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1077)
공작님, 회개해주세요!-1078화(1078/1105)
1078회
102. 공작님과 신성석 (14)
어처구니가 없어서 빤히 쳐다보니 세르펜스가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도대체 어느 지점에서 억울함을 느낀 건지 모르겠다.
“다시 한번 잘 읽어 봐라.”
지금 이 말을 무시한다면 세르펜스는 토라질 게 뻔하다.
썩 내키지 않았으나 녀석을 이해해 보고자 펼쳐진 페이지를 쭉 읽어 내려갔다.
오리는 괄약근이 없어 배변 훈련이 불가능하다는 둥 배설물의 냄새가 심하다는 둥, 간식을 먹기 전에 읽을 만한 내용은 아니었다.
“어라? 잠깐만.”
나는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꽥꽥이를 쳐다보았다.
그는 가만히 기다리기 심심했는지 부리로 깃털을 정돈하고 있었는데, 내 시선을 느끼고는 고개를 들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척 시치미를 뗐다.
아직 오리처럼 행동하는 게 민망한 모양이다.
그런 그의 부리에 붙은 솜털을 떼 주며 나는 진지하게 질문했다.
“꽥꽥아, 너 혹시···. 변비야?”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너도 이 책을 보면 알 거야.”
먹은 것이 있다면 응당 내보내는 것 또한 있어야 하는 법.
한데 꽥꽥이는 그동안 먹기만 하고 단 한 번도 배설하지 않았다. 이는 아주 심각한 문제다.
오리가 된 후 첫 음식을 과자로 끊은 게 문제가 된 걸까?
전부 내 탓이다. 아무리 꽥꽥이가 평범한 오리와 다른 신성 오리라 한들, 결국에는 오리인데.
“괜찮아, 아직 늦지는 않았을 거야!”
“뭔 소리야?”
나는 책과 쟁반을 세르펜스에게 떠넘기고 꽥꽥이를 내 무릎 위로 옮겼다.
꽥꽥이가 ‘책 읽으라며? 왜 치워?’ 하고 의문을 토했지만, 지금은 한시가 급하다.
그를 뒤집어 놓고 조몰락 조몰락 배를 마사지했다.
“꽤애액!! 뭐 하는 거야?!”
“얌전히 있어, 다 너를 위한 거야!”
“대체 왜 이러는 건데?!”
효과가 있을지 없을지 모르겠으나 아예 시도조차 안 하는 것보다야 낫겠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꽥꽥이의 배를 조물조물하고 있을 때, 하얗고 갸름한 손이 끼어들어 꽥꽥이를 채갔다.
그 손의 주인은 세르펜스였다.
녀석은 꽥꽥이를 대충 바닥에 내려놓은 뒤 쟁반을 다시 내 무릎 위에 올렸다.
“지금은 간식 따위를 먹을 때가 아니야! 꽥꽥이의 상태가 얼마나 응급한 지 먼저 알아챈 건 너잖아?”
“우선 진정해라.”
“내가 이상한 걸 먹여서 꽥꽥이가 죽게 생겼는데 어떻게 진정을 해?!”
“이런 경우에는 플람의 소화 기관이 평범한 오리와는 다르다고 생각하는 게 보통 아닌가?”
“···어?”
그러고 보니 이곳은 판타지 세상이었다. 이곳의 ‘보통’은 내가 살던 곳의 ‘보통’과 사뭇 다르다.
배설을 안 하면 장에 문제가 생겼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배설을 안 해도 되는 특별한 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야 할 정도로.
나는 정말 세르펜스의 말이 사실이냐고 묻는 눈으로 꽥꽥이를 바라보았다.
꽥꽥이는 씩씩거리며 나를 노려보고 있었는데 그 모습도 귀엽···이 아니라. 억지로 붙들어 놓고 배를 조몰락거린 것에 원한을 품은 모양이다.
하기야 나 같아도 제대로 된 양해도 구하지 않고 강제로 눕히더니, 멋대로 내 배를 주물러댄다면 화가 날 것 같긴 하다.
“미안해, 꽥꽥아. 책에 의하면 오리는 배설을 굉장히 자주 한다는데 너는 한 번도 한 적이 없길래, 장이 막힌 줄 알고 놀라서 그랬어. 괄약근이 없다는 설명만 안 봤어도 그냥 참고 있는 거라고 생각했을 텐데···.”
“그런 쓸데없는 말은 덧붙이지 마!”
“아, 응. 미안. 근데 진짜 괜찮은 거 맞지? 속이 더부룩하다거나, 아랫배가 묵직하다거나. 그런 느낌 없어?”
“없어.”
