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1032)
공작님, 회개해주세요!-1033화(1033/1105)
98. 공작님의 의문 (6)
흔히 꿈은 무의식의 반영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내가 이따위 개꿈을 꾼 건. 나 없이도 세르펜스가 잘 살아갈 수 있을지, 걱정스럽고 불안한 심리가 반영된 결과일까?
이게 다 내가 자신의 세계를 이루는 근간이라는 소리를 해 댄 세르펜스 때문이다.
꿈속의 세르펜스가 계속 죽겠다는 소리를 해대는 건,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성검펜스 탓일 테고.
타락펜스는 마인을 자꾸 고문하려 했던 것과 관련이 있으려나?
나는 내 악몽의 원인을 0회차를 제외한 모든 회차의 세르펜스에게로 돌리며, 이불을 정수리 꼭대기까지 뒤집어쓰고 몸을 잔뜩 웅크렸다.
그리고 이번에야말로 세르펜스가 행복해진 꿈을 꾸리라 결심하며 눈을 꽉 감았다.
특정 꿈을 꾸겠다고 결심한다 해서 뜻대로 될 거라는 보장은 없지만.
꿈에서라도 세르펜스를 보고 싶다고 생각하며 잠들었는데, 진짜로 꿈에서 녀석이 나온 걸 보면 영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닐 테다.
‘완전히 새로운 꿈을 꾸는 것도 괜찮지만. 기왕이면 방금 꾼 꿈속의 세르펜스가 슬픔을 이겨내고, 모든 일이 잘 풀려서 행복해지는 꿈을 꿨으면 좋겠는데···.’
아무리 꿈에 불과하다지만, 더 이상 불행한 끝을 맞이한 세르펜스가 늘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는 꿈속의 세르펜스. 줄여서 꿈속펜스가 행복해지려면 꿈 내용이 어떤 식으로 흘러가야 할지 상상해 보았다.
‘일단 기억에도 없는 나는 그만 그리워해야겠지? 맛있는 간식을 꼬박꼬박 챙겨 먹는 건 필수고. 아니, 그 전에 빌어먹을 마왕과 악숭 세력 문제부터 해결해야 하려나?’
꿈속펜스가 신성력을 제어하지 못할 정도로 정신이 불안정하고 분노에 차 있는 건.
납치당한 내가 마왕과 악숭이들에게 심한 짓을 당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착각을 바로 잡지 못한다면 마왕 소환을 저지하더라도, 세르펜스는 평생 나를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사로잡히게 될 테다.
룩스메아가 녀석에게 계시를 내려 자초지종을 설명해 주는 게 가장 좋지만.
내가 그쪽 세상에서 지낼 때도 대화 한 번 못 한 룩스메아가 갑자기 말을 걸어온다는 건, 개연성에 어긋난다.
무엇보다도 의심 많은 세르펜스의 성격상, 신이 하는 얘기라고 곧이곧대로 믿을 것 같지가 않다.
앞에서는 믿는 척하겠지만, 뒤에서는 룩스메아가 자신의 무능을 감추고자 거짓말한다고 생각하겠지.
엄청나게 불경한 녀석이 아닐 수가 없다.
‘룩스메아 외에 진실을 아는 존재라면 마왕뿐인가? 그렇다고 마왕이 강림해 버린다면, 일행들이 패배할 게 뻔하니까···.’
어찌어찌 악숭 대사제를 찾아서, 놈의 몸을 빌린 마왕과 대화를 나누는 식으로 풀어나가면 될 것 같다.
그리고 마왕은 악당답게 이것저것 주절주절 떠들어 대다가.
‘천사 썬은 룩스메아가 데려가 버리는 바람에 손가락 하나 못 건드려 봤고, 사실 나는 대사제만 없으면 대륙에 강림할 수 없다!’라고 외치는 거지.
‘좋아, 이 스토리로 가자.’
마왕이 대사제의 몸을 조종하더라도, 정식 소환은 아니니 발휘할 수 있는 힘에는 한계가 있을 터.
그 정도는 일행들의 능력으로 충분히 해결할 수 있으리라.
무사히 대사제를 처치하고 난 뒤에는 다 같이 모여서 축배를 들었으면 좋겠다. 안주로는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다양한 디저트를 잔뜩 준비하고.
세르펜스가 나는 고향에서 행복하게 잘살고 있겠거니 생각하며, 달콤한 디저트를 먹고 슬그머니 미소 짓는 모습을 끝으로 꿈에서 깬다면.
‘그럼 나도 더 이상 불안해하며 슬퍼하지 않고, 꿋꿋하게 살아갈 용기가 날 텐데···.’
