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nk Rock: Regenerating World RAW novel - Chapter 322
32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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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로 두 곳 중 어느 곳으로 들어갈지는 결정하기 쉬웠다. 한쪽 통로 입구에 흙이 어지럽게 떨어져 있었다. 반하의 것처럼 보이는 보폭 넓은 발자국도 몇 개 남아 있었다.
물론 무작정 뛰어 들어갈 수는 없었다. 감람이 기습하거나 통로를 무너뜨려 퇴로를 막을 것에 대비해 시현이 기감을 넓게 펼쳤다. 유등을 든 단이 그 앞을 걷고 적습에 대비해 채원과 은실이 한 발 뒤에서 따랐다.
일행은 호란을 선두에 두고 빠른 걸음으로 전진했다.
중간에 네 갈래 교차로가 한 번 나왔을 뿐 내부는 생각만큼 복잡하지 않았다. 대신 들어갈수록 통로가 넓어졌다. 교차로를 지난 다음부터는 아래쪽으로 가파른 경사를 만들며 바닥이 낮아지고 그만큼 천장도 부쩍부쩍 높아졌다.
호란은 공간이 넓어지고 폐색감이 사라진 걸 좋아했지만 단은 회의적으로 반응했다.
“거석이 돌아다니기 딱 좋네요. 감람이 바로 안 덤비고 기다리는 것만도 충분히 불길한데.”
호란은 눈어림으로 천장 높이를 재 보았다. 처음에 비하면 많이 높아졌지만 거석이 다니기엔 아직 낮았다.
“괜찮지 않을까? 은신처나 중요한 장치는 다 위쪽에 있었잖아. 왜 중요한 걸 놔두고 아래쪽을 거석으로 지키겠어?”
“그렇게 따지면 애초에 2층 구조를 만들 이유가 없죠. 홍은산도 다층 구조였고요. 가장 위쪽에 방어 요새가 있고, 그 아래 지씨옥 봉인고가 있고, 더 아래에 기운이 왕창 숨겨져 있고.”
“여기도 그럴 거라고 생각해? 이 아래쪽에도 기운을 모아놨을까?”
“그건 모르죠. 하지만 이 구조물에 무슨 용도가 있기는 할 거라는….”
앞서가던 호란이 발걸음을 멈춰서 단도 입을 다물었다. 거리를 두고 오던 나머지 일행도 뒤따라 멈춰 섰다.
컴컴한 통로 저편에서 돌이 끌려 스치는 듯한 구르릉 소리가 작게 들렸다. 나직했지만 그리 먼 데서 나는 것이 아니었다.
뒤이어 통로에 들어오기 전 들었던 퉁 하는 울림이 뚜렷하게 두 번 났다. 무언가 무거운 것을 판석 위 내려놓는 소리였다.
같은 소리가 뒤에서도 났다. 일행의 가장 후방에 있던 은실이 긴장하며 뒤를 돌았다.
“뭐지요. 적의 기운은 느껴지지 않습니다만.”
채원이 의아한 듯이 말했다. 호란은 지금 그들이 상대하는 것이 감람이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갑병이에요! 감람이 쓰는 거석들은 다른 거랑 달라요! 자기 기운을 감출 수 있어요!”
호란이 경고를 끝맺기도 전에 컴컴한 통로 저편에서 철컥 소리와 함께 붉은 빛이 세 개 떠올랐다. 호란은 그 붉은색을 알았다. 갑병이 쏘는 마력포의 빛이었다.
“뒤, 뒤쪽에도 있어요!”
은실이 소리쳤다. 심지어 앞뒤의 갑병이 전부도 아니었다. 일행의 머리 위 천장에도 발 밑바닥에도 우득 굵은 금이 갔다.
시현이 외쳤다.
“둘러치라!”
통로 앞뒤에서 붉은색 광선 여러 줄기가 맹렬하게 뻗어왔지만 이미 시현의 주문이 완성된 뒤였다. 상하좌우로 펼쳐진 힘의 장막이 광선포를 막아내고, 동시에 무너지는 천장을 떠받치고 뒤틀리는 바닥을 눌러 다스렸다.
마력포 공격이 무산되자 적은 바로 모습을 보였다. 앞에서 세 놈, 뒤에서 두 놈의 갑병이 다리를 철컹이고 바닥을 울리며 무서운 속도로 복도를 질주해왔다.
크기는 홍은산에 있던 갑병의 절반에 불과했지만, 다리가 여섯이고 관절이 많아 움직임이 빠르고 자유로웠다.
무서운 속도로 가까워진 갑병이 장벽에 몸을 부딪쳤다. 넓은 통로 전체가 쾅쾅 흔들렸다. 충돌했다 튕겨 나간 놈들은 다시 자세를 잡고 몸 중앙의 눈알 같은 구체에 마력포를 장전했다.
시현이 외쳤다.
“채인! 이번 공격을 버티고 나면 벽이 깨질 것이다! 앞쪽 셋은 맡기겠다!”
“예!”
채원은 이미 커다란 마력석을 손에 들고 주문을 짜고 있었다.
