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1036)
공작님, 회개해주세요!-1037화(1037/1105)
99. 공작님의 소망 (2)
도무지 누나의 얼굴을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아무리 나를 믿겠노라 약속했다지만. 소설 속 캐릭터들이 생각나서, 그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먹지 않겠다고 선언한 건 다른 문제다.
앞서 세니어를 준 게 세르펜스였다고 말하기도 했고.
‘무슨 그딴 장난을 치느냐며 누나가 황당해하면 어떡하지? 아니면 내가 진짜 우울한 이유를 숨기고자 또 소설 핑계를 대는 줄 알고 화를 낸다거나. 혹은 내가 과대망상증이라도 앓는 줄 알고 심각해진다거나···.’
과대망상증 환자로 오인당하느니 헛소리하지 말라고 혼나는 게 낫긴 하다.
하지만 내가 받을 상처는 똑같겠지.
지금 누나가 무슨 표정을 짓고 있을지 궁금한 동시에, 알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그런 불안감 속에서 얼마나 기다렸을까?
“혹시···. 아니, 이건 너무 웹 소설 전개인데···.”
누나의 중얼거림이 들려왔다.
슬그머니 실눈을 뜨자 진지하게 고민에 빠진 누나의 얼굴이 보였다.
그 심각한 모습에 내가 떠올린 최악의 시나리오대로, 날 과대망상증 환자로 생각하는 건가 싶어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지, 진정하자. 아마 그건 아닐 거야.’
나는 호흡을 가다듬으며 부정적인 생각을 애써 밀어냈다.
아무런 근거도 없이 현실을 외면하려는 건 아니다.
만약 누나가 내 정신 상태를 걱정하고 있는 거라면, 웹 소설 전개가 어쩌고 하는 소리는 하지 않았을 테니까.
잠깐만, 웹 소설 전개라면···.
“그거 맞아! 엑스트라 빙의물!”
“···응?”
“와! 과연 웹 소설작가는 뭐가 다르긴 다르구나! 척하면 착이네!!”
“진짜로 그거라고?”
크게 뜬 누나의 두 눈에 경악과 불신이 어렸다.
곧바로 믿어주지 않는 게 서운하긴 했으나 이해하기로 했다.
소설 속 세상으로 끌려들어 간다는 건, 그야말로 소설과 같은 허구 속에서나 존재할 법한 이야기니까.
그런 의미에서 만약 누나가 순순히 나를 믿어줬다면, 오히려 내가 누나를 의심했을 테다.
겉으로는 믿는 척하며 내 신뢰를 얻은 뒤 나 몰래 부모님께 상담하려는 게 아닐까 하고.
어설프게 믿는 척 연기한다거나 나를 안타깝다는 시선으로 보지 않는다는 점에서, 누나가 보인 반응은 온건한 편이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긍정적인 편이다.
불신이 섞이긴 했지만, 일단 놀랐다는 건 내 말을 믿긴 한다는 뜻이니까. 거짓말이라 생각했다면 애초에 놀라지도 않았겠지.
나는 [성검의 주인] 속 세상에 다녀왔다는 유일한 증거인 세니어를 꽉 움켜잡고, 용기를 내어 힘있게 말했다.
“믿기 힘든 얘기겠지만, 진짜야. 나는 [성검의 주인] 속 세상에 다녀왔어.”
“사실 내가 요 며칠간 잠을 줄여가며 그 소설을 끝까지 다 읽어 봤거든?”
누나가 손가락으로 미간을 누르며 뜬금없는 얘기를 꺼냈다.
그런 누나의 표정이 자못 심각했고, 나도 덩달아 심각해졌다.
“뭐어?! 내가 그거 읽지 말라고 했잖아!”
“네가 요즘 우울한 게 그 소설과 연관이 있다는 건 분명한데, 자세한 설명을 해 주지 않으니 어쩔 수가 없잖아? 직접 읽어 보고 알아낼 수밖에!!”
듣고 보니 그도 그러하다.
만약 세르펜스가 어떠한 소설을 읽더니 그와 관련된 이유로 며칠간 우울해한다면, 나였어도 바로 그 소설을 읽어봤을 테다.
내가 반박하지 못하고 어물어물거리자 누나가 ‘그것 봐라.’ 하는 표정을 지었다.
“아무튼 진짜 위험한 세상이긴 하더라.”
“다 악숭이들이랑 마왕 개새끼 때문이지.”
“그보다는 최종 보스인 ‘세르펜스’의 영향이 가장 크지 않아?”
