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nk Rock: Regenerating World RAW novel - Chapter 307
307화
* * *
채원은 인근의 커다란 마을에 일행이 머물 처소를 수배해 두었다. 마을 외곽의 작지만 깔끔한 기와집 한 채에 손님 맞을 준비가 다 갖추어져 있었다. 수약재를 관리하는 채원의 지인이 소유한 집이라고 했다.
시현은 여러 개 방 중에 가장 큰 방을 사예가 차지하게 했다. 사예가 잠잘 방이 아니라 술판 벌일 방을 물색 중인 것이 매우 확연했기 때문이었다.
사예는 시현과 채원이 나눈 이야기는 물론 감람이 나타났다는 이야기에조차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단과 호란이 시현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사예는 길과 함께 객주에 가서 술동이를 산더미같이 짊어지고 왔다. 그리고 부엌에 진을 치고 안줏거리를 쌓아 올린 다음, 방에서 나온 단을 곧바로 술자리로 낚아챘다. 아직 행장을 다 못 풀었다거나 해가 많이 남지 않았느냐는 항변은 당연히 통하지 않았다.
그래도 단이 처소에 오자마자 안뜰에 널어놓은 빨래는 해가 지기 전에 다 말랐다. 이 동네도 어제까지는 비가 왔을 텐데 이상하게 건조했다.
이것도 시문 님이 말한 부작용일까. 빨래를 걷으러 나온 호란은 바람에 차게 마른 옷자락을 만져보면서 생각했다.
시현은 마력 폭풍이 부른 국지적인 큰비가 더 넓은 지역의 가뭄으로 이어질 것을 염려하고 있었다.
땅인들이 지하수를 다스릴 수 없는 상황에서 봄 가뭄이 들면 온갖 작물의 파종에 차질이 생기는 것은 물론 겨울에 기른 보리와 밀도 제대로 수확을 못 할 수 있다. 그 전에 어떻게든 돌 인간과 결판을 내야 했다.
그래도 호란은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북방 끝터에 가면 채원과 동료들이 도움을 줄 것이고, 거석의 발생을 막을 길이 생겼다는 것은 정말 좋은 소식이었다.
단이 한숨 돌릴 기회가 생겼다는 것도 좋은 일이었다. 단과 길, 사예가 있는 큰방은 문을 닫아 두었는데도 왁자지껄했다. 계속 웃음소리가 터졌다.
보나 마나 셋이서 밤새 술을 먹고 아침에 늦게 일어나겠지만 단이 안 된 어른 노릇을 하더라도 이번만은 이해할 수 있었다.
길과 사예는 분명 단에 대해 호란이 모르는 사연을 많이 알고 있을 것이다.
위교연의 죽음 전후로, 단이 속에 꾹꾹 담아두었던 것을 편하게 풀어놓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호란은 생각했다.
하지만 큰방의 술자리는 호란의 예상과는 좀 다르게 흘러간 것 같았다.
갑자기 쾅 소리가 나더니 단이 방문을 열고 뛰쳐나왔다. 그가 있는 대로 성을 내며 소리쳤다.
“됐어! 다 때려쳐!”
“길아, 잡아 와!”
방 안에서 사예가 명령했다. 길이 으하하 웃으면서 대청으로 뛰어나와 단을 뒤에서 덜렁 안아 올렸다.
신발도 다 못 신고 붙잡힌 단이 소리 질렀다.
“꺼지라고! 놓으라고! 야!”
“왜 그래? 나랑 사예 님은 축하하는 거야!”
길이 미친 사람처럼 웃으며 말했다.
“축하해야지 그럼. 너랑 세상에 그 완씨 시문 나리랑 짱친을 먹었는데!”
“미친! 누가 누구랑 친구야!”
길은 성질 내는 단을 안고 뒷걸음질쳐서 방 안으로 들어갔다. 사예가 까르르 웃는 소리가 들렸다.
“왜 그렇게 부끄러움을 타? 우리 단이가 위 없는 사람이랑 친구 먹을 수도 있지!”
“아니라고 몇 번을 말해요?!”
방문이 닫혔다. 웃고 떠들고 화내는 소리는 여전히 새었다.
호란은 팔에 안고 있던 빨래 광주리를 대청마루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방금 그 상황에 자기가 개입할 여지가 있었던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판단하기가 어려웠다.
뭔가 많은 일이 단의 의사에 반해서 이루어지고 있기는 했다. 하지만 단의 친구들 눈에 시문 님과 단이 친해 보인다는 건 꽤 좋은 일 같았다.
호란은 일단 판단을 보류하고 빨래들을 추려서 건넌방으로 가져갔다.
그러는 사이에도 큰방에서는 웃음과 소란이 계속됐다.
“아니라는 소리 그만해. 완전 투명하게 다 보이거든!”
길이 단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웃었다.
