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1001)
공작님, 회개해주세요!-1002화(1002/1105)
1002회
96.공작님의 상실 (1)
♠
“휴마누스···?”
세르펜스는 악마의 목이 떨어져 나가고 나서야 내 존재를 알아챘다는 반응을 내비쳤다.
지금 상황이 잘 이해가 안 간다는 듯 멍한 눈으로 나와 악마의 시체를 번갈아 쳐다봤다.
그러다 돌연 분노에 찬 눈동자로 나를 노려보았다.
“당신이 방금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아십니까? 이 악마는 선우를 찾을 수 있는 유일한 단서였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어떻게 이런 짓을···!”
“어차피 저 놈은 선우가 어디에 있는지 대답해 줄 생각도 없었어.”
“아닙니다! 조금만 더 심문하면···, 분명 답을 들을 수 있었을 텐데···! 어째서···, 대체 왜 그러셨습니까?!”
분노 어린 눈동자가 눈물로 젖어들며 원망과 절망으로 물들었다.
그런 그의 모습은 이전 회차의 기억에서도 본 적이 없는 것이었다.
다른 회차의 세르펜스들과 달리 진심으로 행복한 미소를 지을 수 있던 그가, 지금은 어느 회차의 세르펜스도 느낀 적 없었을 지독한 상실감에 휩싸였다.
절규하는 그의 모습을 마주하고 있노라니 심장을 쥐어짜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마치 그의 절망이 전염되기라도 한 듯 무력감이 나를 덮쳤다.
하지만 나까지 그 절망에 동참할 수는 없다.
그래서 세르펜스의 어깨를 붙들고, 그의 몸에 신성력을 밀어 넣으며 외쳤다.
“세르펜스, 정신 차려!”
“아, 아아···! 지금 여기서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어서, 어서 선우를 찾으러 가야···. 으흑···!”
폭주하던 신성력이 진정되며, 잠시 제정신을 찾은 듯하던 그가 도로 이성을 잃었다.
심지어는 잠잠해졌던 신성력도 다시 날뛰며 몸 밖으로 새어나왔다.
그런 자신의 상태를 모르는 건지, 세르펜스가 내 손을 뿌리치려다가 비틀거렸다.
‘지금 제 몸도 가누지 못하는 주제에 어딜 가겠다는 건지···.’
선우가 걱정되긴 했으나 당장 행방도 알 수 없는 그를 찾으러 다닐 수는 없다.
우선은 눈앞에 있는 세르펜스를 살피는 게 먼저다.
세르펜스의 신성력 폭주 원인은 정신적인 것이었다.
아무리 신성력을 진정시킨다 한들, 정신이 불안정하면 끊임없이 도돌이표만 찍을 뿐이다.
정신을 안정시키는 쪽으로도 신성력을 쓸 수 있게 연습해 둘 걸 그랬다.
여타 능력과 달리 신성력은 폭주하더라도 신체에 가해지는 부담이 적다고는 하지만, 이대로는 위험하다.
세르펜스의 상태를 살펴본 바, 그의 신성력은 이미 고갈되었다.
그러니 지금 그의 몸에서 새어나오는 기운은 생명력을 소모한 결과이리라.
“잠깐 쉬고 있어.”
“이런 상황에서 어찌 쉴 수가···, 윽···!”
나는 눈을 질끈 감으며 세르펜스의 명치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평상시라면 이렇게 쉽게 당해주지 않았을 텐데, 세르펜스는 아무런 반항도 하지 못하고 급소를 그냥 내어주었다.
기절한 그의 몸이 축 늘어져 내게 기대듯 쓰러졌다.
날뛰던 신성력 또한 잠잠하게 가라앉았다.
“하아···.”
급한 불을 끄긴 했으나 안도감이 들기는커녕 답답하기만 했다.
숨을 쉬는 것조차 힘들 정도라 의식적으로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가 내쉬었다.
그래도 답답함은 해소되지 않았다.
어쩐지 지쳤다. 쉬고 싶었지만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았다.
나는 다시 세르펜스의 몸에 신성력을 흘려 넣었다. 이번에는 그를 치료하기 위함이다.
제 몸을 돌볼 정신마저 없었던 건지, 그는 많이 다쳤고 상처를 치료조차 하지 않고 방치해 둔 상태였다.
신성력이 폭주한 영향으로 몸이 상하기도 했고.
금방이라도 끊어질 듯 불안했던 숨결이 고르게 변했다. 잠깐 가만히 서서 그의 숨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약간이나마 마음이 놓이는 걸 느끼며 다음 할 일을 찾았다.
성화를 피워 올려 악마의 시신을 불태웠다.
