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1069)
공작님, 회개해주세요!-1070화(1070/1105)
1070회
102. 공작님과 신성석 (6)
* * *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각자 방에서 양치를 마친 뒤, 밖으로 나와 말에 올랐다.
나에 관한 기억이 돌아오며 교단이 한바탕 뒤집어졌을 테니, 신전에 방문하여 상황 설명을 하는 게 우선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신전이 있는 영지는 그리 멀지 않았다.
우리가 어제 들어왔던 곳의 반대쪽 성문으로 나가서, 말을 타고 한나절만 달리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다.
{ 선우의 세례명을 가장 먼저 듣는 건 나였어야 하는데···. 일행들에게 세례명을 밝히기 전, 내게 먼저 알려줄 수도 있지 않았나? 우리 사이에 그 정도 신의는 있다고 믿었건만, 너무하다.
게다가 가문에 들어와 같은 성을 쓰자는 내 제안에는 아예 대답도 안 해주고 무시했지. 정말 너무하다. }
이동하는 동안 세르펜스는 토라져서 너무하다는 얘기만 반복했다. 말이 아니라 생각으로.
혼자 속으로 투덜거리며 불평을 삭이는 중이겠거니 하고 흘려 듣기를 한 시간.
이제 슬슬 나더러 들으라고 이러는 건가 의심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 그리고 말을 탈 때만이라도 오리를 다른 사람에게 맡기면 안 되나? 팔에 오리가 닿아서 불쾌하다. }
꽥꽥이가 말에서 떨어지면 큰일이니 나는 그를 꼭 끌어안고 있다.
그러므로 허리에 두른 세르벨트에 꽥꽥이가 닿는 건 불가피한 일이었으나, 세르펜스는 그게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다.
어차피 옷 위로 닿는 건데 대체 뭐가 그렇게 불쾌한지 모르겠다.
“자꾸 그러면 나 다른 말로 옮겨 탄다?”
“선우···, 정말 너무한다. 너무 매정해···.”
세르펜스가 우는 소리를 내며, 절대 놓아주지 않겠다는 듯 내 허리를 감싼 팔에 힘을 더했다.
한쪽 어깨가 무거워지고 볼과 목덜미에 간질간질한 무언가가 닿았다.
그 간질거리는 무언가란 세르펜스의 머리카락일 테고, 어깨에 얹어진 건 녀석의 머리겠지.
“뭐야, 선우가 갑자기 왜 세르펜스를 혼내는 거야? 걔가 뭐 했어? 그런 기척은 못 느꼈는데?”
“글쎄요? 그냥 아무 말 없이 말을 몰고 계셨던 것 같은데···.”
“세르펜스 나리가 삐쳐서 아무 말도 안 한다고 생각해서, 좋은 말로 할 때 화 풀라고 경고한 거 아냐?”
휴마누스가 어리둥절하며 일행들에게 의견을 물었고, 리에나는 의아해했으며, 푸로르는 반쯤 정답을 맞혔다.
하지만 그런 푸로르조차, 세르펜스가 머릿속으로 내게 불평을 쏟아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채지 못했다.
그래도 가만히 있는 애를 왜 괴롭히는 거냐고 뭐라 하지 않은 게 어디랴 싶다.
나는 어깨에 올려진 세르펜스의 머리를 밀어서 떼어내며 말했다.
“에휴, 그래 내가 미안해. 너한테 먼저 세례명을 알려줬어야 했는데, 그게 세례명일 거라고는 생각도 못 하다가 갑자기 알게 돼서 그랬어. 그리고 꽥꽥이는 좀 봐 줘. 나 말고 다른 사람 품에 안기는 건 싫다는데 어떡해? 원래 특정 모임에 친구를 데려왔으면, 그 친구가 적응할 때까지 곁에 딱 붙어서 어색해하지 않도록 도와주는 게 사람의 도리야.”
“내 가문에 입적하는 건?”
“아니, 내가 너보다 연상인데 어떻게 네 양자로 들어가라는 거야?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수락을 하든 거절을 하든 하지!”
“선우가 나보다 연상이라고?”
가당찮은 얘기라도 들은 듯 조소 섞인 세르펜스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얼마 전 TV에서 본 뉴스 기사가 하나 떠올랐다.
내년부터는 한국식 ‘세는 나이’를 없애고 만 나이를 사용하게 될 거라는 내용이었다.
그 사실을 세르펜스가 알고 있을 리 없다.
또한 나는 그것이 적용되기 전에 이곳으로 왔고, 같은 시점으로 돌아갈 예정이다.
그러므로 나는 결코 나이를 속인 게 아니다.
당당하게 나가자, 당당하게.
“그건 또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야?”
