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nk Rock: Regenerating World RAW novel - Chapter 317
317화
* * *
첫 번째 감람이 말했다.
“그래서 말이야. 내가 세 번째랑 시문 양쪽에 제안을 하려고 생각했어. 시문이 원하는 걸 들어주고, 그 대가로 인간의 발전된 마법 기술을 받으면 어떨까 하고.”
“내가 바라는 걸 들어준다는 것은, 세상 곳곳에 무작위로 거석을 만들어내는 걸 그만두겠다는 말인가?”
“응. 참고로 말하는데, 너희 생각대로 세상에 거석을 만들고 있는 건 세 번째가 맞아. 하지만 그걸 멈추기 위해 꼭 세 번째를 죽일 필요는 없어.”
첫 번째가 공동 곳곳에 있는 네 개의 반투명 기둥을 가리켰다.
“이 장소의 초물리계 단축 장치가 세 번째 감람의 기결과 대지를 연결하고, 동시에 이 장소와 세상 곳곳을 연결하고 있어. 너희 지도 기준으로 중부에 두 군데, 남방에 두 군데. 그래서 세 번째가 여기 처박혀서 꼼짝도 안 하면서 더 넓은 지역에 거석을 퍼뜨릴 수 있는 거야.”
“그러면 이 장소를 파괴하면 더 이상 다른 지역에 거석이 나타나지 않게 되는가.”
“기존에 돌아다니는 녀석들과 이미 기결에 싹이 튼 녀석들은 어떻게 할 수 없어. 하지만 추가로 생겨나는 것은 멈출 거야. 세 번째 주위에서는 계속 거석이 생겨나겠지만 그건 얘가 사람 사는 지역 바깥으로 나가서 지내면 대충 해결될 문제고.”
세 번째가 투덜거렸다.
“그렇게 쉽게 말하지 마. 연결을 해체하는 과정에서 내 기결 대부분이 파괴될 거야. 회복하는 데 굉장히 오래 걸릴 거고.”
“그래도 네가 회복하는 데 드는 시간보다 시문의 마법 기술을 배워서 단축되는 시간이 훨씬 더 짧을걸. 원천을 복구할 기술을 완성하는 기간은 물론이고 필요한 마력을 모으는 기간도 훨씬 줄어들 거야. 잘하면 절반까지도.”
“그건 그렇긴 해.”
이야기를 듣던 단이 미간을 좁혔다.
“절반이라고 해도 3만5천 년인가. 들을수록 나랑 아무 상관 없는 얘기 같은데.”
“무슨 소리야 단, 오래 걸리긴 해도 어쨌든 좋은 거잖아! 그리고 거석이 없어지는 건 우리랑 엄청 상관 있지!”
호란이 핀잔했다.
시현도 동감이었다. 감람의 연구가 그의 생전에, 어쩌면 인류 문명이 지속되는 사이에 결실을 맺지 못한다 하더라도 감람이 인간을 적대하길 그만두고 다른 방법을 모색하는 것만으로도 인간 입장에선 이익밖에 없는 거래였다.
“좋다. 그 제안을 받아들이겠다.”
하지만 세 번째 감람이 고개를 저었다.
“멋대로 결론짓지 마. 난 아직 동의하지 않았어. 우리 입장에선 아무 대책 없이 거석을 없앨 수는 없어.”
“무슨 대책을 말하는가.”
“아까 말했잖아? 원천 복구에 성공하기 전에 인간이 별을 멸망시켜 버리면 안 된다고. 거석은 세상 곳곳을 다니며 지표의 물을 지하로 끌어내려 붙잡아두는 역할을 해. 지상에 물이 많을수록 그 물을 따라 흘러나가는 마력도 많아지니까. 마력 유출을 조금이라도 줄이는 건 우리에게 중요하고 필수적인 목표야.”
“하지만 그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살 곳을 잃는다. 물이 없으면 인간은 살아갈 수 없다.”
“응. 그것 또한 중요하고 필수적인 목표지. 인간의 수를 줄이거나, 최소한 더 늘지 않게 하는 것.”
시현의 얼굴이 바로 굳어졌다. 첫 번째가 눈치를 보고 빠르게 변명했다.
“저기 세 번째의 입장도 이해해 줘. 거석이 사라지면 인간이 살기가 좋아질 거고, 그러면 너희는 끝도 없이 수가 늘어나겠지. 순식간에 별의 여력이 소모될 거고 우리가 연구고 뭐고 시도할 겨를도 없이 종말이 찾아올지도 몰라. 그러면 우리가 너한테 마법을 얻는 것도 의미가 없어지잖아. 이건 당연한 걱정이라고.”
