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1000)
공작님, 회개해주세요!-1001화(1001/1105)
95. 공작님의 분노 (16)
* * *
◆
좀처럼 악마와의 거리가 좁혀지지 않았다.
날개를 두 장 더 만들어 보았다. 두 쌍의 날개로 비행하는 것은 처음이나, 익숙해지는 데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적응이 되자 악마와의 거리가 점점 좁혀지기 시작했다. 그만큼 휴마누스와의 거리는 벌어졌다.
신경 쓰지 않고 날개를 이루는 신성력을 조작하는 것에 집중했다.
어차피 혼자서라도 악마를 쫓을 생각이었다.
다소 늦어진다 하더라도 따라와 준 것만으로도 휴마누스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더는 선우에게 나쁜 기억이 생기지 않길 바라며 날갯짓에 박차를 가했다.
두 쌍의 날개로 비행하는 것이 그다지 어렵지 않게 느껴졌을 때 날개를 한 쌍 더 늘렸다.
신성력 날개를 움직이는 것에 온 신경을 집중하며 날다 보니, 시간의 흐름조차 인지하기 어려웠다.
아주 기나긴 시간 초조해하며 불안에 떨었던 것 같기도 하고.
일순 스쳐 지나간 찰나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마침내 악마의 모습이 보였다.
그 순간, 나는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덜컥 멈춰 섰다.
자신의 모습이 내 시야에 담길 정도로 거리가 가까워졌다는 걸 눈치챘는지, 악마가 제자리에 멈춰서 나를 돌아보았다.
악마는 혼자였다. 느껴지는 기운도 악마의 것뿐이다.
무력을 갖추지 못한 일반인의 기운은 무척이나 미약했다.
그러니 악마의 강대한 기운에 가려진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침착하려 애쓰며 두 눈으로 주변을 살피는 한편 전신의 감각을 끌어 올렸다.
피부를 스쳐 지나가는 겨울바람과 앙상한 나뭇가지의 흔들림, 본능적으로 악마의 존재를 깨달아 한껏 몸을 웅크린 동물들의 불안한 호흡, 작은 벌레가 땅속에서 움직이는 기척까지.
그 모든 것을 감지해 냈으나 선우의 존재는 어디에서도 느껴지지 않았다.
‘혹시 선우는 아직 신전에서 보호받고 있는 게 아닐까?’
한순간 희망이 떠오르긴 했으나 되돌아갈 수는 없다.
만에 하나라도 그게 아니라 악마가 선우를 어딘가에 숨겨놓은 거라면, 그의 행방을 놓쳐버리게 될 터이니.
“네가 찾는 자는 이곳에 없다.”
악마가 기분 나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미 주변의 기척을 감지하여 알고 있던 사실이다.
그런데도 다른 누군가의 입을 통해 선고받으니, 그 순간 심장이 쿵 떨어지는 듯했다.
“···그는 어디 있습니까?”
“나야 모르지.”
“그쪽이 그를 납치한 것 아니었습니까?”
“납치라니? 그자가 순순히 나와 함께 가겠다고 했다. 그리고 그곳에 있던 인간들은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그자가 천사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를 내어줬지. 그것도 모르는 걸 보면 신전에는 안 들리고 바로 왔나 봐? 아니면 자신들의 죄를 숨기고자 내가 강제로 천사를 납치한 것처럼 거짓말이라도 했나?”
악마가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조롱기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일부러 나를 도발하고자 한 말일 거다. 교단의 성직자들은 몰라도 선우를 아끼는 일행들이 그랬을 리가 없다.
선우가 자진하여 희생하려 해도 그들이 말렸을 거다.
“내 말을 믿지 않는 건가? 그래도 상관없긴 해. 신전으로 돌아가게 된다면 내 말이 사실이라는 걸 알게 될 테니. 아! 그 전에 내게 죽지 않고 살아남는 게 우선이겠지만.”
“···다시 한 번 묻겠습니다. 시온은 어디에 있습니까?”
“아까도 말했을 텐데? 나도 모른다고. 이곳까지 오는 도중에 추종자들에게 넘겼거든. 이후의 행방은 듣지 못했다.”
이 악마의 이동 방법은 상당히 특이했다.
순간적으로 빠르게 나아가다가 서서히 속도가 줄어들고, 또다시 빠르게 튀어 나가는 식이었다.
속도가 줄었을 때 미리 대기하던 이들에게 선우를 넘기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했다.
어쩌면 내가 이 악마를 뒤쫓기도 전에 선우를 빼돌렸을 수도 있다.
단서가 없어도 너무 없다.