세르펜스가 폭주하며 신성력이 사방에 흩뿌려진 상태라, 마기가 거의 정화된 까닭에 악마의 시체는 금방 재가 되어 사라졌다.
이제 이곳에서 해야 할 일은 끝났다. 다음은 일행들이 무사한지 확인하러 갈 차례다.
나는 세르펜스를 안아들고 날개를 펼쳐 날아올랐다.
선우가 악마에게 납치당했다면 일행들의 안위를 장담할 수가 없다.
어쩌면 그들이 목숨을 잃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나도 모르게 비행 속도가 느려졌다.
‘겁먹고 뭉그적거릴 때가 아니야, 정신 차리자.’
속으로 나 자신을 다그치며, 품 안의 세르펜스를 놓치지 않게 꽉 끌어안고 길을 재촉했다.
한참을 날다 보니 그저께 떠나온 신전의 터가 보였다.
본래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이 무너져버린 건물 잔해가 시야에 들어오자, 정신이 아찔했다.
내 품에 세르펜스가 안겨있지 않았더라면, 날개를 이루는 신성력을 통제해야 한다는 사실도 잊고 추락해 버렸을지도 모르겠다.
정신을 다잡고 다시 아래를 살폈다.
성직자들이 바쁘게 움직이며 건물 잔해를 치우는 모습이 보였다.
천천히 땅으로 내려가자 성직자들의 시선이 하나둘 내게로 향했다.
“오셨···습니까···?”
에녹 추기경이 어두운 표정으로 말을 걸어왔다.
먼저 다가왔으면서 나와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고개를 떨군 그의 모습이 마치 죄인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 동료들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게···.”
“혹시, 그들 전부···.”
“아, 아니요! 그분들이 모두 잘못된 건 아닙니다. 무사하십니다. 시온 님만 제외하면···.”
선우는 무사하지 않다는 단서가 붙었음에도. 다른 동료들이 무사하다는 걸 알게 되자,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에 조금 안도하고 말았다.
그 사실에 미약한 죄책감이 일었다.
“어떻게 된 건지 상황을 듣고 싶습니다.”
“일단 자리를 옮기고 나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추기경은 일행이 있는 곳으로 안내하겠다며 걸음을 옮겼다.
도착한 장소는 신전 터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세워진 여관 건물이었다.
건물 내에서 익숙한 기운들이 느껴졌다. 그게 못내 반가웠지만, 가슴 한구석이 무거워 순수히 기뻐할 수 없었다.
객실이 있는 2층으로 올라가자, 방문 하나가 열리며 유지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오셨···.”
나를 맞이해 주려던 유지스가 기절한 세르펜스를 발견하고는 말을 잃었다.
뒤이어 방문 몇 개가 더 열리며 다른 이들도 복도로 나왔다.
반응은 비슷했다.
세르펜스를 향한 걱정을 얼굴에 드러내면서도, 먼저 다가와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묻지 못하고 시선을 피했다.
“휴마누스 님께는 제가 설명해 드릴 테니, 모두 들어가서 쉬시지요.”
“그럼 부탁드릴게요.”
리에나가 허리를 꾸벅 숙이며 에녹 추기경에게 감사 인사를 전한 뒤, 우물쭈물 하는 일행을 문 안으로 밀어 넣고 자신도 방에 들어갔다.
모든 방문이 닫히자, 에녹 추기경이 아무도 없는 방의 문을 열어주었다. 세르펜스를 안아 든 나를 위한 배려였다.
나는 방에 들어가자마자 제일 먼저 세르펜스부터 침대에 눕히고 이불을 덮어주었다.
그러고 나서 침대 옆에 의자를 끌고 와 앉으며 에녹 추기경에게도 자리를 권했다.
하지만 그는 자리에 앉는 대신 우두커니 서서 조심스럽게 입을 뗐다.
“세르펜스 님도 일어나셔서 같이 들으셔야 할 것 같은데···. 제가 그분을 살펴봐도 되겠습니까?”
고마운 얘기였다.
내가 치료해 두긴 했어도 추기경인 그가 한번 더 신성력을 사용해 준다면, 세르펜스의 몸 상태도 한결 더 좋아지겠지.
하지만 아직은 세르펜스가 더 잠들어 있었으면 해서 고개를 저었다.
“괜찮습니다. 크게 다쳐서 기절한 건 아니고, 그냥 지쳤을 뿐이라서···. 그나마 다친 것도 오기 전에 제가 치료를 마쳤으니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 그러셨군요. 다행입니다.”
“네, 다행···이죠. 세르펜스에게는 제가 알아서 설명할 테니까, 제게 먼저 얘기해 주시면 됩니다.”
“그럼 세르펜스 님께서 편히 쉴 수 있게 자리를 옮길까요?”