“너 정신줄 놓으면 시문 나리한테 툭툭 반말 나오잖아. 나리는 또, 그거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서 얘기하고. 하루 이틀 그러고 지낸 모양새가 아니던데.”
단이 항변했다.
“아니, 반말하고 친한 거 하고 상관없지! 아무 상관 없잖아요!”
“물론 상관이 없겠지.”
사예가 계속 터지는 웃음을 참느라 파들파들 떨며 말했다.
“너는 시문을 무슨 우물가에 내놓은 애처럼 밤낮으로 챙기고 잔소리하고, 공이든 사든 할 말 다 하고, 시문도 뭐만 있으면 너한테 말하러 오고, 그 점잔 빼는 애가 네가 무슨 말만 하면 재담 들은 것처럼 빵빵 터지고, 남들 없는 데선 반말로 투닥거리는 사이지만 친하지는 않다 이거지. 야, 그거참 사무적인 고용 관계다.”
“어떡하라고요, 싫어도 얼마를 같이 굴렀는데! 그거하고 친구 된 거는 틀리죠!”
단이 정색을 하고 부정했지만 그럴수록 길과 사예는 더 낄낄거렸다.
길이 물었다.
“친구 아니면 그게 대체 뭔데? 동생이라도 삼았어?”
“끔찍한 소리 하지도 마!”
단이 새파래져서 소리쳤다.
“그 인간 옆에 놔두면 얼마나 속 터지는지 알기나 하면! 내 맘에 솔직했으면 열두 번도 더 내다 버렸다! 일이니까 챙기는 거고, 빡치니까 반말하는 거야! 그거뿐이야!”
길이 실실 웃으면서 말했다.
“어. 너 맨날 그러다가 친구 만들잖아. 벽력에서 너랑 친했던 애들 다 네가 욕하면서 챙겨주던 애들 아니냐? 양곤호 미친 새끼 때문에 오래들 못 갔어서 그렇지.”
“걔들하고 시문하고 어떻게 같아! 걔들은 나랑 같은 처지 애들이고…. 지난번에 말했잖아. 내가 시문하고 좋아서 얽힌 게 아니거든?”
“응. 정말 전형적이다, 단아.”
길이 훈훈한 미소를 지었다.
“너 처음에 나도 완전 싫어했잖아. 나랑 말하긴커녕 눈도 안 마주치고 다니려고 한 거 내가 다 기억하는데 임마. 사예 님 관성 들어가 계신 동안 아무도 나 안 챙기니까 결국 니가 챙겨주다가 말 튼 거잖아.”
“그건 야, 니가 자꾸 밥때 놓치고 무슨 그지꼴을 하고 댕기니까….”
사예가 웃으면서 말했다.
“그렇지. 우리 단이가 착해빠져서 그런 꼴을 또 못 보지.”
사예가 손을 뻗어서 단의 머리를 쓰다듬으려고 했지만 단은 잽싸게 피했다. 사예는 상관하지 않고 계속 놀렸다.
“그러니 어땠겠어? 저 애리애리한 도련님이 길 떠나와서 못 먹고 못 입고 다니는 꼴은 차마 눈 뜨고 못 봤겠지. 알지. 알아. 어유. 그래도 어찌나 살뜰하게 돌봤는지, 그 몇 달 새 도련님이 키도 크고, 신수도 훤해지고, 말수까지 늘고….”
길이 벙긋벙긋 웃으면서 말을 받았다.
“제 말이 그 말이에요. 아주 업어 키웠지, 업어 키웠어.”
“아니라고!”
단이 목에 핏대를 세웠다. 실제로 업어줘 봤다는 말은 결코 할 생각이 없었다.
“왜 성장기 인간 키 큰 거까지 내 탓이 되는데!”
사예가 손으로 입을 가렸다.
“아니…. 단아. 내가 도련님 치료할 때 보니까. 걔가 심신은 뻗기 직전인데 누가 뭘 그렇게 잘 챙겨 먹였는지 영양 균형만 좋더라고…. 누나가 짚이는 게 있어서 눈물이 막 났어…. 너 막… 여행 중에도 한 시진씩 장 보고, 상 앞에서 밥숟가락 들고 쫓아다니고 그랬던 건 아니지?”
“아니라고요! 그만하라고!”
단은 식식대며 방에서 뛰쳐나가려다 또 길에게 붙잡혀서 끌려 들어왔다. 사예가 악당 같은 웃음을 길게 터뜨렸다.
“인정할 때까지 계속할 거야! 난 이거 가지고 20년도 더 놀릴 수 있어!”
“미친! 너네 다 죽어!”
건너편 방의 호란은 숯다리미를 든 채 닫힌 창호 쪽을 바라보았다. 떠드는 목소리가 하도 커서 사이의 대청과 창호 두 개가 아무 의미가 없었다.
호란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어 음…. 단이 정말로 싫어하는 거 같아요. 말리러 가야 하지 않을까요?”
