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nk Rock: Regenerating World RAW novel - Chapter 339
339화
* * *
“큭!”
모들은 크게 뛰어서 뒤로 물러났다. 몸을 피할 곳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반사적으로 나온 행동이었다.
하지만 착지할 곳이 없었다.
발밑이 사라졌다. 그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비산하는 흙더미가 눈 앞을 가렸지만 대지와 약하게 연결된 그의 감각은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파악하고 있었다.
벼랑 끄트머리로부터 모들이 선 곳 너머까지, 지표부터 수 길 아래 땅속 깊은 곳까지, 순수한 힘 그 자체가 폭발하며 모든 것을 파괴했다.
절벽을 이루고 있는 것은 한때 드높은 백벽의 지반이었던 강고한 암석층이었다. 그것이 한순간에 가루가 되고 이어서 사태가 되며 모들을 향해 밀려왔다. 모들에게 위협이 될 위력은 아니었지만 발 디딜 곳이 없으니 대응도 불가능했다.
모들이 멀리까지 밀려나지 않은 건 금강이 때에 맞춰 만들어준 보호막 덕분이었다. 푸른색의 빛을 내는 구체가 모들을 감싼 채 천천히 하강했다.
거의 너덧 장 가까이를 내려간 뒤에야 지면에 다다랐다. 발 디딘 바닥을 본 모들은 완전히 당한 걸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주위는 물가 방향으로 한쪽이 뚫리고 반대편은 밀려난 지반이 산을 이룬 움푹한 분지가 되어 있었다. 끝에서 끝이 시야에 다 들어오지도 않았던 기나긴 절벽이 절반 높이로 낮아졌다.
하지만 파괴된 장소가 얼마나 넓은지는 전혀 문제가 아니었다. 문제는 깊이였다.
절벽 상부가 통째로 치워지고 드러난 지표면은 판판하고 깨끗했다. 위를 쓸고 간 파괴가 어찌나 철저했는지 돌멩이 한 조각 굴러 있지 않았다.
그리고 눈 닿는 곳 전부에 마력회로의 새하얀 바탕돌이 깔려 있었다. 기나긴 절벽을 따라 펼쳐진 드넓은 공간이 모두 대규모 마력회로의 일부였다.
고강도 방어벽을 수 겹 설치해둔 덕에 바탕돌과 회로 내부, 주기능은 무사했다. 하지만 정밀한 기파와 상호반응하는 표면 회로는 깨어지고 불타 난장판이었다.
금강이 곧바로 손을 썼는지 보이지 않는 보호막이 새로 덮여 있었지만 이미 몇 가지 기능이 망가진 뒤였다.
모들은 천천히 시선을 돌렸다.
시현은 스스로 친 방어벽에 감싸인 채 지근거리에 서 있었다. 떨어진 곳에는 호란은 물론 수레까지 정성스럽게 보호막에 싸여 있었다.
시현과 금강의 방어벽이 거의 동시에 사라졌다. 절벽 쪽에서 금강을 팔에 얹은 대장석 하나가 덜 가라앉은 토연을 뚫고 쿵쿵 다가왔다.
반대편에서도 호란이 쏜살같이 달려와 시현 옆에 붙어섰다. 팔과 어깨에 마력석 대련을 여러 개 메고 있었다.
금강이 온통 금가고 타버린 발밑의 마력회로들을 내려다보며 한탄했다.
“아, 이런. 가장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사태가.”
모들이 불퉁거렸다.
“그거 봐. 처음부터 전력을 다해 기습하는 게 낫다고 했잖아. 오히려 네가 유인한답시고 어중간하게 굴어서 들통난 거 아니야?”
“나는 상식적인 판단을 한 거야. 중요한 회로 위에서 시문과 총력전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고.”
티격거리는 둘에게 시현이 말했다.
“딱히 서로 탓할 것은 없다. 물론 너희 둘의 행동이나 붉은 법력진의 범위가, 마치 내가 벼랑 가에서 떨어지길 기다려 주는 것처럼 보였던 건 사실이지만.”
모들이 홱 고개를 돌려 시현을 노려보았다. 시현이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어차피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원래부터 나는 너희가 나타나는 즉시 땅부터 좀 파헤쳐볼 생각이었다. 저 큰물 속에 마력회로가 잠겨 있었으면 낭패였을 텐데, 이제까지처럼 땅속에 있어서 다행이었다.”
금강이 얼굴을 찌푸렸다.
“우릴 상대하는 게 아니라 매설된 회로를 찾는 것이 목표였다고? 처음부터?”
“당연하지 않으냐. 너희 개개인이 부리는 힘에 제한이 있다는 걸 안다. 광범위한 지역에 복잡한 영향력을 행사할 때 너희는 항상 거창한 마력회로에 의지했었지. 그러니 금강이 감람보다 훨씬 넓은 방해 법력진을 펼치는 데에도, 이 지역에서 내 기감을 흐리는 데에도, 무엇보다도 온 세상으로부터 모은 기운을 보관하는 데에도 다 마력회로를 쓰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여길 뒤집어 놓은 걸로 이겼다고 생각하나? 다 네 속셈대로 됐다고?”
