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unk Rock: Regenerating World RAW novel - Chapter 80
080화
* * *
단이 담요를 털어다가 시현에게 머리부터 뒤집어씌웠다.
“되도록 누가 수레 안 들여다볼 상황을 안 만들 거고요. 상황에 따라서 환자가 있다고 할 겁니다. 그냥 누워서 웅크리고 가만히만 계세요.
어차피 나리님께서 나서실 일이 생기면 그땐 볼장 다 본 거니 들키든 말든 상관도 없고요.”
시현은 고개를 끄덕인 다음 몸을 숙여 수레로 들어갔다.
말은 안 했지만 모두가 비슷한 생각이었다.
시현이 할 일이 없고, 괜히 여기까지 따라왔다로 끝나면 그게 가장 좋은 거였다.
상단에서 출발할 때, 단은 쓰임이 있을 거라며 포목과 곡식 자루 등 이것저것을 상당히 싣게 했다.
단은 그 물건들을 잘 배치한 다음 수레 덮개의 각도를 푹 낮추어버렸다.
그렇게 하니 휘장을 치지 않았는데도 안에 누가 있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았다.
일행은 수레를 끌고 교도 무리로 접근했다.
일없이 앉아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하늘인 두엇이 어슬렁어슬렁 다가왔다.
단은 일부러 어설프게 두리번거리며 물었다.
“여기가 거인교 본회라고 듣고 왔는데 맞습니까?”
“맞다. 입교자들이냐? 너희는 어디서….”
“하이고, 드디어 도착했군요! 이렇게 멀 줄은….”
단은 당장이라도 주저앉을 듯 과장되게 숨을 토했다.
하늘인들은 무얼 물으려는 눈치였으나 단은 틈을 주지 않고 반색하는 얼굴로 물었다.
“입교자는 다 받아주나요? 어디로 가면 됩니까? 입교비는 누구한테 냅니까? 여기 이 나리는 하늘인이신데 반민이랑 하늘인이 입교비가 같습니까?”
쏟아지는 질문에 교도들은 역으로 얼떨떨해졌다.
그들이 얼굴을 마주보며 서로 물었다.
“입교비? 그런 게 있어?”
“못 들었는데? 반민은 내나?”
“요즘 오는 놈들한텐 받나?”
바로 대답이 돌아오지 않자 단은 노골적으로 실망하는 얼굴을 했다.
“아, 잘 모르시는군요…. 그럼 어디 가서 물어보면 됩니까?”
교도들은 좀 욱한 것 같았지만 무리에 호란이 있어선지 거칠게 나오지는 않았다.
“교도단 놈들이라도 찾아보든가!”
제일 체격이 큰 남자 한 명이 퉁명스럽게 말하며 등을 돌렸다.
호란은 이제 놈들을 놔두고 무리에 들어가면 되겠다 싶었는데 오히려 단은 그 사람을 딱 찍어서 졸졸 따라갔다.
“에이, 그러지 마시고요. 그래도 저희보다 하루라도 먼저 입교하셨을 거 아닙니까. 좀 이끌어주십시오.”
단이 목소리를 낮추더니 은근하게 속닥였다.
“교도단도 다 같은 교도단이 아니고 사제도 다 같은 사제가 아닌 거 나리도 아시지 않습니까. 어떻게 잘 이어주세요. 저희가 작정을 하고 여길 왔는데, 입교비와 공물 바치고 남으면요…. 예?”
단에게 붙잡힌 남자는 길이 끌고 있는 수레를 흘깃 곁눈질하더니 물었다.
“먹을 것 좀 갖고 있냐?”
단이 더 목소리를 작게 했다.
“아무렴 빈손으로 왔겠습니까. 뭐 대단한 양은 아닙니다만….”
남자는 코를 실룩이더니 호란을 보고 말했다.
“따라오시오!”
남자는 일행을 데리고 무리 안쪽으로 쑥쑥 들어갔다.
처음 그와 같이 나섰던 두 명의 하늘인도 얻어먹을 게 생긴 걸 알고 수레를 양쪽에 지키듯 하며 따라왔다.
사람들의 시선이 쏟아졌지만 교인의 안내를 받고 있으니 누가 뭘 묻거나 시비를 걸어오지는 않았다.
짐이 실린 수레를 보고 슬슬 따라오려고 하는 사람들은 일행을 안내하는 하늘인들이 눈을 부라리고 눈총을 주어 못 쫓아오게 했다.
자기들이 선점한 것처럼 여기게 된 모양이었다.
무리 깊숙이 들어가면서 호란은 내심 긴장했다.
근거지는 넓고 교도 무리는 생각보다 더 수가 많았다. 하늘인의 비중도 상당했다.
