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1003)
공작님, 회개해주세요!-1004화(1004/1105)
96. 공작님의 상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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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에 쭈그리고 앉아서 뭘 하고 있는 거야?”
방에 들어온 아니마 씨가 마법을 펼쳐 간단히 바닥을 치워버리자, 깨진 잔의 파편을 일일이 줍고 있던 휴마누스가 머쓱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도 계속 누워 있을 수는 없었으므로 상체를 일으켜 앉았다.
“계속 누워있지 그래?”
“대화할 땐 앉아있는 게 편합니다.”
“그럼···.”
조금 전 내가 비틀거리다 침대에서 떨어질 뻔했던 게 마음에 걸렸던 건지, 휴마누스가 우려 가득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불현듯 좋은 생각이라도 떠오른 표정으로 베개를 세워 내 등에 받쳐 주었다.
별거 아니라면 별거 아니었으나 황태자가 나서서 할 만한 일은 아니다.
바닥에 떨어진 파편을 주우려 했던 것 또한 그러하다.
휴마누스는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러할 수 있는 위치에 선 사람이다.
그런 그가 내 기분을 맞춰 주고자 노력하는 모습은 아직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만약 선우가 납치당한 상황만 아니었다면, 미소라도 지어 보이며 고맙다고 말해 주었을 터다.
하나 지금은 억지로도 웃는 게 불가능했기에 말없이 고개만 숙여 감사를 표했다.
그러고 나서 베개에 등을 기대며 방안에 들어온 이들의 면면을 훑어보았다.
누구 하나 안색이 어둡지 않은 사람이 없었으나, 그중에서도 특히나 어두운 이가 있긴 했다.
윈스톤 경은 나와 시선이 마주치자 면목이 없다는 듯 고개를 떨궜다.
몇 번이고 붙었다 떨어지며 힘겹게 달싹이는 그의 입술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나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아무 말도 하지 마라.”
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윈스톤 경의 얼굴에 참담함이 번져나갔다.
입술을 꾹 다문 채 떨리는 주먹을 말아쥔 모습을 통해, 그가 내 뜻을 곡해하였음을 눈치챌 수 있었다.
현재 나는 윈스톤 경에게 용서와 위로의 말을 건넬 만한 마음의 여유가 없다.
그래서 죄송하다는 말을 꺼내기 전에 그의 발언을 막는 방법을 택했다.
하지만 사죄의 말조차 듣고 싶지 않다는 뜻은 결코 아니었다.
“나는 경을 탓할 생각이 없다. 이는 경에게 실망했기 때문이 아니라 상황을 이해했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가 서로를 원망하며 분열하는 것이야말로, 악마의 노림수였다는 걸 아는 까닭이기도 하다.”
악마가 마왕의 이름을 걸고 맹세했다는 얘기를 듣긴 했다.
하나 그러한 맹세를 했기에 이들을 죽이지 않은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죽일 생각이 없었기에 거리낌 없이 마왕의 이름을 걸 수 있었던 것일 터.
이들을 죽이느라 시간이 지연되어, 선우를 빼돌리기 전에 내게 따라잡힐까 염려한 것도 이유 중 하나겠지만.
진정한 목적은 내가 이들과 갈등하다가, 끝내 신뢰를 회복하지 못하여 홀로 움직이게 되는 것이리라.
“같은 이유로 이곳에 계신 분들뿐만이 아니라, 당시 현장에 있던 성직자분들을 탓할 생각도 없습니다.”
아까는 충동적으로 자리를 박차고 나갈 뻔했지만.
머리를 식히고 다시 생각해 보니, 그게 얼마나 어리석은 행동이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선우는 내가 이들에게 의지하며 모두와 힘을 합쳐 자신을 구하러 와 주길 바랐다.
그런 선우의 바람이 아니더라도 그것이 그를 구하는 가장 빠른 방법이었으니, 최대한 많은 이들의 손을 빌려야 했다.
‘그리하더라도 어쩌면···.’
나는 머릿속에 떠오른 부정적인 생각을 지우려 애썼다.
분명 잘 될 거다. 찾을 수 있을 거다.
내가 그렇게 믿지 않고 포기해버린다면 선우를 배신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정히 이번 일에 책임을 느끼고 있다면 더 힘을 내 주십시오. 선우를 구할 수 있도록···.”
“세르펜스의 말이 맞아요! 지금은 축 처져 있을 때가 아니에요. 이럴 때야말로 기운을 내야죠!”
