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1072)
공작님, 회개해주세요!-1073화(1073/1105)
1073회
102. 공작님과 신성석 (9)
* * *
– 콰앙!
신전에 도착하자마자 회의실로 안내받아 주교를 기다리고 있는데, 돌연 문이 벌컥 열리며 거센 소음을 냈다.
놀라서 쳐다보니 그곳에는 주교복을 입은 성직자가 나보다 더 놀란 얼굴을 하고 서 있었다.
당황하는 모양새로 보아 문을 거칠게 열어젖힌 건 실수였나 보다.
“허억!! 죄, 죄송합니다! 제가 마음이 너무 급해서···!”
“괜찮으니까, 와서 앉으세요.”
“넵!!”
너무 어쩔 줄 몰라 하길래 나도 모르게 괜찮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주교는 내게 누구냐고 묻는 대신 빠릿빠릿하게 대답했다. 그러고는 조심조심 문을 닫고 살금살금 걸어서 비어있는 자리로 가 앉았다.
과도하게 예의를 차리는 그 모습이 묘하게 불길하다.
“저기, 그런데 시온 천사님 맞으십니까? 베카 왕국에서 사람들을 구하고자 홀로 희생하시어, 악마에게 잡혀가셨던···!”
아빠와 비슷한 연배로 보이고, 신성력 보유자는 노화가 느리게 진행된다는 걸 고려하면 연세가 더 많을 게 분명한. 아저씨가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존경심을 내비쳤다.
불길함은 적중했고 불편함이 더해졌다.
그 바람에 하마터면 아니라고 부정할 뻔했다.
이걸 부정하면 세르펜스는 새로운 천사가 대륙에 강림하자마자, 이전에 함께했던 ‘보좌관 겸 신의 사자 겸 천사’를 손절한 사람이 된다.
나는 고개를 돌려 옆에 앉은 녀석의 얼굴을 눈에 담았다.
정말 세르펜스를 봐서 참는다.
“맞···는데 어떻게 아셨어요?”
“하늘에 헤일로 현상이 나타난 순간, 잊었던 시온 님에 관한 기억이 돌아왔습니다. 그래서 깨달았죠. 사람들을 위해 희생하셨던 당신께서 흉악하고 무자비한 마왕의 손에서 벗어나, 다시 이 땅에 돌아오셨음을! 악랄한 악마들로부터 소중한 이들을 지키고자 하는 당신의 간절한 바람이 기적을 일으켰음을!”
악랄한 악마’들’이라니, 그 둘 중 하나였던 꽥꽥이에게 몹시 실례되는 말이 아닐 수 없다.
소중한 친구인 나를 지키고자 희생한 그를 어떻게 악랄하다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악랄한 악마 하나와 다정한 악마 하나’로 정정해 마땅하다.
하지만 나는 그 생각을 입 밖으로 내뱉을 수 없었다.
꽥꽥이가 전직 대악마라는 사실을 교단의 성직자에게 밝혀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는 게, 첫 번째 이유요.
갑자기 머리 뒤에 새로운 광원이 생겼다는 게 두 번째이자 결정적인 이유다.
“뭐야, 갑자기 이게 왜 켜져?!”
“오오─! 이토록 신성한 모습이라니! 그 모습이 시온 님의 진정한 모습입니까?!”
“아뇨, 아뇨! 전 원래 머리 뒤에 이런 거 안 달고 다녔습니다! 머리색도 검은색이고! 이 모습은 그냥···.”
“신의 힘입니까?”
“어떻게 아셨어요?!”
신성력을 사용하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후광이 생긴 까닭에 당황하다가, 나도 모르게 주교의 말에 긍정하고 말았다.
그러면 안 되었는데.
아차 했으나 때는 이미 늦었다.
“아, 아아···! 신의 대리자시여!!”
주교가 기도하듯 두 손을 모아 잡고 감격의 눈물을 흘려댔다.
저번에는 신의 사자로 불렸는데 이번에는 신의 대리자 취급이다. 진화된 칭호에 나는 두통을 느끼며 이마를 짚었다.
정말 어처구니가 없는 건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라는 점이다.
제약 때문에 기억을 잃어서 그렇지, 룩스메아에게 사명을 부여받았으니 저번에는 신의 사자로서 이 세상에 온 게 맞다.
지금은 세르펜스에게서 신의 힘을 맡아두고, 녀석을 대신하여 그 힘을 사용할 수 있으니 대리자라 할 수 있다.
‘이거 네가 못 꺼?’
나는 그런 뜻을 담아 세르펜스를 노려보며 머리 뒤에서 빛나는 후광을 손가락질했다.
어찌 된 영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후광이 생기는 건 세르펜스가 내게 맡긴 신의 힘 때문이다.
그래서 녀석이라면 불을 꺼 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
하지만 곤란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걸 보면 녀석도 불을 끌 수 없나 보다.
