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1056)
공작님, 회개해주세요!-1057화(1057/1105)
101. 공작님의 질투 (4)
“미안하다고 사과하면 다인가? 미안한 걸 아는 사람이 왜 그랬지? 선우, 그대가 납치당하고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아는가? 그리고 당신에 관한 모든 기억이 사라진 후에는···.”
내가 사과하길 기다렸다는 듯, 세르펜스가 다다다 말을 쏟아내며 날 몰아붙이는데 그 내용이 묘하게 익숙하다.
가만 생각해 보니 내가 녀석에게 했던 말들의 인용이다.
이래서 아이 보는 데서는 찬물도 못 마신다고 하나 보다.
“알아, 네가 얼마나 힘들어하고 괴로워했는지.”
재차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대신에 나는 녀석의 말에 공감해 주었다.
그러자 세르펜스의 미간이 불만스럽게 찌푸려졌다.
“안다고?”
“응. 전부는 아니지만, 보긴 봤으니까.”
나는 그렇게 서두를 놓고, 내 이야기를 시작했다.
세니어를 매개 삼아 세르펜스가 어떻게 지내는지 볼 수 있었으며, 녀석의 꿈속에도 들어갈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시작으로.
소년펜스 모습을 한 룩스메아와 나눈 대화들, 집에 돌아간 직후 있었던 작은 해프닝.
가족들에게 모든 걸 털어놓고 한결 홀가분해진 기분으로 함께 나들이 다녀온 얘기,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났다는 얘기.
그리고 8월 24일에는 고구마 무스 케이크를 챙겨 먹었다는 것까지.
정말 별의별 소리를 다 했다.
그러나 하지 않은 얘기도 있긴 했다.
소년누스 모습을 한 룩스메아와 나눈 대화, <성검의 주인> 작가인 최지혜와 만났던 일 등.
소설 <성검의 주인>에 관련된 건 일절 말하지 않았다.
이 얘기는 세르펜스에게만 살짝 귀띔해 줄 생각이다.
또한 ‘2회차의 진짜 끝’에 대한 내용도 생략했다.
아무리 휴마누스가 알게 되었다지만, 굳이 다른 일행들에게 알려 모두를 충격에 빠뜨릴 필요는 없으니까.
비슷한 이유로 세르펜스가 미각을 잃었던 것도 굳이 말하지 않고 넘어갔다.
“그동안 선우가 나를 지켜보고 있었을 줄이야···. 그래서 내게···, 으으음···. 그런 거였군.”
마침내 내 얘기가 끝났다.
그러자 세르펜스는 온갖 감정이 뒤섞인 애틋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어째서 내가 자신에게 카카오 98% 초콜릿을 먹인 것인지 이해하고, 자신을 지켜봐 준 것에 감동하는 한편.
자신이 괴로워하는 모습을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던 내 심정은 어떠했을지 공감하며, 안타까워하는 걸 테다.
“정말이지, 내가 사라졌다고 해서 그렇게까지 위태롭게 흔들리면 어떡해?”
“어쩔 수 없지 않은가? 현재의 나를 이루고 있는 요소는 전부 선우, 그대에게서 비롯된 것이니. 그대가 없으면 나도 없다.”
“좀 더 자립성을 기르자.”
“······.”
충분히 할만한 얘기를 했다고 생각하는데, 세르펜스가 뾰로통한 표정으로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대체 뭐가 마음에 안 드는 건지 모르겠다.
나는 앞으로 마중 나온 녀석의 입술을 바나나 맛 과자로 가볍게 눌렀다.
그러자 과자가 부서질세라 세르펜스가 입술을 열어 그것을 받아먹었다.
“그건 그렇고 어린아이 모습의 세르펜스라니, 정말 귀여웠겠네요!”
“그냥 귀엽기만 했겠어요? 깜찍하고 사랑스럽고 혼자 다 했지! 제가 오죽했으면 소년펜스 모습을 한 룩스메아에게 재롱을 부려보라고 시켰겠습니까?”
“그건 다시 들어도 정말 너무 불경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만큼 세르펜스의 어린 시절 모습이 귀여웠던 거겠죠?”
“물론이죠! 나중에 세르펜스가 자식을 갖게 되면 갱신될 가능성도 있긴 하지만, 현재까지 그만큼 예쁘고 귀여운 애는 세상천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을 겁니다.”
“아···, 저도 보고 싶네요! 과거의 저는 왜 세르펜스가 어릴 때 제국에 가지 않았던 걸까요? 정말 아쉬워요.”
유지스가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정말 공감가는 얘기가 아닐 수 없다. 눈치 빠른 유지스가 그 시기 제국에 왔더라면, 전대 프라시더스 공작의 구린 속을 간파하고 꼬마펜스를 구할 수도 있었을 텐데.
