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1030)
공작님, 회개해주세요!-1031화(1031/1105)
98. 공작님의 의문 (4)
* * *
□
“아직도 안 자네.”
“아, 깜짝악!!”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깜짝 놀란 나머지 들고 있던 핸드폰을 놓쳐버리고 말았다.
핸드폰은 중력에 순응하며 내 안면을 향해 추락했고 나는 비명을 질렀다.
“쉿! 조용히 해, 부모님 깨실라.”
소리 소문 없이 열린 방문 틈새로, 빼꼼 고개를 내민 누나가 검지를 세워 입 앞에 가져다 댔다.
노크도 없이 방문을 열고 말을 걸어 날 놀라게 한 사람이 할 소리가 아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앉아 핸드폰에 맞은 이마를 문지르며 누나를 노려보았다.
“또 우네.”
“누나 때문이잖아.”
“핸드폰 떨어지기 전부터 울고 있는 거 다 봤거든?”
“소설이···, 너무 슬퍼서···.”
내가 말한 ‘소설’은 다름 아닌 [성검의 주인]이다.
절대로 다시는 읽지 않으리라 다짐했으나 어쩔 수가 없었다.
그리운 이들과 만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그 소설을 읽는 것뿐이었으니까.
얼굴도 볼 수 없고 목소리도 들을 수 없는 활자에 불과할지라도.
이 고생 끝에 도달할 결말이 비극이라는 걸 알고는 있으나.
심지어는 [성검의 주인] 속 사람들은 2회차의 인물이라서, 내가 아는 그 사람들과는 별개의 인물이나 다름없지만.
‘적어도 타락펜스는 내가 만났던 녀석이긴 하지.’
어쨌든 성검 일행의 이야기를 읽고 있노라면, 그 순간만큼은 그리움이 조금 가시는 듯했다.
불만이 있다면 타락펜스의 분량이 많은 듯하면서도 묘하게 적고.
그보다 등장이 더 적은 흑기사 윈스톤은 과묵하기까지 해서, 대사가 몇 줄 되지도 않으며.
에드나는 등장한 에피소드에서 곧바로 퇴장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들이 나오는 부분은 책갈피 기능으로 따로 표시해 뒀다.
보고 싶을 때마다 골라서 읽으려고. 내용이 내용이다보니 읽고 있으면 슬프지만, 이렇게라도 접하고 싶어서.
“너도 참 어지간하다.”
가까이 다가온 누나가 내 핸드폰을 주워서 소설 제목을 확인하고는 혀를 내둘렀다.
내가 생각해도 좀 그런 것 같기는 하다.
하지만 세르펜스와 일행들이 너무 그립고 걱정되어서 잠이 안 오는 걸, 난들 어쩌겠는가?
‘꿈속에서라도 그리운 얼굴을 볼 수만 있다면 바로 잠들 수 있을 것 같은데···.’
이렇게나 보고 싶어 하는데도 꿈에서조차 나타나지 않는 세르펜스가 나빴다.
시온의 몸으로 지낼 때는 꿈속에 잘도 나타나 줬으면서.
‘아! 그러고 보니 이제는 세르펜스의 꿈에서도 내가 등장하지 않겠구나···? 그럼 악몽에 시달리는 녀석을 누가 지켜주지?’
걱정이 또 늘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악몽 속에서 나를 찾아오라고 하지 말고, 네가 더 강하니까 전대 공작을 흠씬 두드려 패 주라고 했을 텐데.
“이럴 줄 알았으면 너한테 이 소설을 읽어 달라고 하지 말걸···.”
묘하게 내 생각과 첫머리가 겹치는 누나의 중얼거림을 듣고, 나는 재빨리 눈가에 고인 눈물을 닦아냈다.
이미 우는 모습을 들키긴 했지만, 눈물이라도 닦아내면 조금은 괜찮아 보일까 해서.
그런 나를 보던 누나가 내 핸드폰 전원을 꺼버리고 침대에 툭 던지며 입을 열었다.
“잠이 안 오면 괜히 소설 보며 질질 짜지 말고 나와. 우유 데워줄게.”
“···하필?”
“하필이라니?”
내 반응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누나가 의아하게 되물었다.
어린 내가 잠이 안 온다고 칭얼댈 때마다 누나는 전자렌지로 우유를 데워 줬다. 그걸 마신 나는 금방 잠들었고.
다 크고 나서도 잠이 안 올 때면 내가 직접 우유를 데워 마시기도 했다.
그러니 누나가 의아해하는 것도 당연하다.
자기는 하던 대로 했을 뿐인데 내가 평소와 다른 반응을 보였으니까.
마음 같아서는 누나한테 전부 털어놓고 응석을 부리고 싶지만.
“···그런 게 있어.”
오늘도 얼버무렸다.
내가 [성검의 주인] 속 세상에 다녀왔다고 말하면, 미친놈 취급을 받을 게 뻔하다는 것도 문제지만.
설령 누나가 내 말을 믿어준다면 그건 그거대로 큰 문제다.
지금도 괜히 내게 [성검의 주인]을 읽게 했다며 자책하는데.
