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nk Rock: Regenerating World RAW novel - Chapter 346
34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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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호란
남운관은 그간 생각보다 잘 돌아가고 있었다.
어쨌든 완씨 선무가 그렇게 나쁜 총치총령은 아니었다. 그는 항상 반려와 아들과 함께 전장을 지켜왔고 남운관의 큰머리 재연과도 서로 신망이 두터웠다. 관성이 깨졌을 때 빠르게 퇴각을 결정하여 하늘인 부대의 본진을 개죽음시키지 않은 점도 신뢰를 샀다.
결과적으로 그는 내군을 제외한 여섯 하늘인 부대에 대해서는 그럭저럭 통솔력을 유지했다.
변고가 일어나고 시현이 떠난 직후, 선보는 사가로부터 마력석을 모아 관성 한가운데 진을 쳤던 장군석을 쓰러뜨린 후 관성을 수복했다. 단계적으로 물막이돌을 치워가며 수원을 다시 확보하고, 땅인들의 저택을 열어 주거지를 잃은 사람들을 받아들이게 했다.
온강 함씨가에서 지원이 오고서는 일이 더 순조로워졌다. 무엇보다 남방에는 유전과 소금 광산이 있어 타지와의 교류가 끊기지 않았다. 그건 생각보다 많은 것을 지탱하게 했다.
변고가 나고 가장 먼저 깨어진 곳도 남운관이었지만, 대홍수가 지나가고 가장 먼저 일어선 곳도 남운관이었다.
남운관에 돌아온 호란은 위의 신변을 온전히 지키지 못한 책임을 물어 시현의 호위 자리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하지만 곧바로 군 어디의 높은 자리로 올려보내졌다. 호란이 없는 동안 군 편제가 다 바뀌어서 뭐라는지 잘 모르겠지만 어디의 머리 비슷한 거였다.
대업이 어쨌느니 하는 명목으로 상급도 잔뜩 받았다. 못 내고 간 벌금 30금을 채우고도 한참 남았다.
그런 건 호란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동생 하란이였다.
경재는 호란의 목을 매달고 싶어 하기는 했지만 동생을 돌보겠다는 약속을 충실히 지켰다. 못 본 사이 하란이가 키도 많이 크고 제법 건장해져서 호란은 깜짝 놀랐다. 어릴 때 몸을 안 쓰고 커선지 자세는 별로였지만 기세만은 또래 중에 못하지 않았다.
“아픈 거 다 나은 거야? 경인 나리가 법술로 고쳐주셨어?”
호란이 묻자 하란이 쑥스러운 듯이 말했다.
“병은 이미 한참 전에 나았어. 경인 나리마님께서 날 보시자마자 진맥을 해주셨는데, 법술 안 써도 나을 수 있는 병이라 하시더라고. 그담부턴 약이랑, 침이랑, 보양이랑… 이것저것 많이 해주셨어. 기침이랑 숨찬 게 멎으니까 힘이 죽죽 붙더라.”
“그랬구나. 진짜 잘됐어!”
호란은 그저 기쁠 뿐이었다.
동생은 추선을 따라다니면서 일도 하고 있었다. 추선은 예전에 흥사원이란 정체를 알 수 없는 조직의 벼슬을 갖고 있었다. 그게 개편되어서 추선을 수장으로 두고 더 크고 더 정체를 알 수 없는 조직이 되었는데, 하란은 거기서 정보를 다루는 일을 돕고 있었다.
아직 한몫은 아니었지만 눈치가 빠르고 윗전들 상대로 예법을 잘 지킨다고 칭찬을 많이 받았다고 했다. 소리글자는 물론 뜻글자도 많이 읽고 쓸 줄 알게 되었고 봉급도 꽤 모아 놓은 모양이었다.
“정말 대단하다, 좀 있으면 몫꾼 돼서 독립하겠네. 그럼 너도 네 이름 뒤 자를 갖는 거야.”
호란은 뿌듯한 마음으로 말했다. 애초에 호란이 남운관에 온 것은 제가 책임진 동생을 한 사람의 몫꾼으로 만들기 위해서였다. 뜻하지 않게 훨씬 더 큰 일을 하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처음 가졌던 목표가 덜 중요해지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동생에게서는 호란이 상상도 못 해본 대답이 돌아왔다.
“그거 말야. 난 앞으로도 계속 지금 이름 쓸까 해.”
“뭐? 왜?”
“윗전들은 한번 외우신 이름 바뀌는 거 안 좋아하시거든. 누나 동생이란 게 자랑스럽기도 하고.”
