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1041)
공작님, 회개해주세요!-1042화(1042/1105)
99. 공작님의 소망 (7)
* * *
내가 세르펜스의 악몽에 들어갔다가 나온 이후, 세니어의 신성석은 완벽하게 투명함을 되찾았다.
그럼에도 나는 가나안 대륙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세니어의 완충이 돌아가는 조건이 아니었던 거다.
기대가 무너졌지만, 나는 좌절하지 않았다.
‘새로운 가능성이 열렸으니까.’
그날 이후 세르펜스는 두 번째 신성석을 만들기 시작했다.
나와 함께하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을 담아서.
이번에는 추측이나 기대 같은 게 아니다. 두 번째 신성석이 완성되는 날이야말로 내가 가나안으로 돌아가는 날이라 확신한다.
‘왜냐하면 나를 불러들일 정도의 힘이 모이기 전까지, 세르펜스는 계속 신성석의 크기를 키워나갈 테니까.’
신성석을 만드는 동안에는 그것에 담긴 힘만큼, 신성력이 묶여서 사용할 수 없게 된다는 걸 생각하면 엄청난 모험이 아닐 수가 없다.
심지어 녀석은 비장의 수라고 할 수 있는 백색 신성력을 몽땅 신성석에 투자했다.
그거로는 모자랐는지 은색 신성력도 신성석 제작에 동원하고 있으니, 날이 갈수록 녀석이 발휘할 수 있는 힘은 줄어들겠지.
‘솔직히 좀 불안하긴 하지만···. 악마가 소환된 게 아닌 이상 나머지 일행들의 능력만으로도 충분하고, 악마가 소환되면 어차피 망한 거니까. 그 전에 빨리 신성석을 완성하는 게 낫겠지.’
녀석이 진즉 신성석 제작에 착수하지 않았던 건, 섣불리 모험을 시도할 수 없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내가 자신을 떠난 것일지도 모른다는 의혹 때문일까?
혹은 온갖 고초를 겪은 내가 자신을 미워하게 됐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그조차 아니라면···.’
아주 어쩌면, 녀석은 무의식중에 소중한 것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전대 공작의 말대로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건 망가져 버리고 말 거라고.
그런 생각들이 녀석의 발목을 붙잡고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그리고 꿈에서 깨어난 세르펜스의 생각을 듣고 알게 된 사실인데, 녀석은 내 모습을 보지 못하고 하얀 실루엣으로만 인식한 모양이었다.
그 때문인지 세르펜스는 꿈속에서 나와 만난 것을 기억하되, 꿈속의 내가 진짜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녀석은 기억나지 않는 과거를 토대로, 자신의 무의식이 나를 꿈속에 구현해 낸 거라고 추측했다.
이게 무슨 소리냐 하면.
내가 해 준 얘기들을 새겨듣긴 하되, 내 신변이 마왕의 손아귀에 있다는 착각에서는 빠져나오지 못했다는 소리다.
세르펜스는 내가 안전하길 바라는 마음이 투영된 결과, 꿈속의 내가 다른 세상에 있다는 말을 한 거라고 생각했다.
덕분에 신성석 제작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으니 잘된 일이라면 잘된 일이기는 한데.
“늘 느끼는 거지만, 인생 참 피곤하게 산다니까···.”
“누구 얘기야? 세르펜스?”
“으악, 깜짝이야!! 갑자기 튀어나오지 마!”
“지가 딴생각 하느라 눈치 못 챈 거면서.”
소리 소문 없이 방문 앞에 서 있던 누나가 불을 켜더니, 아예 방안으로 들어와 의자에 자리를 잡았다.
나는 시계를 보고 아직 시간 여유가 있다는 걸 확인한 뒤, 침대에 눕혔던 몸을 일으켜 앉았다.
그런 내 행동을 보며 누나가 쯧쯧 혀를 찼다.
“또 낮잠이야?”
“이 시간에 자야지 꿈속의 꿈에서 세르펜스와 만나서 대화할 수 있으니까.”
내가 있는 이 세상과 세르펜스가 있는 세상은 밤낮이 미묘하게 어긋나 있었다.
그 때문에 세르펜스가 잠드는 시간에 맞추려면 나는 오후 4시 즈음에 잠들어야 한다.
“어차피 걔는 널 만나도 그냥 꿈이라고 생각한다며?”
“걔를 위해서가 아니라, 날 위해서 그 녀석을 만나러 가는 거야.”
요즘 어린 세르펜스와 노는 게 내 유일한 낙이자 힐링이다.
정신 연령이라도 반영된 결과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세르펜스의 꿈속에서 녀석은 늘 어린아이의 모습이었다.