채원이 앞의 거석 셋을 맡는다면 호란은 뒤쪽 담당이다. 하지만 자리를 바꾸기 전, 호란은 앞의 세 거석 중 두 놈만이 마력포를 발사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두 발의 마력포가 장막을 꿰뚫지 못하고 스러지는 순간 호란이 앞으로 치달았다.
깨어지다 만 장벽을 몸으로 뚫을 때 호란은 성벽을 들이받는 것 같은 충격을 느꼈다. 허공으로 산란하는 마력포의 남은 힘이 피부를 얼얼하게 찔렀다.
그래도 그렇게 가속한 덕에 세 번째 갑병이 마력포를 발사하기 직전 놈의 앞에 도달했다.
호란은 놈의 몸 아래를 있는 힘껏 걷어찼다. 갑병이 뒤로 거꾸러지면서 정면을 겨냥했던 마력포가 일행에게서 빗나가 천장을 꿰뚫었다.
뒤이어 채원이 주문을 발했다.
“관철하는 본령이여!”
세 줄기의 굵은 벼락이 통로를 메웠다. 전격은 맹렬하게 날뛰면서도 호란의 머리칼 한 가닥 스치지 않고 세 개의 갑병만을 타격했다.
채원은 갑병과 싸워 본 적이 없는데도 공격이 통하는 석갑 틈새를 정확하게 찌르고 있었다.
호란은 이미 일행 뒤편으로 달리고 있었기 때문에 채원이 발휘한 위력을 보지 못했다. 일행의 뒤편에도 작은 갑병이 둘이나 있었다.
혼자 뒤를 막아선 은실은 갑병의 약점을 한눈에 파악할 재주도, 두꺼운 석갑을 깨부술 정도의 힘도 없었다.
그래서 은실은 더 단순한 방식을 택했다. 갑병 한 놈을 번쩍 들어 올려 그걸 다른 놈의 몸뚱이에 밀어붙여 길을 막았다.
오래 통할 방책은 아니었다. 밀려난 한 놈은 바로 벽을 타올라 은실의 옆을 돌파했다. 붙잡힌 놈도 여섯 개 다리를 꺾어 은실을 공격했다.
하지만 호란이 도착할 시간은 충분히 벌었다.
“야아아!”
쏜살같이 달려온 호란이 시현에게 다가드는 한 놈을 뻥 걷어찼다. 둥근 몸체가 벽과 천장에 쾅쾅 튕기며 통로 저편으로 나가떨어졌다.
호란은 땅을 빗겨 차며 돌진의 방향을 바꿨다. 통로 한쪽에서는 은실이 갑병의 한 다리를 붙잡고 다른 다리의 공격을 피해내며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호란이 반대쪽 다리를 양손으로 잡으며 외쳤다.
“당겨!”
“오!”
은실은 바로 이해하고 붙잡았던 다리를 어깨에 메듯 고쳐잡았다. 둘이 반대 방향으로 발을 내디디며 몸을 회전시키자, 부여잡힌 다리 두 쪽은 버티지 못하고 몸체에서 뚝 떨어져 나왔다.
“좋아! 한 번 더!”
은실이 신나서 소리쳤다. 갑병은 발버둥도 제대로 못 치고 또 다리 두 개를 잃었다.
호란은 이제 자기가 거석에서 나오는 마력을 이용한다는 걸 확실하게 실감했다.
갑병의 기운이 느껴지는 간격 안으로 들어가면 팔다리의 완력부터 완전히 달라졌다. 주위에 넘치는 기운이 호란의 뜻에 따라 그를 밀어 주고 감싸 주고 팔다리에 힘을 더해 주고 있었다.
나가떨어졌던 나머지 갑병 하나가 철컹거리며 몇 발짝 돌아왔다. 벽에 부딪힐 때 관절이 상했는지 몸체가 기울어 있었다.
호란은 다리 두 개 남은 갑병을 은실이 짓누르게 놓아두고 놈을 향해 달렸다. 놈은 다시 마력포를 장전할 것처럼 자세를 잡았지만 이번에 호란은 놈이 빛을 머금을 틈도 주지 않았다.
호란의 주먹이 갑병의 석갑을 위에서부터 수직으로 내려찍었다.
갑병의 몸을 감싼 석갑이 대여섯 조각으로 쩍쩍 갈라지고 내부에서 폭음이 났다. 몸체를 받쳤던 다리 여섯 개가 일순도 버티지 못하고 접혔다. 갑병의 몸체는 연기를 피워올리며 바닥과 충돌했다.
“돌아오거라! 통로가 붕괴한다!”
채원이 소리쳐 호란을 불렀다. 다리 잃은 거석도 채원의 주문으로 정리가 끝나 있었다.
호란은 일행의 주위뿐 아니라 통로 전체가 약하게 진동하고 있는 것을 깨달았다. 유등 불빛이 닿는 곳 전부, 천장과 바닥은 물론 벽의 판석까지 실금이 가득했다.
