한테 공격당할 테고…. 갚을 걸 갚기 위해서라도 무사해야 하니까 지금은 일단 도망갈게. 다시 볼 때까지 나한테 대가로 요구할 만한 게 있나 좀 생각해 봐.”
“뭐? 잠깐만….”
호란이 그를 부르려고 했지만 감람은 굽 있는 신으로 땅바닥을 가볍게 차더니 금강이 만들어 둔 모래무지 속으로 휙 뛰어들었다.
그의 모습이 사라지는 것과 함께 지면에 뻗었던 마력회로가 빛을 잃고 사라졌다. 땅 위에 솟아 있던 두 개의 파손된 흰 손도 다시 땅속으로 파고들어 사라졌다.
“…….”
시현과 호란은 잠시 말을 하지 못하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전장은 온통 황폐했지만 싸움은 끝나 있었다. 감람이 회로를 사용해 금강의 힘을 차단했을 때, 금강이 끊임없이 복구시키고 있던 거석들도 전부 허물어졌다. 녹렴과 싸웠을 때와 똑같았다.
시현이 입을 열었다.
“금강이 녹렴이 쓰던 힘을 그대로 사용하는구나.”
“네. 그리고….”
호란은 떨어진 곳에 있는 희고 둥근 모래 구덩이로 시선을 옮겼다. 모래무지를 통해 땅 밑을 이동하는 것은 석영이 하던 일이었다.
두 사람이 고민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는데 길이 사예를 데리고 허겁지겁 달려왔다.
“나리! 괜찮으세요?”
그와 사예는 대치하는 여럿을 자극할까 봐 약간 거리를 두고 상황을 보고 있었다. 시현이 다친 데가 없는 것을 보고 길이 과장되게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휴, 심장 떨어지는 줄…. 그래서 제가 나리한테 먼저 가자고 했는데.”
“괜찮다. 결과적으로 무사했고, 그대들 덕에 모들을 이기지 않았는가.”
시현이 웃어 보이고 두 사람에게 말했다.
“지쳤겠지만 류사예 그대는 길과 함께 부상병들 수습을 도우러 가 줄 수 있겠는가? 나는 관성 주위에 법력이 남아 있는 동안 황폐해진 지력과 수맥을 가능한 만큼 복구해 보려고 한다.”
“까고 있네.”
사예가 험상궂은 얼굴로 말했다.
“관에서 녹 받아먹는 길사들이랑 의법사들은 뭐 하라고 네가 팔 걷어붙이고 자원봉사야? 둘 다 따라와서 검진이나 받아. 특히 호란이.”
“저요?”
호란이 눈을 깜박였다. 사예는 말없이 호란의 손을 휙 끌어당겨 옷소매를 걷었다.
“엑!”
제 팔을 보고 호란이 놀라서 이상한 소리를 냈다. 공방은 치열했어도 맞은 적도 없는데 팔 여기저기에 붉고 푸른 멍이 올라와 있었다. 크기도 크지 않고 아프지도 않았지만 보기는 별로 좋지 않았다.
“이게… 이게 뭐지? 왜 그러지?”
당황해하는 호란에게 사예가 핀잔했다.
“왜긴 왜야? 건강하다고 몸 막 쓰니까 그렇지. 딴 건 몰라도 시문한테서 그런 거는 닮지 마라. 딴 것도 별로 닮을 거 없는 것 같지만.”
* * *
“네? 제가 모들과 싸우는 데 마력을 썼다고요?”
호란은 검진을 받다 말고 눈이 휘둥그레졌다. 호란과 시현은 사예에게 강제 연행당해 사예의 집으로 돌아와 있었다.
사예가 놀라서 일어나려는 호란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꾹 눌러 도로 자리에 눕게 했다.
“그럼 넌 그게 네 힘인 줄 알았니? 그건 아닐 거 아냐.”
“그런 생각은 안 했는데…. 어, 사실 아무 생각도 안 했어요. 싸우는 중엔.”
“그건 바람직한 자세인데, 싸움이 끝나고 나서는 하지 않니, 보통?”
“하지만 이런 건 처음이라서요.”
“처음 아니야. 너 문림촌 때도 갑병 주위에서 마력 주워다 썼어. 네가 주위 마력을 막 움직이니까, 문림 영감이 법술사 공격하라는데 갑병들이 나 말고 너한테 다 갔잖아. 그거 되게 웃겼는데 나만 웃겼나?”
“아 그게 그래서….”
얘기를 듣고 있던 단이 기억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예가 팔짱을 끼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런 건 한 번에 능숙해지는 게 아니니까 분명 전조가 몇 번 있었을 텐데. 너는 그렇다 치고 왜 시문까지 모르는 거야?”
시현이 말했다.
“원래도 호란은 거석 주위의 기운 흐름을 거스르지 않고 움직였고, 지닌 힘을 한 번에 폭발시킬 줄 알았다. 그래도 사용하는 것은 호란 자신의 힘이었지, 주변의 기운을 쓰는 것은….”
“엥 너 모르는구나. 하긴 모르긴 하겠다.”
사예가 시현의 말을 끊었다.
“엄밀히 말하면, 하늘인이 쓰는 힘은 원래부터 주변의 힘이야. 걔들은 자연 상태에서 숨만 쉬어도 몸이 기운을 빨아들이는 체질이거든. 남들보다 힘센 것도 그래서고.”
“네?”
“사실인가?”
호란과 시현이 동시에 물었다. 사예가 대수롭잖게 대답했다.
“당연한 거지. 그럼 똑같은 밥 먹는데 그 무식한 힘이 어디서 솟겠니?”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