“그래도 넌 몫꾼이 될 거잖아. 몫꾼이면 자기 이름을 가져야지!”
“에이, 어중간한 몫꾼 노릇보다 누나 동생이란 거가 훨씬 더 좋아. 남운관에 누나 모르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걸. 거석이 없어진 것도, 땅님들이 다시 법술이 쓰실 수 있게 된 것도 다 누나가 시문 나리마님을 잘 모신 덕택이라면서? 추선 어르신도 누나 칭찬을 얼마나 하시는데. 경인 나리마님 화만 풀리면 곧바로 누나를 흥사원으로 불러서 높은 자리 줄 거라고 그러셨어.”
하란은 주위를 살피더니 소곤소곤 덧붙였다.
“이건 비밀인데, 나중에 추선 어르신이 남운관 큰머리가 되면 누나가 흥사원 수장이 될 수도 있대. 그리고 있잖아 누나, 혹시 시문 나리마님께서 누나한테 성씨 같은 건 안 내려주셨어?”
호란은 경악했다. 동생이 자기를 제2의 가추선으로 만들려고 하고 있었다!
여기엔 자기 책임도 있었다. 세상을 구하러 간다고 동생을 방치했고 동생은 그동안 유해한 환경에서 유해한 문화를 접했다.
반 이상 한돌을 믿고 떠난 건데 한돌은 그새 무슨 심경의 변화를 겪었는지 추선의 부관 노릇을 하고 있었다.
그야 자기한테 많은 일이 있는 동안 한돌에게도 많은 일이 있었겠지만…. 아니 한돌은 추선을 그렇게 싫어했는데.
호란은 자신이 여행하면서 좀 물정을 배우고 성장했을 거라는 기대를 멀찌감치 치워버렸다. 여전히 세상은 알 수 없는 일투성이였다.
호란이 지휘하게 된 어쩌구 하는 부대는 남운관의 주둔군이 아니었다. 적색대와 약간 비슷하지만 규모가 더 큰 파견부대로, 땅인 행정관님 여럿을 모시고 남운관의 속령을 돌아다니면서 감독하고 문제가 있으면 바로잡는 것이 일이었다.
변고가 일어난 동안 관의 영향력이 닿지 않게 된 지역, 법이 안 통하고 하늘인이 횡포를 부리는 지역, 방랑족에게 점령당한 지역 등이 많았기에 할 일이 많았다.
처음에는 기껏 돌아온 남운관을 자꾸 떠나게 되는 것이 좀 아쉬우려나 싶었다. 한번 파견을 가면 하란도 단도 몇 달씩 못 보곤 했다.
하지만 호란은 곧 깨달았다. 자신은 여행하는 걸 좋아했다. 간 적 없는 길을 멀리까지 달리고 모르는 사람을 만나 친해지고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것이 좋았다.
아버지의 피가 흘러선지, 북방 끝까지 다녀온 경험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지금은 남운관 속령만 다니고 있지만, 나중에 또 더 멀리 가보자고 호란은 마음먹었다.
갔던 곳도 다시 가고, 안 갔던 곳도 새로 가고, 아무도 간 적 없는 곳까지도 갈 것이다.
세상엔 언제나 호란이 모르는 것이 아주 많았고 호란은 그 점을 싫어하지 않았다.
47. 권단, 그리고 모든
단이 완씨 저택 뒷문에 이르자 하늘인 문지기가 눈인사를 하고 길을 터 주었다. 미리 예정된 방문이라 따로 문답이 필요 없었다.
완씨 저택에선 일하는 사람이 잘 바뀌지 않았다. 3년째 드나들면서 문지기도 일꾼도 모두 얼굴을 익혔다. 저택 내부도 다 길이 익어 이제는 눈 감고도 다닐 수 있었다.
아무리 다녀도 눈에 안 익는 곳은 시현의 거처인 녹주당뿐이었다. 일각문을 넘어가면서 단은 눈을 가늘게 했다.
완씨 선무가 그새 정원 공사를 또 했다. 이젠 단도 뭐가 없어지고 뭐가 새로 생겼는지 구분하는 걸 그만두었다.
그만큼 헛된 시도를 거듭한 뒤에도, 댁 아들이 바깥출입을 안 하는 건 정원이 후져서가 아니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모양이었다.
총치총령이란 의외로 고독한 자리일지도 모른다. 그러게 그만 좀 해 먹고 내려오지.
비가 늘고 마력이 희박해진 후 세상은 바뀐 듯 바뀌지 않았다.
