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nk Rock: Regenerating World RAW novel - Chapter 7
007화
* * *
“어리석은 소인의 생각으로는….”
무심코 대답하려던 추선은 화들짝 놀라 다시 바닥에 엎드렸다.
“자, 잘못하였습니다! 삿된 생각을 덧붙이지 않겠습니다! 명하신 데 말을 붙이지 않겠습니다!”
“이제야 깨달았구나.”
시현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는 시선을 돌렸다.
“모두 알아들었으면 오늘은 물러가라.”
추선은 뒷걸음질로 자리를 떴다.
고작 반 각 남짓 어린 주인 앞에 섰을 뿐인데 이미 등에 진땀이 흘렀다.
내일부터는 저이를 종일 모셔야 한다.
저이의 맘에 맞을 호위를 가려 뽑는 것도 일이다.
머리에 산을 통째로 올린 기분이었다.
4. 3일 전
먼외측 이군 십칠 열 다섯째발! 삼직 막번! 드디어 외웠다!
호란은 뿌듯했다. 이젠 추선은 물론 누가 물어도 더듬대지 않고 대답할 수 있다.
남운관의 하늘족 군대는 실력과 공적에 따라 급을 나눴다.
실력과 공적을 못 쌓은 대열은 오군, 공을 쌓은 숙련병 대열은 일군이다.
마찬가지로 몫이 적은 병사는 오직, 실력이 가장 출중한 병사는 일직이 된다.
호란이 들어오자마자 이군 대열에 삼직으로 배치된 것은 아웅 대장이 호란을 아주 좋게 보았다는 뜻이었다.
첫날 사고를 쳐서 입소문을 타기는 했지만 호란은 십칠 열에 순조롭게 적응했다.
호란이 항상 말하지 않는가. 몫꾼 싫어하는 하늘인은 없다!
의외였던 것은 먼외측 몫꾼들 사이에서 추선의 평판이 최악이라는 것이었다.
추선에게 밉보였다는 말에 오히려 사람들이 호감을 보일 정도였다.
“말해 뭐 해. 추선 이름만 들어도 밥이 맛없다!”
십칠 열 머리인 타호가 투덜댔다. 정찰을 마치고 막 군영으로 돌아온 참이었다.
타호는 갓 스물다섯이 된 남자였는데 키가 아주 크고 달리기가 빨랐다.
둘째발 한돌과 넷째발 채련이 차례로 말을 받았다.
“웃전들 꼬랑지에 붙어 다닌다고 저도 땅인인 줄 알아, 아주.”
“호위랍시고 긴 옷 입고 젠체할 줄이나 알지. 그딴 것도 몫인가?”
“왜애, 그 높으신 나리들 비위 맞추는 게 보통 몫인가, 아무나 못 하지!”
타호가 다시 말하자 훈련장에 있던 꾼들이 모두 왁자하게 웃었다.
호란은 조금 당황했다.
호란은 추선이 대단한 몫꾼일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 경인 나으리와 시문 나으리를 모신다는 것도 그렇지만 척 봐도 기세가 보통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렇게 몫꾼들의 웃음거리가 되는 걸 보면 추선은 겉보기만큼 몫을 못 하는지도 몰랐다.
“누가 터진 입을 함부로 놀리느냐!”
째지는 소리로 외친 것은 중년의 하늘인 남자였다.
검은 수염을 기르고 화려한 비단옷을 입은 남자가 하늘인 열댓 명을 이끌고 훈련장으로 걸어 들어왔다.
십칠 열은 물론이고 주위의 다른 대열까지 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타호가 몸 둘 바를 몰라 하며 머리를 수그렸다.
“아, 아이고 일직 어른, 그것이 아니오라.”
호란은 따라서 머리를 숙이면서 남자를 곁눈질했다.
일직이라면 숙련병일 텐데, 중년 남자의 근골은 어째 부실해 보였다. 기세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데도 다들 땅님이라도 대하는 양 쩔쩔매고 있었다.
“너희 대장을 불러와라! 본보기로 모조리 주둥이를 찢을 것이다!!”
남자가 씩씩거렸다. 남자를 따라온 무리도 기세등등하게 눈을 부라렸다.
“대장 여기 왔소. 무슨 일이외까?”
관아 쪽에서 아웅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반색하며 고개를 들었던 호란은 곧바로 다시 고개를 처박을 수밖에 없었다.
계단을 내려오는 아웅의 옆을 추선이 따르고 있었다.
아웅이 다가와 물었다.
“황선 원사 아니오? 어찌 그리 성이 났소? 우리 아이들이 무례라도 범했소이까?”
“무례다 뿐이오! 이것들이…. 이것들이….”
남자는 말을 하다 말고 입만 뻐끔대며 추선과 십칠 열을 번갈아 보았다.
추선 앞에서 험담을 바로 전하기가 민망한 모양이었다.
