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1029)
공작님, 회개해주세요!-1030화(1030/1105)
98. 공작님의 의문 (3)
* * *
□
텅 비어버린 기분이다. 뭘 해도 재미가 없고 공허했다.
친구들과 만나서 놀 땐 외로움이 덜했지만, 아파 보인다며 집에 가서 쉬라고 등을 떠미는 통에 금방 돌아와야 했다.
괜찮으니까 계속 놀자고 하기엔 친구들의 표정에 나를 걱정하는 기색이 선연했다.
즐겁게 놀자고 모인 건데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도 않고, 걱정 가득한 그 표정들이 가나안 대륙에서 함께했던 이들을 떠올리게 해서. 눈물이 나올 것 같아서.
결국 친구들을 등지고 먼저 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홀로 돌아오는 길은 친구들과 만나기 전보다 더 외롭고 쓸쓸했다.
가나안 대륙에 두고 온 이들이 떠올라 양심의 가책도 느껴졌다.
집에 돌아오고 난 이후는 더 최악이었다.
최지혜나 주원이를 만나고 왔을 때와 다르게, 한 번에 여러 명을 만나 복작복작한 분위기를 느끼고 와서 그런가. 혼자라는 게 더욱 실감이 났다.
특히 방에 들어갔을 때, 세르펜스가 내 뒤를 따라 들어오지 않는다는 게 어색하고 당혹스러웠다.
한여름인데도 불구하고, 아무런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는 방에서 묘한 한기가 느껴지는 듯했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한껏 웅크리고 있자니 눈물이 찔끔 새어나왔다.
울 것 같은 얼굴을 하고도 애써 태연한 척 굴며, 나를 위로해 주려 애쓰던 세르펜스의 모습이 떠올라 더 슬퍼졌다.
한 번 그런 일이 있고 나자, 다시 친구들을 만날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며칠째 집 밖으로 한 걸음도 나가지 않았다.
하지만 혼자 있는 매 순간순간이 외롭고 쓸쓸해서 방에 틀어박혀 있을 수도 없었다.
거실 소파에 누워 멍하니 TV 화면을 들여다보는 게 일상이 되었다.
‘차라리 지금이 학기 중이라면 학교에 가서 사람들과 부대끼며 지낼 수 있을 텐데···. 과제나 공부에 집중할 수도 있고···. 특히 시험 기간에는 죽을상을 한 사람들이 많으니, 내 안색이 안 좋아도 아무도 이상하게 보지 않을 거 아냐?’
이젠 하다 하다 빨리 개강하고 시험 기간이 왔으면 하고 바라게 되었다.
내가 생각해도 진짜 제정신이 아니다. 멀쩡한 대학생은 그딴 걸 바라지 않을 테니까.
미쳐도 단단히 미친 것 같다고 생각하며 리모컨으로 TV 채널을 돌렸다. 버튼을 누를 때마다 화면이 바뀌었다.
예전에 즐겨 보던 예능 프로그램의 재방송이 보여서 버튼을 누르던 손을 잠시 멈췄다.
TV 속 사람들이 오두방정을 떨고 즐겁다는 듯이 웃어댔다.
옛날에는 이럴 때 같이 웃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메마른 웃음조차 나오지 않았다.
채널을 돌리자 음모론을 다룬 다큐멘터리가 방영되고 있었다.
하필이면 ‘일루미나티’에 관한 얘기가 나와서 몇 번 더 채널을 돌렸다.
{ 먉!! }
이번에는 반려묘의 문제 행동을 분석하고 바로잡으며, 고양이들의 심리를 알아보는 프로그램이다.
풍성한 꼬리털을 자랑하는 새하얀 고양이가 사방을 경계하며, 날카로운 울음을 토하고 발톱을 세웠다.
세르펜스와 만난 지 얼마 안 됐을 때 있었던 일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 삑.
그리움에 눈물이 나올 것 같아서 급히 TV를 꺼버렸다.
이럴 줄 알았으면 세르펜스에게 고양이 흉내를 시키지 말 걸 그랬다. 처음부터 사람을 고양이 취급하면 안 되는 거였는데.
‘아니, 근데 걔가 고양이처럼 행동한 걸 나더러 어쩌라고?!’
세르펜스가 고양이였던 게 문제다. 녀석 때문에 이제 귀여운 고양이를 봐도 흐뭇한 마음으로 지켜볼 수가 없다.
그렇게 세르펜스에게 책임을 전가하며 녀석의 빈자리를 실감했다.
저쪽 세상에서 지냈을 땐 가족들이 그립긴 했으나 지금보다는 버틸만했다.