나는 방금 떠올린 스토리를 머릿속에 거듭 되새기며 다시 잠을 청했다.
그리하여 꾸게 된 꿈은 어처구니없게도 꿈속펜스가 미각을 잃어버렸다는 내용이었다.
녀석은 맛 자체를 느끼지 못하는 수준을 넘어, 음식을 섭취하는 행위 자체에 거북함을 느꼈다.
특히나 녀석이 좋아하던 디저트를 먹을 때 가장 힘들어했다.
머릿속은 뱉고 싶다거나 그만 먹고 싶다거나 하는 생각으로 가득한데,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음식을 씹고 삼켰다.
그 탓에 일행 중 그 누구도 녀석의 상태를 알아차리지 못했다.
‘대체 왜 숨기는 거야?! 내가 특정 음식을 먹지 못할 때마다 도움을 줬던 에드나라면, 어떻게든 미각을 잃어도 고통스럽지 않게 음식을 섭취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냈을 텐데!’
이래서야 ‘세르펜스가 맛있게 디저트를 먹으며 슬그머니 미소를 짓는 엔딩’은 물 건너간 거나 다름없다.
내 의지와 무관하게 이쪽 세상으로 돌아와 버리고 말았는데, 꿈 정도는 내가 원하는 대로 꾸게 해 줘도 되는 거 아닌가?
진짜 뭐 이딴 꿈이 다 있나 싶을 정도로 억울하고 짜증이 났다.
‘그래도 일단 꿈이 이어지는 것 같긴 하니까, 다음 꿈에서는 꿈속펜스의 미각이 돌아오는 걸 최우선 목표로 삼고···.’
이미 잠을 많이 잔 데다가 너무 짜증이 난 나머지 졸음기가 확 날아가 버리고 말았지만, 억지로 잠을 청하면 어떻게든 잘 수 있을 것 같다.
정 안 되면 따뜻한 우유라도 한 잔 마시고 오면 되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짜증 때문에 흘러나온 눈물을 무시하고 다시 잠들고자 노력했다.
하지만 그러한 시도는 수포로 돌아갔다.
갑자기 이불이 걷히며 밝은 빛이 눈꺼풀 위로 쏟아진 까닭이다.
“야, 언제까지 잘 거야?! 밥 먹게 빨리 일어나!”
멋대로 이불을 걷어버린 범인이 날 억지로 일으켰다.
나는 눈을 비비는 척 눈물을 닦아냈다. 이런다고 내가 운 사실을 숨길 수 없다는 건 알지만, 눈물을 그냥 놔두는 것보다는 낫겠지 싶어서다.
“···됐어, 안 먹을래.”
“방학이라고 집에서 빈둥거리기만 하는 주제에 식사 준비 하나 안 해서, 일하느라 바쁜 누나가 밥상을 차리게 하는 거로도 모자라. 내가 기껏 차려놓은 밥을 안 먹겠다고?”
누나가 짐짓 엄한 표정을 지으며 잔소리를 늘어놓았다.
정말로 내가 빈둥거린다고 생각하는 건 아닐 테고. 이런 말이라도 해야, 내가 일어나서 밥을 먹고 기운을 차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거겠지.
그 생각은 반만 맞았다.
꿈속펜스가 먹는 즐거움을 완전히 잃어버리다 못해 고통스러워 하는 모습을 봤는데, 내가 무언가를 먹고 기운을 낼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다.
하지만 당장 일어나 식탁 앞에 앉지 않으면 누나의 분노를 사게 될 테다.
어쩔 수 없이 나는 뭉그적뭉그적 침대에서 벗어났다.
“얼른 세수하고 와.”
“······.”
“대답.”
“응, 씻고 올게.”
세안을 마치고 부엌으로 향하자, 무표정한 얼굴을 한 누나가 식탁 의자에 앉아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틈만 나면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건 거의 모든 현대인의 습관이자 고질병이다. 지하철만 타도 무표정한 얼굴로 핸드폰을 보는 사람이 태반이다.
나는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자리에 앉았다.
그와 동시에 누나가 핸드폰을 내려놓으며 입을 뗐다.
“설거지는 네가 해.”
“당연히 그래야지.”
“잘할 수 있지?”
“새삼스럽게. 내가 코흘리개 어린애도 아니고, 설거지 하나 제대로 못 할까 봐?”
“설거지를 시켜 놨더니, 세제 푼 물로 비눗방울 놀이하다가 컵을 깨트려 먹은 전적이 있어서 한 말이야.”
누나가 집어 든 숟가락을 흔들면서 농담을 던졌다.
