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nk Rock: Regenerating World RAW novel - Chapter 78
078화
* * *
“아니야…. 아아니야! 계순이랑 영대는 우리도 이번에 처음 만났… 큭….”
정구가 몸을 뒤틀며 사정했다. 채씨가 안색을 바꾸며 소리쳤다.
“아니, 호위님들 다들 오래 안 사이라 하지 않으셨습니까! 연씨가 정구 호위님을 보증해서, 다른 일행도 다 같이 믿고 계약한 건데….”
정구가 눈을 피하며 중얼중얼 말했다.
“그건… 닷 명 대열은 되어야 상단에서 잘 써주니까….”
“으아아아아아아!”
길은 미친 사람처럼 절규하더니 정구를 내팽개치고 벌떡 일어섰다.
그는 도망치는 교도들을 쫓으려고 몇 발짝 내딛다 약 기운이 심하게 도는지 휘청거리며 땅을 짚었다.
채씨가 달려가서 다리에 매달렸다.
“안 된다 길아! 따라가면 너까지 죽어!”
“시끄러워어!”
길은 채씨를 질질 끌고 앞으로 가려 했지만 큰 몸을 주체를 못 하고 계속 고꾸라졌다.
단도 길에게 달려갔다. 하지만 그는 길을 붙잡지도 돕지도 못했다.
채씨가 다시 사정했다.
“길아 제발. 너라도 살아야지! 이미 늦었어….”
“아니야, 아니라고!”
길은 악을 쓰더니 옆에 선 단을 덥석 붙잡았다.
단은 휘청 흔들린 채 길을 내려다보았다.
“안 늦었지, 그렇지 단아? 너는 똑똑하잖아. 뭐든지 다 알잖아. 방법이 있다고 해줘. 어디로 가야 되는지 말해줘….”
길이 절실하게 매달렸다. 단은 백지장 같은 얼굴로 입술을 떨 뿐 대답을 못 했다.
“늦지 않았다.”
호란의 등 뒤에서 말한 것은 시현이었다.
길이 눈이 번쩍 해서 뒤를 돌아보았다.
시현은 길에게 다가가 한쪽 무릎을 꿇었다. 그가 길의 눈을 보며 말했다.
“그 계순이란 자가 땅인을 죽이는 것만이 목적이었다면 일꾼들과 같이 네 주인을 죽이고 버려두었을 것이다. 굳이 약을 먹여 데려간 것은 바로 죽이지 않을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아직 시간이 있다.”
길은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시현이 엄하게 말했다.
“그러니 해독부터 하고 정신을 차려라. 네 주인을 구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니 그만큼 더 침착해야 한다.”
“예, 예 나으리…. 예 나으리!”
길의 얼굴이 울 듯 일그러졌다.
시현은 벌떡 일어서서 채씨를 채근했다.
“무엇 하느냐? 어서 의원을 불러서 길과 호란을 돌보게 해라!”
“예, 예!”
채씨가 허둥지둥 의원을 불러왔다.
길이 처치를 받는 사이, 시현은 단에게 다가가 말했다.
“호란과 길이 몸 성한 상태가 아니니 쫓는 것이 쉽지 않겠구나. 때에 맞게 쫓는다 해도 그 후가 더 문제다. 남은 마력석이 많지 않다. 무슨 생각이 있느냐?”
단은 멍한 얼굴이었다. 그가 더듬더듬 물었다.
“나리님…. 사예 님을 구하러 가실 겁니까? 나리님께서 직접요?”
시현이 얼굴색을 흐렸다. 그가 길에게 들리지 않게 낮게 말했다.
“극히 가망이 적은 것도 극히 위험한 일인 것도 알고는 있다. 허나….”
시현은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고심하는 얼굴이 되었다. 그가 고개를 들고 단에게 물었다.
“어찌 생각하느냐?”
“저요…?”
단의 목소리가 떨렸다. 시현은 그를 똑바로 보았다.
“나는 품은 목적 하나가 있어서 여행을 하는 것이니, 도중에 뜻하는 것을 다 이룰 수는 없음을 안다. 안 될 일이라면 포기할 수밖에 없겠지.
그러나 될 가망이 있는 일이라면, 대의를 핑계로 쉽게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것도 안다.
더구나 두 사람은 네가 친애하는 이가 아니냐. 이대로 아무것도 안 하고 최길을 보내면 네 마음이 어떻겠느냐.”
단은 목에 뭐가 막힌 듯한 얼굴을 했다. 그가 이마를 감싸쥐었다.
시현이 다시 물었다.
“어찌 생각하느냐. 가망이 있다 보느냐?”
“모르겠어요…. 아직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단이 입술을 깨물더니 시현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그가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방법을… 생각해보겠습니다. 어떻게든 생각해낼 테니까. 제가 길이를 돕게 해주세요….”
