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1033)
공작님, 회개해주세요!-1034화(1034/1105)
98. 공작님의 의문 (7)
“뭘 그렇게 놀라? 농담이야, 농담~!”
누나가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그리 말하며 스팸 달걀부침을 집어서 내 밥 위에 올렸다.
하지만 나는 ‘현피’를 뜨러 간다던 누나의 말을 단순한 농담으로 치부할 수 없었다.
그 단어를 입에 담았을 때 누나의 표정이 예사 비장한 것이 아니었으므로.
미심쩍다는 눈빛으로 누나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그러자 누나는 뭘 보냐는 표정으로 바닥에 떨어진 젓가락을 턱짓했다. 자기는 그만 쳐다보고 젓가락이나 주우라는 뜻이다.
일단 하라는 대로 젓가락을 주워다 싱크대에 넣은 후, 새 젓가락을 가지고 제자리로 돌아와 입을 열었다.
“진짜 농담이야?”
“아마도?”
내 물음에 누나가 의뭉스런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이며 답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농담이 아닌 것 같다.
나는 긴장감에 바짝 마른 입안을 물로 축이고, 다시 한번 넌지시 질문을 던졌다.
“솔···. 아니, 지혜 씨 만나러 가는 거야?”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고.”
“지혜 씨 만나서 무슨 얘기를 하려고?”
“신경 끄고 넌 밥이나 먹어.”
누나는 이제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수저를 열심히 놀려 식사에 집중했다.
도대체 누나가 최지혜를 만나서 무슨 얘기를 할 생각인지 전혀 감이 안 온다.
내 상태가 갈수록 나아지기는커녕 더 나빠지니까,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그녀에게 만나자고 한 것 같은데.
짐작할 수 있는 건 그게 끝이다.
누나도 웹 소설 작가다.
그러니 ‘내 동생이 네 소설을 읽고 부쩍 우울해하더니, 시도 때도 없이 울기 시작하는데 어쩔 거야?!’라고 따지며, 정신적 피해 보상비를 청구할 생각은 아닐 테고.
대체 만나서 뭘 어쩔 작정이지?
“나도 같이 가.”
“그러고 싶으면, 내가 준비 마칠 때까지 밥 다 먹고 설거지 끝낸 후 양치하고 옷 갈아입어.”
어느새 식사를 마친 누나가 빈 밥그릇과 수저를 싱크대에 가져다 놓으며 말했다.
누나가 외출 준비를 끝낼 때까지 할 일을 다 못하면 어떻게 되는지, 물어볼 시간조차 아깝다.
진짜로 날 데려가겠다는 게 아니라, 따라오는 걸 막지는 않을 테니 가능하면 따라와 보라고 도발하는 거니까.
나는 서둘러 숟가락을 들어 밥을 크게 퍼 올렸다.
“맨밥만 퍼먹지 말고 종지에 반찬 덜어 놓은 거 골고루 다 먹어. 나가기 전에 검사할 테니까, 버리거나 반찬 통에 넣다가 걸리면 국물도 없을 줄 알아.”
누나는 그렇게 엄포를 놓은 후 화장실로 들어갔다.
이럴 줄 알았으면 부지런히 먹을 걸 그랬다. 나는 깊이 후회하며 허겁지겁 밥과 반찬을 퍼먹었다.
그래도 누나가 외출 준비하는데 평균적으로 걸리는 시간을 생각하면, 빠듯하긴 해도 할 일을 못 마칠 정도는 아니다.
‘양치는 대충 가글로 대체하고 옷은 대충 아무거나 주워 입으면 되겠지.’
그렇게 머릿속으로 생각하며 열심히 음식을 씹어 넘기는 사이, 누나는 벌써 다 씻었는지 화장실에서 나와 제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먹는 속도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마지막 스팸 한 조각과 함께 남은 밥을 한입에 욱여넣고, 빈 그릇을 싱크대로 옮겼다.
그리고 막 물을 틀려던 그때.
“깨끗이 잘 먹었네.”
만족스러움이 묻어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뒤를 돌아보니 잠옷 대신 반팔티에 청바지를 입은 누나의 모습이 보였다.
그게 끝이었다면 옷을 빨리 갈아입었구나, 나도 더 서둘러야지 하고 말았을 텐데. 누나의 손에는 모자가 들려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누나는 씩 웃더니 모자를 눌러쓰고 몸을 팩 돌렸다.
곧이어 현관문이 열렸다가 닫히는 소리가 났다.
“아! 진짜!!!”
지금은 설거지나 할 때가 아니다.
