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nk Rock: Regenerating World RAW novel - Chapter 308
308화
* * *
길도 호란도 단의 절절한 심경 표시를 무시했다. 길이 먼저 목소리를 높였다.
“야 단아, 시비는 이 꼬맹이가 먼저 털었잖아! 그만하면 선빵 친 거지 별 게 선빵이냐? 그래도 나 평생 중에 제일 많이 참았다?”
“말로 치는 선빵이 어딨어? 그렇게 치면 너도 나한테 욕했잖아! 단, 분명 들었지?”
“용쓰시네! 네가 그래 봐야 단이는 내 친구거든? 내 편이거든?”
“나도 친구거든! 단하고 나는 평생 같은 편이거든!”
단이 안경 밑으로 눈을 짚었다.
“둘 다 가급적 멀리 꺼져줄래? 방금 알았는데, 이 세상에 내 편 같은 건 없어….”
누가 단의 등에 살짝 손을 대었다. 돌아보는 단에게 시현이 안쓰럽다는 듯이 말했다.
“뭐하면 내가 편이 되어 주랴? 둘을 말리면 되는 것이겠지. 마침 마력석도 있고, 의법사도 있고.”
“싸움 말리는 데 의법사 유무를 고려하는 사람이랑 편 먹기 싫어….”
“이 둘은 말로 해서 안 듣지 않느냐.”
계속 옥신각신하며 서로의 수준을 저하시키고 있던 호란과 길은 그 말을 듣고 엄청나게 억울한 얼굴이 되었다. 둘은 이제 단을 놓고 시현 앞으로 달려와서 2차 수준하강전을 하기 시작했다.
“시문 님! 아시죠? 저는 하시는 말씀 다 들어요! 그때는 최길 때문에….”
“나리, 저야 당연히 나리 말씀 듣죠! 근데 애초부터 이 꼬맹이가….”
시현이 둘에게 웃는 얼굴을 해보였다.
“알겠다. 이야기를 들어줄 테니 가서 앉자꾸나.”
시현은 숙련된 조련사처럼 저와 두 맹수, 맹수와 맹수 사이의 간격을 일정하게 유지하면서 길과 호란을 자리 깐 쪽으로 총총 이끌어갔다. 시끄러운 불만과 매도 사이로 타이르는 말이 이어졌다.
“한 사람씩 이야기하거라. 목소리는 더 작고 차근하게 하고. 아니, 앉거라. 그리고 나에게만 말하지 말고 서로 간에도 말해보거라.”
단은 머리를 설레설레 털며 그 모습을 보았다.
처음부터 단은 호란과 길이 잘 지내리란 기대 따윈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둘은 제가 살던 대로 사는 것만으로 서로의 삶을 전면 부정하는 존재였다. 엮이면 엮일 수록 일이 나쁘게 흐를 수밖에 없었다.
근데 그 나쁘게 흐른다는 게 이딴 꼬라지일 줄은 몰랐지.
“바보가 옮는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바보끼리 서로 옮으면 저런 사태가 되는 줄은….”
단이 한탄했다. 사예가 단이 만들어준 우엉부각을 우적우적 먹으며 곁으로 다가왔다.
“내가 지금 심심해서 생각해본 건데.”
단은 듣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거부할 틈도 주지 않고 사예가 이어 말했다.
“혹시 쟤네 둘이 사귀면 구경하기 재밌을까?”
“말 시키지 말아 주실래요? 사예 님은 제 편이 아닌 정도가 아니라 제 적이에요.”
물론 사람들은 적이든 아군이든 단이 요청하는 걸 들어준 적이 없었다. 사예가 옆에 털썩 주저앉더니 2세 구상과 예상되는 육아 난항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어째선지 단이 육아에 참여하는 게 전제였다.
단은 듣지 않으려고 노력하면서 아무 갈 데 없는 그의 인생에 대해 생각했다.