“우리 애 욕하지 마! 아무리 누나라도 우리 애를 욕하는 건 용서 못 해!!”
“······.”
느닷없이 내가 급발진하며 화를 내자 누나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하기야 누나도 [성검의 주인]을 읽었다고 했으니 저런 반응을 보일만도 하다. 타락펜스의 계략 때문에 죽은 사람이 오죽 많았어야지.
그래도 대륙의 위기를 세르펜스 탓으로 돌리는 건 용서할 수 없다.
가나안 대륙의 사람들이 책임을 전가하며 세르펜스를 탓하지만 않았어도, 그 녀석이 타락할 일은 없었고.
그 이전에 전대 공작 새끼가 애를 잡지만 않았어도, 그 녀석이 어딘가 망가진 채로 자랄 일도 없었으며.
그보다 더 이전에 마왕이 신이 되겠다고 설치지만 않았어도, 이 모든 비극은 시작조차 하지 않았을 테니까.
“대체 그 위험한 세상에, 일개 아동복지학과 학생인 너를 왜 데려간 거냐고 물어보려던 참이었는데···.”
누나가 그 이유를 알 것 같다고 말하는 듯한 얼굴을 했다.
작은 힌트만으로 ‘빙의물’에 이어 ‘육아물’ 키워드까지 바로 눈치채다니, 과연 웹 소설 작가구나 싶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그래, 맞아. 나는 세르펜스의 타락을 막고, 녀석이 행복해질 수 있도록 도와주는 보호자 역할로 불려 갔어.”
“그, 그럼···?”
혼란에 찬 누나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저런 반응을 보인다는 건 내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였다는 뜻이다.
내가 [성검의 주인] 속 세상에 불려 간 이유와 내 전공이 맞아떨어지니, 제법 그럴듯하게 들렸나 보다.
그렇게 생각하며 불안감을 내려놓으려던 찰나.
“너는 세르펜스의 엄마인 공작부인으로 빙의한 거야?!”
누나의 입에서 폭탄 발언이 튀어나왔다.
이게 대체 무슨 끔찍한 소리인지 모르겠다.
“그게 무슨 소리야?! 갑자기 ts물이 되어버렸잖아?!”
“아니야?”
“아니야!! 왜 갑자기 그딴 쪽으로 생각이 튄 건데?!”
“그치만! 악당을 다시 키우는 보호자 육아물은 악당의 엄마로 빙의해서, 죽임을 당하지 않기 위해 아이를 잘 키우려고 노력하다 정을 붙이고! 개 쓰레기 같던 애 아빠는 아내의 달라진 모습에 호기심을 느끼다가 사랑에 빠지고! 이후 후회 남주가 되어 아내의 사랑을 갈구하며 과거를 반성하고! 아들에게는 라이벌 의식을 느끼다가, 끝에 가서는 자식까지 애정의 대상으로 받아들이는 게 클리셰잖아?!”
누나의 말에 나는 입을 떡 벌리며 경악하고 말았다.
전대 공작부인에 빙의하는 것만으로도 끔찍한데, 전대 공작 놈과의 부부 생활 및 공동 육아라니.
어떻게 동생을 두고 그런 극악무도하고도 흉악한 상상을 할 수 있는지 모르겠다.
“세상에 고쳐 쓸 게 따로 있지! 전대 공작, 그 쓰레기 새끼는 절대 못 고쳐 써! 그놈은 재활용 불가능한 산업 폐기물 수준이라고!”
“그럼 이혼 후 공작의 비리를 밝혀 처형시키고, 말 잘 듣고 자상한 대형견 속성의 잘생긴 미혼남과 재혼해서 아이를 키우는···.”
“누나, 이제 로판식 전개에서는 벗어나자. 누나는 로판이 아니라 판타지 작가잖아.”
“그렇긴 한데 차기작은 로판으로 할까 생각 중이었거든.”
“그래도 지금은 로판에서 멀어지자. 응? 동생의 성별을 생각해 줘.”
“아, 맞다. 지금 네 얘기를 하고 있었지?”
정말 까먹고 있었는지 누나가 아차 하는 표정을 지었다.
가끔 누나가 차기작 아이디어를 구상하면서 떠오른 내용을 구체화한답시고, 내 앞에서 되는대로 떠들어대곤 했는데 그 영향일 테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 아이와 고양이를 키우는 육아물이 어쩌고 하는 소리도 했었지.
아무래도 트렌드 조사를 너무 열심히 했나 보다.
