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1037)
공작님, 회개해주세요!-1038화(1038/1105)
99. 공작님의 소망 (3)
나는 식탁을 내려친 주먹을 슬그머니 거둬들여, 양손으로 세니어를 꼭 붙들고 다시 본론을 꺼냈다.
“아무튼. 그런 이유로 내가 돌아가지 않는다면 세르펜스는 그 세상에 존재하지도 않고, 모습조차 떠올릴 수 없는 나를 찾아 평생 방황하게 될 거야. 지금도 그러고 있고.”
“···그걸 어떻게 확신해?”
“세니어가 보여줬어.”
내 말에 누나의 시선이 세니어로 옮겨갔다.
검이 그런 걸 어떻게 보여줄 수 있느냐는 표정이 누나의 얼굴에 떠올랐다.
아직 세니어에 관하여 자세히 설명하지 않았으니 의아해할 만도 하다.
“여기, 가드 중앙에 박힌 게 세르펜스가 날 위해 만들어 준 신성석이거든. 누나도 [성검의 주인]을 읽었으니까 신성석이 뭔지는 알지?”
“응. 근데 색이 많이 탁하네. 이거 불량품 아냐?”
“아니야! 이건 저장된 힘을 다 써서 그래!! 원래는 엄청 투명하고 예쁘고 반짝반짝하고 따뜻한 온기 같은 것도 느껴진다고!”
나는 그렇게 말하며 신성석을 처음 마주했을 때의 감동을 되새겼다.
세르펜스의 손에 들린 것이 신성석이라는 것도 모른 채, 그 아름다움에 홀려 가까이에서 보고 싶어서 안달을 냈었지.
당시를 추억하며 처음 신성석을 손에 쥐었을 때 느꼈던 기분 좋은 온기를 되새겼다.
그러다가 신성석을 손난로 취급한 죄로 개처럼 짖었던 기억까지 떠올려버리고 말았다.
“···어쨌든. 세니어에는 세르펜스의 의지가 담겨 있어. 그리고 녀석은 지금 나를 무척이나 간절히 보고 싶어해.”
“그래서 그 칼···.”
“세니어야.”
“알았어, 알았어. 세니어라고 부르면 되잖아. 아무튼 그게 지금 세르펜스가 어떤 상태인지 네게 보여줬다는 거지? 그 애한테 너에 관한 기억이 없는 탓에, 널 보고 싶다는 그 애의 의지가 엉뚱한 방향으로 발현되어서?”
“아마도 그렇지 않을까 싶어. 그게 가장 큰 문제지. 세르펜스는 지금 내가 악숭 세력에 납치당해서 모진 고문을 겪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거든. 정작 나는 날 지키고자 하는 녀석의 의지 덕분에 무사히 고향에 돌아왔는데···. 녀석은 그것도 모른 채, 날 지키지 못했다고 자책하며 괴로워하고 있더라.”
하마터면 악마의 그릇이 되어 영혼도 반쯤 먹혀버리고, 쉽게 죽지도 못하는 몸으로 온갖 고문을 당할 뻔했다.
그런 날 구한 건 세르펜스의 의지다.
실질적으로 힘을 행사한 건 룩스메아긴 하지만···.
‘애초에 룩스메아는 나를 그쪽 세상으로 데려간 주모자니까, 책임지고 나를 구하는 게 당연한 거고.’
그런데도 세니어에 담긴 세르펜스의 힘이 아니었다면, 룩스메아는 날 구하지 못했을 거다.
날 구해놓고도 그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안도하며 스스로를 기특하게 여기는 대신, 죄의식에 시달리며 고통받는 세르펜스를 떠올리니 불합리함에 치가 떨렸다.
아무리 세상만사가 부조리한 일투성이라지만, 이건 해도 너무하다.
“그렇지 않아도 그 모질고 험한 세상에 애를 두고 와서 불안했는데···. 그래도 유능한 녀석이니까 어찌어찌 잘 살아갈 거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했는데···. 그 녀석이 너무 괴로운 나머지 죽고 싶다는 생각까지 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니, 정말 미칠 것 같아. 더는 못 견디겠어.”
내 말을 듣던 누나의 얼굴에 짙은 그늘이 드리워졌다.
이런 얘기까지는 하지 말았어야 하나 후회가 밀려들었다. 입을 꾹 다물고 누나의 얼굴에서 눈을 돌렸다.
그러자 작은 한숨 소리와 함께 누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서 너는 어떻게 하고 싶은데?”
“세르펜스에게 구해줘서 고맙다고. 내가 무사한 건 전부 네 덕분이라 말하며, 꽉 끌어안고 등을 토닥여 주고 싶어. 그리고 녀석이 온전한 어른으로 자랄 때까지 곁을 지켜주고 싶어. 이런 갑작스러운 이별이 아니라···. 헤어진 이후에는 각자 어떻게 살아갈지 충분히 얘기를 나누며 천천히 이별을 준비하고. 서로의 행복을 빌어주며 웃는 낯으로 헤어지고 싶어. 그리고 기왕이면 그 이별을 끝으로 영영 못 만나는 게 아니라, 연락도 주기적으로 주고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고. 가끔 만나서 얘기를 나누며 녀석이 좋아하는 디저트를 함께 먹고 싶어.”
