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1074)
공작님, 회개해주세요!-1075화(1075/1105)
1075회
102. 공작님과 신성석 (11)
나는 욕실로 향하던 발길을 돌려 꽥꽥이를 적당한 곳에 내려놓고, 소파로 가 세르펜스의 옆에 앉았다.
그러자 소파 주변으로 얇은 은빛 결계가 펼쳐졌다.
“그냥 결계에다가 신성력을 밀어 넣으면 되는 거야?”
“일단은 그러하다. 선우가 신성력을 보내면 내가 그것을 제어하여 결계를 강화하겠다. 유지는 그다음이다.”
“알겠어, 그럼···.”
눈을 감으며 신성석에 손을 올려 그 안에 담긴 기운에 집중했다.
그리고 아주 중대한 문제가 있음을 깨달았다.
그 문제란 바로 결계에 신성력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모르겠다는 거다.
‘그냥 결계에 손을 갖다 대면 해결되는 문제긴 하지만···.’
결계가 공격받는 상황에서 그것을 유지하고자 할 때, 세르펜스는 결계에 손을 대고 있지 않았다.
녀석의 손바닥에서 신성력이 뻗어 나와 결계와 연결되는 연출도 없었다.
휴마누스나 리에나 등 다른 이들이 결계를 펼치고 유지할 때 또한 마찬가지였다.
“결계의 위치를 인식하고 그곳에 힘을 발현하면 된다.”
아직 아무 말도 하지 않았음에도, 세르펜스는 내 문제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조언했다.
그래서 도움이 되었느냐 하면 절대 그렇지 않다. 뭘 어떻게 하라는 건지 모르겠다.
내가 눈을 뜨고 지그시 쳐다보자 아차 싶었는지 녀석이 멋쩍게 웃었다.
“어떤 기운이든 신체에서 멀어질수록 제어하기 어려운 법이다. 모든 배움에는 순서가 있는 법이니 닿지 않는 곳에 신성력을 보내는 건, 신성력을 다루는 데 익숙해지고 그것을 몸에서 떨어뜨리는 연습을 하고 난 다음에.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가며 가르쳐 주겠다. 오늘은 그저 실험하는 것뿐이니 직접 접촉한 상태로 신성력을 주입해 봐라.”
하마터면 세르펜스의 가르침에 불신이 생길 뻔했으나, 단계별 학습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거로 보아 계속 믿어도 될 것 같다.
나는 결계를 짚기 위해 팔을 쭉 뻗었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닿지 않았다.
등받이에 기댔던 등을 떼고 소파 끄트머리에 걸터앉아, 상체를 앞으로 내밀고 나서야 겨우 손끝에 결계가 닿았다.
‘이 자세가 맞나···?’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허리가 뻐근하다.
내가 소파에서 내려오든 세르펜스에게 결계 크기를 줄여 달라고 하든,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 할 것 같다.
세르펜스도 나와 같은 생각을 했는지 내 허리를 잡고 소파 깊숙이 끌어다 앉혔다.
그러고는 신성력으로 결계에서부터 이어진 실을 만들어 신성석에 직접 연결했다.
이것을 통로 삼아 결계에 신성력을 전달하라는 뜻일 테다.
‘하긴, 생각해 보면 신성력을 손까지 전달하는 것도 일이니까···.’
나는 소파 등받이에 편히 기대어 다시 집중 모드로 들어갔다.
이번에는 내가 신성력을 공급한다는 부분이 중요해서 그런가, 신성력을 통로에 내놓아도 세르펜스가 그것을 알아서 가져가는 일은 없었다.
아무래도 내가 직접 옮겨야 할 것 같다.
‘일단 신성력을 줄 세워 놓고 뒤에서 밀면 되지 않을까?’
끄집어낸 신성력을 전부 통제하여 옮기는 건 일찌감치 포기하기로 했다.
지금 내 수준으로는 무리다.
통로에 신성력을 되는대로 밀어 넣자 앞서 내놓았던 신성력이 떠밀려져 차츰 앞으로 나아가는 게 느껴졌다.
“신성력 운용을 참 특이하게 하는군.”
“이것들이 말을 잘 안 듣는 걸 어떡해?”
“이상하군. 나를 닮았다면 선우의 말을 잘 들을 텐데.”
그러게나 말이다. 세르펜스의 신성력이면 내 말을 잘 들어야 하는 거 아닌가?
신성력이 나를 잘 따르게 할 방법은 이따가 생각해 보기로 하고, 우선은 하던 일에 집중하기로 했다.
– 탁, 파닥파닥파닥, 타닷, 푸드덕 푸드덕···.
꽥꽥이가 바닥을 박차고 열심히 날개를 퍼덕거리는 소리를 백색 소음 삼아, 신성력을 밀어내고 또 밀어냈다.
그런 보람이 있는지 선두에 선 신성력이 결계에 닿았다.
