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1050)
공작님, 회개해주세요!-1051화(1051/1105)
100. 공작님과 기적 (9)
– 풀썩.
죽은 악마의 육신이 잿더미 위로 떨어졌다.
악마의 목숨은 무척이나 질겼으나 이번만큼은 확인사살이 불필요했다.
살아있는 동안에는 불에 저항하고 있었던 건지, 그 목숨이 다하기가 무섭게 검푸른 불길이 대악마의 몸을 살라먹은 까닭이다.
그렇게 한 줌의 재만 남기고 나서야 검푸른 불길이 사그라들었다.
꽥꽥이는 그쪽에는 시선도 두지 않고 조금 떨어진 장소에 착지했다.
무시무시한 불길이 이번에는 우리 쪽을 향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건지, 일행들이 긴장하며 마른침을 삼켰다.
긴장한 건 나도 마찬가지였으나 그 이유는 달랐다.
내가 긴장한 이유는 언제 마왕이 꽥꽥이에게 손을 쓸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괜찮은···, 건가?’
마왕은 2회차에서 타락펜스에게 뒤통수를 얻어맞고도 배운 게 없는지, 악마가 자신을 배신할 거라고는 꿈에도 상상하지 못하는 게 틀림없다.
또한 그렇게 생각하는 건 일행들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꽥꽥이가 대놓고 걱정스럽다는 표정으로 날 쳐다보고 있는데도, 이 대치 상태가 계속 이어질 리 없으니까.
‘파란색 중의 파란색’이라 불리는 울트라마린 색이 바로 저런 것이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새파란 눈동자가 내 쪽을 향했다.
눈이 마주쳤다, 그렇게 느낀 순간.
“어쩐지···, 이상하다 했어. 전부 너 때문이었구나?”
꽥꽥이의 입에서 중얼거림이 흘러나왔다.
작은 목소리였으나 모두가 침묵하고 있던 터라 귀에 꽂히듯 선명하게 들려왔다.
한탄하는 것 같기도 하고 원망하는 것 같기도 하고. 어찌 들으면 즐거움이 묻어나는 듯한, 복잡한 감상이 느껴지는 목소리다.
“아무 능력도 없는 평범한 인간 주제에, 누군가를 죽일 냉혹함도 갖추지 못했으면서. 왜 이딴 세상에 돌아온 거야? 얼른 돌아가.”
누가 들어도 날 걱정하는 게 분명한 말에 일행들이 화들짝 놀라며, 나와 꽥꽥이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러한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꽥꽥이는 오직 나만을 빤히 노려보았다.
무슨 답을 원하는지 훤히 보이는 그 노골적인 눈빛에 나는 민망함을 느끼며 입을 뗐다.
“어, 그게, 저기···. 지금은 불가능한데? 돌아가려면 세르펜스가 새로운 신성석을 만들거나, 룩스메아의 힘이 회복될 때까지 기다려야 해.”
“뭐라고?! 너 정말 생각이 없···, 쿨럭···!”
꽥꽥이가 꽥 소리를 지르던 도중, 갑자기 비틀거리더니 새까만 피를 토했다.
깜짝 놀라 앞으로 뛰쳐나가려는데 세르펜스가 내 손목을 낚아챘다. 위험하니까 다가가지 말라는 뜻이겠지.
새까만 마기가 꽥꽥이의 몸에서 새어나와, 불안정하게 요동치는 모습이 확실히 위험해 보이긴 했다.
그래서 더 걱정됐다.
“아, 들켰네. 하긴, 들킬 수밖에 없겠지···. 아와티니아의 영혼에는 손도 안 대고, 너랑 이런 얘기나 주고받고 있으니까···.”
“꽥꽥아, 너 괜찮···. 아니, 안 괜찮겠지. 대체 왜 마왕의 명령을 거역한 거야?”
“내가 어째서 악마인 나를 걱정하느냐고. 그냥 좋을 대로 이용하면 그만이지 않느냐고 물었을 때. 너는 그러고 싶지 않다고 답했지? 나도, 쿨럭! 마찬가지야. 그분의 명령대로···, 그러고 싶지 않았···어.”
말을 이어나갈수록, 꽥꽥이의 피부에 새까만 핏대가 올라왔다.
꽥꽥이는 나를 구하고자 죽음을 불사하고 같은 대악마를 처치했는데, 나는 고통스러워하는 그를 보면서도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심지어는 가까이 다가가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가까이 가는 순간 폭주하는 마기에 휩쓸려 버릴 테고, 그렇게 죽어버린다면 꽥꽥이가 목숨을 걸고 마왕을 배반한 의미가 사라진다.
“···우냐?”
“지금 눈앞에서 친구가 죽어가는데, 안 울게 생겼어?! 그것도 나를 구하려다 이렇게 됐는데!”
