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nk Rock: Regenerating World RAW novel - Chapter 335
335화
* * *
벼락이 뻗는 것과 동시에 채원의 등 뒤에서 토사가 솟았다. 살기가 담긴 흙벼락이 채원을 때리며 그가 선 벼랑까지 무너뜨렸다.
하지만 쏘아진 벼락은 이미 골짜기 한중간에서 작렬하고 있었다. 붓으로 그은 듯 가늘어 보였던 전격이 목표와 부딪히자 십수 갈래로 갈라지며 하늘을 덮을 듯 빛을 튀겼다.
전광이 찌른 곳은 아무것도 없는 허공이었지만, 그 벼락이 무엇을 맞추었는지를 그 자리의 모두가 알았다.
눈을 찌르는 전광 사이로, 호란은 부서져 가는 기결이 뿜는 주홍색 광채를 본 것 같다고 생각했다.
골짜기 전체, 무너져가는 장내산 전체가 우르르 흔들렸다. 시현이 억눌러두었던 감람의 기운 위로 더 커다란 기운이 폭포처럼 쏟아져 내렸다.
시현이 우려한 대로였다. 마지막 순간 감람은 원천에서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기운을 끌어냈다. 그 기운 전부가 단말마에 찬 격렬함으로 폭주하고 있었다.
“채인! 채인을 데려오라!”
시현이 소리쳤다. 벼랑이 무너진 순간 반하가 뛰쳐나와 채원을 끌어올린 것은 보았다. 하지만 그 직전 토벽이 채원을 후려치는 것은 막지 못했다.
지금 시현은 사방의 기운을 제어하기도 힘겨워 채원에게까지 손이 닿지 않았다.
성지를 데리고 절벽을 올라가려던 여자 몫꾼이 계속 낙하하는 바위 때문에 실패하고 되돌아왔다. 성지가 애타게 외쳤다.
“채인 어른! 채인 어른!”
시현은 눈을 꽉 감았다. 이제는 감람이 새로 불러올린 기운은커녕 이미 지배하던 기운까지 그의 통제를 벗어나고 있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에는 항상 한계가 있었다. 그럼에도 그가 가장 큰 힘을 가진 사람이었기에, 선택하는 사람은 항상 그였다.
시현은 선택하고 주문을 펼쳤다.
“강벽으로 둘러치라!”
명령이 떨어지자 골짜기 절반 가까이를 덮고 절벽 위까지 닿는 거대한 보호막이 펼쳐졌다.
직후 땅 전체가 위로 솟구쳤다.
화산이 터지듯 토사가 분출하고, 그것이 다시 흙벼락이 되어 쏟아졌다. 암석이 보호막을 내리치는 우두두 소리가 끝나지 않았다.
성지가 벌벌 떨며 물었다.
“문이시여, 채인 어른은….”
“보호막을 최대한 넓게 폈다. 세 사람이 그 범위 안에 있다면 좋겠지만 확신은 할 수 없다.”
성지는 그 말을 듣자마자 단과 몫꾼들을 채근해 채원을 찾으러 갔다. 옆에서 발을 동동 구르던 호란도 시현이 보호막을 거두자마자 말했다.
“시문 님, 우리도 찾으러 가요! 어디로 가면 돼요?”
“글쎄….”
시현은 초조한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시야 닿는 곳은 모조리 무너진 돌밭이었다. 산 전체가 무너지면서 보호막 안에 있던 벼랑마저 지지를 잃고 허물어졌다. 아직 주위에 휘몰아치는 기운이 가라앉지 않아 반하와 청솔의 기척을 잡아내기도 어려울 것 같았다.
시현이 막막함에 망설이고 있자 호란이 그냥 그를 안아 들었다. 그가 달리면서 말했다.
“성지 님이 저쪽을 수색하니까 우리는 다른 데를 찾아봐요.”
“그래. 그러자.”
시현이 대답하며 고개를 약간 떨군 것을 호란은 눈치채지 못했다.
성지와 단이 수색하고 있는 장소는 채원이 마지막에 모습을 보였던 벼랑 주변, 시현이 보호막을 쳤던 안쪽이었다. 만약 채원과 몫꾼들이 그 바깥쪽에서 발견된다면 살아있을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그러니까 더욱 자신이 그 장소를 수색해야 한다고 시현은 생각했다.
그 끝도 없이 넓은 돌무지 한가운데서 시현이 제일 먼저 채인과 반하를 찾아낸 것은 기적도 무엇도 아니었다. 무더기져 쌓인 커다란 바위 아래서 미약하게 꺼져가는 마력 파동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기운을 부려 바위를 치우자 깨지기 일보 직전의 작고 얇은 보호막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 가운데 채원과 반하가 쓰러져 있었다. 반하의 한 팔은 채원의 몸 위를 감싸듯 덮고 있었다.