사정을 눈치챘는지 추선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난처하게 된 중년 남자가 냅다 소리쳤다.
“이것들이… 입으로 땅님을 범했소!”
“아, 아닙니다! 저희가 어찌 감히!”
“아닙니다! 절대 그런 일이 없습니다!”
다들 혼비백산했다. 땅님을 능멸한 죄는 추선을 욕한 일에 댈 바가 아니었다.
십칠 열은 물론 훈련장의 다른 몫꾼들까지 큰 소리로 빌며 무실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소리가 커지자 주위의 시선이 몰렸다.
일이 커지면 추선의 망신만 늘어날 뿐이다.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진 추선이 소리쳤다.
“중한 일을 다루려는 참에 이게 무슨 소란이오! 쓸데없는 사람은 모두 물리시오! 치죄할 바가 있으면 나중에 사람 없는 데서 하시오!”
“그 말이 옳소.”
아웅이 답하고 무리에게 호령했다.
“모두 제 위치로 가라! 팔 열과 십칠 열만 남는다!”
남으라는 말에 십칠 열은 모두 눈치만 보았다. 팔 열 꾼들도 안색이 변했다.
호란은 망했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눈가림이라도 해볼까 하고 타호의 뒤로 숨었다.
사람들이 흩어지자 추선이 중년 남자를 향해 입을 열었다.
“황선 오랍, 어찌 여기까지 왔소? 내가 오후에 대군영에 들른다 하지 않았소.”
“크, 크흠. 추선 누이가 바쁠까 해서 그랬소이다. 뽑을 만한 사람을 데려왔으니 한꺼번에 정하면 좋지 않겠소.”
남자가 제 뒤에 선 남녀 장정을 턱짓했다.
다들 추선을 향해 눈을 빛내고 있었다.
추선은 속으로 이를 갈았다.
애당초 시문의 호위 뽑는다 소릴 오라비에게 한 것이 잘못이었다.
연줄에 눈이 벌게진 허섭스레기만 잘도 모아 가지고 왔다.
평소라면 적당히 오라비 뒤를 봐줬겠지만 이번 일은 다르다.
아무나 뽑아갔다가 그 시문에게 책이라도 잡히면 피 보는 건 추선 혼자였다.
추선은 부러 오라비를 외면하고는 아웅 쪽을 보았다.
아웅이 먼외측 꾼들을 가리키며 설명했다.
“일군 열여섯 명 대열 하나, 이군 다섯 명 왼대열 하나야. 이직부터 사직까지 섞여 있지만 다들 실력은 좋아.”
“아웅 네 추천이라면 누군들 부족하겠냐마는. 이렇게 많이는 필요 없어. 다섯 명만 뽑을 거야.”
“그러면 왼대열 하나를 통째로 데려가. 잘난 놈 열 명보다 합 맞는 다섯 명이 낫지.”
십칠 열은 서로 마주 보았다.
뽑는다느니 데려간다느니 하는 걸 보면 벌을 주려고 남긴 것이 아니라 무슨 임무를 주려는 모양이었다.
호란은 조금 안심이 되어 슬그머니 타호 뒤에서 나왔다.
그런데 황선이 불만스러운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아니, 사직이라니? 이렇게 중한 일을 삼직, 사직짜리가 감당하겠소? 일직, 못 돼도 이직은 되어야지!”
턱도 없는 트집에 십칠 열 꾼들의 얼굴이 굳어졌다.
왼대열은 특별하게 뽑은 정예다. 쌓은 경험에 따라 직을 나눠놓기는 했어도 일반 대열 몫꾼들보다 떨어지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황선도 다 알면서 일부러 깎아내리고 있는 것이었다.
불쾌한 얼굴이 된 것은 추선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원래 오라비네 꾼들을 쓸 마음이 없었다.
오라비를 따라다니는 몫꾼들은 태반이 맹탕일뿐더러, 소속은 대개 내군이었다.
내군은 시내에서 민심을 단속하고 관의 명을 집행하는 것이 임무라 성 밖 호위에는 맞지 않았다.
그런데 오라비가 이렇게까지 나오니 묵살할 수가 없었다.
추선이 종일 경인 뒤에만 붙어 있으면서도 군과 관의 오만 일에 간섭하고 이문을 챙길 수 있는 것은 두 오라비가 손발이 되어주고 정보를 물어다 주기 때문이다.
사람들, 특히 아웅과 그의 쟁쟁한 몫꾼들 앞에서 오라비를 무시하는 것은 추선의 팔을 스스로 꺾는 일이었다.
이렇게 된 것 오라비 사람을 한둘이라도 뽑아서 체면치레를 해줘야 했다.
추선은 무뚝뚝하게 말했다.
“아웅 대장이 다섯을 추천했으니, 오랍도 다섯을 추천해 보시오. 누구를 염두에 두셨소?”