“내가 빙의한 건 세르펜스의 보좌관이고, 전대 공작 부부는 이미 죽은 이후야.”
“빙의한 보좌관의 성별은?”
“당연히 남자지.”
“그렇구나···?”
누나가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야 자신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했는지 깨달았나 보다.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내가 진실을 털어놓게 되었을 때 누나가 어떻게 반응하고, 어떤 분위기 속에서 대화를 나누게 될지 몇 번 상상해 봤었다.
아무리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애를 써 봐도 상상은 늘 최악을 향해 달려나갔다.
‘그런데 지금은···.’
분위기가 너무 가볍다. 그렇다고 누나가 내 말을 장난으로 치부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그래도 떨떠름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다.
충격적인 진실을 털어놓고 있는 건 나인데, 내가 왜 누나의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결론을 요약하자면. 너는 예비 최종 보스의 보좌관 몸에 빙의해서, 그 애가 올바른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게 양육하다 왔다는 거지?”
“그래, 바로 그거야!”
“무섭지는 않았어? 걘 이미 자신의 부모를 죽인 데다가, 보좌관들을 죽일 예정이었잖아.”
“당연히 무서웠지! 삐끗하면 내가 죽을 수도 있는데···.”
내가 처했을 상황을 공감하려 애쓰며 걱정해주는 누나의 말에, 그때 당시 느꼈던 불안감과 두려움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하소연하듯 답해버렸다.
그러다가 보좌관’들’을 죽일 예정이었던 게 아니라, 한 명은 이미 죽였고 나는 두 번째였다는 말을 할 타이밍을 놓쳐버렸다.
“그런데도 그 애를 옹호하고 그립다며 우는 걸 보면, 그 두려움을 극복하고 정을 많이 붙였나 보네?”
“응, 그랬지. 세르펜스가 비록 제 부모를 죽이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정당방위였잖아? 녀석이 그저 살아남기 급급한 어린아이에 불과하다는 걸 아니까, 마냥 무섭지만도 않더라고.”
그 불쌍하고 가엾은 아이가 엉엉 울며 나를 찾고 있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무겁고 답답해졌다.
지금 내 곁에 없는 세르펜스를 대신하여, 녀석의 의지를 이어받은 세니어를 세게 끌어안아 보았다.
그러나 기분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그곳에 가고 싶어?”
내 울적한 기분을 눈치챘는지, 누나가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머뭇거리다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누나가 다시 한번 신중히 입을 뗐다.
“혹시 원치 않는 타이밍에 되돌아오게 된 거야?”
“······응. 그곳에 있는 동안 가족들이 그립긴 했지만. 적어도 세르펜스가 다 클 때까지는···. 아니면 그 세상이 안전해질 때까지는 함께 있어주고 싶었어. 그런데 망할 악숭 세력 때문에 작별 인사조차 못하고 돌아와 버리고 말았어.”
대답을 하다 보니 또다시 눈물이 차올랐다.
이번에는 억지로 울음을 참지 않았다. 지금은 그러지 않아도 괜찮았으니까.
누나가 자리에서 일어나는가 싶더니 정수기로 가서 따뜻한 물을 한 잔 따라왔다.
“마셔.”
찬물을 조금 섞었는지 너무 뜨겁지 않아 마시기 편하면서도, 지나치게 미지근하지도 않아 한 모금 마시니 적당히 몸 안에 온기가 퍼졌다.
나는 코를 훌쩍거리며 기분이 좀 나아질 때까지 조금씩 물을 나눠 마셨다.
내가 잔을 비우고 다시 입을 열 때까지, 누나는 나와 마주 보고 앉아 조용히 기다려 주었다.
“···가장 큰 문제는 세르펜스가 나를 어중간하게 기억한다는 거야.”
“그건 무슨 뜻이야?”
“마왕이 나를 인질로 잡고 세르펜스를 협박하려고 했거든? 그래서 룩스메아가 급하게 나를 보좌관의 몸에서 탈출시키려다가, 아예 그 세상에서 나에 관한 기억까지 분리해 버렸대.”
“무슨 신이 일 처리를 그따위로 해?”
“내 말이!!!”
그렇게 외치며 나는 반사적으로 주먹을 꽉 주고 식탁을 쾅 내려쳤다.
누나의 따가운 눈총이 얼굴로 날아와 꽂힌 건 당연한 흐름이다. 그 순간만큼은 나를 바라보는 누나의 시선에서 안타까움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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