나는 떠오르는 생각을 입 밖으로 쏟아냈다.
그리고 내가 바라는 건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라는 걸 깨닫고 좌절했다.
당장 세르펜스가 있는 세계로 찾아가는 것조차 불가능한데, 연락을 주고받는 거로도 모자라 가끔 만나고 싶다니.
정말 분에 넘치는 욕심이 아닐 수가 없다.
‘만에 하나 운 좋게 다시 그곳에 갈 수 있다면, 그땐 이곳으로 돌아오는 게 불가능하겠지···.’
그래도.
그럼에도.
“나는 그곳으로 가야만 해. 내가 안 가면 세르펜스는 얼마 못 가 죽을지도 몰라. 아니, 분명···. 그렇게 되겠지. 세상은 점점 위험해지는데, 그 녀석은 점점 약해지고 있으니까. 그 녀석, 신성력 통제력을 상실했더라고. 신성력을 숨 쉬듯 다룰 수 있는 녀석인데,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
누나는 질문에 대답은 않고 그저 안쓰럽다는 표정으로 나를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다.
어차피 대답을 바라고 던진 질문은 아닌지라, 나는 하소연을 이어나갔다.
“어디 그뿐인 줄 알아? 걔 미각도 잃었어. 식사를 하는 건 물론이거니와, 그 좋아하던 디저트를 먹는 것조차 무슨 고문처럼 느끼는데···. 그러다 음식을 거부하고 말라 죽거나, 악마나 마왕에게 죽임을 당하거나. 아니면 더 이상 괴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흑···.”
입은 이성을 잃고 계속 불안감을 쏟아내려 했지만, 목이 메어 더는 말할 수가 없었다. 그게 다행스러웠다.
하지만 내가 말하지 않는다고 해서 현실이 변하는 건 아니었다.
나는 확신할 수 있다. 내가 돌아가지 않으면 세르펜스는 죽는다.
녀석 없이 일행들이 신격을 얻은 마왕과 싸워 이기는 건 불가능하다.
어쩌면 세르펜스의 죽음과 동시에 휴마누스까지 덩달아 무너져,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패배할 가능성도 있다.
그리고 성검의 주인과 그 일행들이 패배하면 세상은 마왕의 손에 멸망하게 되겠지.
“아까 밥 먹을 때 깨작거렸던 게, 세르펜스가 미각을 잃어서였어? 그래서 혼자 맛있게 뭔가를 먹기 미안해서?”
“으응···.”
“아이고, 이러다간 네가 죽는 게 더 빠르겠다.”
누나가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머리칼을 쓸어 넘기며 중얼거렸다.
동감할 수 없는 말이다. 나는 딱 죽지 않을 정도로만 괴로웠으므로.
내가 느끼는 괴로움이 컵에 가득 담겨 있는 정도라면, 세르펜스가 느끼는 괴로움은 컵 밖으로 넘쳐 흐르다 못해 컵을 깨뜨려 버린 수준이다.
“혹시 지혜, 걔가 룩스메아야?”
“지혜 씨는 그냥···. 심부름꾼.”
좀 더 길게 설명하고 싶었으나 자꾸만 울음이 치밀어 올라 말하는 게 힘들었다.
그래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간단하게 답했다.
“그럼 걔도 그쪽 세상으로 넘어가는 방법을 모르는 거야?”
“······.”
“걔가 [성검의 주인]을 쓴 건 그 세상에 데려갈, 적합한 인재를 찾기 위해서야?”
“······.”
누나가 던진 질문들에 나는 연달아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다음 질문에는 고개를 젓고, 억지로 목소리를 내어 설명을 늘어놓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감상평’을 너한테 떠넘긴 탓에, 나 대신 네가 그쪽 세상에 끌려가게 된 거야?”
“아, 아니야! 감상평은 그냥 구실에 불과했어. 지혜 씨가 개인적인 판단으로 누나가 가는 게 좋을 거라고 생각해서, 누나에게 [성검의 주인] 내용을 숙지하게 하려고···. 하지만 룩스메아는 날 골랐어. 내 감상평을 읽은 누나를 포함해서, [성검의 주인]을 완독한 모든 독자 중에서. 내가 가장 세르펜스에게 필요한 사람이라고 결론을 내린 거야.”
누나가 진실을 알게 되면 자신 때문이라며 책임을 느낄 줄 알았다.
이럴 때를 대비하여 미리 준비해 두었던 말을 꺼냈다.
하지만 누나의 얼굴에는 스스로를 탓하는 기색이 완연했다.