유지스가 내 말에 동조하며 부러 밝은 목소리를 꾸며냈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는지 양 주먹을 그러쥐고 ‘아자 아자!’ 하고 기합을 넣었다.
덕분에 분위기가 다소 밝아진 듯했다.
나도 조금이지만 기운이 났다.
* * *
■
“야, 이 매정한 악마 놈아!! 대화하기 싫다고 기절시키는 게 어딨어?!”
의식이 돌아오자마자 나는 가장 먼저 악마에게 컴플레인을 제기했다.
하지만 주변 어디에서도 악마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 대신 ‘나 법숭이요.’라고 말하는 듯한 행색을 하고, 나를 둘러싼 사람들의 모습만 눈에 들어왔다.
이놈의 악마 자식은 사람을 데려왔으면 끝까지 책임지고 옆에 붙어 있을 것이지.
낯선 놈들 사이에 나를 던져 놓고 어디로 내뺐는지 모르겠다.
‘이래서야 세르펜스가 내 위치를 추적하기 어려워지잖아?’
씨 발아시키는 악마 놈보다 더 나쁜 놈이다.
그렇게 나는 속으로 악마를 향해 욕을 퍼부으며, 눈앞에 있는 이들에게 조심스레 말을 붙였다.
“어···, 음···. 안녕하세요? 법숭이 분들만 이렇게 모여있는 모습은 또 처음 보네요. 이렇게 만나게 된 것도 인연인데 통성명이나 할까요?”
“닥쳐라, 천사와 나눌 대화 같은 건 없다.”
“천사 아니라고 해도 안 믿을 거죠?”
“닥치라고 했을 텐데?”
정말로 나와 대화하기 싫은 거라면 그냥 내 입을 막으면 될 텐데, 말은 저렇게 해도 실은 대화를 원하고 있는 게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며 다시 한 번 말을 걸어보려던 그때.
끼이익. 녹슨 경첩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며 1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어린 악숭이가 등장했다.
소년은 빵과 수프가 담긴 쟁반을 들고 있었는데, 그 때문에 허드렛일을 시키려고 데리고 다니는 민숭이가 아닐까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스승님, 식사 준비가 끝났습니다.”
방금 나와 대화한 법숭이를 지칭하는 호칭을 듣고 머릿속으로 떠올린 생각을 지웠다.
소년 또한 나를 둘러싸고 있던 이들과 마찬가지로 법숭이였던 것이다.
“얘기했던 것 잊지 않았겠지? 저자와 최대한 말을 섞지 말고, 자결하지 않도록 잘 감시해라.”
“예, 새겨두겠습니다.”
소년 법숭이가 공손하게 허리를 숙였다.
그 탓에 들고 있던 쟁반 위 식기가 움직이며 달그락 소리를 냈다.
스승 법숭이는 그 모습을 무표정한 얼굴로 쳐다보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소년 법숭이가 들어온 문으로 나갔다.
그런 그를 따라 소년 법숭이만큼 어리지는 않아도, 제법 젊어 보이는 법숭이들이 우르르 따라나갔다.
‘저들 모두 스승 법숭이 밑에서 배우는 제자들이고, 소년 법숭이는 그중에서 막내라서 잡일을 도맡아 하는 거려나···?’
그건 그렇고 소년 법숭이 한 명에게 내 감시를 맡기고 나갈 거면서, 뭐하러 기절한 나를 둘러싸고 앉아 있었던 건지 모르겠다.
구경이라도 한 건가 싶어 대단히 불쾌했다.
그래서 얼굴을 찡그리고 있자니, 소년 법숭이가 굽혔던 허리를 펴며 나보다 더 불쾌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면서 들고 있던 쟁반을 협탁 위에 내려놓는데, 얼마나 성의가 없었던지 접시에 담긴 빵이 들썩이고 스프가 몇 방울 튀어 올랐다.
“막내 생활이 엄청 힘든가 보네.”
“닥치고 음식이나 먹어.”
언어 생활이 제 스승과 판박이다.
나를 바라보는 눈동자에 경멸이 어린 거로 보아, 스승과 사형제들의 태도에 불만이 있었던 게 아니라 그냥 내가 싫었던 모양이다.
소년 법숭이는 처음 봐서 살짝 마음이 쓰였는데 괜한 걱정이었나 보다.
앞으로 이 소년을 소숭이라 불러야겠다.
‘그나저나 식사를 챙겨줄 거라고는 생각 못 했는데···.’
기껏 잡아와 놓고 굶겨 죽일 생각이 아니라면 챙겨주는 게 당연한 일이긴 하나, 이렇게 순순히 먹을 것을 가져다주다니 의심이 앞섰다.
