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1078)
공작님, 회개해주세요!-1079화(1079/1105)
1079회
102. 공작님과 신성석 (15)
* * *
아침 식사 후, 우리는 교단에서 입가심거리로 챙겨준 사탕을 하나씩 입에 물고 길을 떠났다.
꽥꽥이는 내 품이 아니라 말의 머리 위에 자리를 잡았는데, 계속 안겨있으면 답답하다는 게 그 이유였다.
빨리 달리면 떨어지는 게 아닐까 걱정되긴 했지만, 휴마누스의 머리 위에서도 균형을 잘 잡았고 이제는 날 수도 있으니 별일 없겠지.
‘되게 편해 보이네.’
답답하다는 말은 핑계일 뿐.
실은 세르펜스의 눈치가 보여서, 혹은 어제 휴마누스가 웃기다고 말한 걸 마음에 담아둔 건 아닐까 걱정했지만.
이따금 날개를 활짝 펼쳐 퍼덕거린다거나, 아예 날아서 내 주위를 한 바퀴 빙 돈다거나. 아니면 부리로 깃털을 정리하는 걸 보면 답답했던 게 맞는 모양이다.
참고로 어젯밤까지만 해도 깃털 정리를 몰래 하던 꽥꽥이가 대놓고 저러고 있는 건, [당신이 몰랐던 (후략)]에 나온 내용 때문이다.
깃털을 제때 정리해주지 않으면 깃의 구조가 흐트러져, 공기를 잡아주지 못해 날기 힘들어진다나?
깃털이 물에 젖지 않도록 꼬리 쪽 기름샘에서 나오는 기름을 온몸에 발라줘야 하기도 하고.
‘그 책에 의하면 오리는 깃털 정리할 때 각질이 엄청 많이 떨어진다고 하던데···.’
신성 오리 꽥꽥이는 배설을 안 할 뿐 아니라 각질도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깃털은 조금 빠지는 듯했으나 그 정도는 귀엽기만 하다.
나는 말 갈기에 붙은 꽥꽥이의 깃털을 주머니에 챙겨 넣었다.
반려동물의 빠진 털을 모으는 건 반려인간의 숙명 같은 거니까.
아니, 사실 그냥 버려도 상관없고 버리는 사람이 더 많을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왠지 모으고 싶어졌다.
“잠깐, 그걸 왜 주머니에 넣는 거지?”
“갖고 싶다는 사람이 있으면 선물로 주려고?”
“그딴 걸 누가 갖고 싶어 한다고···.”
“교단의 성직자들?”
“아···.”
대충 둘러댔는데 꽤 그럴싸하게 들렸는지 세르펜스가 납득했다는 반응을 보였다.
하긴 꽥꽥이의 깃털은 오리털임과 동시에 천사의 깃털이기도 하니까, 성직자들이라면 꼭 가지고 싶겠지.
‘그러고 보면 어제 꽥꽥이가 열심히 비행 연습을 했으니까, 방에 깃털이 꽤나 떨어졌을 텐데···.’
서로 그것을 갖겠다고 싸우는 건 아닐까 싶다.
걱정되는 마음에 나도 모르게 뒤를 돌아보았는데, 그러다 윈스톤과 눈이 마주쳤다.
모르는 척 무시하기 뭣해서 머쓱하게 웃어 보인 후 다시 앞을 쳐다보려던 그때.
“선배,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소.”
웬일로 윈스톤이 먼저 말을 걸어왔다.
질문을 하고 싶었는데 좀처럼 기회를 잡지 못했던 건지, 지금 눈이 마주치자 불현듯 떠오른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그가 먼저 말을 꺼내는 건 흔치 않은 일이다.
나는 친절한 미소를 머금으며 그가 무슨 질문을 할지 기대했다.
“얼마든지 물어보세요.”
“검술 연습은 어떻게 할 생각이오?”
“이럴 거면 절 선배라 부르지 말고 회원님이라 부르세요! 전 윈스톤을 트레이너 선생님이라 부를 테니!”
“갑자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요?”
“이 PT밖에 모르는 바보!”
“허···.”
표정 변화가 거의 없는 윈스톤이 보기 드물게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헛숨을 내뱉었다.
황당한 건 나 역시도 마찬가지다.
내가 시온의 몸에 있을 때 납치되기 직전 마지막으로 대화를 나눈 상대는 윈스톤이다. 그러니 그때의 일과 관련하여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줄 알았건만.
‘···아니지? 그러니까 검술 얘기를 꺼낸 건가? 이번에는 잘 배워서 납치당하지 말라고?’
