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1031)
공작님, 회개해주세요!-1032화(1032/1105)
98. 공작님의 의문 (5)
◇
“간절한 건, 저뿐입니까···?”
“무슨 말을 그렇게 해?!”
눈물로 흐려진 시야 탓에 휴마누스가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서운함이 가득 묻어나는 목소리를 통해 그의 감정을 짐작할 따름이다.
그러나 서운하기로 따지자면 내가 더하다.
나를 제외한 모두가 선우의 빈자리를 인지하지 못했다.
일지를 통해 선우의 존재를 인지한 일행들이 그를 구해야 한다고 뜻을 모으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도덕심에서 비롯된 판단에 불과했다.
그에 관한 기억이 사라진 후 그리움과 상실감을 호소하며 괴로워한 건 나뿐이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선우가 남긴 각종 기록물에 의하면 그는 가족들을 절실히 그리워했다.
하지만 고향으로 돌아갈 방법을 알면서도 돌아가지 못했다.
모두가 위험에 맞서 싸우는데 혼자 안전한 세상으로 도피할 수는 없으며, 한번 돌아가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기에.
그는 자신이 죄스러움과 걱정, 그리움에 파묻혀 헤어나오지 못할 거라 확신하고 이 세상에 남는 쪽을 택했다.
그 정도로 선우는 우리를 몹시 소중히 여겼다.
한데도 그를 잃었다는 사실에 슬퍼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이성을 잃을 정도로 필사적인 이 또한 나뿐이었다.
모두 이성적이고 침착했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다들 냉정했다.
그들은 마왕과 악마와 그들을 숭배하는 인간들에게 분노하며 적개심을 품긴 했으나, 그건 단지 그자들이 수많은 이들의 목숨을 앗아간 ‘악(惡)’이기 때문이다.
소중한 이를 빼앗겨 분개한 것은 아니었다.
“갑자기 소리 질러서 미안해. 세르펜스, 네가 너무 걱정돼서 그랬어.”
손목에서 느껴지는 휴마누스의 손아귀 힘이 약해졌다.
현재 가장 위험한 처지에 놓인 건 악마 숭배 세력에 납치당한 선우다. 한데 휴마누스는 기억에 없는 그보다 나를 더 걱정하며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그 사실이 참을 수 없이 화가 나고 비통하여 휴마누스의 손을 뿌리치려는 찰나.
“조심해요!!”
리에나 님의 경고와 동시에 순백의 신성력이 나와 휴마누스의 주변을 감쌌고, 마인의 몸이 폭발하며 쾅 하는 굉음이 울려 퍼졌다.
그제야 마인이 마기와 생명력을 모두 바쳐 최후의 일격을 시도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로 소용돌이치는 감정 때문에 알아차리는 게 늦은 까닭이다.
“위, 위험할 뻔했네···. 이러니까 내가 진정하라고 한 거야. 침착하고 냉정하게 적의 움직임을 파악해서, 효율적으로 싸우는 게 네 특기잖아. 그런데 고작 마인의 자폭 따위에 반응조차 못 하다니 너답지 못해. 방금은 전투가 거의 마무리 된 상황이라 리에나한테 여유가 있었기에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크게 다쳤을 거야.”
“휴마누스 님도 똑같아요. 적을 완전히 쓰러트리기 전에 한눈팔지 마세요.”
“···미안.”
휴마누스가 내게 설교를 쏟아내다가 리에나 님에게 한소리를 듣더니 조용해졌다.
나는 그런 휴마누스의 손을 뿌리치고 검에 묻은 피를 털어낸 뒤 납검(納劍)했다.
하나 분노를 털어내지 못한 까닭인지 날뛰는 신성력을 갈무리하는 건 쉽지 않았다.
“세르펜스 님. 우선은 정신을 안정시키는 게 좋겠어요.”
“···그러고 싶지 않습니다.”
“고집부리지 마시고요.”
“지금 고집이라 하셨습니까?”
“네. 전투에 집중하지 못한 건 휴마누스 님도 마찬가지긴 하지만, 그분이 틀린 말을 하신 건 아니에요. 이번 적은 평범한 마인이었기에 지금 상태로도 가뿐히 승리할 수 있었지만, 다음 적도 그러라는 법은 없으니까요. 전력의 한 축을 담당하고 계신 세르펜스 님께서 무너지시면, 저희 모두 무너질 수밖에 없어요. 저희가 패배하면 선우 님은 누가 구해주죠?”
“······.”