‘그럼 유지스는 어린 세르펜스의 대모님이 됐으려나?’
만약 녀석이 유지스의 손에 키워졌으면 어떻게 자랐을까 상상하고 있는데, 손에서 뭔가 이상한 느낌이 났다.
어느새 내 다섯 손가락에 고깔 모양 과자가 씌워져 있었다.
이게 대체 뭐하는 건가 싶어 이 짓을 해 놓은 범인, 세르펜스를 쳐다보았다.
“선우가 과자를 전혀 먹지 않고 있길래···. 조금 전 이렇게 하면 재밌고 맛있게 먹을 수 있다고 얘기했잖은가? 그래서 내가 준비해 보았다.”
“난 자주 먹어서 익숙하니까, 모두들 먹으라고 일부러 안 먹고 있던 거야.”
“그래도···. 선우가 같이 먹어야 더 맛있게 먹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자, 하나 먹었다. 나머지는 세르펜스 네가 먹어.”
나는 엄지에 씌워진 과자를 하나 먹은 뒤 세르펜스에게 손을 내밀었다.
녀석은 잠깐 고민하는 듯하더니 내 손가락에 씌워진 과자를 하나씩 쏙쏙 빼먹었다.
그냥 한꺼번에 가져가서 자기 손가락에나 끼워 먹을 것이지. 그런 생각을 안 한 건 아닌데, 재밌게 잘 먹고 있는 것 같아서 굳이 지적하지는 않았다.
하기야 나랑 누나만 해도 어릴 적에 이 과자를 함께 먹다가 다섯 개쯤 남으면, 아빠 손가락에 끼워놓고 가위바위보 해서 이긴 사람이 하나씩 먹으며 놀았으니까.
“근데 뭔가 빼먹은 얘기가 있지 않아?”
추억을 곱씹으며 흐뭇한 미소를 짓는 그때, 휴마누스가 말을 꺼냈다.
설마하니 내가 소설 <성검의 주인>에 관련된 얘기를 생략했다는 걸 눈치챈 거려나? 다른 누구도 아닌 눈새누스가?
절대 그럴 리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도둑이 제 발 저린다고 괜히 긴장되는 건 어쩔 수가 없다.
“무슨 얘기요···?”
“너 꽤 긴 시간동안 악숭이들에게 붙잡혀 있었잖아. 그때 무슨 일 없었···, 윽! 뭐야? 왜 다들 테이블 밑으로 내 다리를 못 차서 안달이야?!”
누군가에게 정강이를 얻어맞기라도 했는지 휴마누스가 움찔하며 인상을 찡그렸다.
휴마누스가 제아무리 성검의 주인이라 한들, 피할 공간이 확보되지 않고 반격도 불가능한 다수의 공격은 맞을 수밖에 없나 보다.
그래도 순간적으로 신성 결계를 펼쳤다면 막을 수 있었을 텐데.
하지만 장난에 가까운 공격이라 방심하여 미처 신성력을 끌어올리지 못한 게 아닐까 싶다.
‘아니, 것보다 휴마누스는 대체 왜 맞은 거지?’
상황 분석을 마치긴 했는데 휴마누스가 맞은 이유는 여전히 미지에 싸여있다.
나와 마찬가지로 어리둥절해하는 휴마누스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눈새누스와 동급이 된 것 같아서 분한 마음이 들었다.
“휴마누스 님. 선우 님이 말하지 않고 넘어가셨다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걸 거예요.”
“맞아, 눈치 좀 챙겨.”
“응.”
리에나와 푸로르, 아니마가 한 마디씩 던졌다.
사실상 아니마는 다른 두 명의 말에 동조한 것뿐이지만. 어쨌든 성검 일행으로서, 자신들의 리더가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길 바라며 목소리를 냈다.
‘···설마 내가 악숭이들에게 납치당했을 때 모진 고문을 당해서, 그때의 기억이 너무 괴로운 나머지 차마 말을 못하고 어물쩍 넘긴 거라고 생각하는 건···. 에이, 그건 아니겠지.’
나는 마음속에서 피어오르는 불안감을 애써 모르는 척하며 일행들의 면면을 둘러보았다.
모두가 안쓰러워하는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내 시선을 피하고, 세르펜스의 얼굴이 참담함에 물든 거로 보아 내가 떠올린 생각이 맞는 모양이다.
분위기가 이러하니 꽥꽥이도 눈치를 보며 과자를 먹는 걸 멈···춘 건 아니고, 진작에 그릇을 비웠는데 내가 이제야 눈치챈 거였다.
나는 빈 그릇을 치우고 식혜 그릇을 꽥꽥이 앞에 가져다 대며 헛웃음을 흘렸다.