심지어 이미 악마 숭배자들에게 넘겨진 이후라면 선우의 안전도 확신하기 어렵다.
인질로 써먹을 작정이라면 죽이지는 않겠지만.
사람을 죽이지 않고도 고통을 줄 방법이 무궁무진하다는 건, 어린 시절 몸소 겪어봐서 안다.
내가 겪었던 것과 비슷한 고통을 선우가 겪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 정신이 아득해지고 검을 쥔 손이 덜덜 떨렸다.
나는 검을 놓치지 않도록 꽉 움켜쥐며 힘겹게 목소리를 냈다.
“넘겼다니···, 어디에서?”
“그걸 왜 말해 줘야 하지? 내가 그자를 추종자들에게 넘겨준 장소를 알려준다 한들, 놈들은 흔적을 지우며 다른 장소로 이동했을 텐데 찾을 수는 있고?”
“······.”
“어찌어찌 추적에 성공하더라도 그땐 이미 늦었을 거다. 그 인간, 악마의 그릇으로 쓴다고 했거든. 물론 자아는 남겨두고. 그래야 인질로 삼을 수 있을 테니까.”
그 얘기를 듣자 과거 선우가 말해 주었던 2회차의 사건 하나가 떠올랐다.
2회차에서는 두 마법사가 겪었던 비극이 우리의 일이 될 수도 있다니.
‘과연 나는 자신을 죽여 달라고 애원하는 선우의 목숨을 거둘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선우가 본래 세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확신이 있다면 눈물을 머금고 그리하겠지만.
악마가 죽기 직전에 그의 영혼을 집어삼켜 버린다면. 혹은 악마에 의해 이미 손쓸 수 없이 영혼이 망가진 이후라면···.
최악의 상상이 머릿속을 잠식했다.
“아직···, 아직은···.”
부정적인 생각을 떨쳐내고자, 아직 다음 악마를 소환할 제물은 모이지 않았을 거라는 희망을 입에 담으려 했다.
하나 목소리가 지나치게 떨려서 희망보다는 짙은 절망이 느껴졌다.
그래서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상급 악마라면 모를까.
하급이나 최하급 악마를 소환한다면 필요한 제물의 양은 많지 않다.
스스로도 믿지 않는 말을 입에 담아 봤자, 문제를 해결하는 데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지금 당장 왔던 길을 되짚어가며, 악마 숭배자들의 흔적을 찾는 건 한없이 비효율적이다.
시간 제한이 있다는 걸 생각하면 비효율적인 것을 넘어 불가능한 일이다.
악마를 제압하여 작은 힌트라도 얻어야 한다. 그것이 최선이다.
나는 당장에라도 끊어질 듯한 이성을 가까스로 붙들고, 냉정하려 애쓰며 악마를 향해 돌진했다.
검격이 닿을 만큼 거리가 좁혀진 순간.
악마가 발판으로 삼고 있던 압축된 공기를 터트려 몸을 솟구치게 했다. 나 또한 그 폭발의 영향으로 뒤로 밀려났다.
“아직은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나 봐? 어리석게도. 악마와 하나가 된 그자가 먼저 모습을 드러낼 때까지 느긋하게 기다리는 게 낫지 않나?”
악마가 동의할 수 없는 소리를 지껄여댔다.
숨이 턱 하고 막히는 느낌을 모르는 척 외면하고, 다시 악마에게 따라붙으며 검을 휘둘렀다.
하나 이번에도 악마를 벨 수 없었다.
검 끝에서 작은 폭발이 일어나 검로를 틀어버린 탓이다.
또다시 튕겨 나가지 않도록 검에 신성력을 욱여넣다시피 하며, 검을 쥔 팔에 힘을 더하던 그때였다.
악마가 또다시 입을 연 것은.
“지금쯤 추종자들은 그 천사 놈을 고문하며 한창 즐기고 있을 텐데, 나는 이렇게 싸움이나 하고 있어야 한다니···.”
“방금, 뭐라고···.”
“뭘 그렇게 놀라? 예상하고 있던 것 아니었나? 설마하니 소환 의식을 준비하는 동안, 악마를 추종하는 자들이 천사를 얌전히 모셔둘 거라고 생각한 건가?”
불안과 초조함이 분노에 잡아먹히는 건 순식간이었다.
단숨에 자라난 분노가 신성력을 들끓게 하고 이성을 마비시켰다.
* * *
♠
‘뭐가 저렇게 빨라?!’
앞서 날아가던 세르펜스가 돌연 날개를 한 쌍 더 만들더니, 쏜살보다도 빠르게 날아갔다.