감람이 통로 전체를 무너뜨리려고 하는 것을 시현이 주문으로 저지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도 호란은 별로 걱정하지 않았다. 대치는 호란이 시현 곁에 돌아오기도 전에 끝났다. 시현이 외침으로 주문을 맺었다.
“정이여, 일어서 맥동하라! 이끌려 침잠하라!”
시현의 주문은 정반대의 현상 두 가지를 동시에 일으켰다.
통로 전체의 천장과 그 위의 대지가 화산 터지듯 위로 솟아올랐다. 순식간에 하늘이 넓게 열렸다.
반대로 발밑의 들썩임, 벽과 바닥의 진동은 완전히 가라앉았다.
시현이 녹은 마력석 두어 개를 땅에 버리고 새것을 꺼내 들며 말했다.
“주위 지반의 기운을 묶어 놓았다. 한동안은 감람이 통로를 허물거나 길을 막는 수작을 못 할 것이다.”
천장을 들어내고 나니 지하도는 시현이 먼저 뚫어놓은 세모래 골짜기 아래였다. 단이 머리 위 푸른 하늘을 흘긋 보며 말했다.
“퇴로가 확보된 건 좋습니다만, 마력석 아끼신다더니.”
“아꼈다. 위쪽은 최소한만 들어내지 않았느냐. 그리고 사람들이 휘말릴 걱정 없이 땅만 치우는 데는 마력석이 훨씬 덜 든다.”
“그건 좋습니다만… 어쨌든. 이 지하 공간이 외적을 격퇴하기 위한 시설이란 건 거의 확실해졌네요.”
“그렇다.”
“안에 들어가면 이번에도 기습할 겁니다.”
단이 경사진 통로 안쪽을 보며 탐탁잖은 얼굴로 말했다.
“방금 한 걸 보면, 감람은 나리님이 갑병을 상대하게 해 두고 그 틈에 생매장을 시킬 생각이었을 겁니다.”
“그랬을 것이다. 세 사람이 갑병을 맡아준 덕에 나는 편하게 감람을 상대했다만.”
“이쪽 전력이 비상식적이라 한 번은 실패했지만 다음에는 다를 겁니다. 더 많은 갑병이나 새로운 방어 설비를 동원해서 나리님이 결국 손을 쓰시게 만들겠죠. 그 틈을 노려서 감람이 직접 기습할 거고요. 미리 알아도 피하기 어려운 전략입니다.”
“그러면 어찌해야겠느냐?”
“천천히 탐색하다 보면 기습의 기회만 많이 주는 셈입니다. 길을 헤매느라 꾸물대지 말고 빠르게 돌파해야 합니다. 나리님이 반하 호위의 위치를 찾아내실 수는 없습니까?”
“나도 아까부터 찾고 있다. 하지만 기감에 걸리지 않는다….”
안 좋은 경우를 상상했는지 시현이 어두운 얼굴을 했다. 채원이 오히려 걱정하는 기색이 덜했다.
“반하 그 아이의 기색이 원래 찾기가 어렵습니다. 감람을 먼저 찾지요. 제가 놈의 기운을 추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시현이 눈에 빛을 보였다.
“가능하겠느냐?”
“예. 저 갑병이란 걸 상대해 보니, 놈들이 제 기운을 감추는 수법이 어떤 것인지 알겠습니다. 지하의 기맥을 숨긴 방식과는 다르지만 기파를 이용하는 것은 같습니다. 제가 그 파장을 지워보겠습니다. 감람의 위치나, 최소한 적의 전력을 알 수 있을 겁니다.”
“그럴 수 있다면 그게 최선이다. 감람을 찾으면 세 사람이 있는 곳도 알 수 있을 것이다.”
채원이 고개를 끄덕이고 은실에게 말했다.
“은실아, 탐색용 돌을. 대운관 동부 것 중에 가장 큰 것으로 다오.”
은실이 허리에 찼던 주머니에서 마력석 하나를 꺼내 채원에게 건넸다. 채원이 입속으로 빠르게 주문을 외웠다. 시현도 기감을 펼치기 위해 눈을 감았다.
“사람의 인지여. 나아가라.”
채원이 주문을 맺고 일순밖에 안 지나 시현이 눈을 떴다. 원하던 것을 찾았는지 표정이 상기되어 있었다.
단이 손에 쥐었던 나침반을 열었다. 시현이 탐색한 곳을 집어주면 방향을 잡아볼 셈 같았다.
하지만 시현은 꾸물거리면 안 된다는 단의 충고를 생각보다 더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가 손을 뻗어 한쪽 벽을 가리켰다. 방향을 알려주기 위한 동작이 아니었다.
“별의 본태여. 모여라. 돌파하라. 격멸하라!”
시현의 손에 들렸던 커다란 참석이 순식간에 거대한 빛덩이로 변하고 뒤이어 광선이 되었다. 굵고 위력적인 광선이 벽을 꿰뚫었다.
마음의 준비 없이 파괴를 목격한 모두는 침묵했다. 호란이 머뭇대며 물었다.
“음 지금… 감람이죠? 감람을 쏘신 거죠?”
호란의 의문은 시현 대신 본인이 풀어주었다.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장난해?”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