단순히 과몰입한 정도가 아니라. 아예 그 소설 속 세상에 끌려갔다가, 온갖 고생을 하고 돌아왔다는 걸 알면 어떻게 되겠는가?
아무리 내가 누나 대신 갔다 와서 다행이라 생각하며, 그곳에서 즐거운 추억도 많이 만들었다고 얘기한들.
누나는 동생을 지키지는 못할망정 위험한 불구덩이 속에 밀어 넣었다며, 현재의 내 상태에 책임을 느끼고 미안해할 게 뻔하다.
어쩌면 내가 잡지 못한 최지혜의 멱살도 대신 잡아줄지도 모르겠다.
대리 멱살잡이는 굉장히 혹하지만, 잠깐의 통쾌함을 위해 누나까지 마음고생을 시킬 수는 없다.
나는 침대에서 벗어나 누나를 따라서 부엌으로 향했다.
누나가 냉장고에서 우유를 꺼내어 머그잔에 따르고 전자렌지에 넣는 모습을 보며, 나는 식탁 의자에 앉았다.
– 삑, 삑, 삑. 위이잉~.
전자렌지가 동작하며 기계음이 울려 퍼졌다.
나는 그 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다가,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입을 열었다.
“오늘 글은 다 썼어?”
“응. 너 자는 것만 보고 나도 잘 거야.”
“내가 애도 아니고, 알아서 잘 수 있어.”
“퍽이나 그러하겠다. 너 요즘 불면증 있는 거 내가 모를 줄 알아?”
“······.”
“그리고 내가 보기엔 너 아직 애야.”
사회에서 다섯 살 차이는 그리 큰 차이가 아니다.
게다가 시온의 몸으로 산 세월을 생각하면, 나와 누나의 실질적 나이 차이는 한 살밖에 되지 않는다.
그래도 내게 누나는 언제나 어른이다.
내가 초등학교 고학년일 때 누나는 이미 고등학생이었고, 수험생일 땐 완결작도 있는 어엿한 웹 소설 작가였으니까.
반대로 누나가 나를 어린애 보듯 하는 것도 그런 이유겠지.
누나의 주장에 따르면 본인이 내 기저귀를 갈아준 적도 있다는데, 그것까진 모르겠고.
아무튼 결론은 아직 애라는 말을 들어도 반발심이 생겨나지 않는다는 거다.
오히려 누나의 사랑이 느껴져서, 싸늘하기만 했던 마음 속에 미약한 훈풍이 감도는 듯한 기분이다.
– 띵~!
전자렌지가 맑은소리를 내며 멈췄다.
누나가 전자렌지에서 따뜻하게 데워진 우유를 꺼내어 내 앞에 내려놓고, 맞은편 자리에 착석했다.
하얗게 올라오는 김을 타고 고소한 우유 냄새가 훅 풍겨왔다.
뜨거운 우유를 후후 불어 마시니, 세르펜스가 떠올라 눈물이 핑 돌아서 울지 않으려고 참느라 혼났다.
“차기작은 힐링물을 써 볼까?”
“갑자기 차기작 얘기는 왜 하는 거야?”
“네가 피폐한 내용의 소설을 읽고, 이렇나 오래 후유증에 시달리는 걸 보니까 기분이 좀 안 좋아서.”
요컨대 나 때문이라는 소리다.
그래도 뭐 나쁘지 않다. 안 그래도 누나가 밝고 행복한 배경의 소설만 쓰고, 읽었으면 했으니까.
애초에 그런 배경이면 외부인을 납치해서 데려갈 이유도 없을 테고, 소설 속 누군가에게 빙의하더라도 나처럼 고생하지는 않겠지.
“힐링, 좋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짧게 대답한 뒤 다시 머그잔을 기울였다.
그리고 따뜻한 우유를 입에 머금은 순간 들려온 누나의 말에, 하마터면 입안의 우유를 뿜을 뻔했다.
“고양이랑 아기를 함께 키우는 내용은 어떨까?”
“왜, 왜 하필이면 그 둘을 같이 키우는 건데?!”
“요즘 귀여운 동물을 마스코트로 내세우는 웹 소설들 많잖아. 육아물도 꽤 수요가 있는 편이고. 마침 네 전공이 어린아이와 관련이 있으니까, 조언도 받을 수 있으니 딱이지 않아?”
“······.”
“왜? 고양이랑 같이 키우면 아기한테 뭔가 안 좋대? 마법이나 요정 고양이로 설정해서 털 날림이나 알레르기 걱정을 안 해도 되고, 아이가 가장 예민한 사춘기 때 고양이가 죽는 불상사도 방지할 생각인데···.”
누나는 내가 암울한 소설의 결말 때문에 힘들어하는 줄 알고 있다.
그러니 갑자기 힐링물을 쓰겠다고 한 건, 내가 자신의 소설을 읽고 다시 기운을 차렸으면 하는 바람 때문일 테다.
하지만 누나가 고양이와 아기가 함께 나오는 행복한 소설을 쓰면 나는 읽지 못할 거다.