언젠가 이곳으로 돌아와 가족들과 재회할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세르펜스와 일루미나티, 성검 일행은 영영 만날 수가 없다.
‘진짜 만날 수 없나?’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휴대폰을 들어 메신저 앱을 켰다.
친구 목록에서 ‘솔레르티아’를 찾아 1:1 채팅을 눌렀다. 그녀와 만났던 날 내가 먼저 도착했다고 보냈던 게 마지막 메시지다.
나는 그 밑에 새로운 내용을 한 줄 추가했다.
[ 혹시 룩스메아랑 연락 가능합니까? ]말풍선 옆에 뜬 숫자 ‘1’이 곧바로 사라졌다.
초조하게 휴대폰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금방 답장이 돌아왔다.
[ 무슨 말이 그래요? 신이 제 친구도 아닌데. ] [ 그래서 연락돼요? ] [ 안 돼요. ] [ 그럼 혹시 그쪽 세상으로 돌아갈 방법은 아십니까? ] [ 몰라요. ]돌아온 답변에 실망하며 휴대폰 화면을 끈 찰나, 메신저 알림이 울렸다.
나는 부리나케 화면을 다시 켜서 새로 온 메시지를 확인했다.
[ 그런 건 왜 물어요? 설마 돌아가고 싶은 거예요? ]최지혜가 직접 쓴 손글씨도 아니고, 기본 폰트가 적용된 글자를 보고 있는데도 이해할 수 없다는 감정이 묻어났다.
돌아갈 방법을 찾을 수는 없더라도, 그리움을 털어놓고 위로를 받을 수는 있지 않을까 했는데.
얘기해 봤자 이해받을 수 없다면 서러움만 커질 뿐이다. 아예 말하지 않는 편이 낫다.
나는 뭐라고 답장해야 하나 잠시 고민하다 그냥 꺼버렸다.
“하아···, 보고 싶다.”
늘 나를 이해하고자 노력하던 녀석이 그리워져, 나도 모르게 한숨을 푹 내쉬며 중얼거린 그때.
“보고 싶으면 보면 되지.”
“아, 깜짝아!!”
“뭘 그렇게 놀라?”
화들짝 놀라 상체를 일으켜 앉으며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누나가 멀뚱멀뚱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손에 빈 텀블러가 들려있는 걸 보니, 마실 물을 채우러 나왔다가 내 중얼거림을 들은 모양이다.
“대체 누가 그렇게 보고 싶길래 한숨까지 푹푹 내쉬며 아련하게 혼잣말을 하는 거야?”
“엄청 예쁘고 똑똑하고···.”
“오오!!”
“재롱을 잘 부리는···.”
“재롱? 애교가 아니라?”
“···고양이.”
“오오오!!”
재롱이란 단어에 잠시 멈칫했던 누나가 고양이라는 말에 다시 눈을 빛내며 감탄했다.
사람이라고 말했으면 이상한 오해를 샀을 것 같다.
세르펜스가 고양이라서 다행이다.
“고양이 같은 매력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 냥냥거리는 그 고양이를 말하는 거지?”
“응. 냥냥거리는 고양이.”
그 녀석이 냥냥거리긴 했으니 거짓말은 아니다.
“친구가 고양이 키운대? 사진 없어, 사진?”
“응, 없어. 그래서 엄청 보고 싶어.”
“치사한 친구네. 얼른 그 친구네 집에 가서 사진 찍어 와.”
“이 세상 고양이가 아니라서 불가능해.”
“아···.”
들떠서 나를 소파에서 끌어내려 했던 누나가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탄식했다.
졸지에 세르펜스를 죽은 고양이로 만들어버리긴 했으나 거짓말은 안 했다. 솔직히 털어놓은 것도 아니긴 하지만.
“그보다 너, 그 상태 되게 오래 간다?”
“···그러게.”
“새로운 소설이라도 읽어 봐. 내가 재밌는 거 추천해 줄까?”
“그렇게 말하고 또 자기 소설 추천하려고?”
“아냐, 아냐. 내 친구가 추천해 준 건데, 얘기 들어보니까 재밌을 것 같아서 나중에 읽어볼까 생각해 둔 거야. 그러니까 제목이···, 뭐더라?”
누나는 잠시 곰곰이 고민하는 듯했으나 결국 제목을 기억해내지 못했다.
어차피 새로운 소설을 읽을 마음은 들지 않았으니 아무래도 상관없다.
나는 핸드폰에 메모해 둔 게 있으니 기다리라며 방으로 들어가려는 누나를 붙잡았다.
“됐어, 이제 소설 안 읽을 거야.”