“딱히···, 너를 구하려던 건 아니야. 어차피 마계에는 재밌는 것도 없고. 도구 취급당하는 것도, 쿨럭! 마음에 들지 않았으니까···. 이런 삶, 이젠 질렸어···.”
그렇게 말하며 꽥꽥이는 킬킬 웃었다.
삶에 질렸다는 것치고는. 그리고 죽어가는 중이라고는 믿을 수 없게도, 즐거워 보였다.
마왕의 명령에 복종하는 삶에 질렸다는 건 거짓말이 아닐 거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게 죽고 싶다는 뜻은 아니리라. 그저 다른 삶을 살고 싶을 뿐이겠지.
“세르펜스, 신성력으로 마기의 폭주를 가라앉혀 줄 수는 없어? 내가 기억을 잃었을 때, 몸 안에 들어왔던 마기가 날뛰는 걸 진정시키고 정화했던 것처럼···.”
“지금은 회복된 신성력의 양도 얼마 안 될뿐더러, 만전의 상태라 해도 불가능하다. 저자는 악마이지 않은가? 신성력을 사용해 봤자 죽음만 앞당길 뿐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세르펜스에게 부탁해 봤지만, 역시나 싶은 대답이 돌아왔다.
하기야 그렇겠지. 흑마법사조차 신성력 치료를 받아들이지 못하는데 악마는 오죽할까.
“겨우겨우 돌아왔는데, 오자마자 이게 뭐야···?”
친구들과 함께 힘내서 위기를 물리치고 즐겁게 살아가고 싶었는데, 시작부터 친구의 죽음을 마주해야 한다니.
세상에 이렇게 부조리하고 서러울 수가 없다.
만약 내가 이 세상에 돌아오지 않았다면 꽥꽥이는 안 죽었으려나?
하지만 그 대신 꽥꽥이가 내 일행들을 죽이고 세르펜스를 마왕에게 바쳤겠지.
내가 이곳에 오든 말든 결국 내 소중한 친구가 잘못된다는 건 똑같다.
“뭐 이딴 개같은 경우가···.”
“분에 못 이겨 울 정도로, 저 악마가 소중한가?”
“당연하지! 꽥꽥이는 내 친구니까!”
“···친구라고?”
“그래! 내가 악숭이들에게 납치됐을 때, 두려움에 미치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건 꽥꽥이가 계속 말을 걸어준 덕분이야. 게다가 그는 내 본명을 알면서도 마왕에게 알리지 않았고, 진심으로 나를 친구라 생각해 줬어. 악마의 입장에서 인간은 하찮은 존재일 텐데도···.”
악마들이 얼마나 오만하고 인간을 업신여기는지는 논할 거리조차 되지 않는다.
하물며 꽥꽥이는 무려 최상급 악마 중에서도 격을 뛰어넘은 극소수의 존재다.
인간은 물론이거니와 어지간한 악마들도 하찮아 보이겠지.
그런데도 꽥꽥이는 나를 친구로 받아들여 주고, 나를 위해 마왕의 명령에 거역하기까지 한 거다.
그래놓고도 나 때문에 목숨을 건 게 아니라며 죽어가는 와중에 위로까지 건넸다.
“썬···.”
“어, 어! 나 불렀어?”
꽥꽥이의 부름에, 나는 나도 모르게 떨구었던 고개를 들고 그를 바라보았다.
위태위태하게 서 있던 꽥꽥이의 무릎이 꺾이고 자리에 털썩 주저앉은 건 그 순간이었다.
걱정돼 죽겠는데 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어서 울상 짓고 있자니, 꽥꽥이가 쥐어짜내는 목소리로 말을 걸어왔다.
“궁상은 그만 떨고, 쿨럭, 쿨럭! 마지막으로 재밌는 얘기나 좀 해 봐···.”
“···응?”
“고향···. 잘 갔다 왔어?”
“응, 가족들이랑 같이 나들이도 가고 사진도 잔뜩 찍었는데···. 아! 사진 보여줄까? 지금 가방 안에 있는데···.”
“아니, 그건 됐···어.”
꽥꽥이가 피가래 끓는 목소리로 겨우겨우 대답하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어떻게든 저항하고 있긴 하지만, 슬슬 한계인가 보다.
지금 꽥꽥이와 마왕이 다른 차원에 있으니까 저렇게 버틸 수라도 있지, 마왕이 중간계에 와 있었다면 잘못돼도 진작에 잘못됐을 거다.
얼굴을 보고 얘기하는 건 오늘이 처음인데, 벌써 마지막이라니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다.
‘욕심 많은 마왕 새끼 같으니···. 다른 악마들도 많은데, 꽥꽥이 한 명 정도는 자유롭게 놔 주면 안 되나?’
나는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머리를 굴려 봐도 마왕을 향한 욕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애초에 친구가 죽어가는 와중에 재밌는 얘깃거리 같은 게 생각날 리 만무하다.
이러는 동안에도 꽥꽥이의 생명은 꺼져갔다. 시간이 너무 아깝다.