“현재 선우는 나보다 어리잖은가? 그 얼굴의 어디가 나보다 연상이라는 건지 모르겠군.”
그냥 육체 나이를 말했을 뿐이었나 보다.
당당하게 나가길 잘했다며 뿌듯해하고 있는데, 휴마누스가 죽은 자의 영혼이 볍씨를 까먹는다는 게 대체 무슨 소리냐는 질문을 던졌다.
그에 유지스가 ‘그만큼 세르펜스의 말이 어처구니없다는 뜻이겠죠.’ 하고 완벽한 해석을 내놓았다.
덕분에 내가 설명할 수고는 덜었으나, 세르펜스의 말에 반응할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그런데 선우는 이 세상에 넘어오기 전 스물다섯 살이라고 하지 않았나? 한데 그 얼굴은 많이 쳐 줘도 스물 전후로밖에 보이지 않는군. 설마하니 내게 ‘형’ 소리가 듣고 싶어서 나이를 속인 건가?”
“아니,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동안이라서 그렇지, 스물다섯 맞거든? 인종에 따른 이목구비 차이도 있고! 애초에 넌 내게 형이라 불러준 적도 없잖아!!”
“흐음···.”
아무래도 내 말을 안 믿는 눈치다.
아니, 생각하는 걸 들어 보니 믿지 않는 게 확실했다.
{ 그러고 보니 선우가 살던 세상에서 강한 부정은 긍정을 뜻한다고 하지 않았나? 그렇다는 건 정말로···, 선우가 나보다 연하라는 건가? 선우가 연상인 쪽이 어리광부리기 좋은데···. 하지만 선우가 내게 어리광을 부려준다면 그건 그것대로 기쁘겠지.
으음, 어려운 문제다. 어느 쪽을 골라야 할지 고민되는군. }
이 녀석은 대체 뭘 고민하는 걸까?
황당해서 말이 안 나온다. 그래서 녀석의 생각을 가만히 듣고 있자니, 점점 더 가관이 되어 갔다.
결국 녀석이 내린 결론은 이러했다.
“그럼 대외적으로 선우는 나보다 어린 것으로 하고, 우리끼리만 있을 때는 연상인 거로 하는 게 어떠한가?”
“어떠하긴 뭘 어떠해?!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 신분증에 장난칠 생각도 하지 마. 두 번째 성은 좀 고민해 봐야겠지만, 내 나이는 무조건 너보다 한 살 위야.”
“그 얼굴로 스물아홉이라 해 봤자 아무도 믿지 않을 거다.”
“뭐 어때? 내 대외 신분은 천사가 될 텐데. 그냥 종족 차이라고 생각하겠지. 유지스만 해도 얼굴은 20대인데 실제 나이는 세자릿수잖아?”
내 말에 세르펜스가 칫 하고 혀를 찼다.
천사 신분이 처음으로 도움이 되는 순간이었다.
나는 더 이상 세르펜스가 토를 달지 못하도록, 신성력 다루는 연습을 할 테니 조용히 하라는 말을 남기고 눈을 감았다.
오른팔로 꽥꽥이를 단단히 끌어안으며, 왼손을 신성석 위에 올리고 그 안에 담긴 기운을 느꼈다.
‘여기까지는 참 쉬운데 말이지···.’
세르펜스는 나를 위해 신성력을 사용한다고 생각하라 조언했다.
하지만 신성력을 어떻게 써야 나를 위한 것이 되는지 모르겠다.
더욱이 신성력은 남을 돕는 데 특화된 능력 아니었었나? 그래서 신성력은 공생을, 마력은 편리를 추구하는 힘이라 말하는 것일 터.
그런데도 나 자신을 위해 신성력을 사용하라니.
‘다치면 상처를 치료하고, 피곤하면 체력을 회복하고, 적이 공격해 오면 막고, 추우면 성화를 피우고···. 이 정도면 되나?’
안 되나 보다. 신성력이 꿈쩍도 안 한다.
이렇게 생각만 하는 거로는 어림도 없고, 실전에 들어가야 사용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물스물 올라왔다.
하지만 그렇다고 일부러 다치거나 위험한 상황에 노출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윈스톤에게 빡세게 굴려달라고 한 뒤, 기진맥진한 상태로 시도해 보면···. 아, 운동하기 싫다. 그러고 보니 지금 이 육체는 검술 기본기가 하나도 잡혀있지 않으니까, 검술 기본부터 다시 배워야 하려나? 물론 머릿속에 박아둔 이론이 있으니 맨땅에 헤딩하는 수준은 아니겠지만. 으으, 벌써부터 힘들고 귀찮아. 그냥 노력 없이 강해지고 싶다.’
모든 것을 날로 먹고 싶다고 생각한 그때, 아주 미세하게 신성력이 꿈틀거린 듯한 느낌을 받았다.