“그렇다 해도 내가 그 소설을 네게 읽어 달라고 한 건 변하지 않잖아.”
“누나가 권하지 않았더라도. 신작 웹 소설 목록을 구경하다가 우연히 발견해서 읽게 되지 않았을까···?”
“그건 그냥 가정일 뿐이잖아. 세상에 웹 소설이 얼마나 많은데.”
“그래도···. 세상에는 운명이라는 게 있잖아.”
내가 생각해도 참으로 비루하기 짝이 없는 반박이다.
누나도 그렇게 생각했는지 어처구니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다.
“하, 운명? 네가 언제부터 그런 걸 믿었다고?”
“마법과 기적이 존재하는 세상에 다녀왔는데, 운명이라고 존재하지 못할 건 또 뭐야?”
“하여간 말은 잘해.”
“응, 그래서 악숭이들도 나랑 말을 섞지 않으려고 하더라.”
“아무렴. 자신들이 악마 숭배하는 걸 ‘악숭’으로 줄여 부르는데, 당연히 상종하고 싶지 않겠지.”
아직 ‘악숭’이 무엇의 줄임말인지 설명하지도 않았건만, 누나는 용케 그 단어의 뜻을 파악했을 뿐 아니라 내 말을 받아치는 데 써먹었다.
하기야 누나도 나와 같은 별다줄의 민족이니까.
“각설하고,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얘기하자면. 너는 내가 자책하는 걸 바라지 않는 모양이네.”
“당연한 거 아니야?”
“누나를 위로할 줄도 알고, 정말 잘 컸네. 내가 동생 하나는 참 잘 키웠단 말이지?”
누나가 기특하다는 시선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입술이 매끈한 호선을 그리는 게 아니라 어딘가 일그러져서, 미소가 미소처럼 보이지 않고 굉장히 슬퍼 보였다.
나는 서둘러 얼굴에 묻은 눈물을 닦고, 되도록 여상한 목소리를 내고자 노력하며 입을 뗐다.
“위로가 아니라 사실을 말한 것뿐이야. 그리고 날 키운 건 우리 엄마 아빠거든?”
“뭔 소리야? 네 성장의 절반 이상은 내 몫이거든? 까놓고 말해서 부모님과 함께 있는 시간이 길었냐, 나랑 함께 있는 시간이 길었냐?”
“하지만 누나의 성장은 100퍼센트 부모님 몫이잖아. 그러니까 내 성장에 대한 누나 몫의 절반가량은 부모님 지분으로 떼어 줘야 계산이 정확하지.”
“하여간 한 마디를 안 지려고 하네. 노력이 가상하니 이번은 내가 져 줄게. 네가 바라는 대로, 네 말이 맞는 거로 하자.”
단순히 내 성장에 대한 자신의 지분 얘기를 하는 거라면, ‘내가 바라는 대로’라는 말은 굳이 붙이지 않았을 거다.
그러니 누나가 져 주겠다고 한 건, 그 이전에 나누던 대화에 관한 거겠지.
‘즉, 더는 자책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말을 한 걸 테지만···.’
책임을 느끼고 말고는 머리로 결정을 내렸다고 해서 마음에 반영되는 건 아니다.
그러니 지금 이 시점을 기준으로, 누나가 모든 책임감을 훌훌 털어버리는 것은 불가능할 테다.
누나의 말은 그저 앞으로는 자책의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겠다는 선언에 불과하다.
자신이 계속 본인 탓을 하고 있으면 내 마음이 편치 않다는 걸 아니까.
“누나.”
“왜 불러?”
“방금 한 얘기, 엄마 아빠한테는 비밀이다?”
“일단은 알았어. 하지만···. 만약 그쪽 세상으로 넘어갈 수 있게 되면, 그땐 꼭 부모님께 얘기하고 허락받아야 해. 알지?”
“알고말고.”
위험할 뿐만 아니라, 어쩌면 영영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떠난다고 하면 부모님께서 잘도 보내주겠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내가 순순히 누나와 약속한 건, 어차피 그곳으로 갈 수 없다는 걸 아는 까닭이다.
“그럼 어서 기운 차려. 부모님께서 네가 왜 이러는지 꼬치꼬치 캐물어 오시기 전에. 그리고 네가 그쪽 세상에 다시 가게 되었을 때, 세르펜스가 네 꼴을 보고 슬퍼하는 일이 없도록.”
“···과연 방법이 있을까?”
“기다리면 기회가 오지 않겠어? 그쪽 세상은 마법과 기적, 운명이 존재한다며. 그리고 네가 키운 세르펜스가 널 애타게 찾고 있다고 하니까. 정 간절하면 기적을 일으켜서라도 널 데려가 주겠지.”
누나의 말에 나도 모르게 세니어의 가드에 박힌 신성석으로 시선이 옮겨갔다.
정말 그게 가능할까? 그래서 세니어가 나를 따라 이 낯선 세상까지 오게 된 걸까? 기적의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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