“이번에는···. 가족들한테 인사, 하고 왔어? 저번에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와서, 크윽···.”
“으, 응! 이번엔 얘기 잘하고 왔어! 다녀오겠다는 인사도 했고, 부모님이랑 누나한테 허락도 받았어!”
“그거, 다행···, 커헉!”
숨넘어가는 소리와 함께 꽥꽥이의 상체가 앞으로 고꾸라졌다.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기의 양이 더 많아졌다. 새까만 기운이 꽥꽥이의 몸을 완전히 덮어 그 모습을 가려버렸다.
“···아니···, 거절합···. ······싫···.”
날뛰는 마기 너머로 꽥꽥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띄엄띄엄 들려와 뭐라고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는 분명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 누군가란 아마 높은 확률로 마왕일 테다.
보나마나 꽥꽥이에게 지금이라도 자신의 명령에 따르라고 종용하고 있겠지.
“썬···, 네 말이, 맞았네.”
“난 항상 맞는 말만 해서 어떤 말을 얘기하는 건지 모르겠어.”
“킬킬킬, 그건 아닌 것 같지만, 쿨럭! 어쨌든, 한 가지는 정확해.”
“그 한 가지가 뭔데?”
“마신···, 아니. 마왕 새끼가 개새끼라는 거. 윽!!”
“···꽥꽥아?”
“······.”
“꽥꽥아!! 대답해 봐, 꽥꽥아! 플람!!”
“크으윽···.”
반응이 돌아온 건 좋았으나 기뻐할 일은 아니었다.
작은 신음이 커다란 비명으로 바뀐 탓이다. 꾹꾹 억누르고 있던 고통이 결국 터져 나온 걸 테다.
끄아아악, 괴로움에 찬 비명이 울려 퍼졌다.
“마왕 이 개새끼!! 내 친구 건드리지 마!!!”
“선우, 진정해라.”
“진정 못 해!!”
“잠깐···!”
나는 만류하는 세르펜스의 손을 뿌리치고 꽥꽥이를 향해 달려나갔다. 거추장스러운 백팩도 벗어 던졌다.
그 과정에서 가방 끈에 세니어가 걸려서 놓쳐버리고 말았지만, 허리를 굽혀 그것을 주울 여유는 없다.
솔직히 대체 무슨 깡으로 마기 속에 뛰어든 건지 나조차도 모르겠다.
어차피 위험하면 세르펜스든 누구든 붙잡아 줄 거라고 생각해서, 되는대로 행동한 점도 없잖아 있지 않을까 싶다.
‘아, 세니어는 들고 올 걸 그랬나?’
신성 결계 밖으로 발을 내디딘 순간 후회가 밀려들었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괜찮았다.
오색빛 결계가 내 주변을 감쌌다.
휴마누스가 성검의 힘을 끌어내어 결계를 펼쳐 준 거려나?
룩스메아의 힘을 빌리는 건 너무 과보호가 아닐까 싶지만, 당장은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내가 나아감에 따라 결계에 닿은 마기가 정화되어 사라졌다.
덕분에 새까만 어둠과도 같은 마기의 안갯속에서도, 어렵지 않게 꽥꽥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
“꽥꽥아!!”
“끄윽, 뭐, 뭐하러 온···.”
“걱정돼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서 왔어.”
“너란 인간은 대체, 왜 그렇게 무모···.”
“나도 내가 무모한 건 알아! 하지만 몸이 저절로 움직인 걸 어떡해!”
“아니, 됐어. 지금 보니, 별로 무모한 것 같지도 않···, 끄으으···!”
고개를 들어 내 모습을 확인한 꽥꽥이가 바로 말을 바꿨다.
마기 정화 기능까지 딸린 오색빛 결계를 두른 모습을 봤으니 그럴 법도 하다.
“잘 와줬어. 헤어지기 전에, 제대로 인사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지···?”
꽥꽥이가 입가에 잔뜩 묻은 검은 피를 닦아내며 일그러진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내가 그에게 그런 말을 하긴 했다.
이 세계에 오기 전에 가족들과 제대로 인사를 나눌 기회가 있었더라면, 덜 외롭고 덜 그리웠을 거라고.
“안녕, 선우. 잘 있어···.”
“아, 안···.”
제대로 인사를 해 줘야 하는데 목이 메어서 다음 말이 나오지 않는다.
나는 이런 이별을 결코 인정할 수가 없다. 대체 왜 꽥꽥이가 죽어야 하지?
가장 받아들일 수 없는 건, 꽥꽥이의 영혼이 다시 마계로 가게 될 거라는 점이다.
‘과연 마왕이 꽥꽥이의 영혼을 가만히 놔둘까?’
그럴 리가 없다.
자신의 명령을 따르다 죽은 악마의 영혼도 잘게 갈아 쉐킷 하는데, 명령을 거부한 꽥꽥이의 영혼을 곱게 보존해 줄 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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