{ 확실한 건 아니지만···. 저자가 선우를 신앙의 대상으로 우러르며, 당신의 세례명에 담긴 뜻을 입에 올린 까닭에 신의 힘이 반응한 게 아닐까 한다. 그 힘이 본디 내 것이긴 하나, 현재 그것을 지닌 건 선우이니···. }
듣고 보니 주교가 ‘당신’이라는 단어를 입에 담은 순간 불이 팟 하고 들어왔던 것 같다.
유지스의 해석 덕분에 ‘유(You)’라는 세례명을 좋게 받아들인 지 만 하루도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벌써 이런 부작용이 생기다니, 명불허전 트롤메아는 어딜 가지 않는구나 싶다.
{ 우선 저자를 진정시켜야 할 것 같다. }
나도 세르펜스의 생각에 동의하는 바다.
내가 교단에 보고하러 왔지, 숭배받으러 온 건 아니니까.
“진정하세요, 주교님.”
“니, 님이라니···! 그런 경칭은 붙이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감격에 겨워 기도문을 읊어대던 주교가 화들짝 놀라 테이블에 엎어지며 소리쳤다.
아까 앉으라고 말했던 게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었다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바닥에 엎드리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지 말고 고개를 들어 진저리치는 내 모습을 봐 주면 좋으련만.
“제가 부르고 싶은 대로 부르는 건데 불만 있으세요?”
“없습니다!”
“그럼 진정하고 고개를 드세요.”
“네, 넵!”
주교가 상체를 벌떡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불편함을 가득 담아낸 내 표정을 보고는 고개를 내리며 쭈그러들었다.
자신의 행동이 내 심기를 어지럽혔다는 걸 이제야 눈치채고 바짝 쫄은 걸 테다.
어쩐지 나이 많은 부하 직원에게 갑질하는 낙하산 상사가 된 것 같은 느낌이라, 기분이 영 별로다.
심지어 나는 그와 같은 룩스메아 소속도 아니고 아도르 소속으로 옮겨 왔는데 말이다.
“저를 신의 대리자니, 천사니. 그렇게 부르지 마시고, ‘선우’라고 불러주세요. 그게 제 본명이니까.”
“허억! 한낱 주교인 제게 고결한 존재의 이름을 알려주시다니!!”
“쓰읍!! 감탄 금지, 숭상 금지, 경외 금지!”
“네?”
“그냥 절 평범한 사람으로 대하며, 편하게 얘기하자고요.”
“제가 어찌 감히···.”
“감히란 말도 금지!”
결국 이것저것 금지한 뒤에야 주교가 침착해지고, 내 뒤통수에서 번쩍거리던 빛도 사라졌다.
제대로 된 대화는 한 마디도 못 나눴는데 벌써부터 피곤하다.
나는 심신의 안정을 되찾고자 눈앞에 보이는 꽥꽥이를 쓰다듬으려다가, 세르펜스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꽥꽥이가 갑자기 왜 자신을 쓰다듬느냐고 말을 하면 주교가 또다시 요란 법석을 떨 테고, 세르펜스는 질투심을 느끼며 머릿속으로 불만을 토로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이미 눈치채셨다시피, 저는 ‘시온 리벨론’의 몸에 들어가 성검 일행과 함께했던 그 존재가 맞습니다. 악마에게 영혼이 먹히기 전에 신께서 저를 구출하여 고향으로 보내 주셨지만, 모두가 걱정되어 이렇게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오오오!”
“감탄 금지라니까요?”
“···죄송합니다.”
“아무튼 그러니까, 저를 구한다고 괜히 힘을 뺄 필요는 없다는 뜻입니다. 물론 악숭 본거지를 찾긴 찾아야 하니, 놈들의 흔적을 쫓는 건 계속해야겠지만. 인력을 지나치게 분산시켜 서두르다가 역으로 각개격파 당하지 않도록 잘 뭉쳐 다니세요.”
“네, 알겠습니다!”
드디어 교단에 온 제1 목표를 달성했다.
마음에 안정이 찾아옴을 느끼며 세르펜스를 쓰다듬던 손을 내렸다.
“저기, 그런데 선우 천···, 아니, 그, 선우 님?”
“네, 말씀하세요.”
“앞에 있는 그 오리는 뭐죠···? 범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지는데···.”
주교가 테이블 위에 앉아있는 꽥꽥이에게 시선을 보내며 질문했다.
말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어도 눈에 띄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그래도 차분한 분위기가 형성된 상태로 설명을 할 수 있는 게 어디랴 싶다.
꽥꽥이도 조금 전 정신없는 상황을 다시 겪고 싶지 않았던 건지 불쾌한 표정만 지을 뿐, 하등한 인간 주제에 자신을 오리 취급 하지 말라며 날뛰지 않았다.