외양만 그러한 것이 아니라 기억까지도 그 시절에 머물러 있었다. 꿈을 꿈이라 인식하지도 못했다.
나는 꿈속의 어린 세르펜스에게 사실을 말해주지 않고 그냥 놀아줬다.
이럴 때가 아니면 어린 세르펜스와 언제 놀아보겠느냐는 내 욕심도 있긴 했지만.
녀석이 꿈속에서라도 지나간 어린 시절을 보상받았으면 하는 바람도 컸다.
“그 애가 그렇게나 귀여워?”
“귀엽냐고?”
나는 ‘귀여움’이란 무엇인가 고찰해 보았다.
예쁘고 곱거나 애교가 있어서 사랑스럽다는 게 ‘귀여움’의 사전적 정의다.
세르펜스는 예쁘고 고운가? 두말하면 입 아프다.
애교? 냥냥쇼도 하는 녀석이다.
사랑스러움? 세례명이 ‘아도르’인데 말 다했지.
‘잠깐만. 이런 공식이라면 꿈속의 어린 세르펜스까지 갈 것도 없이, 성인 모습의 세르펜스도 사전적 정의에 완벽하게 부합되는데?!’
또한 사람들은 애교를 부리는 미인을 보고 입 모아 귀엽다고 말한다.
그 미인이 아기자기한 외양을 가졌든, 반대로 섹시하게 생겼든 상관없이.
그냥 아름다운 사람이 애교를 부리면 그 자체로 귀엽다고 보는 게 사회적 통념이다.
반면에 귀여운 건 그저 귀여울 뿐, 귀여운 것을 보고 아름답다고는 하지 않는다.
이를테면 정사각형은 사각형이라 부를 수 있지만, 모든 사각형은 정사각형이 될 수 없는 것처럼.
귀여움이라는 큰 틀 안에 아름다움이 있으니, 아름다움이야말로 귀여움의 정수가 아닐까?
그리고 세르펜스의 얼굴은 아름다움의 결정체 그 자체이니 이 말인즉.
“허억! 우리 애가 우주 최강 귀요미?!”
“너무 주관적인 평가 아냐?”
“주관적이라니?! 사전적 정의와 사회적 통념, 그 모든 게 세르펜스가 우주 최강 귀요미라고 말해주고 있거늘! 완전 객관적인 평가라고!”
“그 정도야?”
누나가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으로 혀를 내둘렀다.
나를 바라보는 눈빛에 불신이 가득하다.
세르펜스가 냥냥쇼 하는 걸 보면 내 말이 진실이란 사실을 바로 알 수 있을 텐데, 누나에게 그것을 보여줄 수가 없어 아쉬울 따름이다.
“뭐···, 그럼 낮잠에 관해서는 더 이상 터치하지 않을게. 하지만 온종일 방구석에 틀어박혀 있는 건 이제 못 보겠다. 앞으로는 친구를 만나든, 뜀박질이라도 하든 밖에 좀 나가. 그, 뭐냐. 다시 그쪽 세상으로 가게 되면 이곳의 친구들은 못 만나게 될 거 아냐? 그리고 아이를 돌보려면 체력이 중요하니까 운동도 해야 하지 않겠어?”
저번에는 돌아가는 날까지 건강을 유지해야 하니 잘 먹으라고 하더니, 이번에는 같은 이유로 친구들과 만나고 운동하라는 권유까지 한다.
이러다 개강하면, 돌아가서 세르펜스를 잘 돌볼 수 있게 학업에 충실하라며 공부시킬 기세다.
“이제 확실히 알겠어! 누나는 내가 이쪽 세상에서 건강하고 알찬 삶을 살 수 있도록, 내 생활을 서서히 고쳐 나갈 생각이구나?!”
“쳇, 들켰나?”
“역시나 그럴 줄 알았어!”
“하지만 돌아갈 수 있든 없든, 정신과 신체적 건강은 중요한 거잖아?”
누나가 ‘내 말이 틀린 것 같다면 어디 반박해 보시지?’ 하는 표정을 지었다.
백 번 곱씹어 보아도 옳은 말이었기에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그렇다고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자니 진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말을 돌리기로 했다.
“그런데 누나는 반대 안 해? 내가 다른 세상으로 가는 거.”
“툭 까놓고 말하자면 안 갔으면 좋겠어. 하지만 네가 그곳에 남겨진 어린애를 걱정하느라, 이곳에서 누리는 모든 것들에 죄책감을 느끼게 된다면···. 가야지, 뭐 어쩌겠어?”
그렇게 말하며 누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내 정수리에 손을 얹고 툭툭 두드렸다.
씁쓸한 미소를 머금은 얼굴에는 서운함과 대견함이 공존했다.