양치도 한 번쯤은 건너뛰어도 괜찮겠지. 어차피 가글로 대체할 생각이기도 했고.
급히 방에 가서 옷을 갈아입고 핸드폰만 챙겨 들고 현관을 나섰다.
그 짧은 사이에 엘리베이터를 탔는지 누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엘리베이터 전광판에 표시된 숫자는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그게 마치 카운트다운처럼 느껴졌다.
서둘러 층계를 뛰어 내려갔지만, 엘리베이터는 이미 1층을 찍고 누군가를 태운 채 위로 올라가는 중이었다.
다급한 마음에 무작정 지하철역 방향으로 뛰어가려다 말고 멈칫했다.
잠깐 잊고 있었는데 이 세상에는 핸드폰이라는 훌륭한 연락 수단이 존재했으며, 내 메신저에는 최지혜의 ID가 친구로 등록되어 있었다.
나는 가쁜 숨을 고르며 최지혜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 누나랑 어디서 만나기로 했어요? ]약속 장소만 알면 굳이 서두를 필요가 없다.
답장이 올 때까지 기다릴 겸 하다만 일을 끝내고 다시 나오는 게 좋겠다.
집으로 돌아가 설거지를 마친 후, 양치를 하려고 칫솔을 막 집어들었을 무렵 메신저 알림음이 울렸다.
[ 선우 씨도 오시려고요? ] [ 네 ] [ 왜요? ]당연히 따라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왜냐는 질문을 받으니 화면을 터치하던 손가락이 멈칫했다.
정말 나는 따라가서 뭘 어쩔 작정이었던 걸까?
순간 머릿속이 멍해져서 가만히 서 있는데 화면에 새로운 문장이 떠올랐다.
[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선화 언니도 알고 있어요? 선우 씨가 거기에 다녀온 거? ] [ 아뇨 ] [ 계속 숨길 생각이에요? ] [ 그럼 그걸 말해요? 소설에 몰입하다 못해 미쳤다고 생각할 게 뻔한데? ] [ 얘기하실 생각 없으면 오지 마세요. 제가 알아서 할 테니까. ]나는 최지혜가 보낸 매몰차기 짝이 없는 메시지를 노려보았다.
메시지를 기다리지 말고, 무작정 누나를 찾으러 뛰어다닐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잠시 머릿속을 스쳤다.
하지만 뒤이어 ‘그 자리에 따라가서 뭘 어쩔 건데?’ 하는 생각이 떠올라, 핸드폰 화면을 꺼버렸다.
양치를 끝내고 거실 소파에 털썩 앉았다. 아무도 없는 집 안은 고요했다.
혼자라는 걸 인식하자 외로움이 찾아왔다.
가나안 대륙에서 지낼 때는 아무리 외로워도 세르펜스가 늘 곁에 있어 줬었는데, 그때가 그리웠다.
‘다시 자러 가면 아까 꾸던 꿈을 이어서 꿀 수 있으려나?’
어기적어기적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 내 방으로 향했다.
침대를 보자 그 아래 수납장에 넣어 뒀던 세니어의 존재가 떠올랐다.
그러고 보면 집에 아무도 없는 지금이야말로, 찬찬히 세니어를 들여다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매트리스를 바닥으로 끌어 내린 뒤, 수납장 뚜껑을 열고 겨울 이불 사이에 숨겨둔 세니어를 꺼냈다.
반가움에 찔끔 눈물이 났다. 내가 생각해 봐도 너무 자주 우는 것 같아서 큰일이다.
‘이러니까 누나가 걱정하지···.’
부모님도 내게 직접 말만 안 했을 뿐 엄청 걱정하시는 눈치였다.
얼마 전에는 우느라 충혈된 눈을 보여 드리기 싫어서 자는 척하다가, 두 분이 누나에게 나를 잘 부탁한다고 말하는 걸 듣기도 했다.
빨리 괜찮아져야 할 텐데. 상실감마저 소중히 끌어안고 놓아주지 않으려 버티던 꿈속펜스의 모습을 떠올리면, 내가 괜찮아져도 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꿈일 뿐인데 왜 이렇게 마음에 걸리는 걸까?”
나는 가드 중앙에 박힌 신성석을 매만지며 세니어에게 말을 걸듯이 중얼거렸다.
그러다 문득, 탁한 색을 띠고 있어야 할 신성석이 미묘하게 투명해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착각인지 아닌지 긴가민가해서 검집에서 세니어를 뽑아서 형광등 불빛에 비춰 보았다.
완전히 빛이 바랬던 검날이 약하게 반짝였다.
심장이 쿵쿵 뛰었다.