마법의 힘이 줄어들면서 땅인의 권력이 줄어들고 그만큼 하늘인의 목소리가 커지기는 했다. 하지만 세가 예전 같지 않은 건 어중간한 땅인들의 이야기였다. 남운관에서 완씨가의 세도는 여전했고 부와 권위는 오히려 더 커졌다.
세상에 마력이 많든 적든, 함씨 경인이 못 살리는 사람은 아무도 못 살리는 건 전과 똑같았다. 완씨 선무가 땅 위에 최강의 무력을 소유했다는 사실에도 이견이 제기되지 않았다.
비가 늘어 물산이 늘어나면서 완씨가가 소유한 광대한 토지의 이익도 함께 커졌다. 유전의 이익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러니 완선보가 자기 집 정원에 뭘 때려 박은들, 장차 조씨 휘무보다 오래 총치총령을 해 먹는다 한들 누구 하나 말릴 사람이 없었다.
단이 녹주당 앞에 이르자 시종 두 사람이 나와서 맞았다. 늘 보던 이가 늘 하던 말을 했다.
“다과는 이미 들여두었습니다. 머무시는 동안 주위에 사람이 없을 터이니 누구를 부르고자 하실 때는 문간의 끈을 당겨 종을 울리십시오.”
“네.”
“잘 부탁드립니다.”
“네.”
시종들은 단을 혼자 놓아두고 멀찍이 물러갔다.
이것은 딱히 단만 받는 특별 대우는 아니었다. 완씨 댁 작은 나리는 의원과 지압사를 비롯하여 자기 몸을 돌봐주는 사람이 올 때는 다른 시종들을 철저히 멀리 두었다. 안경사도 거기 들어가나 싶어질 때가 있었지만 작은 나리가 넣고 싶으면 넣는 거였다.
다과상이 놓인 거실은 분합문이 활짝 열려 정원이 넓게 내다보이고 기분 좋은 바람이 들고 있었다. 하지만 사람 모습은 없었다.
단은 일부러 발 소리를 내면서 내실로 다가갔다.
장지를 열자 보료 대신 깔린 금침에 시현이 등을 돌리고 누운 것이 보였다. 그는 단이 들어오는 소리를 듣고도 꼼짝도 하지 않았다.
“사람이 왔는데 쳐다라도 보지?”
단이 앞에 가서 책상다리를 하고 앉으며 물었다. 시현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
“이보세요? 완씨 작은 나리?”
“왜 이제서 왔느냐. 아침부터 기다렸는데.”
그제야 잔뜩 토라진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단이 대답했다.
“약속한 시간에 딱 맞게 온 건데.”
“도대체 뭐가 그렇게 바쁜 것이냐? 기다리는 것을 뻔히 알면서, 좀 자주 오고 일찍 온다고 그 공방이 망하기라도 하느냐?”
시현이 벌컥 짜증을 내면서 요에서 몸을 일으켰다.
길고 치렁치렁한 홍색 머리칼이 어깨를 타고 흘러내렸다. 햇빛을 받지 않아 더 하얘진 얼굴이 이쪽을 보았다.
시현은 이제 스무 살이었다. 선이 잘 뻗은 얼굴에 청년 태가 완연했다. 키도 단하고 두 치 차이밖에 안 났다.
하지만 사람은 뭐랄까… 좀 유치해졌다.
시현은 원래도 아픈 걸 잘 못 참았지만 이젠 불편한 것도 귀찮은 것도 서러운 것도 다 못 참았다. 낯가림을 하고 사람을 피하다가도 아무 앞에서나 감정을 터뜨리고 눈물을 흘렸다.
거기다가 총치총령은 부업으로 돌리고 자식새끼 오냐오냐를 직업으로 삼은 완선보가 전력으로 부채질을 하고 있었다.
단은 정기적으로 그 피해를 보는 사람 중 하나였다.
시현이 원망하는 얼굴로 단에게 투정을 던졌다.
“호란이는 전갈도 없이 들어왔다가 전갈도 없이 파견 나가고. 너는 바쁘다며 일 있을 때밖에 오지 않고. 둘 다 이제 나 따위는 상관하기 귀찮은 거지. 너희는 사는 게 퍽 재미있을 테니까.”
단은 무시하고 말했다.
“시력 좀 보자. 지난번 안경도 꺼내 봐.”
“결국은 내 말 상대조차 하기 싫어졌구나. 일만 얼른 마치고 가버릴 셈이구나.”
“일 먼저 하고 그다음에 차 마실 거야. 항상 그랬잖아.”
단이 날로 드넓어지는 인내심으로 말했다.
그가 안경알 상자를 열고 검안표와 난시표를 펼치자 시현도 불퉁한 얼굴로 안경집을 꺼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