“얘도 천사입니다. 원래는 이런 모습이 아닌데, 악마와 싸우고 어쩌고 하다 보니까 힘을 많이 소모해서 이렇게 됐습니다.”
“플람 님이라고 불러라.”
턱을 치켜들고 고고한 척 구는 꽥꽥이의 모습에 하마터면 웃음이 터져나올 뻔했다.
이런 나와는 다르게 주교는 ‘오오!’ 하고 감탄성을 터트렸다가 급히 제 입을 틀어막았다.
감탄 금지 효과가 생각 이상으로 훌륭하다.
“죄송합니다, 플람 님. 천사님께서 두 분이나 오신 줄은 몰라서 결례를 범했습니다.”
“알았으면 다시는 나를 오리 취급 하지 마.”
“유의하겠습니다.”
주교가 고개를 숙이며 정중히 사과하자 꽥꽥이가 얼굴에서 불쾌한 기색을 지웠다.
히죽거리는 표정으로 보아 기분이 풀어진 정도가 아니라 꽤 만족스러운 모양이다.
그건 그렇고 오리는 어떻게 히죽거리는 표정을 지어도 귀여운 걸까?
나는 양손을 깍지 껴서, 꽥꽥이의 머리를 쓰담거리며 얼굴을 만지작거리고 싶다는 충동을 참아냈다.
“다른 신전 지부에도 연락해서 꽥꽥이를 오리라고 부르는 일은 없도록 얘기해 주세요.”
“꽥···, 그렇게 부르는 건 괜찮은 겁니까?”
“그건 그냥 친구끼리 부르는 별명이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넵!”
날 보며 호들갑 떠는 걸 진정시키기가 어려웠지, 진정시키고 나니 대화 진행이 속전속결로 이루어졌다.
구구절절한 설명이나 증명 과정을 건너 뛰고 주교가 내 말을 전부 믿고 넘어간 덕택이다.
천사 취급이 이런 점에서는 편하구나 싶다.
“일단 제가 할 얘기는 여기까지입니다. 혹시 주교님은 하실 말 없으세요?”
“저도 사인해 주세요!”
그냥 사인을 해달라는 게 아니라 ‘저도’라는 말이 앞에 붙은 게 신경 쓰인다.
예전에 하인델인가 뭔가 하는 주교에게 사인해 줬던 게 여기까지 소문이 퍼졌나 보다.
“그런 거 말고 업무적인 얘기요.”
“아···. 혹시 앞으로의 일정은 어떻게 되십니까?”
“잠깐 제국 수도에 좀 들릴까 하는데, 반드시 가야 하는 건 아니라서 지원이 필요한 곳이 있다면 편히 말씀하세요.”
“악숭이들이 꾸준히 사건 사고를 일으키긴 하나, 여러분께서 나서지 않으면 해결이 안 될 만큼 큰 사건은 아직 없습니다.”
주교가 그렇게 말하긴 했지만, 대륙이 평화롭다는 뜻은 아닐 테다.
그냥 우리가 현장에 도착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보다, 서로서로 협력하여 빨리 원흉 제거하는 쪽이 피해가 적은 사건들 뿐이란 소리겠지.
이전 회차에서는 그런 사건마저 성검 일행에게 떠넘기고, 이웃이 죽든 말든 방치하며 자기 집 앞마당만 지키기 급급했었는데.
그런 걸 생각하면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그럼 일정을 물어보신 건?”
“그야 선우 님의 품격에 걸맞는 고급 식자재와 간식을 구매하여 대접하려면, 여러분이 이곳에 며칠 정도 머무르시는지 알아야 하잖습니까.”
“내일 아침 바로 떠날 거니까 아무것도 사지 마세요. 식사도 그냥 이곳 성직자들이 평소 먹던 대로 가져와 주시고요.”
{ 선우···. }
“아, 아니다. 간식은 좀 필요할 것 같네요.”
머릿속에 울린 부름에 나는 재빨리 말을 바꿨다.
그러자 세르펜스가 기뻐하고 주교도 만족스러워했다. 세르펜스는 그렇다 쳐도 주교는 대체 왜 좋아하는 건지 모르겠다.
우리 애가 신세를 지는 것 같아서 괜히 고맙고 미안하여, 상대가 원하는 보상을 하나 내어주기로 했다.
“그런데 주교님은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허억! 제가 자기소개도 안 했습니까?! 아무리 선우 님을 만나 뵌 것이 너무 감격스러워 정신이 없기로서니, 이름조차 밝히지 않다니···! 이런 크나큰 무례를 범하여 정말 죄송합니다!”
“···됐고, 이름요.”
“라우크 D. 테아트랄이라고 합니다.”
나는 세르펜스의 품속 아공간 주머니에서 종이를 꺼내어 사인을 휘갈겨, 라우크 주교에게 건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