싸움이라도 일어나면 빠져나올 길이 막막했다.
하지만 남자가 일행을 이끌어간 장소에 다다르고, 그는 뭐라 말할 수 없는 기분이 되었다.
얼기설기한 움막 앞에 하늘인 아이들이 기운 없이 모여 앉아 있었다.
대부분 나이 어린 아이들에 몇 명 있는 어른은 모두 심하게 다쳤거나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었다.
다들 제대로 못 먹은 것처럼 얼굴이 안되었다.
일행을 이끌어온 남자가 호란을 보고는 약간 변명하는 어조로 말했다.
“예배는 한낮에 있다. 그때 사제들한테 말해줄 테니까. 일단 여기서 기다려주겠나.”
“알았어.”
호란은 단이 일러준 대로 퉁명스러운 어조를 지어 대답한 다음 단에게 말했다.
“단, 애들한테 뭐라도 좀 줘. 다들 배고파 보이는데.”
단이 고민하는 척을 하면서 말했다.
“하지만 나리, 아직 입교비로 뭘 얼마나 내야 하는지 모르는데…. 에이 괜찮겠지요. 알겠습니다요.”
단은 수레에서 곡식 자루를 내리고 길에게 물을 길어오게 했다.
남자가 무쇠솥을 들고 와서 죽을 끓일 준비를 했다.
호란은 혹시 몰라서 수레를 딱 지키고 서 있었다.
죽이 끓기 시작하자 사람들이 슬슬 솥 주위로 몰려들었다.
단은 죽을 휘휘 저으며 살가운 목소리로 사람들에게 물었다.
“여러분도 병을 고치러 여기 오셨군요?”
“응? 병을 고쳐? 그게 무슨 소리야?”
솥 옆에 선 하늘인 여자가 얼굴을 찡그리며 물었다.
야영지 밖에서부터 일행을 따라와, 지금은 제일 앞에서 그릇을 들고 서 있는 사람이었다.
단은 주위 사람들의 기색을 곁눈으로 살피며 말했다.
“중부에 가면 기도로 병을 고쳐주는 교주님이 계신다고 들었는데요. 땅인 의법사가 못 고치는 병도 단번에 낫는다고요.”
“그거는 멍청한 반민 놈들한테 사기나 쳐먹는 사이비 교단 놈들이 하는 소리야. 여기는 거인교고. 너, 여기로 잘 온 거다. 사지 멀쩡한 놈이 그런 헛소리를 왜 믿어?”
여자가 으스대는 어조로 말했다.
그는 집채만 한 바위를 맞아도 끄덕도 안 할 만큼 튼튼해 보이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주위의 약하거나 다친 사람들은 단이 병을 고친다는 말을 할 때마다 눈빛이 밝아졌다 어두워졌다 했다.
단은 고개를 갸웃갸웃하며 물었다.
“아닌가요? 전 거인교 교주님이 병을 고치신다고 들었는데요. 그 교주님 계신 곳은 땅에서 솟는 물도 마르지 않고 거석도 쳐들어오지 않는다고요.”
단이 이것저것 좋은 말을 다 가져다붙이자 여자의 얼굴이 알쏭달쏭해졌다.
그가 자신 없게 말했다.
“거석한테서 지켜주시는 건 맞지만….”
“교주님께는 신통력이 있어요!”
죽 끓기를 기다리던 아이들 중 유독 똘망하게 생긴 남자아이가 말했다.
아이는 열성적으로 말을 이었다.
“교주님은 신통력이 있어요. 하지만 지금은 천벌의 세니까, 시련이 끝날 때까지 못 쓰시는 것뿐이에요. 땅인이 다 죽고 천벌의 세가 끝나면 아픈 사람은 다 낫고 순마다 비가 오고 돌밭에서도 풀이 날 거랬어요. 그때는 우리 엄마도 나을 거고요.”
주위 사람들이 다들 찬동의 말을 하며 교주를 찬양하기 시작했다.
어떤 사람은 입교한 후 건강이 좋아진 사람들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일행을 여기로 데려온 덩치 큰 하늘인 남자만은 이야기에 끼어들지 않고 무뚝뚝한 얼굴로 죽솥을 지키고 서 있었다.
단은 슬쩍 그에게 주걱을 넘기고 물을 더 길어온다는 핑계로 길과 함께 자리를 빠져나왔다.
그럭저럭 끼어드는 데는 성공했으니 배식이나 하고 있을 틈은 없었다.
야영지 분위기도 더 살피고 기회가 있다면 교당 건물부터 들여다보아야 했다.
호란은 수레 앞을 지키게 두었다.
길이 물통을 지고 걸으면서 단에게 소곤소곤 물었다.
“뭐야, 여기 사실 일천주교였어?”