황선이 계면쩍은 듯 헛기침을 하더니 말했다.
“어흠, 물론 나도 갈 것이고….”
추선은 대놓고 안색을 바꾸었다.
이제 보니 제 수하만 밀어 넣으려는 것이 아니었다.
이 작자가 문에게 직접 줄을 댈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는 급히 황선을 말렸다.
“오랍, 오랍은 내군서 중책을 맡았는데 어찌 성을 비우겠소. 그리고 이 일에는 성 밖 정찰 경험이 많은 이들이 필요하오. 왼대열과 섞어 아랫사람을 보내는 것이….”
“무슨 소리! 먼외측 왼대열이라면 밤낮 밖으로 나도는 천둥벌거숭이들 아니야! 제들이 웃전 모시는 법을 어찌 알며, 어찌 문을 편안히 모시겠소? 예와 법도를 아는 이가 수행함이 옳소!”
“문이요? 시문 나리요?”
호란은 무심코 목소리를 냈다가 추선과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그제야 호란을 발견한 추선의 표정이 굳어졌다.
하지만 지금 그는 호란을 신경 쓸 때가 아닌 모양이었다.
결국 추선은 황선에게 언성을 높이고 말았다.
“오랍, 입이 방정맞소!”
“뭐, 뭐 어떻소? 비밀도 아닌데…. 문께서 친히 물산을 살피신다는데, 마땅히 널리 알리고 최고의 수행을 붙여야지! 아무나 붙였다가 모자람이라도 있으면….”
추선이 곧바로 눈을 부라렸다.
“오랍! 호위대의 머리는 나요! 오랍이 붙인 사람이 없으면 내가 웃전을 제대로 못 모실 거란 뜻이오?”
“아니아니, 내 말은 그런 게 아니고….”
남매가 실랑이하는 사이 십칠 열과 팔 열 꾼들은 전부 표정이 달라져 있었다.
세상에, 지금 추선은 다른 사람 아닌 시문의 호위병을 뽑으러 온 거였다!
먼외측 꾼들은 하나같이 추선을 싫어했고 땅님들도 마뜩잖게 여겼지만 완씨 시문은 달랐다.
그이는 남운관에서 신이나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호위라니, 평생의 영광이다. 직이 올라갈지도 모른다.
공이라도 세우면 팔자가 바뀔 터였다.
십칠 열은 모두 등골에 힘을 주고 앞으로 나섰다.
아까는 없는 척하던 팔 열 꾼들도 조금이라도 눈에 띄려고 어깨를 폈다.
가장 흥분한 사람은 호란이었다.
호란은 시문에게 두 사람 몫의 목숨 빚이 있었다.
하늘 아래 몫꾼을 자칭하려면 피를 뽑고 살을 베어서라도 그 은혜를 갚아야 했다.
방금 전 추선이 호란을 보고 인상을 쓰지만 않았더라면 호란은 이미 제가 하겠노라고 뛰쳐나갔을 것이다.
호란은 가능한 가장 호의적인 웃는 얼굴을 하고 추선에게 열렬한 시선을 보냈다.
따지고 보면 추선이 호란을 그렇게까지 싫어할 이유가 뭐가 있겠는가?
어쨌든 호란은 시문께서 인정한 몫꾼이다.
아웅 대장이 호란이 그동안 일을 잘했다고 말해줬을지도 모른다.
이제부턴 존댓말도 꼬박꼬박 쓸 것이다!
하지만 추선은 호란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아웅한테 말했다.
“이 중에 누가 이직이야? 이직 이상만 따로 모아 줘.”
이직만 뽑아간다면 호란에겐 가망이 없었다.
다행히 아웅은 딱 잘라 거절했다.
“안 돼. 이직은 다 머리 아니면 허리야. 이직만 쏙쏙 빼 가면 두 대열을 다 제대로 못 굴리게 되잖아.”
“고작 이틀인데 대열 한둘 쉬면 어때서. 난 최고를 데려가야 한단 말이야.”
“최고를 원한다면 이직만 빼가는 건 더욱 안 될 말이지.
알잖아? 몫꾼이 제 몫을 한다는 건 대열 안에서 역할을 한다는 뜻이야. 혹시 대열에 선 지 너무 오래돼서 다 잊어버렸나?”
도발적인 말에도 추선은 기분이 상한 것 같지 않았다.
오히려 미소를 띠고는 아웅에게 물었다.
“너라면 어떻게 하겠어?”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이미 다 해줬어.”
호란의 마음에 희망이 살아났다.
아웅 대장은 십칠 열을 통째로 데려가라고 말했다! 호란까지 통째로!
추선이 먼외측 꾼들을 향해 말했다.
“십칠 열이 누구누구냐? 나와서 이름과 직을 대라.”
머리인 타호부터 나서서 우렁차게 이름을 댔다.
추선이 천천히 그들을 살펴보았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