모들이 냉랭한 소리로 물었다. 시현은 살짝 미간에 주름을 잡았다.
“유감이지만 그렇지는 않군. 회로를 찾아 파괴하면 너희가 모아둔 법력도 풀려나거나, 최소한 장소라도 드러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래. 그만큼 마력석을 쓰고도 넌 고작 법력진 몇 가지를 못 쓰게 만들었을 뿐이다. 넌 실패했어.”
시현이 호란에게서 대련 하나를 건네받으며 말했다.
“그래도 진전은 있었지. 마력석도 어느 정도는 남아있고. 난 기회가 다시 올 거라 생각한다.”
모들과 시현이 눈싸움을 하는 동안 금강은 천천히 주위를 돌아보며 피해 상황을 확인하는 중이었다. 도중에 퍼뜩 무엇을 깨달은 그가 시현과 호란에게 물었다.
“잠깐만. 너희 무리 중 한 사람은 어디 갔지? 그 마법사 아닌 애.”
“!”
모들의 안색이 변했다. 그는 싸움이 시작된 이후 시현에게만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다. 금강 또한 단에게 신경을 쓰지 않았으니까 전장에서 떨어지는 걸 허락했을 것이다.
마지막에 시선을 스쳤을 때 단은 대장석 무리에 휩쓸리지 않도록 벼랑 가를 따라 상당히 멀리까지 물러나 있었다. 하지만 시현이 파괴한 이 광범위한 영역을 벗어날 만큼 멀리 가지는 못했을 것이다.
금강이 입을 딱 벌렸다.
“너, 설마 동료를 함께 희생시킨 거야? 인간들이 가끔 그런 짓을 하긴 하지만….”
“아니거든!”
호란이 정색을 하고 소리쳤다. 시현도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름대로 안배를 두고 조절을 했다. 무사할 것이다. 아마.”
호란은 금강에게 소리칠 때보다 두 배는 더 정색을 하고 시현을 돌아보았다.
“시문 님? 거기서 아마를 붙이시면 안 되지 않아요? 나름대로도 안 되지 않아요?”
시현이 시선을 피했다.
“아니, 나는 단을 믿으니까. 어떻게 잘 피했을 거다.”
“어떻게 잘이 뭐예요! 그리고 거기서는 시문 님 본인을 믿으셔야죠!”
“호란아, 눈앞에 적이 있다. 최대의 강적이다.”
“시문 님!”
호란이 점점 심각해지는 것과는 별개로 단에 대한 시현의 신뢰는 굳건했다. 그리고 현재 단은 신뢰에 부응하여 무사했다. 단 본인은 그런 신뢰를 절대로 받고 싶지 않았겠지만.
단은 아직도 뿌연 흙먼지 속에서 시현과 호란과 유에게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욕을 퍼붓고 있었다. 손끝 하나 다친 데는 없었지만 대신 간담과 심장이 떨어져 나갈 뻔했다.
“정말로 진짜로 남운관만 돌아가고 나면 저것들이랑 연 끊는다. 진짜로 끊는다. 내가 배겨낼 수가 없다.”
그가 움푹 들어간 벼랑 안쪽에 몸을 바짝 붙이며 투덜댔다. 단의 발치 바로 한 장 아래서 깊이를 알 수 없는 큰물이 잔물결을 만들고 있었다.
그가 몸을 숨긴 곳은 모두의 시야 밖, 남아 있는 절반의 절벽 아래쪽이었다.
싸움터를 피하기 전에 시현에게 눈짓으로 절벽 아래 내려가 있겠다는 뜻을 전해놓긴 했다. 하지만 그게 절벽 위는 전부 날려버려도 좋다는 뜻은 아니었다.
안 좋은 촉을 믿고 밧줄이 닿는 최대한 아래까지 내려와 둬서 다행이었다. 절벽 면에 쑥 들어간 곳을 찾아 몸을 의지하고, 타고 내려온 줄을 풀어 가까이에 고정해둔 것도 정말 잘한 일이었다. 아니었다면… 글쎄 어떻게 되었을지 굳이 생각해보고 싶지는 않았다.
저만한 지형 변화가 일어나는 와중에도 범위 밖의 지반이나 물이 전혀 요동치지 않은 점이나, 시현이 절벽 상부를 완전히 가루로 만든 덕택에 먼지만 좀 날리고 낙석이 없었던 것도 다행한 일에 속하긴 했다. 고마운 생각은 그닥 들지 않았다.
단은 벼랑의 요철을 붙들고 몸을 빼어 위쪽을 올려다보았다. 원래의 절반 높이가 된 벼랑 끄트머리에 마력회로의 몸체가 되는 매끄럽고 흰 암석이 길고 폭넓게 드러나 있었다.