내가 쓰러지면 선우를 영영 구할 수 없을 거라는 얘기에 말문이 막혔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그 말이 옳다.
악마 숭배 세력은 선우를 납치한 직후, 속히 악마를 소환하고자 공격적으로 제물을 모았다.
우리의 기억을 지운 뒤로는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 것인지, 요즘에는 다시 움직임이 조심스러워지긴 했지만. 이미 모아놓은 제물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또한 움직임이 조심스러워졌다고는 하나, 제물을 모으는 데 소홀해진 건 아니었다.
조금 전에 물리친 마인처럼, 폭주하지 않고 제대로 이성을 갖춘 마인들이 대륙 곳곳에서 나타났다.
그자들은 이성을 잃고 폭주하는 마인과 달리 적당히 몸을 사릴 줄 알았다.
싸우다가 이길 수 없다는 판단이 들면 도망치기도 하고, 몰래 숨어서 혼자 다니는 사람들만 골라서 죽이기도 하며. 반대로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을 공격하여 대규모 학살을 저지르기도 했다.
당연하게도 악마와 어설픈 계약을 맺고 날뛰던 마인들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수많은 사상자를 이끌어냈다.
보고된 사상자의 수만 헤아려 보아도 지금쯤이면 최상급 악마가 소환되고도 남았다. 하나 선우를 납치한 상급 악마를 끝으로 더 이상의 악마 소환은 없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오직 하나다.
다음번에는 최소 둘 이상의 최상급 악마가 동시에 소환될 거라는 것.
‘만약 그 악마들이 격을 뛰어넘어 최상급 이상의 힘을 발휘할 수 있다면···.’
현재 우리의 실력으로는 그런 악마가 하나만 있어도 승리를 점칠 수가 없다.
비단 선우를 구출해야 한다는 것 외에도, 서둘러 대사제를 제거하고 악마 숭배 세력을 와해시켜야 할 이유가 하나 더 있는 셈이다.
그게 불가능하다면 지금보다 더 실력을 키워야 한다.
하지만···.
‘내가 더 강해질 수 있긴 한가···?’
신의 경지에 오른 마왕을 꺾기 위해서는 신의 힘이 필요하다.
그렇기에 나는 ‘신’이 되는 것을 목표로 했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어렵긴 하나 불가능하지는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잘 모르겠다. 한계를 뛰어넘을 자신이 없다.
머릿속이 선우를 앗아간 자들을 향한 분노로 가득한데, 어찌 ‘아도르’라는 세례명에 걸맞은 존재가 될 수 있을까.
영혼이 도려내진 듯한 상실감에 몸부림치면서, 완전한 존재인 신이 된다는 건 불가능하다.
부질없는 희망을 붙들고 노력하는 것이 점차 버거워졌다. 이대로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휴마누스의 포기하라는 말에 내가 예민하게 반응한 것도 그 때문일지도 모른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다.
그럼에도 내가 계속 발버둥치며 삶을 이어나가는 건, 오로지 선우를 만나고 싶기 때문이다.
내게 행복이 무엇인지 가르쳐주고 애정을 베풀어준, 그 존재가 너무나도 궁금하고 그리워서.
그리고 내가 죽고 나면 다들 선우를 구하는 일을 포기하고, 다시 그의 존재마저 잊어버릴 것 같아서.
‘선우는 고향에 돌아가면 우리를 평생 그리워할 것 같다며 돌아가길 포기했는데···.’
그 사실을 알고 나자, 이 상실감과 분노마저도 소중하게 느껴졌다.
이것을 잃고 싶지 않다. 지금은 이 감정만이 유일하게 내 안에 남은 선우의 흔적이기에.
잠시에 불과할지라도 이 감정을 지워버리고 싶지 않다. 만약 그런 짓을 했다가 나 또한 다른 이들처럼 선우의 빈자리를 느끼지 못하게 될까 두려웠다.
“괜찮아요, 세르펜스 님.”
“···무엇이 괜찮다는 말입니까?”
“저희가 선우 님을 잊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악마 숭배 세력으로부터 그분을 되찾아야 한다는 것을 머리에 새기고 있으니. 자신에게 해가 될 뿐인 부정적인 감정을 소중하게 끌어안고 있지 않아도 괜찮아요.”
리에나 님의 차분한 음성이 가슴에 와 닿았다.
만에 하나 내가 선우의 빈자리를 느끼지 못하게 되더라도. 다른 이들이 그가 우리의 곁에 있었음을 인지한다는 것만으로도.
