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nk Rock: Regenerating World RAW novel - Chapter 311
311화
* * *
일행은 잠깐 홍초읍으로 향하다가 인적이 뜸할 때쯤 다른 길로 빠졌다. 길을 빙 돌아가게 되었지만 여정은 길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짧아졌다.
근방이 전부 율비의 손바닥 안이었던 데다, 샛길로 접어든 곳부터는 지은학당에서 온 몫꾼 한 사람이 마중을 나와 수레를 끌어주었기 때문이다.
중간에 들른 화전민촌은 지은학당의 보급처 비슷한 곳이었다. 하룻밤 묵으면서 말을 놓아두고 음식을 얻은 덕에 중간에 쉴 필요도 취사를 위해 시간을 끌 필요도 없었다. 우려했던 굴길 두 곳을 통과할 때도 아무 문제가 없었다.
이틀 후 일행은 마지막 굴길 앞에 다다랐다.
이 굴길 하나만 통과하면 지은학당 근거지 겸 연구소가 있는 서원촌이 코앞이라고 했다. 이미 초암읍성의 관할지를 벗어나 북방 끝터로 분류되는 지역이었다.
다만 굴길 입구까지 가려면 길을 벗어나야 했다. 수레를 끄는 것이 아니라 들고 넘어야 들어갈 수 있는 후미진 산기슭에 입구가 숨겨져 있었다.
호란과 유경은 단과 시현, 율비를 먼저 입구 근처에 데려다 놓고 수레를 옮겼다. 사람들이 움직이기 좋게 자리를 비켜주려는 시현에게 단이 말했다.
“나리님, 돌바닥 바깥으로 나가지 마세요. 새벽에 비 와서 진흙 밟으시면 흔적 남습니다.”
“아, 그러하냐.”
시현이 얼른 몇 발짝 돌아왔다. 율비가 단을 보고 웃었다.
“나이도 어린데 경계심 엄청 많네. 아니, 어려서 많은 건가? 여기까지 오는 동안 추적 없었으면 괜찮아. 이쯤부터는 귀수관 속령도 아니고.”
“남운관 병사들도 관할지 아닌 남방 끝터 꾸준히 순찰하고 다녔어요. 여기는 범죄 도당 추적 중이니 더하겠죠.”
“야, 범죄 도당은 아니야….”
율비가 억울한 듯이 중얼거렸다. 단은 뚱한 얼굴을 풀지 않았다.
“이제껏 온 샛길이 잘 숨겨져 있긴 하지만 아예 못 찾을 정도도 아니에요. 여러 사람 발길 닿은 흔적은 사람이 지울 수 있는 게 아니잖습니까. 수레 다닌 흔적이 너무 많이 남았어요.”
율비가 어깨를 늘어뜨렸다.
“그건 알지… 하지만 마력석 들여오느라 어쩔 수 없었어. 그래도 요즘은 출입을 최소한으로 하고 있어.”
“별로 안 그런 거 같은데요.”
단이 몇 걸음 걸어 암벽을 돌아서는 굴길 입구 쪽을 가리켰다. 지형과 수풀을 이용해 입구를 숨겨 놓은 보람도 없이, 좁은 석굴 입구에 흙발자국이 잔뜩 찍혀 있었다. 보폭이 넓고 맨발인 것을 보면 하늘인 무리였다.
바닥을 본 율비가 바로 얼굴을 찌푸렸다.
“아, 이거 누구 짓이야? 정해 놓은 자갈길 말고 다른 길 통해서 다니지 말라고 그렇게 말했는데.”
“흙이 덜 마른 거 보면 지나간 지 한 시진도 안 됐어요. 게다가 숫자도 한둘이 아니고….”
“뭐?”
둘의 분위기가 심각해지자 암벽 반대편에 있던 시현이 다가왔다. 수레를 내려놓은 호란도 따라왔다.
단단한 암벽 한가운데를 뚫고 난 굴길은 생각보다 폭이 넓었다. 작은 수레 두 대는 여유를 갖고 통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도 반대편은 새까만 어둠에 잠긴 것이 길이가 상당히 길거나 내부에서 꺾여 있는 모양이었다.
시현이 석굴 안쪽을 보고 얼굴을 찌푸렸다.
“굴길 저편에서 하늘인 무리가 오고 있다. 수는 열 명 남짓한 것 같고 속도가 빠르다. 우리를 마중할 약속이 되어 있느냐?”
“아니요….”
율비의 얼굴이 흐려졌다. 호란과 유경이 바로 일행 앞을 가로막듯 섰다. 시현도 마력석을 꺼내 쥐었다.
굴 안에서 작게 무슨 소리가 울리기 시작하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가까워졌다. 사람 여럿이 달려오는 발소리였다.