“채인! 채인!”
시현의 목소리가 들렸는지 가까스로 유지되던 보호막이 스르르 거두어졌다. 두 사람의 곁으로 달려간 시현은 무릎을 꿇으려다 멈칫했다.
채원과 반하의 몸 아래로 흘러나간 피가 웅덩이를 만들고 있었다. 반하의 한쪽 다리는 무릎 아래가 없었다.
시현은 이쪽으로 달려오는 호란에게 목청껏 외쳤다.
“호란! 성지를! 성지를 데려와라! 어서!”
“네!”
호란이 방향을 바꿔 쏜살같이 달려갔다.
채원이 부스스 눈을 떴다. 시현을 알아본 그가 물었다.
“문이시여. 감람은….”
“죽었다. 이번에야말로 확실하게 죽었다. 그대가 끝냈다.”
“아, 호란의 말을 듣고 모험한 보람이 있군요. 정말로 저를 향한 적의는 더 구분하기가 쉬운….”
채원은 말하다 말고 무엇을 생각했는지 빙긋이 웃었다.
“제가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제가 문과 떨어져 움직이면 놈이 저를 먼저 공격할 수도 있다고. 역시 제 뇌격을 맞은 원한이 그렇게 쉽게 잊혀질 리가 없지요.”
“그래. 그것은 그대가 맞았다. 그렇다고 그대가 이런 위험을 자초해서 되겠느냐.”
시현은 일부러 핀잔하는 투로 말했다. 채원은 다시 웃고 눈을 감으려 했다.
“채인, 채인. 눈을 떠라. 정신 차리고 있으라. 금방 성지가 올 것이다. 조금만 더 버티면 된다. 채인!”
시현은 거듭 채원을 불렀다. 손이라도 끌어 잡아주고 싶었지만 출혈이 심해질까 봐 몸을 건드릴 수가 없었다.
채원은 눈을 떴지만 아까보다 동공이 혼탁했다. 그가 희미한 목소리로 말했다.
“문이시여, 부탁… 제가 부탁이….”
“나중에 말하거라. 그대는 괜찮을 것이다.”
“약속… 위아래 구분을 허무는 돌 인간의 망언을 믿지 않으신다고….”
시현은 애가 타고 안타까워 거의 화가 날 지경이었다. 그가 버럭 소리쳤다.
“지금 그걸 상관할 때인가! 눈 크게 뜨고 기력이나 붙잡아라! 그런 말은 그대가 목숨 붙인 다음에 얼마든지 들어주겠다!”
하지만 채원은 시현이 대답을 주기 싫어 말을 돌린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의 목소리가 간절해졌다.
“문이시여, 제발…. 사람이 다 같을 수는 없습니다. 땅인과 반민이, 명문 후계와 그렇지 않은 사람이 같을 수는 없습니다. 태어나길 다르게….”
“채인. 지금 중요한 건 그대가 사는 것이다.”
“아니요…! 이쪽이 더 중요합니다.”
가물가물해져 가던 채원의 음성에 갑자기 힘이 돌아왔다. 그는 어디서 기력이 났는지 머리를 번쩍 들었다. 끝까지 쥐고 있던 마력석도 놓고 시현의 팔을 움켜쥐었다.
그가 눈을 형형하게 빛내며 말했다.
“저와 남이 완전히 같다면, 제게 저만의 특별한 사명도 없고, 더 큰 의무를 다하기 위한 더 큰 권리도 없다면… 제가 남과 싸우며 걸은 길이 옳은지 그른지를 어떻게 안단 말입니까?”
시현은 순간 정곡을 찔려 대답을 못 했다. 시현 자신도 답을 찾지 못한 문제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시현은 그 잠깐의 망설임을 아주 오랫동안 후회해야 했다.
직전까지 시현을 꽉 움켜잡고 있던 채원의 손이 풀썩 떨어졌다. 비스듬히 들어 올렸던 머리도 이미 바닥에 닿아 있었다.
뜨인 눈은 더 이상 시현을 보고 있지 않았다.
“채인, 채인…?”
시현은 뒤늦게 채원의 어깨를 붙잡았다. 그가 채원의 얼굴을 향해 몸을 기울이며 급히 말했다.
“그대는 옳았어. 그대가 한 일, 그대가 걸어온 길은 잘못되지 않았다. 채인, 듣고… 듣고 있는 건가?”
듣고 있지 않다는 걸 시현은 알았다. 그래도 그는 계속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대는… 옳았다. 그대가 한 일은 전부 의미가 있었어. 전부….”