“사람 목숨이 달린 일에 쉽게 이해를 말하지 말아라! 설령 내가 너희의 논리를 이해한들, 너희에게 죽은 사람과 가족을 잃은 사람들이 그 말을 이해하겠느냐?”
“그, 그렇게 곧바로 화내지 말고…. 어쨌든 너랑 세 번째의 입장 차를 좁혀보자고 지금 이 대화를 하는 거잖아. 응?”
첫 번째 감람이 늘상 하는 것처럼 두 손을 모아 비는 시늉을 했다. 시현은 고개를 돌려버렸다.
그가 돌 인간과의 대화에서 의미를 못 찾는 이유가 이것이었다. 이제까지 많은 돌 인간을 만났지만 그 누구도 사람을 죽여야 문제가 해결된다는 대전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리고 그 바탕에는 사람 목숨이 별의 기운에 비해 가치가 없다는 판단이 있었다. 그 기준을 바꾸지 않고는 이들의 문제해결 방식도 바꿀 수 없었다.
그러나 첫 번째 감람의 제안은 분명 이득이 컸다. 그리고 심산에서 경험한 것처럼 돌 인간들은 이득이 일치하는 일에는 자신을 아끼지 않았다. 아직 협상을 포기할 상황은 아니었다.
시현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입을 열었다.
“좋다. 너희가 셈을 하길 원하니 셈을 해주마. 너희는 법력 소모를 줄이기 위해 거석을 만든다고 했지. 하지만 거석을 만들어 세상 곳곳에 뿌리는 것도 별의 기운을 소모하는 일일 텐데.”
첫 번째 감람이 대답했다.
“그 기운은 거석이 수원을 막고 땅으로 돌아올 때 어느 정도 회수되긴 해.”
“어느 정도 회수된다는 말은 어느 정도는 소모된다는 것이겠지. 거석이 도중에 인간에게 파괴되면 전부 잃어버릴 것이고. 그렇지 않으냐?”
“그건 맞아.”
“더구나 소모되는 것은 거석이 지닌 기운만이 아니다. 거석이 땅 위의 물을 거둬가는 만큼 사람들은 땅속에서 물을 꺼내기 위해 온갖 법술을 쓰고 있다. 거석과 싸우는 데 소모된 법력도 헤아릴 수 없다.
무엇보다도, 너희가 변고를 일으켜 온 세상의 기운을 한 곳으로 몰아간 것은 섭리를 정면으로 거스른 일이다. 이 일이 정말로 아무 대가 없이 이루어졌느냐?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건 동의해.”
줄곧 이야기를 듣기만 하던 세 번째 감람이 말했다.
“이번 대절멸의 채산이 도무지 안 맞는다는 것도, 거석을 만드는 게 무의미한 소모를 가중시킬 뿐이란 지적도 전부 사실이야. 182년간 여기 처박혀서 마력 유출량만 계산한 내가 하는 말이니까 틀림없어. 백 년 전이면 모를까, 이젠 사람들이 거석을 부수는 데 너무 능숙해졌어.”
세 번째는 고개를 기울이면서 자조적인 웃음을 지었다.
“근데 적자의 근본 원인인 너네가 그 말을 하니까 좀 이상하긴 하네. 너희가 방해만 안 했어도 이미 인류가 절반은 사라졌을 거고. 지금쯤은 마력이 회수되기 시작했어야 하는데.”
첫 번째가 말했다.
“결과가 이런 걸 어쩔 수 없잖아. 솔직히 난 깨어나 보고 놀랐어. 너희의 대절멸 계획엔 수정이 필요해. 그것도 엄청 많이.”
“그것도 동의해….”
세 번째가 머리를 숙이고 고심에 들어갔다. 시현은 잠자코 기다렸다.
첫 번째 감람마저 대절멸의 포기가 아니라 수정을 말하는 것은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논의는 거의 끝에 다다르고 있었다.
오래지 않아 세 번째 감람이 고민을 끝냈다. 그가 고개를 들고 시현을 향했다.
“좋아. 첫 번째의 제안에 응하겠다. 이 장소를 폐쇄해서 거석 생성을 중지하겠어. 대신 인간의 마법을 받고. 동의해?”
시현이 답했다.
“동의한다.”
“좋아. 그럼 시간 끌지 말고 바로 시작하자. 이곳과 연결된 다른 장소의 설비부터 정지시킬게.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을 거야.”