비록 당시에는 도시 전체가 인질로 잡혀 있는 거나 다름이 없었기에, 내 검술 실력과 무관하게 납치당한 거지만.
일단 그 문제는 넘어간다 하더라도, 나는 일행들이 싸우는 동안 가만히 서서 보호받아야 한다는 현실에 무력감을 느꼈다.
그리고 윈스톤은 그걸 아주 잘 알고 있다.
‘힘이 아예 없을 때도 그러했는데, 힘을 갖고도 가만히 있으면 내가 더 죄책감을 느낄까 봐. 나름대로 걱정해 준 거려나?’
그 예상은 반만 맞았다.
“선우가 검을 들고 싸우는 건 반대다. 만약 그러다 실수로 적을 죽이게 된다면 큰 충격을 받게 될 터이니.”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계속 검을 배울 건지 그만둘 건지 확인하고자 질문한 겁니다.”
탐탁잖다는 세르펜스의 반응에 윈스톤이 질문의 의도를 풀어서 설명했다.
나를 걱정하는 마음이 담기긴 했는데, 얼른 검술을 다시 익히라는 게 아니라 말 그대로 어떻게 할지 묻는 거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내 실력으로는 누구도 죽일 수 없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검을 휘두르라는 소리를 들었다.
그런데 지금은 실수로 누군가를 죽일 수도 있다는 소리를 듣게 되다니 정말 실감이 안 난다.
“안전을 생각하면 배우는 게 좋긴 한데···.”
“이젠 굳이 검을 들지 않아도 몸을 지킬 힘이 생기지 않았나? 신성력을 다루는 것에 능숙해지면 리에나 님을 보조하여, 치료나 결계 등의 지원을 해 줄 수도 있고. 내게 신성력을 넘겨줄 수도 있으니 선우는 그냥 존재 자체만으로도 도움이 된다.”
내 중얼거림을 들었는지, 세르펜스가 다급하게 말을 쏟아냈다.
그런 녀석의 반응을 보고 있자니 현실감이 스멀스멀 밀려들었다.
하기야 아무리 검술 실력이 안 따라주더라도 신체를 강화하고, 검에 신성력을 있는 대로 때려 붓고 마구 휘두르다 보면 누구 하나는 베여 죽겠지.
진짜로 내게 누군가를 죽일 힘이 생겼구나, 그렇게 생각하니 오소소 소름이 올라왔다.
“세르펜스 나리의 말이 맞기는 한데, 전 선우가 검을 배워야 한다는 쪽에 한 표요.”
푸로르가 손을 들어 올리며 갑자기 투표를 시작했다.
다들 조심스러워하며 말을 아끼고 있는 상황에서 저런 말을 꺼내니, 모두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쏠리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특히 세르펜스는 대놓고 인상을 쓰며 푸로르를 노려보았다.
“그렇게 말한 데에는 마땅한 이유가 있을 거라 믿습니다.”
진짜로 믿는다는 게 아니라 별다른 이유 없이 그런 말을 한 거면 용서치 않겠다는 뜻이다.
용서하지 않으면 대체 무슨 짓을 할 생각인지 궁금한 동시에 알고 싶지 않다.
다행히도 푸로르는 자신의 발언에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었다.
“이유라면, 제가 마왕이라면 무슨 일이 있어도 선우만은 꼭 죽이라고 명령했을 것 같아서? 그도 그러할 게 선우는 신의 힘을 발휘해서 플람의 영혼을 확보했잖습니까? 그 힘 때문에 산 채로 납치하는 건 이제 글렀고 위협적이기까지 하니 죽여 없앨 수밖에요.”
몹시 일리 있는 말이다.
마왕이 얼마나 긴 세월 신이 되고자 매달렸는지 생각하면, 그냥 얄미워서라도 나를 죽이고 싶어 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내가 지닌 힘은 내 것이 아니긴 하지만, 어쨌거나 놈은 쉽게 가질 수 없었던 힘이니까.
더군다나 이젠 죽어도 본래 세상에 돌아가는 게 아니라 진짜 끝이다.
그러니 일단은 살고 봐야지.
“나도 푸로르의 말에 동의해. 마왕이 선우를 내버려 둘 리가 없어.”
“저도···.”
휴마누스를 시작으로 일행들이 하나둘 거수했다.
올라간 손이 늘어날수록 세르펜스의 얼굴은 어두워졌다.
아마 녀석도 무엇이 답인지 알고 있을 테다. 단지 내가 누군가의 목숨을 끊는 걸 너무 두려워했으니까, 선뜻 다수의 의견에 동의할 수 없는 것이리라.