대륙 어디에서든 악마의 위치를 감지할 수 있는 세르펜스와 달리, 나는 일정 거리 밖에서는 악마의 기운을 감지할 수 없다.
이대로라면 세르펜스를 놓칠 판이라 그를 따라서 날개를 더 만들어 보려고 했다.
‘제어 능력이 많이 늘었다고 생각했는데···.’
한 쌍의 날개를 더 만들어내기도 어렵고, 네 장의 날개가 서로의 움직임을 방해하지 않도록 조작하는 건 더욱 어려웠다.
지금은 새로운 비행법을 연습할 때가 아니다.
궁여지책으로 추가로 만든 날개를 없애고 남은 한 쌍의 날개 크기를 최대한 키웠다.
몸에서 멀리 떨어진 날개 끄트머리 쪽의 신성력이 통제를 잃고 흩어졌다.
신성력이 유실되는 것을 감수해도 좋을 만치 속도가 붙었다.
세르펜스와의 거리가 조금씩 벌어졌지만, 어찌어찌 놓치지 않고 쫓아갈 정도는 되었다.
이를 악물고 날고 있자니, 펠로 왕국에서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당시에도 내가 이런 속도로 비행할 수 있었다면, 세르펜스가 악마에게 붙잡히기 전에 살롱이 열리는 장소에 도착했을 거다.
‘그랬다면 그에게 성검을 내어주는 대신 힘을 합쳐 싸웠을 텐데···.’
나와 아니마가 빠르게 합류하여 가세했더라도, 당시의 능력으로 그곳에 있던 악마와 싸워 이기는 건 지난한 일이었으리라.
하지만 바다에서 마주쳤던 악마 또한 도무지 해치울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는데, 결국 약점을 찾아내어 승리하지 않았던가.
다른 해결 방안을 찾아볼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아, 세르펜스에게 성검을 넘기는 차악의 수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그리하여 선우에게 두려운 기억을 남기게 된 그날 일을 나는 아직도 후회하고 있다.
다시는 비슷한 일이 생기지 않도록 노력하고 또 노력했는데도 나는 여전히 부족했다.
저멀리 앞서나가는 세르펜스를 보고 있노라면, 제자리걸음만 반복하고 있는 게 아닐까 의심스럽기까지 했다.
‘지금은 이런 생각을 할 때가 아니야. 정신 차리자.’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생각들을 한쪽 구석에 밀어 두고 세르펜스의 뒤를 쫓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세르펜스가 날개를 한 쌍 더 만들어냈다.
유실되는 신성력의 양이 늘어날 것을 감수하고 나도 날개 크기를 키웠으나, 그의 속도를 따라잡는 건 역부족이었다.
결국 세르펜스의 행방을 놓치고 말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포기하고 돌아갈 수는 없다.
나아가던 방향으로 계속 이동하다 보니 세르펜스의 신성력이 느껴졌다. 이동하지 않는 것을 보니 선우를 찾았나 보다.
다행이라 생각하며 세르펜스에게 다가가는데 뭔가 이상했다.
그의 단정한 몸가짐처럼 늘 차분하고 정돈되어있던 신성력이 미친 듯이 날뛰고 있었다.
나는 다급히 날개를 움직였고 세르펜스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세르펜스는 누군가를 발로 밟아 움직이지 못하게 고정해 둔 채, 그자를 검으로 푹푹 찔러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목격하고 나서야 미약한 마기를 느낄 수 있었다.
악마는 죽어가고 있었고, 세르펜스의 신성력이 그 일대를 가득 메우다시피 한 터라 감지하는 게 늦었다.
“어디에서 그를 넘겼지?”
“끄, 으윽···!”
“어서 말해!!”
“말하면. 믿을 수는···, 있고?”
“믿을 테니까, 제발! 제발 말하란 말이다!”
거칠게 윽박지르며 신성력을 줄기줄기 내뿜고 있는 모습은 누가 보아도 폭주 증세였다.
악마는 고통에 인상을 찌푸리면서도, 처절하게 소리치는 세르펜스를 보며 웃어댔다.
“크, 크큭···! 쿨럭, 쿨럭! 크하하···!”
피를 토하며 웃어젖히는 악마의 모습에서 광기가 느껴졌다.
놈에게 검을 찔러 넣으며 악에 받쳐 소리 지르는 세르펜스 또한 마찬가지였다.
정신이 아득해지는 그 광경에 나도 모르게 넋 놓고 있다가, 이럴 때가 아니라는 생각에 서둘러 다가가 악마의 목을 베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