사예가 부각을 다 먹고 상상육아에 관심을 잃을 무렵에는 단의 외출했던 정신도 되돌아왔다. 사예는 손을 털고 일어나면서 단의 어깨를 툭 쳤다.
“쓸데없이 속 끓이지 마. 누구 죽을 것도 아닌데.”
“진짜 안 죽는 거 맞아요? 쟤들 둘은 정말로 살인을 낼 수 있는 애들이잖아요. 소유한 무력과 자제력의 측면에서.”
“그래도 이제 서로 갈 길 갈 거잖아.”
“아, 네….”
단은 약간 당황해서 대답했다.
그러고 보면 사예가 계속 일행과 함께 갈 이유는 없었는데도, 너무 당연하게 스며들어 있어서 생각을 안 하고 있었다.
사예가 단의 코앞에 손가락을 척 내밀었다.
“부침개! 양념장 만들어서 부침개 바삭하게 구워줘! 재료는 아무거나 제일 맛있는 걸로. 그것만 먹으면 나랑 길이는 남쪽으로 간다.”
“아, 네.”
“아니면 너도 우리랑 갈래? 그럼 부침개는 가는 길에 해줘도 되고.”
“그건 됐습니다. 부침개 오늘 저녁에 해드릴게요.”
단은 순순하게 대답했다. 중간부터는 잘 아는 전개라 안정감이 들었다.
사예는 어디로 튈지 전혀 알 수 없는 사람인 동시에 놀랍도록 일관된 사람이기도 했다. 단을 찾으러 세상의 절반을 건너오고 인류의 숙적과 목숨 건 전투를 치르는 와중에도 밥과 술이라는 최초 목적에 대한 집중력을 전혀 잃지 않았다.
단은 정말이지 사예와 맞는 데가 단 한 군데도 없었다. 하지만 그런 일관성이 단에게 일종의 안정을 주기는 했다. 그것도 분명 신뢰라면 신뢰였다.
* * *
사예가 떠나겠다고 하자 가장 아쉬워한 사람은 단이 아니라 시현이었다. 그는 사예와 길이 떠날 준비를 모두 마치고 갈림길에서 인사를 나누는 그 순간까지도 둘을 붙잡아 보려고 했다.
“두 사람은 가늠할 수 없는 위험 속에 아무 조건 없이 우리를 도와주었지. 그런 그대들에게 이런 제안은 무례가 될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그대들의 직업이 용병이니, 고용하는 형태로라도 계속 함께할 수는 없겠는가? 금전으로 보상할 수 있다면….”
사예가 손을 저어 시현의 말을 가로막았다.
“아냐, 아냐. 난 그렇게까지 떼돈을 벌고 싶은 생각은 없어.”
단은 사예가 자기더러 자꾸 호구라고 하는 이유를 새삼 이해했다. 시문 상대라면 당연히 떼돈을 받을 거라고 생각하는구나.
사예가 덧붙였다.
“그리고 이건 돈 이전의 문제야. 난 세상에 마력이 되돌아오길 바라지 않아. 그래서 널 안 도울 거야.”
시현이 눈을 크게 했다. 그가 약간 더듬었다.
“그대도… 법술사이지 않는가.”
“뭐 어때? 나는 길이가 먹여 살려줄 건데.”
“물론이죠!”
길은 세상에서 가장 기쁜 말을 들은 것처럼 함박웃음을 지었다.
시현은 여전히 당황한 채였다.
“하지만 그대는 극상에 달한 의법사가 아닌가. 그건 단지 돈이나 먹고사는 문제만 걸린 것이 아니다. 그대가 가없이 노력해서 얻은 능력이다. 앞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구할 수 있는 힘이다….”
“그러니까. 이제는 그런 걸 원하지 않는다고. 나는.”
사예가 귀찮다는 듯이 말했다. 그가 시현을 빤히 보았다.
“너야말로 한 번 다시 생각해보지 그래? 정말 마력이 되돌아오길 원하는지. 예전 상태로 되돌아가길 바라는지.”