옆에서 세르펜스가 잘하고 있다는 격려와 함께 계속하라고 속삭였다.
슬그머니 눈을 뜨자 결계의 빛이 서서히 선명해지는 게 보였다.
“아직 결계가 충분히 견고해지지 못했지만, 일단은 이 정도로 만족하는 게 좋겠군. 아, 그래도 연결은 계속 유지하고 있어라.”
“통로에 꺼내둔 신성력을 회수하지 않고 있으면 되는 거지?”
“그래. 그리고 이 상태로···, 아.”
세르펜스가 설명을 하다 말고 아차 싶은 표정을 지었다.
이번 실험의 목적은 내 신성력으로 녀석이 펼친 결계를 강화할 수 있느냐에서 그치지 않고, 적의 공격으로 내구도가 까일 때 그것을 복구 및 유지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 상황에서 충격을 감당하는 건 누구인지 확인하는 데 있다.
즉 결계 밖에서 공격해 줄 존재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 이런 중요한 문제를 깜박하다니···. 두 마법사처럼 나도 선우와 합동 기술을 펼치고 싶어서 마음이 너무 앞선 탓인가? }
그동안 말은 하지 않았지만, 에드나와 아니마가 합동 마법을 쓰는 걸 보고 계속 부러워하고 있었나 보다.
아이와 함께 공동 작업을 수행하는 건, 유대감과 친밀성을 키우는 데 아주 효과적인 방법이다.
덤으로 아이가 협동하는 방법도 배울 수 있고.
물론 나와 세르펜스는 이미 친해질 대로 친해진 상태이며, 녀석도 이젠 일행들과 곧잘 협력하긴 하지만.
그래도 아이가 함께하고 싶다는데 어울려 주는 것이 보호자의 도리다.
신성력을 사용하는 데 익숙해져야 할 이유가 늘었다.
“꽥꽥이한테 도와달라고 부탁하면 되는데, 뭐가 걱정이야?”
{ 그게 싫으니까 걱정인 건데···. }
세르펜스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그런 녀석의 입술을 꼬집어 주려다가, 통로에 내놨던 신성력이 역류하려는 걸 느끼고 들어 올렸던 손을 내렸다.
집중력이 흐트러질만한 행동은 최대한 하지 말자.
“헥, 헥···. 뭐, 도와 달라고?”
꽥꽥이가 날갯짓을 멈추고 철퍼덕 주저앉아 숨을 고르며 먼저 말을 꺼냈다.
서로를 싫어하는 건 마찬가지인데 꽥꽥이가 협조적으로 나오니, 상대적으로 세르펜스의 속이 좁아 보인다.
아, 아니다. 남과 비교하는 건 나쁜 버릇이니 그러지 말고 객관적으로 평가하자.
‘아이의 특성을 인지하고 받아들이는 건,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할지 갈피를 잡는 데 아주 중요한 첫걸음이지.’
현실을 외면하지 말고, 인정할 건 인정해야 한다.
우리 애는 그냥 속이 좁다.
“세르펜스, 우리 둘이 하는 첫 공동 작업에 남. 그것도 네가 싫어하는 존재가 끼어드는 게 불쾌하다는 건 알아. 하지만 지금 당장 도움을 청할 수 있는 건 꽥꽥이 뿐이잖아?”
“내가 결계 밖으로 나가서 공격하면 된다.”
“결계를 이루는 신성력이나 네가 쓰는 신성력이나 결국 같은 건데, 데미지가 들어가긴 해? 결계를 그냥 통과해버리거나 흡수되는 거 아냐?”
“그냥 물리적으로 두드리는 방법도 있다.”
“내가 결계 안에 있는데 힘껏 무기를 휘두를 자신은 있고? 심지어 그 충격이 나한테 전달될지, 너한테 전달될지 확실하지도 않은데?”
세르펜스가 멈칫하더니 자신 없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푹 숙였다.
내 그럴 줄 알았다.
“그, 그렇다면 마법 스크롤을 사용하는 방법이···.”
“만약 내가 결계를 유지하지 못해서 깨지면 어쩌려고? 네가 옆에서 대기하다가 날 지켜주는 게 안전하지 않겠어?”
“그건···, 그렇군. 미안하다, 내 생각이 너무 짧았다.”
“그래서 결론은?”
“저자···. 아니, 플람의 도움을 받겠다.”
“좋아, 1 쓰담 적립해 둘게.”
이따가 쓰다듬어 주겠다는 말에, 분한 기색이 다분했던 세르펜스의 표정이 단박에 밝아졌다.
진짜 못 말리는 녀석이 아닐 수 없다.
나는 픽 웃으며 시선을 옮겨 꽥꽥이를 바라보았다. 우리가 대화를 나누는 동안 앉아서 푹 쉬었는지, 헥헥거리던 숨이 안정적으로 돌아온 상태였다.
“꽥꽥아, 도와줄 거지?”