아사 직전에 딱딱한 빵 한 덩이만 던져 준다거나, 식사하고 싶거든 마왕을 찬양하라고 시키거나 할 줄 알았건만.
미심쩍은 눈으로 협탁에 놓인 음식을 노려보던 도중 내가 묶여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손을 쓰지 말고 개처럼 고개를 처박고 음식을 먹으라는 건가?! 아니, 잠깐. 그러려면 쟁반을 협탁 위에 두는 게 아니라 바닥에 둬야 하지 않나? 설마하니 음식을 바닥에 쏟을 생각인가?!’
소숭이 말고는 보는 이가 없다고 생각하여, 내가 체면을 버리고 바닥의 음식을 핥아 먹을 때.
방금 나갔던 법숭이들이 우르르 들어와서 날 비웃고 모욕하는 작전인 듯하다.
정말 유치하고 졸렬한 괴롭힘이 아닐 수가 없다.
내가 분한 기색을 내비치며 굴욕을 느낄수록 법숭이들은 더 큰 희열을 느끼겠지.
그러니 아무렇지도 않은 척 당당하게 행동하면 오히려 놈들이 당황할 거다.
나는 절대 악숭이들의 비웃음에 굴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왜 안 먹고 가만히 있···. 아, 손이 묶여 있구나?”
이제 쟁반을 엎으려나 보다.
어디 해 볼 테면 해 봐라,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맛있게 먹어 치운 후 리필까지 요구해 주마.
그렇게 생각한 찰나.
– 달그락
소숭이가 나무 숟가락을 들고 수프를 떠서 내 입 앞에 들이밀었다.
예상했던 것과 너무나도 다른 그 행동에, 나는 너무 당황한 나머지 멀뚱히 눈만 끔벅거렸다.
그러자 소숭이가 짜증 난다는 표정으로 수프를 후후 불어서 식힌 후 다시 내밀었다.
‘혹시 내가 받아먹으려고 하면 숟가락을 뒤로 빼며 조롱할 생각인가? 쟁반을 엎는 건 그다음이고?’
나는 소숭이의 눈치를 살피며 슬며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소숭이는 숟가락을 든 손을 뒤로 빼며 날 놀리지 않았다.
수프는 제대로 내 입안에 들어왔고, 그것은 평범한 맛의 베이컨 포테이토 수프였다.
조롱도 없고 미각 고문도 없다니 이해할 수 없다.
소숭이는 기분 나쁜 티를 팍팍 내면서도 부지런히 내 입에 수프와 빵을 날라다 주었다.
‘왜 이렇게 잘 대해주지? 회유는 포기한 거 아니었나? 설마 이건 최후의 만찬?!’
만찬치고는 별 볼 일 없는 메뉴였지만, 열악하기 짝이 없는 방구석 꼬락서니를 보면 이것도 나름대로 신경 쓴 걸 수도 있다.
나는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열심히 음식을 받아먹었다.
배가 든든해야 모진 괴롭힘에도 굴하지 않고 버틸 수 있을 테니까.
마침내 수프 그릇이 바닥을 드러내고 마지막 빵 한 조각이 입안으로 들어왔다.
그동안 내 입을 막지 않았던 건 그저 음식을 먹이기 위함이었다는 듯, 소숭이가 재갈을 꺼내 들었다.
“잠깐만!! 인간적으로 양치는 하게 해 줘.”
“아, 맞다.”
소숭이가 아차 하는 표정으로 내 입에 재갈을 쑤셔 넣더니, 쟁반을 들고 밖에 나갔다 왔다.
다시 돌아온 소숭이의 쟁반 위에는 식기 대신에 칫솔과 치약, 물이 든 컵뿐만이 아니라 양칫물을 뱉을 그릇까지 올려져 있었다.
그렇게 만반의 준비를 한 소숭이가 정성스럽게 내 이를 닦아 주었다.
우리 부모님도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고 난 이후로는 양치를 시켜 준 적이 없는데.
나를 바라보는 소숭이의 표정이 썩었던 것도 이해가 간다.
내 치아 대신 소년의 표정이 희생당한 거였다.
깨끗한 물로 입안을 서너 번 헹궈내자, 이제 됐다고 생각했는지 소숭이가 내 입가에 묻은 물을 닦아주었다.
그러고는 내가 양치 전에 물었던 재갈이 아니라 새 재갈을 입에 물려주었다.
왜 이렇게까지 내 치아 건강을 신경 써 주는 건지 알 수가 없어서 매우 당혹스럽다.
1005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