진씨 성지는 안타까울 만큼 간발의 차로 도착했다.
채원을 살리기엔 아주 약간 늦었지만 반하를 살리기엔 늦지 않은 시간이었다.
성지는 채원의 절명한 모습을 보고 세상이 무너진 듯한 얼굴을 했지만 통곡하지도 소리치지도 않았다. 말없이 세 군데 맥을 짚어 사망을 확인한 후 곧바로 반하의 치료를 시작했다.
결손된 다리와 손가락은 어떻게 할 수 없었지만 타고나길 생명력이 강한 하늘인을 회복시키는 것은 마력석만 충분하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반하는 한 각 만에 의식이 돌아왔다.
청솔의 시신은 끝까지 찾지 못했다. 반하가 청솔은 감람보다 더 먼저 죽었다고 확인해주었기 때문에 일행은 해가 저물 무렵 수색을 포기했다.
지형이 바뀌는 것을 넘어 산이 하나 사라진 탓에 단이 아는 길 찾기 지식은 별 도움이 안 되었다. 시현이 수기를 읽어 물 솟는 곳을 찾고 몫꾼들이 돌을 치워 숙영할 곳을 만들었다.
막사를 세우고 밥을 지어 식사를 하고 숙영 준비를 하는 동안 거의 말이 오가지 않았다. 며칠 만에 드디어 습격 걱정 없이 잘 수 있게 되었지만 선뜻 자러 가는 사람도 없었다.
완전히 컴컴해진 뒤 시현은 채원의 시신이 안치된 작은 막사로 향했다.
돌로 대를 쌓고 자리를 깐 위에 시신이 눕혀져 있고, 막사 한구석에는 누가 찾아올 것을 안 것처럼 작은 등이 하나 밝혀져 있었다.
시현은 시신 앞에 아주 오랫동안 서 있었다. 채원은 그에게 수많은 질문을 던져주고 갔지만 지금 시현의 머릿속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시현은 한참 뒤에야 인기척을 느끼고 뒤를 돌아보았다. 언제부터 와 있었는지 진씨 성지가 다소곳이 공수한 채 막사 입구께에 서 있었다.
성지가 머리를 숙여 약례하고 몇 걸음 다가왔다.
“문이시여,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만… 채인 어른이 거느렸던 몫꾼 두 사람이 귀수관으로 돌아가길 원하고 있습니다. 채인 어른의 시신을 하씨 가로 모셔야 하고, 혼자 움직일 수 없게 된 반하도 사람 사는 곳에 데려다주어야 하는데 한 사람으론 끝터를 가로지르기 어렵다고요.”
“아, 그래야겠지. 당연한 일이다.”
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듣고서야 이런저런 일들에 생각이 미치기 시작했다.
“성지 그대는 어찌하겠는가. 지은학당의 몫꾼이 모두 돌아가면 호위는 호란 하나뿐인데, 전투 중에 신변이 전보다 불안해질 것이다.”
“그것이… 예. 허하신다면 저도 귀수관에 돌아가고자 합니다. 문을 목숨 걸고 보필하겠다 큰소리쳤던 주제에 부끄러울 뿐입니다만.”
성지가 다시 머리를 숙였다.
“위험이 두려워 물러나려는 것은 아닙니다. 저도 채인 어른을 모셔가는 데 함께하고 싶습니다. 제가 함께 가면 귀향에 시일이 걸려도 시신을 온전히 보전할 수 있고, 하씨 가에 앞뒤 사정을 더 정확하게 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부친이신 하씨 백의 어르신에 대한 예의를 생각해서도.”
“그렇다. 그것이 도리에 맞겠다.”
주인을 지켜야 할 하늘인 호위들이 시신과 함께 하씨 가에 돌아가면 경을 치는 것을 넘어 사형을 당할 수도 있다. 몫꾼 둘이서 북방 끝터를 가로지르다 변이라도 당하면 귀환 자체에 실패할 염려도 있다. 어떻게 보나 귀환조에 성지가 동행하는 편이 더 안심이 되었다.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는 성지에게 시현이 말했다.
“아무 부담 갖지 말고 안전히 귀향하도록 하라. 채인을 잘 부탁하겠다.”
시현은 다시 천으로 덮인 시신에 눈을 돌렸다. 하지만 성지는 바로 자리를 뜨지 않았다. 잠시 후 성지가 조용히 물었다.
“문이시여, 무엇을 생각하고 계십니까?”
시현에겐 항상 생각하면서도 결코 타인 앞에서 말하지 않는 일이 있었다. 며칠 동행한 것이 전부인 성지 앞에서 입 밖에 내어버린 것은 시현이 그 생각에 너무 골몰하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내 힘이 모자랐다. 내가 너무 약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