시현이 눈썹을 실그러뜨렸다.
“단, 내가 이미 네 생각을 물었다. 고개를 들고 일어서서 말하거라.”
하지만 단은 일어서지 않았다.
시현은 얼굴을 돌려 채씨를 보았다.
“몸 가볍게 움직일 수 있는 외바퀴수레가 상단에 있느냐?”
“예! 준비하겠습니다!”
채씨가 바로 답했다. 그는 시현이 사예를 도우러 간다는 이야기에 말을 얹지도 빼지도 못하고 옆에서 안달을 하고 있었다.
시현이 한 번 더 물었다.
“류사예는 네 호위이고, 네 상행을 돕다가 어려움에 빠졌다. 내가 그이를 구하려 하는데 다른 호위나 무엇 지원을 더해줄 수 있느냐?”
채씨는 침을 꿀꺽 삼켰다.
그는 난장판이 된 상단 무리를 한 번, 정구를 한 번 보고 마지막으로 길을 한 번 보았다.
그가 정구에게 물었다.
“호위님, 혹시… 남은 세 분이라도 함께 가주시겠습니까?”
정구는 곤란한 듯 얼굴을 찌푸렸다.
“그것은 계약 밖이야. 나도 목숨이 아깝다.”
“추가금을 드리면 어떻겠습니까? 저도 이미 파산 직전이라 큰돈은 약속을 못 드립니다만….”
“돈 문제가 아니라… 중과부적이오. 그 땅님 일은 안됐지만, 솔직히 가망이 없다고 생각해.”
정구의 얼굴은 어두웠다.
정구 곁에 남은 두 사람의 하늘인 호위도 말이 없는 걸 보면 같은 생각이었다.
채씨가 물었다.
“그러면 우리 상단이 무리를 추슬러 남하하는 데는 함께해 주시겠습니까?”
“그건 계약된 일이니 당연히 해야지.”
“알겠습니다. 저도 거인교도와 내통한 두 명에 대해서는 더 책임을 말하지 않겠습니다.”
채씨가 시현을 향해 돌아서서 머리를 조아렸다.
“나으리. 나으리께서 돌보아주지 않으셨으면 지금 여기 살아남은 사람이 한 명도 없었을 걸 압니다. 제가 길이에게도 목숨 빚을 여러 번 졌으니 이 일을 외면할 수가 없습니다. 다만, 제가 미력하여 해드릴 수 있는 것이 너무 없습니다.
상단의 다른 사람들도 건사해야 하므로 호위를 차출하기는 어렵습니다. 제가 류사예 님과 계약을 연장하면서 혹시 하여 마련해두었던 마력석이 몇 개 있으니 미진하나마 내어드리겠습니다.
우리는 나으리와 류사예 님의 짐을 건사해서 서쪽 홍지마을에 가 있겠습니다. 해 뜰 때부터 세어 사흘을 기다릴 테니 꼭 무사히 돌아오십시오.”
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정성을 보였음을 안다. 신의를 잊지 않으마.”
“저, 마력석 말인데요.”
지혈을 마친 길이 시현과 채씨에게 다가왔다.
그는 상태가 훨씬 나아 보였다.
의원은 물에 든 수면제가 무엇인지 파악해내지는 못했지만 대신 길과 호란에게 각성제를 내어 주고 상처를 처치해주었다.
“사예 님도 마력석을 넣은 패물을 갖고 계셨어요.”
길의 말에 채씨가 놀라 물었다.
“정말이냐?”
“돌 안에 기운 도는 것이 좋다고 전부터 노리개 삼아 지니시던 것이 하나, 변고 후에 제가 호신을 위해 마련해드린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지금도 갖고 계실 텐데….”
채씨가 끄덕였다.
“그래. 약으로 의식을 잃지만 않으셨으면, 애초에 그런 자한테 끌려가실 분이 아니지. 몸을 지킬 수단을 지니신 건 잘된 일이다. 의식만 돌아오시면….”
단은 현을 데려와서 거인교의 근거지 위치를 묻고 있었는데, 길과 채씨가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신경 쓰이는 얼굴이 되었다.
단이 일어서며 말했다.
“아니, 그건 그거대로 좀 큰일인데. 사예 님이 깨자마자 앞도 뒤도 안 보고 그놈들한테 불질러버리면 어쩌지? 황야 한가운데서…. 그 계순이란 자도 도망치면서 패거리를 지었을 텐데….”
채씨도 길도 겁먹은 얼굴이 되었다. 길이 황급히 말했다.
“어, 얼른 가자. 얼른 쫓아가자!”
단과 채씨가 부리나케 짐을 챙기러 움직이고, 호란은 채씨가 꺼내준 외바퀴수레를 끌어왔다.