불안감이 가라앉으며 미친 듯이 날뛰던 신성력이 차차 가라앉는 게 느껴졌다.
“이제야 좀 진정이 됐네!”
휴마누스가 안심했다는 듯 활짝 웃으며 기뻐했다.
불과 몇 분 전이었다면. 소중한 동료가 납치당했고 우리는 그의 기억을 잃었는데, 어찌 웃을 수 있느냐며 화를 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함께 기뻐할 수 없을지언정 화가 나지는 않았다. 일행들에게 배신감을 느끼며 그들에게 품었던 미움이 녹아내린 덕분이다.
나를 괴롭히는 감정 하나를 덜어낼 수 있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고통스러웠다.
슬픔과 상실감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고, 지금 이 순간에도 기억나지 않는 선우의 미소가 사무치게 그리웠다.
그래서 남몰래 속으로 기도를 올렸다.
‘죽을 만큼 그대가 보고 싶다. 그럼에도 그대의 모습을 떠올리는 것조차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죽고 싶을 정도로 괴롭다. 그러니 선우···, 제발 내 곁으로 돌아와다오.’
* * *
□
나는 눈을 떴다. 샹들리에나 촛대, 마법등 따위가 아니라 네모반듯한 형광등 커버가 눈에 들어왔다.
이곳으로 돌아온 지도 한참 되었건만. 새삼스레 이곳이 가나안 대륙이 아니라는 게 실감이 나서 눈물이 핑 돌았다.
아니, 사실은 잠에서 깨기 전부터 울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꿈에서라도 보고 싶으니, 제발 꿈에 나와줬으면 하고 바라긴 했는데···.’
내가 꾸고 싶었던 꿈은 이런 게 아니다. 기왕이면 긍정적이고 희망찬 꿈을 꾸고 싶었다.
가령 예를 들면 나에 관한 기억이 다른 사람의 것으로 대체되어, 세르펜스가 일행들과 두루두루 잘 지내는 모습이라거나.
아니면 아예 모든 것을 말끔히 잊어버리고 열심히 악숭이 소탕에 매진한 결과, 마왕이 소환되기 전에 악숭 세력이 괴멸한다든가.
대충 그런 행복한 미래가 보이는 꿈 말이다.
‘그랬으면 서운함을 느꼈을지언정 약간은 후련해졌을 텐데···.’
그런 게 아니라면 그냥 내가 모두와 함께하던 때의 일상을 다시 한 번 경험하고 싶었다.
모두와 어울려 간식을 나눠 먹고, 세르펜스의 재롱을 보는 그런 꿈을 꾸고 싶었다.
꿈에서 깨고 난 이후 허망해지더라도 꿈을 꾸는 그 순간만큼은 행복할 테니까.
하지만 내가 꾼 꿈은 그 어느 것도 아니었다.
어째서인지 세르펜스는 나를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를 기억하지는 못했다.
그런 주제에 내가 그리워서 울고 있었다. 끔찍한 상실감과 그것마저도 잃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떨고 있었다.
신성력을 제어하는 능력으로는 대륙에서 제일가는 녀석이 신성력을 통제하지 못하고, 마인이 대놓고 자폭하는 것도 바로 눈치채지 못했다.
‘대체 왜 이딴 꿈을···!’
엉망진창으로 개연성이 파탄 난 꿈을 꾼 나 자신에게 화가 날 지경이다.
나를 기억도 못하는 세르펜스가 내 이름을 부르며 나를 그리워 한다니, 완전 설정 오류다.
녀석이 적의 공격을 감지하지 못하여 리에나가 보호해 준다는 건 캐붕의 영역이고.
그렇게 속으로 꿈 내용을 신랄하게 까대며, 그냥 개꿈을 꾼 거려니 생각하고 넘기려 했지만.
{ ‘죽을 만큼 그대가 보고 싶다. 그럼에도 그대의 모습을 떠올리는 것조차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죽고 싶을 정도로 괴롭다. 그러니 선우···, 제발 내 곁으로 돌아와다오.’ }
꿈에서 들었던 세르펜스의 간곡한 기도가 지금도 귓가에 어른거렸다.
내가 금이야 옥이야 소중하게 키운 아이가 이렇게나 절실히 나를 보고 싶어 하며, 괴로움에 몸부림치며 울고 있는데.
위로의 말을 건네기는커녕. 손을 뻗어 눈물을 닦아줄 수 없다는 게 너무나도 고통스러웠다.
나는 그 어느 때보다도 지독한 무력감을 느끼며 비참한 기분을 맛봐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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