“그게 소설 작가인 누나 앞에서 할 소리야?”
“것보다 누나. 앞으로는 소설 추천받지 마. 읽고 나서 댓글도 달지 말고. 소설을 쓰려거든 악당도 없고 평화롭고 행복한 얘기만 써.”
“대체 [성검의 주인]이 어떤 소설이길래 얘가 이렇게 됐지?”
“그 소설엔 관심조차 주지 마.”
“···어, 그럴게.”
누나가 이상한 사람을 다 본다는 시선으로 나를 쳐다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고 방으로 들어갔다.
한 번 소설 빙의 타겟이 된 전적이 있었으므로, 걱정돼서 진심으로 충고한 건데 내 마음도 몰라주고 너무하다.
나는 닫힌 누나의 방문을 바라보다가 다시 소파에 누워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가슴 위에 고양이가 얹어진 것처럼 답답하고 숨쉬기가 힘들다.
‘어떡하냐, 진짜···.’
시간이 지날수록 그리움이 희석되기는커녕 더 심해졌다.
하기야 저쪽 세상에서 지낼 때도, 가족들을 보고 싶은 마음이 나날이 커졌으니 당연한가?
갈수록 더 힘들어질 거라고 생각하니 막막하다.
이럴 거라면 함께한 기억을 잃는 게 나였다면 좋았을 뻔했다.
‘악마에 의해 기억을 잃었을 때처럼 정체성이 흔들리는 게 아니라, 그냥 저쪽 세상에서 지냈던 기억만 사라질 뿐이라면 이렇게 괴롭지는 않았을 텐데···.’
하지만 지금은 그때의 기억을 지우고 싶지 않다. 아니, 그럴 수가 없다.
모두가 나를 잊어버렸는데 나까지도 그들을 잊어버린다면, 내가 그들과 함께했던 모든 시간이 없던 일이나 다름없게 되어버릴 테니까.
그러니 나라도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
‘날 잊고, 세르펜스는 잘 지내고 있으려나···?’
* * *
◇
<♥ 공작님, 행복해 주세요! ^▽^ ♥>
나는 생경한 언어로 적힌 글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내 행복을 기원해주는 내용이 기가 막혀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선우, 그대가 내 곁에 없는데 대체 어떻게 행복해지라는 거지···?”
휴마누스가 적은 일지를 읽고, ‘빈자리’의 주인이 다른 세상의 존재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존재는 ‘시온 리벨론’이라는 내 보좌관의 몸을 빌려 나와 함께 했다.
자신의 몸을 지킬 힘도 없으면서, 나를 위해 위험한 여정에 동행했고 모두의 편의를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는 것 같다.
그는 우리와 함께 싸우지 못한다는 사실에 무력감을 느낀 모양이지만.
함께 싸우지 않아도 그는 우리의 동료였고, 동시에 은인이기도 했다.
그가 알려준 정보 덕분에 피해가 커지기 전에 막은 사건의 수가 상당하며, 그 과정에서 우리 일행 중 몇몇은 큰 은혜를 입기도 했으니.
애초에 그는 무력감을 느낄 필요가 없었다.
그럼에도 도움이 되지 않아 괴로워했다는 부분에서, 그가 얼마나 헌신적인 존재인지 알 수 있었다.
기억은 없지만, 나는 확신할 수 있다. 우리는 모두 그런 그를 사랑했을 거다.
‘아도르’라는 세례명에 어울리는 건 내가 아니라 그와 같은 사람일 테지.
휴마누스의 일지를 읽고 그의 존재가 확고해진 후, 나는 아공간 주머니 속 물건을 전부 꺼내어 그의 흔적을 찾았다.
그가 가족들에게 쓴 편지와 내 성장을 기록한 공책, 나와 필담을 나눈 종이 등등.
그것들을 통하여 그가 진심으로 나를 아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가 정 많고 외로움을 잘 타는 사람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가 남긴 흔적들을 통해 알아낸 것 중 가장 큰 수확은 누가 뭐라 해도 그의 본명이다.
두 개의 언어로 적힌 동일한 내용의 편지 덕분에, 나는 그의 이름을 어떻게 쓰고 발음하는지 알아낼 수 있었다.
“유선우···.”
그를 만나고 싶다. 끝까지 그를 지키지 못한 나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마왕이 그의 영혼에 대체 무슨 짓을 했길래, 모두의 머릿속에서 그와 관련된 기억이 사라진 것인지 모르겠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의 영혼이 마왕의 손아귀 안에서 고통받고 있을 거라 생각하자, 가슴이 미어졌다.
1031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