예기치 못한 타이밍에 반응이 온 까닭에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 집중력이 흩어질 뻔했다.
고작 이딴 이유로 움직여 줄 거면서 그간 애를 먹인 거냐는 생각에 짜증마저 났다.
하나 지금 이 느낌을 놓쳐 버린다면 한참 동안 삽질을 해야 한다.
그 사실을 알기에 나는 잡생각을 지우고 신성력을 움직이는 데 집중했다.
신성력이 꿈틀거리며 신성석 안을 뱅뱅 맴돌았다. 이제 이것을 밖으로 끄집어내야 하는데 덜컥 걱정이 들었다.
‘무협 소설을 보면 정해진 길을 따라서 기를 이동시키지 않으면, 혈도가 뒤틀리며 부작용 같은 게 생기던데···.’
세르펜스의 신성력이 내게 해를 끼칠 리 없고, 신성력은 안정적인 힘이니 잘못 다뤄도 문제 될 건 없다고 생각한다.
비비만 해도 제대로 된 사용법을 모르는 상태로 신성력을 폭주시켰는데 멀쩡했고.
정 꺼림칙하면 팔을 거치지 않고 그냥 신성석에서 바로 신성력을 뽑아낼 수도 있긴 하지만.
‘가슴에서 신성력 빔이 나가는 건 싫어.’
신성석이 가슴에 박혀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보면, 나를 이유 없이 신성력을 가슴에서 뿜어내는 이상한 사람이라 생각할 테다.
그건 좀. 아니, 많이 부끄럽다.
어차피 지금 당장 신성력을 몸 밖으로 끄집어내 봤자 쓸 데도 없으니, 일단은 신성력을 움직이는 것에 익숙해지는 게 좋겠다.
신성력을 신성석 안에서 뱅뱅 돌리는 게 익숙해질 무렵.
우리는 잠시 말에서 내려 점심을 먹고 다시 이동을 시작했다.
“아까 선우의 안에서 신성력이 움직이는 게 느껴졌다. 내 조언이 도움되었나 보군.”
“······.”
“···아니었나?”
내가 신성력을 처음 움직였을 당시의 상황을 떠올리며 할 말을 잃자, 세르펜스가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나는 고개를 내저으며 아니지 않다는 뜻을 전했다.
“도움이 되기야 했지. 그런데···, 정말 나를 위한 것이기만 하면 다 되는 거였구나 싶어서···.”
“음?”
“아냐, 아무것도.”
신성력을 움직일 수 있게 된 계기에 관해서는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말아야지. 무덤까지 가져갈 거다.
어쨌거나 이제 내 뜻대로 신성력을 움직이는 것이 가능해졌으니 다음으로 넘어가야겠다.
나는 세르펜스에게 신성력을 활용하는 방법을 물었다.
“신성력으로 자신의 신체를 강화하는 건 어떻게 해?”
“그것부터 물어보는 건가? 나는 당연히 결계를 만드는 방법에 관해 알려달라고 할 줄 알았거늘.”
“어, 음···. 방어를 하려면 일단 반응 속도를 올려야 하지 않을까 싶어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날아오는 적의 공격도 감지해야 하고···.”
···라는 얘기는 거짓말이다.
사실은 노력 없이 강해지고 싶다는 마음이 신성력을 움직이게 한 원동력이었으니, 그에 관련된 것부터 배워야 할 것 같아서 물어본 거였다.
일방적으로 생각을 전달만 할 뿐, 내 생각을 읽지 못하는 세르펜스는 순순히 내 말을 믿어 주었다.
“훌륭한 판단이다. 기실 신성력으로 신체를 강화하고 감지력을 키우는 건 기본 중의 기본으로, 신성력을 지닌 이라면 가장 먼저 터득하는 기술이다. 몸 밖으로 신성력을 꺼내어 운용하는 것보다 쉽기도 하고.”
“응, 그럴 것 같았어. 그래서 내가 그것 먼저 알려 달라고 한 거야.”
나는 입술에 침도 바르지 않고 거짓말을 했다.
비록 세르펜스에게 배우는 처지긴 해도, 나는 본디 세르펜스의 보호자니까.
보호자는 아이에게 위대해 보여야 하는 의무 아닌 의무가 있다.
“역시 선우는 대단하다.”
“내가 좀 그렇지!”
“정말 멋있다.”
{ 우쭐거리는 모습이 보기 좋군. 어쩐지 가슴이 벅차오르는 기분이다. 이런 걸 흐뭇하다고 표현하는 것인가? 선우가 더욱 자신감을 갖도록 열심히 기분을 띄워 줘야···, 헛! }
“······.”
“······.”
나와 세르펜스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