시현은 이제까지 중 가장 놀란 것처럼 보였다. 눈이 더 커지고 표정이 흔들렸다.
그래도 시현은 다시 설득하려 했다.
“이제껏 세상에 문제가 많았다는 건 알고 있다. 법력이 되돌아온 후 고쳐가야 할 점이 많다. 그러니 더더욱….”
“세상은 됐고. 나는 네 얘길 하는 거야. 너랑 네 머리통.”
사예가 시현을 손가락질했다. 그가 말했다.
“세상에 마력이 없어졌을 때, 태어나서 처음으로 네 머릿속이 좀 가벼워졌을 때, 그때 어떻게 느꼈어? 사실은 자유로워졌다고 생각하지 않았어?”
시현은 일순 멍한 얼굴을 했지만 바로 고개를 저었다.
“전혀. 결코. 그땐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
“다른 상황이었으면?”
시현은 잠시 생각하고서 다시 부인했다.
“아니. 역시 아니다. 말하지 않았나. 나는 내 힘을 필요로 해.”
사예가 코에 주름을 잡았다.
“네 힘. 남들이 그저 타고난 줄만 아는 그 힘. 그건 네 어머니나 다른 의법사가 네 건강을 뒷받침해 준다는 전제하에서만 유지 가능한 거야. 알고 있지?”
“그것은 안다.”
“그럼 내가 뭘 말하려는지도 알겠네. 세상에 마력이 되돌아오면 넌 예전처럼 의존적인 존재로 되돌아갈 거야.”
시현이 얼굴을 찌푸렸다. 그가 항변했다.
“그건 의존적인 것과는 다르다. 예전에도 나는 항상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결정하고….”
“네가 그렇게 믿는다고 그게 사실인 건 아냐.”
사예가 말을 끊었고 시현은 이번에는 정말로 마음이 상한 얼굴이 되었다.
사예는 상관하지 않고 더 말했다.
“스스로 생각하는 걸 말하면 얘기가 더 나빠지지. 이 세상이 전처럼 마력으로 가득해지면, 네 머릿속에는 또다시 빈 자리가 없어질 거야.
넌 지난 한 해 동안 네가 얻었다고 생각한 것들을 대부분 잃어버릴 거야. 뭐가 직접 느끼고 생각한 거고 뭐가 교육받은 건지 점점 헷갈리게 될 거고. 자기 감정과 직관을 또다시 못 믿게 될 거고. 감정대로 행동하는 걸 도로 두려워하게 될 거야.”
사예가 말하는 동안 시현은 입을 작게 벌린 채 보고만 있었다.
시현이 어이없는 듯 헛숨을 토했다. 그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너무… 비약이 심하군. 그대는 예전의 나를 전혀 모르고….”
“왜 모른다고 생각해? 나는 꼰대마을 출신이고 양생술사야. 자기 단속 빡세게 하면서 마법만 들이 파다가 돌아버린 땅인들을 이제껏 얼마나 많이 봤을 거 같아? 너 같은 사람 네 생각보다 흔해. 다들 힘이 너만 못해서 겉으로 달라 보일 뿐이지.”
시현이 입을 닫았다. 그의 어깨가 낮게 오르내렸다.
사예가 말했다.
“그건 어쨌든, 내가 너랑 같이 안 간다는 건 이해했지?”
“이해했다.”
시현은 굳은 얼굴이 되어 물러났다. 그는 더 이상 사예와 눈을 마주치려고조차 하지 않았다.
분위기가 완전히 얼어붙었다. 호란도 당황했지만 길이 더 어쩔 줄을 몰랐다. 사예 혼자만 전혀 상관 안 하는 얼굴이었다.
그가 이번에는 단에게 가더니 힘주어 말했다.
“단아, 딱 한 번만 더 말한다. 너 진짜로 우리랑 같이 안 갈 거야? 내려가는 길에 한평읍성도 들를 거야. 너 좋아하는 떡갈비도 먹을 거야.”
“아니…. 됐습니다. 진짜로.”