누구 한 사람 빼놓지 않고 마음이 급했다.
* * *
사예는 의식이 가물가물 돌아오는 것과 동시에 울컥하는 짜증을 느꼈다.
누군가가 저를 짐짝처럼 메고 빠르게 달리고 있는데, 어깨에 배가 눌려 온통 아프고 불편했다.
급하게 어딜 가는지 몰라도 사람을 이렇게 불편하게 데려가다니.
일단 이 사람은 길이가 아니고, 하는 짓이 본데없는 놈이었으며, 길이가 남의 손에 저를 맡길 리가 없으니 지금 상황은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었다.
사예는 배에 힘을 꽉 주고 몸을 돌리며 저를 멘 사람의 콧구멍을 향해 손가락을 쭉 뻗었다.
“우와, 뭐야 이거!”
사예를 떠메고 가던 사람이 당황해서 그를 밀쳐내 버렸다.
땅바닥이 훅 눈앞으로 다가왔다.
사예는 몸을 둥글게 말고 구르며 충격을 줄였지만 그래도 아팠다.
사예는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어 떨어진 데서 벌떡 일어났다.
땅에 구른 것과는 또 다르게 머리가 띵하고 맑지 않았다.
콧구멍을 찌르는 데 실패한 것도 짜증 났다.
“땅인, 정신이 들었나? 반항할 생각은 하지 마.”
저를 떠메고 가던 중년의 남자가 사예의 손끝에 긁힌 얼굴을 문지르면서 으르렁거렸다.
사예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무것도 없는 황야였고, 자기는 기세등등한 하늘인 여섯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하나는 계… 계선이던가? 계실이던가? 하는 상단 호위였고 나머지는 다 처음 보는 하늘인들이었다.
달이 중천에 오른 걸 보면 아까 잠든 지 시간이 꽤 흘러 있었다.
이마를 누르며 사예가 불평했다.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나한테 약 먹였냐? 길이는? 상단 사람들은?”
“알 거 없어. 이리 와!”
계 누구가 성을 내며 사예에게 손을 뻗었다. 사예는 한 발 물러서며 말했다.
“길이는 무사하구나. 너 길이 보면 맨날 뒤에서 눈 부라리던데, 길이가 죽었으면 나 약올리는 말이라도 한마디 했겠지.”
“닥쳐!”
계 어쩌구… 음, 계실이라고 부르기로 하자. 계실은 더 화가 난 얼굴이 되어 사예를 확 끌어당겼다.
사예는 얼굴을 찡그렸다. 저항을 하기에는 상황이 안 좋았다.
마력석은 있었지만 놈들은 여럿이고 긴 주문을 외울 시간이 없었다.
화염 마법은 단발로 적의 숨을 끊기에는 효율이 적었다.
잘못했다간 화상 입고 광분한 미친놈들만 여럿 만들고 끝날 수 있었다.
일단 여기가 어딘지도 모르고 상황도 몰랐다.
분명 상단에서 말을 쉬게 한다고 수레를 세웠는데, 뭘 좀 먹고 숙면한 거 말곤 아무 기억이 없었다.
아마도 나눠받은 물에 지효성의 수면제 같은 것이 들어 있었을 것이다.
물을 안 먹고 수레 구석에 숨겨놓은 술을 먹었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 역시 물이 술보다 몸에 해로웠다.
중년의 남자가 사예에게 물었다.
“이왕 깼으니 물어보자. 그 상단에 너 말고 다른 땅인이 몇이나 있었나? 벼락 마법은 누가 쓴 거냐?”
계실이 억울하다는 듯이 외쳤다.
“그 마법을 보고도 안 믿어? 거기 완씨 시문이 있었다고! 다들 목숨 건진 것만도 횡재라고!”
무리가 수런수런 말을 주고받았다.
“아니 시문은… 말도 안 되지. 그런 조그만 상단에 무슨 문이 있어?”
“그래도 그 마법은 정말 엄청났잖아.”
“시문이든 아니든, 땅인을 놓아두고 온 게 잘 한 일일까? 사명을 다 못 했으니 교주님께서 좋아하지 않으실 텐데….”
“그래도 어떡해, 거기서 더 덤볐으면 우리 다 죽었어! 난 목숨 건진 것만도….”
사예가 사람들 수런이는 것만 보고 있을 뿐 답을 하지 않자 중년 남자가 성질을 버럭 냈다.
“동료 감쌀 생각 하지 말고 순순히 불지 못해? 땅인이 얼마나 있었어? 정말 시문이야, 아니면 다른 놈이야?”
사예는 남자를 멀뚱히 보면서 물었다.
“내가 어떻게 대답하면 좋겠어? 너네 원하는 대로 최대한 맞춰 줄게.”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