시현이 손가락을 몇 개 펼쳐 가볍게 위로 저었다.
“광휘여.”
넓지 않은 굴길 내부에 등불이라도 이어 단 듯 노란 불빛이 밝혀졌다. 그 아래서 달려오는 사람들의 모습이 환하게 드러났다.
달려오는 이들은 모두 귀수관 관병 복색의 하늘인들이었다. 피 흘린 자도 있고 모두 살기등등한 것이 결코 우호적인 상대일 수 없었다.
하지만 벼락으로 입구를 가로막으려던 시현은 바로 손을 거둘 수밖에 없었다. 무리 앞쪽의 관병 몇몇이 포박된 사람을 하나씩 어깨에 지고 있었다.
대신 호란이 총알처럼 석굴 안으로 뛰쳐들어갔다. 쭉 뻗은 주먹이 선두 관병의 얼굴을 정통으로 가격했다.
느닷없는 공격에 대열이 온통 흐트러졌다. 하지만 호란은 안으로 파고드는 대신 뒤로 물러나면서 무릎 아래 높이로 다리를 회오리처럼 휘돌렸다. 호란을 지나쳐 굴을 빠져나가려던 관병 둘이 정강이를 걷어차이고 바닥에 뒹굴었다. 그 뒤를 따라오던 또 한 사람의 관병도 호란이 몸을 솟구치면서 쳐올린 주먹에 턱을 얻어맞고 나가떨어졌다.
관병들은 번개처럼 몰아치는 호란을 뚫지 못하고 주춤거렸다. 하지만 호란은 통로 전체를 막아서는 데 치중하느라 한 명 한 명에게 치명타를 날리지는 못했다. 유경이 따라 들어왔지만 그 역시 관병 하나를 감당할 정도의 실력밖에 안 되었다.
무리 중간의 관병 머리가 곧 상황을 파악하고 외쳤다.
“상대는 수가 적다! 돌파해서 흩어져라! 아무나 본진에 알려!”
“예!”
포로를 잡지 않은 관병 두엇이 몸을 높이 날려 뛰쳐나왔다. 하지만 그들 역시 입구까지 도달하지는 못했다.
입구 바로 앞에서 사람 몸뚱이만 한 바위기둥 여럿이 기운을 담고 솟구쳐 관병들과 충돌했다. 가속을 붙이며 달리던 관병들에겐 거석의 주먹에 후려쳐지는 듯한 충격이었다.
입구를 반 넘게 가로막은 바위기둥 너머에서 시현의 목소리가 들렸다.
“호란아, 빛이 있는 쪽이 편하겠느냐, 없는 쪽이 편하겠느냐?”
“없어도 돼요! 유경, 벽에 붙어!”
호란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바위가 더 일어나며 굴길의 입구가 쿵 닫혔다. 동시에 굴 안을 밝히던 노란빛이 꺼졌다.
곧 어둠 속이 퍽퍽 소리와 신음으로 가득 찼다.
관병 머리는 기가 질렸다. 사방이 살기라 그는 적과 아군의 기세를 구별할 수 없었다.
설령 안다 해도 기세로 알 수 있는 것은 막연한 방향과 거리뿐이다. 그런데 어둠 속의 적은 무엇이 보이기라도 하는 것처럼 한 방 한 방 치명타를 날리고 있었다.
타격음만 가지고도 알 건 다 알았다. 그의 부하들은 빠른 속도로 박살 나는 중이었다.
차라리 굴길을 되돌아가서 다른 길로 빠져나가는 쪽이 나아 보였다. 부하들을 두고 혼자 도망치는 죽기만큼 싫었지만 그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표적의 위치를 본진에 알리는 것이었다.
그는 곁에서 허둥지둥하고 있는 부하 한 사람을 툭툭 건드린 뒤 발소리를 죽이고 살금살금 길을 되돌아나갔다. 부하도 바로 눈치를 채고 그의 뒤를 따랐다. 거리를 벌린 뒤 전력질주를 시작하면 상대가 뒤늦게 알아도 못 따라잡을 것이다.
하지만 세 발짝만 더 떨어지자고 생각한 순간 주위가 확 밝아졌다. 마법으로 만든 노란 빛덩이가 그의 머리 위에 나타나 빛을 흘리고 있었다.
들킨 것을 깨달은 관병 머리는 뒤돌아볼 생각도 하지 않고 소리치며 내달렸다.
“뛰어! 뛰어라!”
전력으로 달리는 그와 부하의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호란아. 도망치는 둘은 모두 적이냐?”
“네! 관병뿐이에요. 잡힌 사람은 없어요!”