단은 두 손을 저으며 물러섰다. 갑자기 무슨 능력이라도 생긴 것 같았다. 등 뒤의 시현이 두 배로 기분이 나빠진 걸 안 보고도 알 수 있었다.
호란도 기겁했다. 그가 단을 꽉 붙들고 사예한테 소리쳤다.
“단 데려가시면 안 돼요!”
“그니까 안 따라간다고. 일 마치고 남운관 돌아갈 때까지 니네랑 있는다고 했잖아.”
단은 그렇게 말하면서 얼른 호란이 잡은 팔을 풀어놓았다. 호란이 뭘 하면 척수반사로 호승심을 일으키는 길이 단의 반대편 팔에 눈길을 보내는 걸 눈치챘기 때문이었다.
단은 서둘러서 사예와 길과 인사를 마쳤다. 두 사람과 말하고 접하는 내내 호란과 시현의 시선이 등짝에 딱 달라붙어 있는 걸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었다. 세상 불편했다.
호란은 사예에겐 한 번 더 인사했지만 길에겐 인사하지 않았다. 길도 당연히 안 했다.
굳은 얼굴을 하고 있던 시현은 길이 주뼛대며 다가와 인사하자 곧바로 표정을 풀었다.
그가 손을 맞잡고 길의 큰 덩치를 올려다보았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여러 가지로 고마웠다. 무엇보다… 즐거웠다.”
시현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길은 금방 감격해서 눈물이 글썽해졌다.
길과 몇 마디를 더 나눈 시현은 작게 숨을 내쉬더니 사예를 향했다.
“그대에게도 감사를 다 말하지 못하였다. 그대와 길에게 입은 은혜를 무엇 하나 잊지 않을 것이다. 어디를 가거나, 여행길에 무사를 빌겠다.”
사예가 말했다.
“응. 그리고 내가 맞는 말 했다고 너무 맘 상하지 마! 나 원래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랑 길이가 걱정하는 사람한테만 참견해. 너는 흔치 않게 둘 다니까.”
시현이 고개를 끄덕이고 옅게 웃었다.
“선의로 해준 말인 걸 안다. 천천히 생각해 보겠다.”
길은 시현이 웃자 눈에 띄게 안심하는 얼굴이 되어 마부석에 올랐다. 호란도 안심했다.
그런데 사예는 거기다가 최고로 불필요한 말을 덧붙였다.
“내가 왜 너 좋아하냐면, 너 같은 얼굴 좋아하거든. 내 정혼자랑 조금 닮은 데도 있고.”
시현이 얼어붙었다. 단과 호란도 입을 딱 벌렸다.
세 사람을 내버려 두고 사예가 훌쩍 수레에 올라탔다.
“길아, 가자!”
수레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길과 사예가 한 번 더 인사의 말을 외쳤다. 하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호란이 입을 연 건 고개 굽이 너머로 수레가 사라지고 나서였다.
“그 정혼자란 사람… 그… 불태워버렸다는 사람 아니에요…?”
시현이 속 깊은 데서 끌어올린 한숨을 토하고 말했다.
“어쩌겠느냐. 선 넘기로 1위인 망종이 아니냐.”
“어….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불변의 1위이시지.”
단이 말했다. 그는 자기가 이렇게까지 시현을 위로하고 싶어지는 일이 생길 줄 몰랐어서 무척 당황하고 있었다.
시현은 천천히 돌아서서 수레를 향했다. 사예가 알고 말한 것은 아니었겠지만 사예의 말은 한마디 한마디가 시현이 가진 고민에 불을 지르는 격이었다.
북쪽 끝터, 지은학당의 연구소까지 며칠 거리밖에 남지 않았다. 채원의 장담대로라면 그곳에서 돌 인간들의 근거지를 찾고, 감람이 제 말을 지킨다면 거석의 발생까지도 멈출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행의 마지막이 보이는 지금, 시현에겐 여행을 시작할 때만큼의 확신이 없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