세 번째 감람은 곧바로 반투명 기둥에 다가가 마력회로를 조작하기 시작했다. 약속을 지키라고 으름장을 놓거나 확인하는 말조차 없어서 오히려 시현은 의무감을 느꼈다.
시현이 첫 번째 감람에게 물었다.
“내게서 어떤 방식으로 법술을 배울 것이냐. 너희에겐 의지로 법력을 다루는 능력이 없는 것 같던데.”
“배우는 게 아냐. 받는 거… 현상을 복제한다고 해야 하나. 네가 할 일은 어렵지 않아. 네 기술을 최고 수준까지 보여주기만 하면 돼. 그러면 우리가 그 순간의 시공간을 기록했다가 재현할 거야.”
“보기만 하는 것으로 가능하다고?”
“당장은 안 되지. 재현하는 방법은 지금부터 내가 고민할 거야. 그래도 괜찮아. 말했듯이 우리한테는 시간이 많으니까.”
“알겠다.”
공동의 벽과 기둥에 설치된 여러 회로 앞을 바삐 오가던 세 번째 감람이 소리쳤다.
“멋대로 시작하지 말고 기다려! 그리고 너도 좀 도와!”
“아, 미안!”
첫 번째가 기둥으로 달려갔다.
대화가 끊기자 호란이 긴장이 풀린 것처럼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새삼 놀란 얼굴로 시현을 보았다.
“거석이 없어진대요, 시문 님!”
“그래.”
“거석이 없어진다고…. 와아….”
호란이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같은 말을 반복했다. 뺨이 상기되어 있었다.
시현은 작게 웃음을 머금었다. 그는 이럴 때, 특히 협상 상대 앞에서는 감정을 보이지 않도록 교육받았다. 하지만 호란의 기뻐하는 눈을 보면 그저 함께 기뻐하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물정을 알게 된 이후, 거석에게서 남운관을 지키는 것이 시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었다. 호란도 비슷할 것이다.
딱히 감정을 보이지 않는 것은 단뿐이었다. 그가 말했다.
“뭔가… 너무 잘 풀려서 더 거지 같은 기분이 드는데. 일이란 게 이렇게 술술 뜻대로 될 리가 없잖아.”
호란이 투덜거렸다.
“단, 이럴 때까지 꼭 그런 소리를 해야 해? 실제로 잘 된 거 맞잖아!”
“거석을 안 만든다고 저놈들이 그 대절멸이란 걸 포기한 것도 아니잖아. 어쩌면 더 지독한 짓을 저지를지도 모르지. 특히 모들처럼 원한으로 똘똘 뭉친 녀석들은.”
시현이 말했다.
“그것은 나도 생각했다. 하지만 당장 싸우지 않고 소득을 얻은 것은 사실이 아니냐. 그리고… 어쩌면 이번 일을 바탕으로 또 다른 협상을 진전시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 원천을 복구하는 기술을 만드는 데 우리가 협력할 수도 있고. 내 생전에 불가능하면 대를 이어서라도. 세상의 수많은 법술사들이 뜻과 노력을 모으면 일이 훨씬 빠를 것이다. 또 장유가 연구하는 기술도….”
시현의 말이 들렸는지 두 사람의 감람이 이쪽을 홱 돌아보았다.
“그런 끔찍한 소리 하지 마! 너희 보나마나 그걸로 사고 쳐!”
“그래. 인간들은 기술을 손에 넣으면 절대 원래 목적대로만 쓰지 않아. 반드시 딴짓을 해. 그것도 우리가 상상도 해본 적 없는 방식으로.”
시현은 대답하지 못했다. 첫 번째 감람이 말을 이었다.
“우리가 인간을 죽인다고 자꾸 뭐라고 하는데, 우린 사람 없애는 거 말고 멸망을 막는 방법을 몰라. 정 그러면 니네가 뭔가 해서 수를 줄여 봐. 애를 낳지 말든지, 먹고 쓰는 걸 좀 줄이든지.”
“아니, 니네야말로 끔찍한 소리 하지 마.”
단이 곧바로 정색했다.
“물자 제한 따윌 한다고 땅인들이 지네가 누리는 걸 하나라도 포기할 거 같아? 마법으로 마력 펑펑 써대는 건 지들이면서 밑에만 말라죽으라고 하겠지. 위에서 쥐어짜면 하늘인 놈들도 더 악착같아질 거고. 결국 반민들만 죽어날 게 뻔한데. 차라리 돌 인간한테 전부 몰살당하는 게 낫겠다. 그것도 반민부터 죽는 건 마찬가지겠지만 최소한 마지막에 다 죽는 건 공평하겠지.”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