“본령으로 화하라.”
두 사람의 눈앞에 번개의 그물이 펼쳐졌다.
* * *
시현이 입구를 가로막은 바위벽을 치우자 굴길 내부가 다시 드러났다.
굴 바닥 곳곳에 관병들이 걸레짝처럼 이리저리 굴러 있었다. 서 있는 것은 호란과 굴 벽에 딱 붙은 유경뿐이었다.
유경은 잠깐 부신 눈을 껌벅거렸지만 금방 상황을 파악하고 관병 사이에 쓰러진 동료들에게 달려갔다.
“반하야! 창예 나으리!”
붙잡혀오던 사람은 채원의 호위인 반하와 학자풍의 장포를 입은 땅인 남녀 두 사람이었다.
땅인들은 손목을 뒤로 묶였을 뿐 다친 데가 없어 보였지만 반하는 한 팔과 한 다리가 부러져 있었고 의식이 없었다.
율비가 창백해진 얼굴로 뛰어왔다. 단과 호란도 사람들을 일으키고 포박을 풀었다. 율비가 땅인 두 사람 중 의식이 있는 쪽을 붙잡고 다급하게 물었다.
“무슨 일이에요? 채 도련님, 채 도련님은요!”
“채인께선 연구소에 가 계셨다. 놈들이 거기까지 못 가고 물러난 거 같으니 무사하실 거다.”
창예라 불린 땅인은 놀란 것이 진정이 안 되는 듯 몸을 떨며 손목을 주무르고 있었지만, 시현이 석굴 안으로 걸어들어오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서, 설마 이분이!”
“예. 문이십니다.”
바닥에 꿇어 절을 하려는 그를 시현이 붙잡아 말렸다.
“예를 차릴 때가 아니다. 습격자는 이들이 전부냐?”
“아마 그럴 겁니다. 저는 서원촌 초입에서 사로잡힌 것이라 상황을 다는 모르겠습니다만…. 놈들이 다짜고짜 쳐들어왔다가 우리 몫꾼들과 공격법사들에게 밀려 물러나는 중이었습니다.”
“안쪽의 다른 이들은 무사한가?”
“아마도….”
창예는 말은 똑바로 하고 있어도 경황이 그리 없어 보였다. 시현이 고개를 젓고 다른 사람들에게 말했다.
“어서 가서 확인하는 쪽이 좋겠다. 호란, 유경, 부상자와 기절한 이를 수레에 태우거라.”
호란이 쓰러뜨린 관병들은 기절했지만 다들 숨이 붙어 있었다. 전부 끌고 갈 수 없었기에 호란은 어쩔 수 없이 다리를 부러뜨렸다.
그러고도 만약의 경우를 위해 시현이 굴길 반대편 입구를 단단히 막았다.
일단 반대편의 서원촌 상황을 확인한 뒤 와서 데려갈 셈이었다.
시현은 수레를 끄는 호란과 유경이 빨리 달릴 수 있도록 굴길 천정에 빛을 깔았다. 하늘인 두 사람이 전속력으로 통로를 달렸지만 굴길이 길다 보니 율비는 안절부절못했다.
굴길의 반대편 출구를 나오자 그곳은 조그만 골짜기 한끝이었다.
크고 작은 바위가 잔뜩 깔린 골짜기 바닥에 내가 흐르고 양옆에 굽이지고 경사진 암벽이 섰다. 중간중간 완만한 곳마다 바위에 숨은 듯 널집과 돌집이 한 채씩 서 있었다.
출구 바로 앞, 골짜기 초입에 스물 남짓한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기척과 소리로 일행의 접근을 알았는지 잔뜩 경계하고 있었던 무리는 수레를 끄는 유경을 알아보자 긴장을 푸는 것 같았다.
무리 가운데 있던 키 큰 남자가 서둘러 달려 나왔다. 채원이었다.
율비는 수레가 서는 것을 다 기다리지도 못하고 뛰어내려 마주 달려갔다.
“채 도련님! 무사하셨어요!”
“율아….”
율비 못지않게 새파란 낯빛으로 팔을 벌리려던 채원은 뒤에 있는 호란과 일행의 수레를 보고 바로 섰다. 그가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물었다.
“문을 무사히 모셔왔느냐.”
“예. 그리고 창예 어르신과 상신 어르신, 반하도 구출했습니다. 도망치던 놈들도 전부 붙잡아 놓았습니다.”
“천만다행이다. 천만다행이야.”
채원은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수레에서 내리는 시현에게 다가가며 쓴웃음을 지었다.
“문이시여, 오시자마자 못 볼 꼴을 보여드려 면목이 없습니다. 아무래도 제가 암살 표적이 된 것 같습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