고마우면서도 미안해서 이번에는 진짜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내가 입을 꾹 다물고 조용히 있자 누나가 손을 거두며 지나가는 투로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걔는 정확히 몇 살이야?”
“···여덟 살.”
“응? 걔가 자기 부모님을 죽인 이후에 빙의했다며? 그럼 적어도 열다섯 이상 아니야?”
“그렇기는 한데 정신연령을 생각하면 앞자리에 의미가 없는 것 같아서 떼버렸어.”
“아, 그래? 흐음, 근데 열여덟이면 클 만큼 큰 거 아닌가?”
“나 열여덟일 때를 생각해 봐.”
“완전 애네.”
“그치?”
난 거짓말 안 했다.
그냥 내가 열여덟일 때를 생각해보라고 말했을 뿐, 세르펜스가 그 나이라고는 말하지 않았다.
누나 혼자서 착각한 거다.
“아무튼 난 네가 매일 방구석에 폐인처럼 처박혀 있는 거 못 보니까, 내일부터는 잘해라.”
“아예 오늘 낮잠 자고 일어나서, 이따가 동네 한 바퀴 돌고 올게.”
“잘 생각했어. 그럼 잘 자.”
누나가 피식 웃으며 방에서 나갔다. 불을 켜 놓고.
잘 자라고 말했으면 불도 꺼 줘야지 참 센스가 없다. 아니면 일부러 그런 건가?
나는 툴툴거리며 불을 끄고 다시 침대로 돌아와 누웠다.
시간을 보려고 핸드폰을 켰다가, 메신저 앱에 ’99+’라고 안 읽은 메시지 표시가 떠 있는 걸 발견했다.
단톡도 있다 보니 쌓인 메시지 양이 상당하다.
무음 처리해 뒀기에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엄청 시끄러웠을 테다.
‘누나의 말대로 친구들과 만나 봐야 하나?’
그동안은 만나도 분위기만 망칠 것 같고, 어차피 나는 떠날 사람이니까 아예 안 보는 게 낫다고 생각했었는데.
후회하지 않으려면 돌아가기 전에 한 번씩 만나보는 게 좋을 것 같기도 하다.
“아차! 얼른 자야지.”
뒤늦게 시간을 확인한 나는 핸드폰 화면을 끄고 눈을 감았다.
생각이 많아져서 그런가 잠드는 데 시간이 꽤 걸렸다.
세르펜스는 이미 잠든 이후인지, 눈앞에 보이는 건 스물여덟이 아닌 열 살짜리 꼬마 세르펜스였다.
“오늘은 안 오는 줄 알았어.”
나를 발견하면 곧장 품에 안겨오던 녀석이 오늘은 가만히 서서 투정을 부렸다.
오늘로서 이 아이를 만난 지 일주일째라는 걸 생각해 보면 굉장히 빠른 발전이라 할 수 있다.
두 번째 만남에서부터 말을 놓으라고 시키며 거리감을 확 좁혀나가길 잘했다.
‘그러고 보면 이 세르펜스는 현실의 세르펜스와 완전 동일하다고는 말할 수 없으니, 따로 별명을 붙여주는 게 나으려나?’
소년펜스와 아기펜스는 이미 써먹은 별명이니까, ‘꼬마펜스’라 부르는 게 좋겠다.
나는 꼬마펜스에게로 다가가 자세를 낮춰 눈높이를 맞추며 말을 걸었다.
< 미안해, 기다리느라 심심했지? >
“아니, 무서웠어.”
< 왜? 형아가 다시는 안 올까 봐? >
“···으응.”
시무룩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던 녀석이 갑자기 눈물을 글썽거리더니, 돌연 내게 덥석 안겨왔다.
정말 많이 무서웠나 보다.
나는 꼬마펜스를 그대로 안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 녀석의 등을 토닥거렸다.
그리고 발길이 닿는 대로 아무렇게나 걸으며 고개를 들어 위를 쳐다보았다.
아무것도 없는 공허한 장소에 엄청난 존재감을 발휘하는 빛 덩어리가 보였다.
두 번째로 세르펜스의 꿈속에 들어왔을 때만 해도, 아주 작고 희미한 빛 알갱이에 지나지 않았건만.
빛 덩어리 안을 자세히 살펴보자 신성석으로 추정되는 보석이 보였다.
거리가 멀어서 보석의 크기는 제대로 가늠할 수 없었지만, 확실한 건 지금 이 순간에도 빛이 점차 강해지고 있다는 거다.
‘신성석을 만들려면 기도를 해야 하는 거 아니었나?’
작은 잡념조차 끼어들면 망해버리는 게 신성석 제작이다.
자면서도 신성석을 만들 수 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1043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