옆에 앉아 호란이 다려놓은 옷과 수건을 개고 있던 시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계속 큰소리가 나면 네가 가보거라. 나는 얼굴 내밀기가 난처하구나.”
“저는 잘못 참견하면 또 최길이랑 싸울 수도 있는데요.”
“그건 안 되지. 음….”
시현이 고민하는 사이 또 한 번 길과 사예가 폭소하는 소리가 천장을 울렸다. 단이 시발이라고 말하는 소리도 두 번 더 들렸다.
시현이 호란을 보았다.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모르겠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나도 저 화제가 부끄럽단다. 못 들은 척하고 그냥 놔두면 어떻겠느냐.”
호란이 감탄조로 말했다.
“시문 님 확실히 예전이랑 좀 달라지신 것 같아요.”
“네가 보기에도 그러하냐?”
시현은 약간 망설이더니 조심스럽게 물었다.
“나는 융통성이 생긴 것이라 여기고 있다. 꼭 나쁜 변화는 아닐 것 같은데.”
“시문 님이 그렇게 생각하시면 그런 게 아닐까요?”
호란은 다시 다림질을 시작했다. 단이 좀 안됐긴 하지만 그것도 다 자기가 평소에 인성을 안 보고 친구를 사귄 결과였다. 호란의 인성도 별로 다를 거 없다고 하니까 딱히 미안해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다음 날 단은 중천이 가까워서야 방에서 기어 나왔다. 숙취 때문인지 오만상을 다 쓰고 있었다.
시현이 그에게 다가갔다.
“좀 괜찮으냐, 어제는, 그….”
뭔가 말을 하려다 못 하는 시현을 단이 날카롭게 노려보았다. 그가 경고했다.
“됐으니까 나한테 말 시키지 마. 한마디라도 쓸데없는 소리 하면 난 다 때려치우고 돌아갈 거야. 혼자서라도 남운관으로 내려갈 거야.”
“알겠다.”
방금 목욕간을 나온 길이 킬킬 웃으면서 마당 구석을 지나갔다. 단은 신으려던 신발 한 짝을 길의 머리통에다 냅다 던졌다.
호란이 신발을 주워다 주면서 물었다.
“나는 말 해도 돼?”
“아니. 너도 닥쳐. 진짜 돌아갈 거야.”
“응! 가만히 있을게!”
호란이 기쁜 듯이 말하자 단은 신발을 낚아채며 또 오만상을 썼다.
“뭐가 좋은데?”
“이젠 사예 님이랑 최길 앞에서 나랑 단이랑 친구인 거 안 숨겨도 되잖아. 다들 얘기할 때 단이 나는 못 끼게 해서 서운했단 말이야.”
“…….”
단은 말을 하려고 입을 열었다가 바로 닫았다.
그간 길과 함께 있을 때 단이 슬쩍슬쩍 호란을 밀어냈던 건 자칫 길과 호란 사이에 싸움이 일어날 걸 걱정해서였다.
하지만 그 모든 염려와 배려가 깨끗하게 무위로 돌아간 지금, 굳이 그 이야길 할 것도 더 신경 쓸 것도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은 얼굴을 한 번 찡그려 보이고 씻으러 갔다.
* * *
오판이었다. 계속 신경을 써야 했다. 신경을 쓴다고 과연 사태가 더 나아졌을지는 회의적이지만.
다시 길을 떠난 이후 호란은 더 이상 길과 단이 잡일을 할 때 자리를 피해 주지 않고 손을 거들러 나섰다. 길은 그때마다 꼼꼼하게 싫은 소리를 하고 시비를 걸었다.
다행히 호란이 무시로 일관했지만 단은 매번 속이 녹아내렸다.
그날 오후도 마찬가지였다. 말을 쉬게 하려고 자리를 만든 직후, 단이 사예가 강요하는 대로 간식을 만들어 주고 와 보니 또다시 길이 호란에게 시비를 털고 있었다.
“돌멩이 좀 잘 부순다고 센 줄 알지 마라. 지난번 붙은 것도 시문 나리 봐서 그만한 거지, 더 싸웠으면 내가 이겼을 거다.”
호란은 이번에도 무시하려고 했다. 그런데 길은 호란을 놔두고 단 쪽으로 어슬렁 걸어갔다.
그가 단의 어깨에 탁 팔을 걸치더니 친근을 과시하는 얼굴로 물었다.
“단아, 봤으니까 알지? 내가 이길 것 같았지?”
호란은 갑자기 평생에 없던 호승심이 솟구친 것 같았다. 그가 벌떡 일어나서 단에게 달려왔다. 길의 반대편에서 단의 한 팔을 끼듯이 잡은 호란이 물었다.
“단! 넌 싸울 때 내 편 들었지? 먼저 주먹 날린 건 최길이잖아!”
단이 웃는 것도 우는 것도 짜증 내는 것도 아닌 표정으로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다. 그가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이러는 거야? 니네가? 나한테? 이렇게 나오는 거야?”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