세니어가 담을 수 있는 신성력은 오직 세르펜스의 것뿐이다.
이 말인즉슨 세르펜스의 신성력이 이곳까지 다다랐다는 뜻이다.
“어떻게?!”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무렴 어떠랴 싶다.
무능메아는 이 세상에 솔레르티아의 영혼을 보내어 환생을 시키는 거로도 모자라. 이 세상에 속한 내 영혼을 자신의 세상에 가져가서, 요긴하게 써먹고 제자리에 돌려놓기까지 했는데.
똑똑하고 유능한 데다가 다재다능하며 아름답기까지 한, 우리 애가 신성력 정도는 보낼 수도 있지.
문제는 세르펜스가 이곳이 어딘 줄 알고 신성력을 보내느냐인데, 그마저도 쉽게 답이 나왔다.
이곳에는 세니어가 있으니까.
세니어는 세르펜스의 의지가 담긴, 따지고 보면 녀석의 분신이나 다름없는 물건이니. 이것이 일종의 좌표가 되었다면 모든 게 설명된다.
“하지만 세르펜스는 나에 관한 기억을 잃었잖아. 그런데 어떻···.”
나는 중얼거리던 입을 꾹 닫았다. 머릿속에서 어떠한 생각이 번뜩 떠오른 까닭이다.
어쩌면 오늘 꿨던 꿈은 평범한 꿈이 아닐지도 모른다.
이상하게 선명하고 자꾸만 신경 쓰였던 게, 단순한 꿈이 아니라 현재 세르펜스가 겪고 있는 일이기 때문이라면.
{ ‘죽을 만큼 그대가 보고 싶다. 그럼에도 그대의 모습을 떠올리는 것조차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죽고 싶을 정도로 괴롭다. 그러니 선우···, 제발 내 곁으로 돌아와다오.’ }
꿈속펜스의 간절한 기도가 머릿속에서 웅웅 울리는 듯했다.
이러이러한 꿈을 꿨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던 나 자신이 멍청하게 느껴졌다.
애초에 꿈을 통해 위안을 얻으려던 것부터가 잘못됐다.
나도 모르게 ‘미친 거 아냐?’ 하고 주어가 불분명한 말을 반복해서 뇌까렸다.
그러다가 한 가지 결론을 내렸다.
“돌아가야 해.”
그 녀석에게는 아직 내가 필요하다.
아무리 육아가 아이를 독립시켜나가는 과정이라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다.
내가 아무런 준비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가족들과 떨어져서 고통스러워 했듯이, 녀석도 아무런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나와 헤어져 버렸다.
심지어 녀석은 행복했던 순간을 곱씹으며 추억할 기억조차 잃어버리고 말았다.
“아, 진짜 환장하겠네! 잊어버릴 거면 다 잊어버리고 아니면 전부 기억할 것이지! 어중간하게 뭐하자는 거야?!”
나는 세니어를 다시 검집에 꽂아 손에 들고, 매트리스가 없는 침대 프레임 위를 빙빙 돌았다. 그러고 있자니 어지러워서 정신까지 빙빙 도는 것 같다.
그렇게 도는 김에 돌아가고 싶다.
하지만 내가 아무리 간절히 돌아가고 싶어한들, 내게는 그럴 능력이 없다.
반쯤 충동적으로 세니어를 꼭 붙들고, 신성석에 이마를 댄 채 돌아가게 해달라고 간절히 빌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다.
‘···지켜보기라도 하자.’
나는 침대 프레임에서 내려와 바닥에 둔 매트리스에 누웠다. 그리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세니어를 끌어안았다.
이러다 누나가 오면 세니어를 들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지금은 그런 걸 신경 쓰고 싶은 기분이 아니다.
될대로 되라 싶은 심정이다.
세르펜스에게 내가 필요하듯 내게도 녀석이 필요하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로 이별을 맞이한 건 나도 마찬가지니까.
이런 식으로 소중한 이와 갑작스레 떨어진 게 아무리 두 번째라지만, 도저히 익숙해질 수가 없다.
‘왜 이렇게 잠이 안 와?! 일해라, 식곤증!!’
이미 잠을 너무 많이 잔 탓인지, 울분이 차올라 잠이 달아난 까닭인지.
한참이나 눈을 감고 기다려도 잠이 오지 않았다.
빨리 세르펜스가 어떻게 지내는지 확인해야 하는데. 꿈속에서 목이 터져라 소리치면 내 목소리가 닿을 수 있는지 실험해 봐야 하는데.
서러움에 눈시울이 시큰거렸다.
‘병원에 가서 수면제라도 처방받아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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