“너무 걱정하지는 마, 어디까지나 만약을 대비하는 것뿐이니까. 전에도 검술을 열심히 배우긴 했지만, 정작 제대로 써먹은 적은 없었고. 애초에 내가 검술을 배운다 해도 전방에 세울 생각은 없잖아? 웬만하면 내가 직접 적과 싸우는 일은 없을 거야.”
“선우, 그런 말은 ‘플래그’라고 본인 입으로 말하지 않았나?”
“쉿, 부정 타게 그런 말 하는 거 아니야.”
“음···.”
세르펜스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장난치긴 했지만, 솔직히 조금. 아니, 많이 쫄린다.
그런 내 심정을 눈치챘는지 세르펜스가 내쉰 한숨이 귓가를 스치고 지나갔다.
“배울 거라면 이전보다 더 열심히 배워야 할 거다. 적을 죽이는 것보다 죽이지 않고 제압하는 것이 더 어려운 법이니.”
“응, 그래야지.”
“신성력을 다루는 연습도 소홀히 하지 말고.”
“그건 네가 협조해 줘야지.”
“그 또한 선우가 노력해야 할 부분이다. 내가 서운해하지 않도록 잘 챙겨다오.”
녀석이 정말 자신에게 잘하라는 뜻으로 저런 말을 한 건 아닐 테다.
울적한 마음에 그냥 투정을 부리는 것뿐이다.
자신이 신의 힘을 맡긴 탓에 내가 안전해지기는커녕, 오히려 위험에 노출되었다고 생각하여 마음이 안 좋은 모양이다.
나는 손을 들어 올려 녀석의 뺨을 감싸고 손가락을 까딱거려 톡톡 가볍게 도닥여 주었다.
“그런 말 하지 않아도, 나는 언제나 아도르를 신경 쓰고 있어.”
“알고 있다.”
“아는 사람이 그렇게 질투를 해?”
“······.”
질투펜스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하기야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겠지.
그 모습에 킥킥 웃다가 웃을 때가 아닌 것 같아서 웃음을 멈췄다. 검술을 다시 배우면서 신성력 수련까지 하려면 시간을 허투루 쓸 수 없다.
이동하는 동안 신성력을 다루는 연습을 하며 이 새로운 힘에 최대한 익숙해져야겠다.
눈을 감고 신성석 내부의 기운에 집중했다.
세르펜스의 기분이 별로 안 좋아 보여서 신성력을 다루기 힘들 줄 알았는데, 예상외로 잘 움직였다.
나한테 삐친 게 아니라서 그런 거려나?
“신체를 강화하는 것 말고, 지금 내 수준에서 할 만한 연습이 뭐야?”
“단순히 통제력을 높이는 것이 목적이라면, 신성력을 몸 밖으로 꺼낸 상태로 유지하는 걸 추천한다.”
“어제 꽥꽥이가 불 쇼를 펼친 것처럼 다양한 모양을 만들면 더 좋겠네?”
“······.”
내 입에서 꽥꽥이 얘기가 나오자마자 원활하게 움직이던 신성력이 살짝 굼뜨게 움직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일 뿐 다시 잘 움직여졌다.
{ ···우는 나를 ······. 그러므로 서운··· ···않아도······. }
세르펜스가 속으로 열심히 마인드 컨트롤 중인가 보다. 얼마나 집중했는지 생각이 조금씩 새고 있다.
녀석이 저렇게 애를 쓰고 있으니 나도 열심히 해야겠다.
신성석에서 신성력을 조금 빼내어 팔 쪽으로 인도하고, 손끝에 다다랐을 때 밖으로 밀어냈다.
은색과 백색이 뒤섞인 기운이 손끝에 맺히는가 싶더니 그냥 흩어져버렸다.
“아, 모양 만들기씩이나 되는 묘기를 하기엔 내 깜냥이 많이 부족했구나···?”
이래서야 괜히 세르펜스의 속만 긁어댄 꼴이다.
말의 정수리에 얹어진 흑임자 찹쌀떡이 새삼 대단하게 느껴졌다.
내 시선을 느꼈는지 꽥꽥이가 ‘그럼 그게 쉬울 줄 알았냐?’ 하는 표정으로 나를 돌아봤다.
저런 재수 없는 표정마저도 귀엽다니 조금 전과는 다른 의미로 정말 대단하다.
{ 내가 이렇게 질투심을 억누르고자 애쓰고 있는데, 선우가 수련에 집중도 안 하고 오리의 모습을 감상하고 있을 리가 없다. 분명 내가 무언가 착각하고 있는 거겠지. }
이 생각은 실수로 흘린 걸까, 아니면 내게 눈치를 주려고 일부러 전달한 걸까?
어느 쪽이든 정신 차리고 다시 수련에 집중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