“저 아무 짓도 안 당했습니다. 원래 꽥꽥이가 제 몸을 그릇 삼아 소환될 예정이었는데, 그가 자신이 써야 할 육체가 고문당하며 추한 꼴을 보이는 건 싫다고 얘기해 놨거든요. 그 덕분에 삼시 세끼 잘 챙겨 먹고, 목욕 시중까지 받으며 대접을 받았습니다. 그 외의 시간은 방치당하긴 했지만, 그마저도 꽥꽥이가 머릿속으로 말을 걸어 줘서 심심하거나 외롭지 않게 잘 지냈어요.”
내 설명에 모두의 시선이 꽥꽥이에게로 쏠렸다.
갑작스러운 관심에 당황했는지 꽥꽥이가 뭘 보는 거냐며 꽥꽥거렸다.
말투는 불량스럽고 목청도 컸으나 하나도 위협적이지 않았다.
“과연, 선우는 악마마저 감화시킨 것인가?”
“역으로 마왕과 악마 사이를 이간질한 건 아닐까요?”
세르펜스는 그렇다 쳐도 유지스는 말이 좀 심한 것 같다.
대체 나를 어떻게 보고 있길래 저런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다. 이간질을 하는 건 언제나 내가 아닌 세르펜스거늘.
근데 왜 다들 유지스의 말에 더 열성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걸까?
“그냥 운 좋게 꽥꽥이가 악마 중에서 보기 드물게 정 많고 좋은 악마라서, 친해질 수 있었던 것뿐이야. 아마 다른 악마와 정신이 연결되었다면 어림도 없어.”
“꽥?! 내가 정이 많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그럴 리가 없잖아!”
꽥꽥이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꽥 소리를 질렀다.
나에 관한 기억이 없는 상태로도 내 소중한 사람들을 공격하길 꺼리고, 기억이 돌아온 후에는 나를 살리고자 연기까지 하며 대악마 하나를 쓰러뜨린 후, 결국 한 번 죽기까지 했으면서.
그래놓고 정이 없다고 우겨 봤자 대체 누가 믿을 수 있을까.
“정 같은 게 아니라, 그냥···. 그냥 네가 흥미로운 인간이니까, 될 수 있으면 살려두고 싶었을 뿐이야. 흔해 빠진 인간 중 보기 드문 별종이라 죽게 놔두기는 아까워서! 그리고 마신, 아니, 마왕···의 손에 들어가 망가지면 재미없는 인간이 되어버릴 테니까. 그게 싫어서···.”
꽥꽥이는 혼신의 힘을 다해 변명을 늘어놓았으나, 그럴수록 자신이 얼마나 나를 소중히 여기는지 증명하는 꼴밖에 되지 않았다.
그를 바라보는 일행들의 시선이 부드러워졌고 내 마음은 따뜻해졌다.
비록 세르펜스는 심경이 몹시 복잡해 보이긴 했으나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것 같다.
질투는 나는데 꽥꽥이가 나를 위해 해준 것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걸 알게 되어, 대놓고 질투할 수 없어서 저런 표정을 짓는 걸 테다.
많은 이들에게 따스한 시선을 받는 게 낯설었는지, 꽥꽥이가 고개를 돌리며 몸을 웅크렸다.
그 모습이 마치 쫀득한 흑임자 찹쌀떡 같아서 하마터면 깨물어버릴 뻔했다.
“어쨌든 저는 여러분들이 걱정할 만한 일은 하나도 당하지 않았으니까, 괜히 눈치 볼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오죽했으면 제가 얘기하는 걸 까먹고 그냥 넘어갔겠습니까?”
“아까 마왕과 대화했다고 하지 않았나?”
신이 되면 이전 회차가 떠오른다는 얘기를 하면서 그냥 지나치듯 말했을 뿐이건만, 세르펜스가 그 부분을 잘도 기억하고 지적했다.
마왕과 대화를 나눴는데 어떻게 걱정할 일이 하나도 없을 수가 있느냐는 뜻이다.
“···위협적인 얘기를 듣긴 했는데, 지금은 상관없어. 어디까지나 내가 악마의 그릇이 되었을 때를 가정하고, 놈이 멋대로 희망 사항을 떠들어 댔을 뿐이니까. 평범한 인간의 몸은 너무 약해서 실수로 죽일까 봐 우려된다며, 내게 아무 짓도 안 했어!”
“정말입니까?”
갑자기 세르펜스가 내게 존댓말을 하길래 갑자기 왜 거리를 두나 의아해진 것도 잠시.
녀석의 시선이 내가 아니라 내 품에 안긴 꽥꽥이를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챌 수 있었다.
“아무 짓도 안 하긴. 그때···.”
나는 서둘러 꽥꽥이의 부리를 잡아 그의 말을 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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