에녹 추기경의 권유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비어있는 방이 몇 개 더 있다는 건 알지만, 세르펜스를 혼자 둘 수는 없었다.
만약 다른 방에서 얘기를 듣는 사이 그가 깨어나서 아까처럼 폭주한다면 큰일이다.
리에나에게 맡기는 방법도 있긴 했으나, 그녀는 세르펜스의 정신을 안정시킬 수 있을지언정 그를 붙잡을 힘이 없다.
세르펜스가 선우를 찾으러 가겠다며 무작정 어디론가 날아가 버린다면, 그 누구도 그를 찾지 못하리라.
조금 전에는 그가 어디로 가는지 방향이라도 알 수 있었으니까 발견할 수 있었던 거다.
‘만약 도중에 방향을 틀었다면···.’
불길한 상상을 떨쳐내고자 침대에 얌전히 누워있는 세르펜스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그가 깨어나 자리를 박차고 나가려 하면 그 전에 붙잡아야 한다.
이 건물 안에 있는 사람 중 그럴 능력이 있는 건 나뿐이다.
이번 삶에서까지 그를 잃을 수는 없다.
“그냥 여기서 듣겠습니다.”
“뜻이 그러하시다면야···.”
에녹 추기경이 자리에 앉아, 악마가 찾아온 시점부터 선우를 데리고 떠날 때까지 있었던 일을 들려주었다.
건물이 무너질 정도의 공격을 받고, 선우가 납치당했는데도 다들 어떻게 무사할 수 있었는지 의문이었는데.
선우가 자진해서 희생했다는 말을 듣고 나자 이해가 되었다.
세르펜스에게 이 얘기를 어떻게 전해야 할지 막막했다.
“얘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만 돌아가 보셔도 됩니다.”
“그럼 편히 쉬십시오.”
에녹 추기경이 안쓰럽다는 시선으로 세르펜스를 잠깐 바라보고는, 조용히 밖으로 나가 문을 닫았다.
그가 건물을 벗어나자 복도에서 윈스톤 경의 기척이 느껴졌다.
세르펜스가 걱정되어 보러 오는 줄 알았건만.
호위라도 할 생각인지 윈스톤 경은 가만히 문 앞을 지키고 서 있기만 할 뿐, 문을 두드리지는 않았다.
반대로 유지스는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했다. 제 방 안에서 원을 그리며 뱅글뱅글 돌아다녔다.
사생활을 침해하는 것 같아서, 각자 방에서 쉬고 있을 땐 일부러 일행들의 기척에 신경을 끄고 지냈다.
지금도 그러려고 했는데 워낙 정신 사납게 돌아다니니 자꾸만 그쪽으로 신경이 쏠린다.
‘그렇게나 세르펜스가 걱정되는 거면 그냥 보러 올 것이지···.’
내친김에 다른 일행들은 뭘 하고 있는지 확인하고자 기감을 넓혔다. 리에나와 푸로르, 아니마와 에드나는 서로를 잘 다독여 주고 있는 듯했다.
문제는 홀로 떨어져 있는 윈스톤 경과 유지스, 이 두 사람이다.
나는 세르펜스가 잘 잠들어 있는지 확인한 후 자리에서 일어나 문 쪽으로 향했다.
문을 열자 윈스톤이 굳은 표정으로 내게 묵례했다.
“세르펜스가 깨어나면 부를 테니까 다 같이 모여있어. 물론 경도 포함이야.”
“···알겠습니다.”
조금 머뭇거리긴 했으나 윈스톤은 서 있던 자리에서 벗어나 유지스의 방으로 향했다.
불안해 하는 이들을 한자리에 모아 놓아도 괜찮은 걸까 싶었지만, 윈스톤과 유지스처럼 혼자 있는 것보다는 나으리라.
은근히 심지가 굳은 리에나도 같이 있으면 어떻게든 되겠지.
나는 방문을 닫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세르펜스는 여전히 고른 숨을 내쉬며 고요히 잠들어 있었다.
그가 좀 더 오래 쉬었으면 하는 바람과 어서 의식을 되찾았으면 하는 바람이 마음속에서 충돌했다.
‘그러고 보니···. 세르펜스는 혼자서 상급 악마를 처치한 건가?’
신성력이 폭주하며 마(魔)를 물리치는 힘이 더 강해진 덕분일 수도 있고.
이성을 잃은 세르펜스가 방어를 도외시하며 달려든 결과, 긍정적인 변수를 낳은 것일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그에게 내재된 힘이 상급 악마보다 우세하다는 결론이다.
‘내가 얼마나 더 노력해야 너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까…?’
또 한 걸음 뒤처진 듯한 느낌에 반사적으로 성검의 손잡이를 꽉 움켜잡았다.
1003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