어떤 장면에서는 세르펜스의 불행한 어린 시절과 비교하게 될 테고, 또 다른 장면에서는 녀석이 행복하게 웃으며 야옹거리는 모습이 떠오를 테니까.
그냥 상상만 했는데도 가슴속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울컥 치밀어 올랐다.
나는 우유와 함께 그 감정을 삼켜, 다시 새어나오지 않도록 마음속에 꾹꾹 눌러담았다.
‘그보다 나 아동 복지학과인데, 이래가지고 실습이랑 취업은 어떻게 하지···?’
강한 적들과 싸우고 있을 세르펜스와 일행들도 걱정이지만, 내 앞날도 참 걱정이다.
잘 놀다가 느닷없이 왈칵 눈물을 쏟아대는 어른을 믿고 의지할 아이는 어디에도 없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정말 억울해 미치겠다.
“마음에 안 들어?”
“···아니야. 난 신경 쓰지 말고 누나가 쓰고 싶은 거 써.”
“별로인가 보네.”
“······.”
나는 말없이 우유가 든 잔을 비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시 잠을 청하기 전에 가볍게 가글이라도 하려고 화장실로 향하는데, 등 뒤로 누나의 한숨 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내가 얼른 괜찮아져야 누나가 걱정을 안 할 텐데···.
* * *
◇
“커어억!”
마인이 숨넘어가는 소리를 내며 바닥에 쓰러졌다.
명이 질긴 건 마인의 기본 특성 중 하나였으니 이 정도로는 죽지 않는다. 그런 판단하에 나는 그자의 복부를 향해 검을 내리찍었다.
마인의 복부를 관통한 검이 땅에 단단히 틀어박혔다.
일어나려고 바르작거리던 마인이 이도 저도 못하는 꼴로 피를 토했다.
“‘대사제’는 어디에 있습니까?”
나는 검을 쥔 손목을 가볍게 비틀며 질문했다. 원하던 대답이 아닌 비명이 돌아왔다.
검을 뽑았다가 방금 찔렀던 곳의 바로 옆을 꿰뚫으며 다시 한 번 같은 질문을 던졌다.
사실 진짜로 알고 싶은 건 ‘대사제’가 아닌 선우의 위치다.
하지만 내가 그의 존재를 인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마왕이 눈치챈다면, 또다시 내 기억을 지우려 할지도 모른다.
혹은 그를 이용하여 우리를 함정에 빠뜨리려 하거나.
선우가 가족들에게 쓴 편지 혹은 나와 필담을 나눈 내용만 봐도, 그가 선하고 어진 존재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만약 마왕이 그를 이용하여 우리에게 해를 끼치려 한다면.
그는 자신을 지키지 못한 우리를 탓하는 게 아니라, 납치당한 자신을 탓하며 괴로워할 것이 자명하다.
그렇게 생각하자 선우에 관한 기억은 없는데도 불구하고 신성력이 들끓었다.
“어서 대답하십시오. 대사제는 어디에 있습니까?”
휴마누스의 일지에 쓰인 내용에 따르면 마왕이 선우를 노린 건 한두 번이 아니다.
끈질긴 시도 끝에 선우를 납치하고, 모든 이들로부터 그와 관련된 기억을 지울 정도라면. 그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거대한 음모를 꾸미고 있는 것일 터.
그 음모과 관련 있는 존재인 선우를 아무 곳에나 감금해 뒀을 리가 없다.
악마 숭배 세력의 중추라 할 수 있는 대사제와 함께 있을 가능성이 높다.
내가 대사제의 위치를 알아내고자 하는 건 그런 이유에서다.
“크으윽···. 모, 모른···.”
“거짓말하지 마십시오.”
“지, 진짜다! 나는 그저 원수에게 복수하고자, 악마와 계약했을 뿐이라···.”
“모르면 계약한 악마에게라도 물어보십시오.”
“그냥 죽여라! 어차피 복수도 달성했으니 미련은 없, 커헉!!”
박힌 검을 빼내고 마인의 몸뚱어리를 발로 걷어찼다. 바닥을 구른 마인이 신음을 토했다.
그 모습이 고통스러워 보이긴 했으나 동정하진 않는다. 선우는 저자보다 더 큰 고통을 받고 있을 터이니.
반항을 덜 하도록 팔을 잘라야 할지, 도망가지 못하도록 다리부터 끊어야 할지 고민하며 검을 들어 올렸다.
그러던 그때 휴마누스가 내 손목을 잡아챘다.
“진정해!”
“저는 지금 침착합니다.”
“신성력이 날뛰고 있는데 침착하긴 무슨!!”
“···이거 놓으십시오.”
“악마가 마인 따위를 불쌍하게 여겨서 중요한 정보를 알려줄 리가 없잖아! 저 마인을 고문하더라도 원하는 정보는 들을 수 없을 테니까 포기해.”
휴마누스가 포기하라고 한 건 어디까지나 마인에게서 정보를 얻는 일을 일컫는 걸 테다.
그 사실을 눈치챘음에도 마치 선우를 되찾는 것을 포기하라는 말처럼 들려서, 분노와 설움이 요동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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