딱 잘라 말하는 거로 봐선 정말 괜찮은 것 같기는 하다.
그래도 자신의 병을 정확히 인지하는 환자가 그리 많지 않다는 걸 생각하면, 아직 마음을 놓기에는 이르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바로 정확한 진단을 내려줄 수 있는 의사다.
“세르펜스, 네가 한번만 꽥꽥이를 자세히 살펴봐 주면 안 될까?”
나는 의사펜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녀석은 내키지 않는다는 표정을 짓긴 했지만, 빨리 확인하고 간식을 먹자는 내 말에 마지 못해 꽥꽥이를 향해 손을 뻗었다.
조심성 없이 한 손으로 집어 드는 게 오리가 아니라 럭비공을 잡은 듯하다.
마침 꽥꽥이의 크기가 그 정도이기도 하고.
“장에서 아무것도 감지되지 않았다.”
세르펜스가 그렇게 말하고는 꽥꽥이를 휙 던졌다.
꽥꽥이가 날개를 퍼덕이며 안전하게 착지했기에 망정이지, 그러지 않았다면 앞뒤 안 가리고 세르펜스를 꾸짖었을 테다.
아까는 던지지 않고 내려놨으니까 이번엔 꽥꽥이가 잘 착지할 줄 알고 던진 거겠지. 그렇게 믿어보자.
“그럼 아무거나 다 먹여도 되는 건가? 아니지, 소화 흡수력이 너무 뛰어나니까 오히려 더 가려 먹여야 하나?”
“그냥 먹여라. 문제가 생기면 휴마누스나 리에나 님에게 치료를 부탁하면 되잖은가? 아니면 플람이 알아서 독이 되는 성분을 태워버리든 정화하든 하겠지.”
“네가 치료해 줄 생각은 없는 거구나.”
“선우가 바란다면···, 못해 줄 건 없다.”
세르펜스가 새초롬한 표정으로, 만약 꽥꽥이에게 이상이 생겼을 때 치료해 줄 것을 약속했다.
꽥꽥이가 간식을 먹지 않는다면 그만큼 세르펜스가 먹을 수 있는 양이 늘어나니, 없는 이유라도 만들어내어 먹지 못하게 할 수도 있었을 텐데.
오히려 꽥꽥이의 간식 섭취에 도움을 주는 듯하여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먹는 재미를 모르고 살았다는 꽥꽥이의 말을 듣고, 동병상련의 감정이라도 느낀 거려나?
“아까는 오해해서 미안해. 나는 네가 꽥꽥이의 안 좋은 점을 지적하여, 내가 그에게 거부감이 생기게 하려고 그러는 줄 알았어. 그런데 그냥 평범한 오리와 꽥꽥이의 다른 점을 알려줘서, 아무거나 먹어도 된다는 걸 알려주려고 그런 거였구나?”
“미안하면 나한테 더 잘 해라.”
세르펜스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나는 피식 웃으며 기특펜스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한편, 꽥꽥이에게 시선을 던지며 나머지 한 손으로 소파 팔걸이를 툭툭 쳤다.
화가 덜 풀렸는지 꽥꽥이는 심통이 난 표정을 지었으나 결국 팔걸이로 와 앉았다.
“나를 걱정해서 그런 거라고 하니까 이번만 넘어가 주는 거야. 다시는 허락 없이 멋대로 만지작거리지 마.”
허락만 받으면 만지작거려도 되나 보다.
나중에 꽥꽥이가 사람 손을 타는 게 익숙해지면, 기분이 좋아 보일 때 슬쩍 허락을 구해봐야지.
쓰다듬는 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거로 보아, 그날이 오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 같지는 않다.
“알았어, 알았어. 화 풀고 간식 먹자.”
나는 꽥꽥이를 잘 달래며 망디앙을 하나 집어 들어 그에게 내밀었다.
얇은 초콜릿을 뭉툭한 오리 부리로 집어 먹을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내 무릎 위에 올려진 플레이팅 도마보다 꽥꽥이가 앉아있는 팔걸이가 더 높기도 했고.
꽥꽥이도 그걸 아는지 당연하다는 듯 편히 앉아 망디앙을 받아먹었다.
{ ···오리만 ······, 너무···. }
머릿속으로 세르펜스의 생각이 일부 흘러들어왔다. 뚝뚝 끊겨서 들렸으나 온전한 문장을 예상하는 건 쉬웠다.
자신은 방치한 채 꽥꽥이만 먹여주다니 너무하다, 대충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거겠지.
꽥꽥이처럼 손이 없는 것도 아니니 직접 집어 먹으라고 말한다면 분명 삐지겠지.
