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1047)
공작님, 회개해주세요!-1048화(1048/1105)
100. 공작님과 기적 (6)
◇
“모두 전투 준비!!”
휴마누스가 그렇게 외치기 전부터 일행들은 이미 전투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
모두의 긴장감이 고조되었고, 그 탓인지 내 팔목을 붙잡은 윈스톤 경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고개를 돌려 윈스톤 경을 시야에 담았다. 그는 묵직한 양손검을 한 손으로 든 채 악마들을 경계 중이었다.
“놔 주십시오. 한 손으로는 그 검을 제대로 다룰 수 없지 않습니까?”
“저는 세르펜스 님을 지켜야 합니다.”
“그러니 더더욱 놓으셔야 합니다. 휴마누스가 악마 하나를 맡는다 하더라도, 나머지 악마 하나를 푸로르 씨 혼자 견제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윈스톤 경도 전면에 나서서 악마들이 후방 인원을 공격하지 못하도록 막아내야 합니다.”
비록 신성력을 사용할 수 없는 상태이긴 하나, 저 악마들의 격이 심상치 않다는 건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휴마누스도 혼자서 악마 하나를 감당하긴 어려우리라. 후방 인원의 도움이 필수적이며, 도움을 받는다 하더라도 아마 패배할 것이다.
그런 수준의 악마가 둘이나 된다. 최대한 모든 전력을 동원해도 모자란 판국에···.
‘신성석을···, 선우를 포기해야 하나?’
그러고 싶지 않다.
이 신성석은 최악의 상황이 닥쳐왔을 때, 선우를 구할 수 있는 최후의 보루다.
하지만 내가 나서지 않으면 눈앞의 동료들이 악마들의 손에 무참히 살해당하리라.
그러나 미완성의 신성석을 깨뜨려 힘을 회복하여 내가 가세한다고 한들, 이길 수 있으리란 보장도 없다.
그래도···.
‘선우···, 나는 도대체 어찌해야 하는가?’
모르겠다. 무엇이 옳은 선택인지 도저히 알 길이 없다.
지침이 되어 나를 인도해 주던 이의 부재 탓인가.
바늘을 잃어버린 나침판을 손에 쥐고 미로 속을 헤매는 기분이다. 어느 쪽이 올바른 길인지 모르겠다.
“···세르펜스 님. 믿겠습니다.”
아직도 고민 중인 나와는 달리, 윈스톤 경은 결정을 내리고 내 팔목을 놓아 주었다.
양손으로 검 손잡이를 움켜 잡으며 앞으로 나선 그의 등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믿겠다는 말이 무겁게 가슴에 얹혔다. 희생을 자처하지 말라는 뜻이란 것을 아는데도, 마치 존재하지 않는 사람은 포기하고 자신들을 구해달라는 말처럼 들려왔다.
“세르펜스, 이쪽으로 오세요.”
유지스가 나를 자신의 뒤로 잡아 끌었다. 악마들에게서 나를 보호하려는 목적이다.
일행들 중 그 누구도 내게 신성석 제작을 포기하라 말하지 않았다. 기억에도 없는 사람은 이만 놓아주라며 강권하지 않았다.
이렇게나 나를 소중히 여기고 존중해주는 상냥한 이들을 곁에 두고도, 어째서 나는 ‘선우’에 대한 미련을 떨쳐내지 못하는 것인가.
나 스스로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저 이 순간에도 선우가 그립고 또 그리울 따름이다. 선우의 빈자리를 채울 수 있는 건 오직 선우 뿐이라는 사실을 되새길 뿐이다.
“청은발의 인간이 분명 ‘프라시더스’가 맞을 텐데, 보호를 받는 걸 보면 진짜 못 싸우는 상태인가 보네. 설마 대역 같은 건 아니겠지?”
“대역은 아니야. 저 인간으로부터 엄청난 힘이 느껴지긴 하니까. 아마 모종의 이유로 신성력을 사용할 수 없게 된 것뿐이겠지.”
“막대한 양의 신성력이 있는데도 사용할 수 없다라? 신성석이라도 만드나 보네.”
두 악마가 여유작작한 태도로 말을 주고 받는가 싶더니 신성석의 존재를 눈치챘다.
나는 반사적으로 심장 어름에 손을 올리고 옷을 꽉 움켜잡았다.
이런 내 행동을 본 여성형 악마의 입가에 선명한 비웃음이 떠올랐다.
“무슨 목적인지는 모르겠지만, 완성되게 둘 수는 없지! 만약의 경우에는 죽여서 영혼만이라도 가져오라고 하셨지만, 기왕이면 산채로 잡아가는 게 좋지 않겠어? 신성석까지 선물로 가져간다면, 마신 테네브리오 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실까!! 분명 우리에게 큰 상을 내리실 거야!”