일단 회로는 찾아냈다. 하지만 처음의 대재앙 이후 마법의 폭음이 이어지지 않는 것을 보면 본래 목표를 달성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단이 역할을 할 차례였다. 딱히 맡고 싶어서 맡은 역할은 아니었지만.
단은 회로가 있는 곳까지 절벽을 기어오를 가장 안전한 경로를 눈으로 찾으며 이게 단 자신이 부른 재앙인지 아닌지를 고민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번에는 자기 탓이 아닌 것 같았다. 완시현 그 음흉한 자식이 단이 못 참고 말을 꺼내는 걸 기다린 게 틀림없다. 그 인간의 뻔뻔함이라면 그러고도 남았다.
역할 분배가 이루어진 건 전날 밤이었다. 싸움이 가깝다고 생각한 단은 원석 궤짝을 꺼내기 쉽게 짐을 재배치하느라 바빴다. 옆에서는 시현이 패물한 마력석을 용량별로 구분하고 호란이 그것을 대련 여러 개에 나누어 담고 있었다.
일행이 지닌 마력석은 양이 어마어마했다. 마력석은 기운의 결정이라 고순도의 참석일수록 무게가 가벼워지는 성질이 있기 망정이었다. 평범한 물건이었다면 중간 크기 수레는 바닥이 빠졌을 것이다.
하지만 단은 비관과 부정을 생의 대원칙으로 삼고 있었다. 마력석 조금 많다고 흔들리면 그건 진정한 대원칙이라고 할 수 없었다.
“이번엔 돌 인간 놈들도 더 물러날 데가 없으니 사생결단을 하려 들 텐데, 마력석이 모자라지는 않을까?”
“모자랄 것이다.”
단이 표한 의구심에 시현이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호란이 놀라서 건네받은 돌을 떨어뜨렸다.
“네? 이렇게 많은데도요? 게다가 이게 전부 다 그 참석… 아주 센 마력석이잖아요.”
“하지만 돌 인간들도 점점 강해지고 있다. 귀수관의 싸움만 해도 그렇다. 그때 모조 원천의 힘이 아니라 마력석만 가지고 싸웠다면 승부의 향방을 알 수 없었을 것이다.”
그 말에 호란도 심각해졌다.
“그건 그래요. 모들만 봐도요. 속도나 완력 같은 신체 능력은 처음과 크게 다르지는 않아요. 하지만 제가 느낀 건….”
“저력이 다르다.”
“맞아요. 힘에 한도가 없는 것 같아요. 원래는 장군석 한 개 세우는 것만도 힘겨워했잖아요. 금강에게 힘을 받았다고 해도 좀 이상해요. 녹렴은 그 정도로 한없이 강해지진 않았었는데.”
“금강도 힘의 크기와 사용 방식이 점점 더 폭넓어지고 있다. 금강이 강해졌거나, 아니면 둘 다 강해졌을 것이다.”
단이 한숨을 쉬었다.
“싸우고 싸워서 겨우겨우 숫자를 줄여놨더니 남은 놈들이 강해지면 어떡해? 이건 반칙이지.”
시현이 생각에 잠긴 얼굴로 말했다.
“어쩌면 숫자가 줄어든 게 원인일 수도 있다.”
“그게 무슨 소린데?”
“우리가 다른 돌 인간을 쓰러뜨리는 만큼 남은 자들이 점점 더 강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다. 금강은 그들이 본질에서 연결된 존재라고 말한 일이 있다. 나는 그들의 본질과 정체에 대해 약간 생각해본 바가 있는데, 만약 그들이 힘의 근원 또한 공유하고 있다면.”
“인원이 줄어든 만큼 그 근원에서 한 사람이 가져다 쓰는 힘도 늘어난다는 거야?”
“비슷하다. 아직은 가설에 불과하지만…. 어쨌거나 다시 만났을 때 금강과 모들은 귀수관에서보다 더 강해졌을 거라 보아야 한다.”
호란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그럼 어떻게 해요? 마력석이 다 떨어지고 나면 싸울 방법이 없잖아요.”
“글쎄다. 원래라면 우리가 예정대로 목적지에 도달하기만 한다면 마력석 따위는 단 한 개도 필요가 없다. 그곳에는 이미 상상을 불허하는 양의 법력이 넘쳐날 테니까.”
“아, 돌 인간들이 모아놓은 마력 말이네요.”
“그러면 뭐 해? 그걸 네가 쓸 수 있게 놔뒀을 리가 없잖아, 상식적으로.”
단이 핀잔했다. 하지만 시현은 단을 보고 방긋 웃었다.
“그래서 단 네게 부탁이 있다. 나와 호란이 모들과 금강을 상대하는 동안 네가 법력이 숨겨진 곳을 찾아주면 좋겠다.”
“그걸 어떻게 찾는데?”
“어떻게, 잘.”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