어쩌면 차별을 받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심하면 기특한 행동을 한 건 자신인데 정작 혜택은 꽥꽥이가 가져간다고 생각하여, 비뚤어질 가능성도 있다.
“그래, 그래. 너도 먹여줄게.”
한 손은 꽥꽥이에게. 다른 한 손으로는 세르펜스에게 간식을 먹이고 있자니, 사람이 한 번에 챙겨줄 수 있는 건 두 명이 한계라서 팔이 두 개인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세르펜스가 내 입에 망디앙을 물려줬다는 점이다.
일말의 양심이 남아있어서 그런 건지, 꽥꽥이가 할 수 없는 걸 자신은 해 줄 수 있다고 과시하는 건지 어느 쪽인지는 모르겠지만.
세르펜스가 처음 내게 먹여준 건 견과류가 올려진 다크 초콜릿으로 만든 망디앙이었다.
얄팍한 초콜릿이 파삭 부서지는가 싶더니 입안에서 부드럽게 녹고, 고소한 견과류가 단단하게 씹히며 바삭바삭한 식감을 이어받았다.
그다음에 녀석이 건넨 것은 건과일이 올려진 망디앙이었는데, 상큼 달콤하며 졸깃한 식감이 느껴졌다.
“으음, 양이 너무 적군.”
대화라도 나누며 느긋하게 먹었다면 모를까, 기계적으로 먹여주고 받아먹고 하다 보니 간식이 동나는 건 순식간이었다.
세르펜스가 아쉽다는 듯 입맛을 다셨으나 리필을 요청할 생각은 없다.
나는 쟁반을 문 앞에 내놓고 소파로 돌아와 세르펜스 품 안에서 아공간 주머니를 꺼냈다.
“벌써 씻을 생각인 건가? 수련은 더 안 하고?”
“응, 신성력이 내 뜻대로 잘 움직이지 않는 이유를 알았거든.”
“정말 잘 되었군. 그래서 그 이유가 뭐지? 해결 방안은?”
이유 그 자체인 세르펜스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순진무구한 얼굴로 질문을 던졌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녀석의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고 아공간 주머니에서 갈아입을 옷을 꺼냈다.
그런 내 반응에 세르펜스가 불퉁하게 입술을 비죽거렸다.
“나에게 말해줄 수 없는 건가?”
“그게 좀···. 아니다, 그냥 알려줄게.”
내가 잘 대해주면 신성력을 잘 다루기 위해 그러는 거라고 오해할까 봐 걱정되기는 하나, 몰랐다가 나중에 알게 되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을 알아서 생기는 오해는 바로바로 풀어주면 그만이지만, 모르고 있다가 깨닫고 배신감을 느끼면 달래주기 쉽지 않다.
녀석이 알아챈 걸 숨기고 혼자 꽁해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고.
“신성력이 내 뜻대로 따라주지 않은 건, 이 힘의 실질적 주인이라 할 수 있는 네가 내게 토라진 상태라서 그런 거였어. 무릎베개를 해 주고 쓰다듬어 주자마자, 신성력이 잘 움직여 주더라.”
“그렇다면 앞으로 내게 더욱 잘 해야겠군.”
“아니, 고작 신성력을 잘 다루고자 널 오냐오냐 기를 생각은 없어. 앞으로도 잘못한 건 잘못했다고 지적하고, 어리광은 그때그때 상황을 봐서 받아줄 거야. 그게 너를 위한 거니까.”
“선우가 그런 사람이라서 참 좋다.”
아쉬워할 거라는 내 예상과 달리 세르펜스는 생긋 미소를 지어 보였다. 마치 바라던 바라는 반응이다.
그러고 보니 이 녀석은 내가 설교를 늘어놓았을 때, 엄격하면서도 다정한 모습이 어쩌고 하는 생각을 떠올렸다.
혼나는 것을 즐기는 건 아닐 테고.
내가 진심으로 자신을 아껴서 쓴소리를 한다는 걸 알기에 달갑게 받아들이는 거겠지.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선우가 씻을 때 플람을 들고 가지 않는다면 더 좋아질 것 같다.”
“그건 안 돼.”
이런 대답이 돌아올 줄 뻔히 알고 있었으면서 세르펜스가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그런 녀석의 머리를 마구 쓰다듬어 헝클어뜨린 후 꽥꽥이와 함께 욕실로 향했다.
그리고 욕실 문을 닫기 전에 깜박 잊고 넘어갈 뻔한 말을 꺼냈다.
“아 참. 나도 세르펜스가 그런 사람이라서 좋아.”
내 말에 세르펜스가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가 슬쩍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