“···과연 그럴까?”
“당연히 그렇겠지! 어서 서두르자!”
“그래야겠···지? 그런데, 으으음···.”
검녹색 머리칼의 여성형 악마가 의욕을 내며 마기를 끌어 올린 것과 반대로, 검푸른 머리칼의 남성형 악마는 주춤하며 미간을 찡그렸다.
무언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다는 듯이.
“왜 그래?”
“나, 어디선가 이 인간들을 본 것 같아.”
“계약한 인간도 없고, 이제 막 중간계에 소환됐으면서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우리를 숭배하는 인간들에게 얘기를 너무 많이 들어서 착각한 거겠지.”
“아니야! 진짜로 봤어. 프라시더스, 저 인간이 고양이 흉내를 낸 걸 본 기억이 분명 있단 말이야.”
남성형 악마의 말에 여성형 악마의 얼굴에 황당함이 떠올랐다. 분명 검푸른 머리칼의 악마가 헛소리를 했다고 생각한 것이리라.
하지만 나는 저자의 말이 사실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휴마누스의 일지에는 선우의 정신에 악마가 접촉한 적 있다고 쓰여 있었으며, 내가 선우가 아닌 다른 이의 앞에서 ‘그런 짓’을 했을 리가 없으니.
저 악마는 분명 선우의 시선을 통해 나를 본 것이 틀림없다.
“그러니까, 저 인간을 생포하고 나면 고양이 흉내를 시키며 모욕을 주겠다는 뜻이지···? 취향 참 이상하네. 근데 왜 하필 고양이야?”
“내 취향이 아니야! 그리고 그런 짓을 시키겠다는 게 아니라, 봤다고!”
“어디서?”
“그게 기억이 안 나.”
“헛소리 할 거면 닥치고 싸울 준비나 해.”
마왕이 악마들의 기억까지 지워버린 것인지, 선우를 현혹시키려 했던 악마는 그에 관한 기억을 잊어버린 듯하다.
여성형 악마는 그런 남성형 악마를 이해하지 못하고 핀잔을 주었다.
그러고는 검은 회오리 바람을 양손에 두르며 전투 태세를 갖췄다.
“그래, 싸워야지···.”
남성형 악마는 개운찮다는 표정을 짓긴 했지만, 검푸른 불의 검을 만들어 손에 쥐었다.
더 이상 전투를 미룰 수 없다는 것을 직감한 동료들이 바짝 긴장하며, 악마들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손에 바람을 두른 악마가 그것을 휴마누스 쪽으로 내질렀다.
휴마누스가 방패를 앞으로 내밀며 각도를 틀어 돌풍을 비스듬하게 흘려냈음에도, 뒤로 밀려나며 깊은 고랑을 만들었다.
방향을 튼 검은 돌풍은 나무를 갈기갈기 찢어 발기며 한참을 더 나아간 뒤에야 사라졌다.
서서히 사그러진 것이 아니라 갑자기 사라진 것으로 보아, 힘이 다하여 흩어진 건 아닌 듯하다.
힘을 낭비하지 않기 위하여 악마가 바람에 깃든 마기를 회수한 것일 터.
자신의 공격이 무위로 돌아갔음에도 바람을 다루는 악마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다음 공격을 이어나갔다.
조금 전 멀리서 공격한 것은 그저 실력을 가늠해 보기 위해서였다는 듯. 이번에는 직접 휴마누스에게 접근하여 주먹을 휘둘렀다.
휴마누스가 한 발짝 옆으로 물러나며 그것을 피하려다가, 방패로 악마의 팔을 후려치며 뒤로 세 발짝 물러났다.
악마의 손에 둘러진 검은 바람이 점차 덩치를 키워 팔뚝까지 감싸더니, 주변의 모든 것을 빨아들이려 한 까닭이다.
나무 파편과 작은 돌멩이가 회오리 바람에 빨려들어갔다.
그것들이 더욱 작은 조각으로 갈리고 쪼개지자 악마는 가볍게 손을 휘둘렀다.
마기를 머금은 조각들이 예리한 비수가 되어 내가 있는 후방을 향해 흩뿌려졌다.
“제가 막을게요!”
다가오는 바람보다 빠르게 리에나 님이 신성 결계를 구축해냈다.
마기를 머금은 나무와 돌 파편은 쉽게 튕겨 나갔다.
하지만 그것들을 품었던 회오리 바람은 ‘카가각!’ 하는 소리를 내며, 결계를 갉아 먹을 기세로 거칠게 휘몰아쳤다.
푸로르 씨가 악마에게 달려들어 녹색 기운이 서린 날카로운 손톱을 휘둘렀다.