‘새 하늘이 나리면 병자가 모두 낫고 순마다 비가 오고 돌밭에 풀이 난다.’
이것은 이전부터 중부 지방에 나돌던 비밀 종교집단 일천주교의 선전 문구였다.
상단 일꾼 중에도 몰래 믿는 사람이 있어서 단도 길도 익숙했다.
단이 작은 소리로 답했다.
“아마도. 뻔한 거 아니냐. 교세가 너무 빨리 커지길래, 틀림없이 기존 종교 조직에 얹혀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중부니까 일천주교 아니면 수광회지 뭐.
현이한테서 교도단 얘기 들었을 때부터 일천주 쪽 아닐까 했는데, 병 고치는 얘기 꺼내보니까 영락없네.
왜 일천주 애들이 하늘인 방랑족 애들로 신도단 만들어서 행패 부리고 다녔잖아. 물 뜰 때 기도시키는 것도 걔들 의식이고.”
“아아, 그러고 보니까….”
단의 이야기에 길이 그제야 알겠다는 듯 탄복하는 소리를 냈다.
일천주교는 한환이라는 사람을 교주로 한 종교로, 생긴 지는 십여 년 되었고 몇 년 전부터 눈에 띄게 세가 불고 있었다.
관에서 법으로 금하고 믿는 자에게 벌을 내렸지만 소용이 없었다.
읍성이나 소읍 사는 반민들을 중심으로 알음알음 믿던 것이 하늘인 방랑족 무리에 퍼지면서 세력이 확 커졌고, 단이 상단을 떠날 무렵에는 하늘인 마을까지도 슬슬 침투하는 형국이었다.
일천주교에서는 신도들이 기도와 보시로 하늘을 떠받치는 기둥을 쌓아, 기둥이 천 개에 다다르면 마법 없이도 누구나 잘 살 수 있는 세상이 온다고 선전하며 신도를 모아왔다.
단이 알기로 작년까지 구백구십몇 개 쌓았든가 그랬다.
대강 만든 교리가 슬슬 한계에 부딪힐 시점이었다.
단은 일천주교 교단의 머리 좋은 놈들이 돌 인간에 대한 소문을 덧씌워서 교리를 탈바꿈하고 세를 불릴 기회로 삼았으리라 짐작했다.
원래부터 마법이 필요 없어진다는 둥 땅인을 배제하는 교리를 가지고 있었고, 수광회와는 달리 땅인 신도를 받지 않았기에 거인교로 변신하기가 좋았을 것이다.
단이 곰곰 생각에 빠져 중얼거렸다.
“일천주교 조직이 그대로 내려왔으면 상단 시절에 이름 익힌 사람도 한둘 있고, 파고들 데가 있을 건데. 근데 일천주교가 원래 기도하면 병 낫는다고 사람 모은 애들인데, 이제는 그 영업은 안 한단 말이지?”
길이 조금 어리둥절한 얼굴로 물었다.
“근데, 일천주교 교주는 땅인이잖아? 왜 땅인 죽이자는 소릴 하고 다녀?”
“응? 아니야, 교주는 반민이지. 위아래 뒤바뀌는 세상이 온다고 포교하던 사람인데?”
단이 당황해서 되물었다.
단은 벽력상단이 일천주교 교단과 거래할 때 한환이 설교하는 걸 들은 적이 있었다.
한환은 교주란 이름에 어울리지 않게 산적 두목같이 생긴 붉은 수염의 남자였다.
그는 본디 그럴듯한 교리 말씀보다 질펀하게 땅인 관리들 욕하고 새 세상이 온다고 선동하는 재주로 인기를 얻었다.
반민이면서 하늘인들의 마음을 산 데는 그런 이유도 있었다.
길이 고집스럽게 말했다.
“교리는 교리고, 일천주교 교주는 반민인 척하지만 사실은 땅인이라고. 사예 님이 본 적 있댔어. 예배 집전할 때 슬쩍슬쩍 마법 쓴다고. 예전부터 땅인 신도 안 받은 것도 그 수작 들킬까 봐 그러는 거랬어.”
단은 발걸음을 멈췄다.
있을 법한 얘기에다 써먹을 수 있는 정보였다.
두 사람은 광장의 교당 근처까지 와 있었다. 해가 꽤 높았다.
한 시진 정도면 해가 중천에 오르고 예배가 시작될 것이다.
이미 열성적인 교인들이 광장에 자리를 맡고 기도를 올리거나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하늘인 두 명이 나와 예배용 강단 옆에 높은 기둥을 세우기 시작했다.
광장에 모여 있던 교인들이 와아 하고 함성을 질렀다.
“처결이다!”
“오늘 처결이 있어!”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