어째서 어제도 잘만 한 설거지를 잘할 수 있느냐며 걱정하나 했더니, 추억을 끄집어내기 위한 발판 다지기였나 보다.
내 기분을 풀어주려고 노력하는 게 빤히 보이는데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을 수는 없다.
나는 픽 웃으며 똑같이 농담조로 받아쳤다.
“그거야말로 내가 코흘리개 어린애일 때 있었던 일이잖아.”
“아, 그래? 요즘 툭하면 울길래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갔나 했지 뭐야?”
“나 어렸을 때 별로 안 울지 않았어?”
“아닌데? 너 엄청 울었거든? 못 믿겠으면 엄마나 아빠한테 물어보든가.”
물어보나 마나다. 부모님이라면 내가 안 울었어도 나를 놀리느라 허구한 날 울었다고 답할 게 뻔했다.
증거도 없고 삼 대 일의 상황이라면, 진실이 어찌 되었건 머릿수가 많은 쪽이 우기는 것이 사실로 받아들여지는 법이다.
나는 괜히 계란으로 바위를 내리쳐서 처참히 깨지는 대신, 잠자코 패배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참, 누나 나갔다 올 건데 부탁할 일 없어? 올 때 아이스크림이라도 사올까?”
입맛이 없어서 누나가 식사를 다 하고 일어날 때까지 시간을 끌 요량으로, 공연히 깻잎 장아찌와 분투하는 척 시간을 끌던 그때.
누나가 젓가락으로 달라붙은 깻잎을 잡아서 떼주며 지나가듯 말했다.
나는 깻잎 장아찌를 집은 젓가락을 들고 어쩔까 고민하다가, 왼손으로 숟가락을 쥐고 밥을 퍼서 그 위에 깻잎을 올렸다.
이대로 입속에 집어넣자니 억지로 음식을 먹던 꿈속펜스가 떠올라 망설여졌다.
녀석이 그렇게나 힘들어하는데 내가 맛있게 음식을 먹어도 되는 건가 싶어서.
꿈 주제에 왜 이렇게 선명한지 모르겠다.
그 탓에 실제 세르펜스도 그러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자꾸만 떠올라 목이 메었다.
그래서 입을 열어 깻잎이 얹어진 밥을 먹는 대신에 누나의 질문에 대답했다.
“아이스크림은 됐어.”
“그럼 다른 거라도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말해. 사다 줄 테니까.”
아무래도 누나는 뭐라도 좋으니 내게 먹이고 싶은 모양이다.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우울해할지언정, 밥 하나는 잘 챙겨 먹던 내가 이젠 밥조차 먹으려 들지 않으니. 걱정되는 것도 당연하다.
미안한 마음에 숟가락을 입으로 옮겼다.
울적한 와중에 깻잎 장아찌는 왜 맛있고 난리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들어온 음식물에 만족을 표하는 건 혀뿐이고, 위장은 음식물을 그다지 달가워하는 눈치가 아니다.
이제 고작 밥 한술에 깻잎 한 장 먹었을 뿐인데 벌써부터 얹히는 느낌이 났다.
“어디 가는데?”
시간을 끌고 화제를 돌릴 겸, 나는 누나에게 질문을 던졌다.
순간 누나의 표정이 비장해진 것 같다면 내 착각일까?
“현피 뜨러.”
돌아오는 대답으로 미루어 짐작하건대 착각이 아닌 것 같다.
설마하니 조금 전 누나가 핸드폰을 만지작거렸던 게, 현피를 신청하는 중이었던 거려나?
그렇게 생각하니 무표정했던 누나의 얼굴이 다른 의미로 해석되었다.
나는 부디 경찰서에서 누나를 보는 일이 없길 기원했다.
대체 상대방이 무슨 소리로 누나의 속을 긁어 놓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문명인답게 대화를 통하여 원만한 합의를 했으면 좋겠다.
‘그런데 갑자기 웬 현피지?’
욕구가 치밀 정도로 화나는 일이 있었다면, 분명 내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얘기하며 상대방을 신나게 씹어댔을 텐데.
요 근래 누나에게서 그런 얘기를 들은 기억이 없다.
최근 내 상태가 영 별로라서 말을 삼갔을 가능성은 염두에 두지 않았다.
누나는 단순히 내가 소설을 읽고 궁상떠는 거라고 알고 있으니까, 내 신경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오히려 더 떠들어댔을 거다.
‘그러고 보니 최근에 누나의 입에서 현피라는 단어가 튀어나왔던 건···.’
내가 [성검의 주인] 작가의 연락처를 물어봤을 때뿐이다.
‘설마?!’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며, 지레 놀라서 나도 모르게 젓가락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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