악마는 몸을 틀어 그 공격을 피하려다가, 지척에 다가온 윈스톤 경이 검을 들어올린 것을 발견하고는 몸을 허공에 띄웠다.
휴마누스가 날개를 펼쳐 그자를 추격했다.
금빛으로 번뜩이는 성검이 자신에게로 휘둘러지자 악마는 바람의 방향을 바꿨다.
지지할 곳 하나 없는 허공에서는 공격을 막는다 하여도 바람의 압력은 버틸 수가 없다. 아까처럼 조금 밀려나는 수준이 아니라 멀리 날아가 버릴 터.
휴마누스는 방패를 앞세우는 대신 공중을 선회하며 바람의 영향에서 벗어나려 했다.
그런 그에게 회오리 바람이 따라 붙었다.
그때 바람을 조종하는 악마의 정수리를 향해 한 줄기 낙뢰가 떨어졌다.
악마는 급히 바람을 거두고 자리에서 벗어났다.
그 움직임을 예상했다는 듯 유지스의 화살이 정확히 악마의 심장을 노리고 쏘아졌다.
“감히 내 앞에서 화살을 쏘다니.”
바람을 다루는 적 앞에서 화살은 무력하게 방향을 틀고 허공을 갈랐다.
그래도 악마의 시선을 끄는 데 성공했으니, 화살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 것은 아니다.
화살의 방향을 바꾸는 그 찰나를 노려 휴마누스가 악마에게 접근했다.
새까만 바람을 두른 악마의 손날과 황금빛 성검이 맞부딪혔다.
짧은 시간에 십수 번의 공격이 오고갔다. 뒤로 밀려나는 쪽은 휴마누스였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는지 휴마누스가 방패로 악마의 팔을 후려쳤다. 충돌에 의한 반작용으로 그의 몸이 뒤로 쭉 밀려났다.
악마와 휴마누스 사이의 거리가 벌어지자마자, 지상에서 녹색과 푸른색의 기운이 악마를 노리고 쏘아졌다.
푸로르 씨와 윈스톤 경이 각자의 기운을 날려 보낸 것이다.
악마는 숨 고를 틈도 없이 그것들을 피한 뒤 다시 휴마누스와 공방을 나눴다.
“잠깐! 왜 나 혼자 싸우고 있지?”
이번에는 악마 쪽에서 휴마누스와 거리를 벌리며 소리쳤다.
전투에 참여하지 않고 조용히 생각에 잠겨있던, 남성형 악마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어?’ 하고 반응했다.
그 모습에 여성형 악마가 얼굴을 와락 구겼다.
“플람, 너 뭐하는 악마야?! 전투에 집중 안 해?”
“···집중 안 하고 놀고 있는 건 너도 마찬가지 아니야? 아와티니아, 네 실력이면 저런 인간들쯤 혼자서도 얼마든지 휩쓸어버릴 수 있을 텐데?”
“그야 얼마든지 가능하긴 한데, 같이 싸우는 게 일 처리가 더 빠르고 쉬워지잖아. 마신 테네브리오 님께서 뭣하러 우리 둘을 함께 보내셨겠어?”
여성형 악마가 짜증 가득한 얼굴로 쏘아붙이듯 말했다.
그에 남성형 악마는 잠시 고민하더니 즉석에서 꾸며낸 듯한 변명을 내놓았다.
“···저 프라시더스라는 인간 말인데. 만들던 신성석을 깨부수든 완성하든, 여차했을 때 위협이 될 수도 있잖아? 내가 도맡아서 저 인간을 경계하고 있을 테니까, 넌 신경 쓰지 말고 신나게 날뛰어 봐.”
“너 내가 싸우고 있을 때 그 인간을 가로채서 혼자 공적을 세울 적정이구나!”
“그게 되겠어? 네가 시선을 끌었으니 상을 받는다면 같이 받겠지.”
“그딴 말로 회유하려 해 봤자 소용 없어! 직접 프라시더스 놈을 잡아다 바친 자에게 더 큰 상을 내리실 거라고 생각해서, 일부러 나 혼자 싸우게 두는 거잖아?”
“딱히 그럴 생각은 아닌데···.”
함께 온 악마가 길길이 날뛰며 화를 내든 말든, 남성형 악마는 뚱한 표정으로 딴청을 부렸다.
저 악마가 전투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지 않을 만한 이유는 여성형 악마의 추측이 유일하다.
악마가 우리에게 호의를 갖고 봐줄 리는 없고, 간혹 저자의 시선이 내 쪽을 향할 때 적의가 느껴졌으니.
‘저런 욕심 많고 음습한 악마가 선우의 정신에 접촉했던 건가···?’
나는 이를 악물고 검푸른 머리의 악마를 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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