“그러지, 뭐.”
“좋았어, 그럼 결계를 향해 몸통 박치기!!”
“···뭐?”
“결계에 힘껏 부딪혀 보라고.”
“그럼 내가 아프잖아.”
듣고보니 그렇다. 오리의 몸이 단단해 봤자 얼마나 단단하겠는가?
심지어 작고 가벼워서, 전속력으로 뛰어와 몸을 날려 봤자 결계에 제대로 된 충격도 가할 수 없다.
계란으로 바위를 치면 계란만 깨지듯, 꽥꽥이의 뼈만 아작날 게 뻔하다.
“미안, 내가 너무 기분에 취해서 아무 기술명이나 외쳐버려서. 좀 더 상성을 고려했어야 하는데.”
“아무 말이나 막 내뱉은 거였냐···? 어쨌든 그냥 결계를 공격하면 되는 거지?”
“응.”
기왕이면 입으로 불을 뿜는 기술을 써 달라고 부탁하고 싶었으나, 도움받는 형편에 이것저것 요구하기 미안해서 관뒀다.
진지한 실험 중에 꽥꽥이랑 장난친다고 세르펜스가 삐칠 것 같기도 하고.
“일단 처음이니까 약하게 가 볼게.”
그 말대로 꽥꽥이가 허공에 피워낸 불꽃은 매우 작았다.
그럼에도 세르펜스는 바짝 긴장하여 다가오는 불꽃을 노려보았다.
천천히 날아온 불꽃이 결계에 닿았으나 세르펜스가 걱정한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결계에 닿자마자 불꽃이 사라져 버린 탓이다.
세르펜스는 한쪽 눈썹을 위로 올렸고, 꽥꽥이는 기우뚱 고개를 기울였다.
{ 방금 그 느낌은···. }
“너무 약했나?”
꽥꽥이가 조금 전보다 커다란 불꽃을 만들어 던졌다.
불꽃이 결계에 닿자마자 사라진 건 아까와 동일했다. 그 대신 이번에는 어째서 불꽃이 사라진 것인지, 그 이유를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은빛 결계에 푸른빛이 더해지며 이글거리는 효과가 추가되었으니까.
결계가 꽥꽥이의 불꽃을 흡수한 것이다.
“어···, 꽥꽥이가 아도르의 천사라서 이런 결과가 나온 거려나? 아니면 꽥꽥이를 천사로 만든 힘이 세르펜스의 힘이라서 그런가?”
“저자가 나의 천사라니, 언제 들어도 끔찍한 표현이군.”
“나라고 마음에 드는 줄 알아?”
세르펜스와 꽥꽥이가 눈앞에서 벌어진 현상을 분석할 생각은 안 하고, 이상한 부분에 꽂혀서 티격태격했다.
이런 자잘한 말다툼에 관여해 봤자 둘의 관계가 호전되는 일은 없다. 넌 대체 누구 편이냐는 소리만 듣게 될 뿐이다.
나는 편 가르기의 희생양이 될 생각이 없으므로, 둘 사이에 나쁜 말이 오가며 싸움이 심화되기 전에 화제를 돌리기로 했다.
“실험할 게 늘어난 것 같으니까, 하던 실험을 빨리 마무리 짓자.”
“음, 잠시만 기다려 봐라.”
세르펜스가 꽥꽥이를 노려보길 멈추고 아공간 주머니에서 공격용 하급 스크롤을 꺼냈다.
그리고 결계를 구성하는 신성력을 조작하여 작은 구멍을 만든 후, 그곳으로 스크롤을 던졌다.
혹시나 실수인 척 꽥꽥이를 맞추면 어떡하나 했는데 그런 짓을 하면 내게 혼날 걸 알았는지, 스크롤은 정확히 꽥꽥이의 발 앞에 떨어졌다.
꽥꽥이는 반사적으로 날개를 뻗어 스크롤을 집으려다가, 손이 없다는 걸 깨닫고 발로 그것을 밟아 고정했다.
그가 한 쪽 끄트머리를 부리로 물고 고개를 젖히자, 찌익 하는 소리와 함께 스크롤이 찢어졌다.
스크롤에 담긴 마법은 얼음 화살을 만들어 날리는 것이었다.
기세 좋게 날아든 얼음 화살은 결계에 닿기가 무섭게 수증기가 되어 사라졌다.
“오···! 꽥꽥아, 대단하다!!”
“결계를 펼친 건 나인데, 어째서 저 오리를 칭찬하는 거지?!”
“방금 꽥꽥이를 오리라고 지칭한 거야? 그것도 생각이 아닌 말로? 1 쓰담 차감.”
“그, 그런···!”
쓰담 스택이 줄어들자 세르펜스가 사탕 뺏긴 어린애처럼 서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런 녀석을 보며 꽥꽥이는 유쾌하다는 듯 킬킬킬 웃어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