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108)
공작님, 회개해주세요!-108화(108/1105)
108회
26. 공작님과 2황자 (3)
“만약 정말로 형님께서 고···. 대를 잇는 것에 문제가 있었다면, 부정하거나 숨기지 않았을 겁니다. 자존심 따위는 내려놓고 아바마마나 저에게 털어놓고 상담해 왔을 텐데, 끝까지 오해니까 걱정하지 말라는 얘기만 남겼습니다.”
결국, 그냥 심증만 있다는 소리였다.
‘하도 당당하게 말하길래, 대단한 증거라도 있는 줄 알았네.’
하긴 이런 판타지 세상에 비뇨기과가 존재할 리도 없고, 그러니 병원 진단서 같은 그럴듯한 물증 또한 있을 리가 없었다.
“예, 황태자 전하시라면 분명 그러셨을 겁니다.”
제 형의 명예를 위해 필사적으로 변명하는 프레드릭의 말에, 세르펜스가 진지하게 동의하는 척했다.
‘이게 대체 뭐 하자는 상황이지?’
휴마누스의 그것에 관한 문제를 두고 대화를 나누는 그 모습이 쓸데없이 점잖아서, 개그 프로그램의 한 장면 같다.
“···정말 믿어주시는 겁니까?”
“네?”
방금 한 말이 못 믿을 만한 얘기였냐는 듯한 세르펜스의 반문에, 프레드릭이 깊은 한숨을 토하고는 입을 열었다.
“다른 귀족들에게도 같은 얘기를 했으나, 모두 부정당했습니다.”
아무리 사람이 믿고 싶은 것만 믿는다고는 하나, 그 굳건한 믿음을 신앙심으로 옮겨 대륙을 지켜내는 것에 큰 힘을 보태줬으면 참 좋겠다.
“형님께서 황태자 자리를 지키기 위해 숨겨왔던 게 분명하다며, 더 늦기 전에 후대를 준비해야 한다고···. 아바마마께 제가 나서서 직접 말씀드려 보라는 둥, 그런 얘기만 들었습니다.”
아직 황제도 멀쩡히 살아있고 휴마누스와 프레드릭도 한창때인데, 늦기는 무슨.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여기가 평균 수명이 5~60세 밖에 안되는 세상인 줄 알겠다.
‘휴마누스가 성검의 주인으로서 임무를 끝마치기 전에 자기네 잇속을 챙겨야 하니, 지들이 서두르고 싶은 거겠지.’
황제는 프레드릭을 경계한다기보다, 그가 먼저 혼인을 하고 자식을 보게 되었을 때. 그 외척이 될 가문에서 계승권을 탐하며 수작을 부릴까 봐 그의 혼사를 막고 있는 걸테다.
자식을 지극히도 아끼는 양반이니만큼, 그들이 외압에 의해 원치 않는 골육상잔의 비극을 겪게 될까 봐 그게 걱정인 거겠지.
‘선택의 날 이전까지만 해도, 다들 휴마누스에게 간이라도 빼줄 것처럼 굴더니만.’
그가 황태자로서 부족한 면이 있었다면 진작에 이런저런 말들이 나왔을 거다.
하지만 그간 휴마누스는 귀족들 모두와 두루두루 잘 지냈고 정적이라 할 만한 자도 없었다.
그런데도 주워 먹을 만한 것이 생기자마자 기어 나오는 놈들이 이렇게 많다니, 실로 말세였다.
누구나 일확천금의 꿈을 꾼다지만···.
‘저러다가도 나중에 휴마누스가 돌아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 알랑방귀를 뀌어 댈 거잖아?’
애초에 레니에는 황태자가 정말 ‘그’ 이유로 아직 ‘그런’ 상태인 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휴마누스가 성검의 주인으로서 그 역할만 끝내고 온다면 모든 것이 끝나는 문제였다···라고 세르펜스가 말했었다.
그때 나눴던 대화 내용을 상기해 보았다.
* * *
“오풀렌스 백작가의 관점에서는 어느 가문에서 2황자를 얻게 되건, 아무래도 상관이 없는 겁니다.”
프레드릭에게 청혼서가 쏟아지는데도 레니에의 가문에서는 특별하다 할만한 반응이 없는 것이 이상하여, 세르펜스에게 질문했더니 돌아온 대답이 이것이다.
“왜요?”
“변경백들은 중앙의 정치에 별 관심이 없고, 중앙에는 오풀렌스 가문이 맥을 못 출 만한 가문은 두 공작가 뿐. 그리고 공작 가문이 황위 쟁탈전에 끼어든 것은 제국 역사상 단 한 번도 없었다.”
“왜죠?”
내가 다른 세계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 이후, 세르펜스는 나에게 예법이란 것을 주입하는 걸 아예 포기한 듯하다.
단순히 말투만의 문제가 아니라 여긴 것인지, 그것을 교정시키기보다 그냥 남들 앞에서 말을 못 하게 하는 편이 더 효율적이라 생각한 것이리라.
그는 왜요, 왜죠 콤보에도 미동 하나 없이 입을 열었다.
“단둘뿐이니까.”
중재할 가문이 없다는 소리다.
둘밖에 없는 공작 가문이 서로 황실과 유착해 보겠다며, 각자 세력을 만들어 댄다면···.
‘어휴, 도저히 답이 안 나오네.’
황태자 책봉 시기가 올 때마다 서로 팀을 나눠 먹고 피 터지게 싸우다 보면, 언젠가 내전이 터져 나라를 말아먹겠지.
그것은 평상시에도 마찬가지. 누군가 무슨 의견을 내기만 해도 그것의 옳고 그름을 떠나, 덮어 놓고 서로 반대하기 바쁠 거다.
그게 어디 제대로 나라 돌아가는 꼴인가?
“그래도 오풀렌스 백작가가 으뜸이라 할 만한 정도는 아니잖아요?”
“그렇다 하더라도 압도적인 힘으로 목소리조차 못 내게 찍어 누르는 것이 아닌 이상, 단순히 버티는 것 정도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세르펜스는 그딴 건 별문제도 아니라는 듯 가볍게 말하며, 응접실 테이블 위에 놓인 캐러멜 커스터드 푸딩과 우유 푸딩을 두고 진중하게 고민했다.
주방에 오늘의 간식으로 푸딩을 부탁하면서, 한 개는 아쉽다는 구실로 두 개를 부탁했더니 친절하게도 두 가지 맛을 올려보내는 바람에 일어난 사달이다.
“그러게 슬슬 단 음식 좋아한다는 거 밝히자고 했잖습니까? 제가 옆에서 자꾸 디저트를 먹으니, 세르펜스도 단 게 당기기 시작했다. 뭐, 이런 설정 괜찮지 않아요?”
“······.”
그가 달달한 디저트 광이라는 사실이 알려지기만 하면, 주방 시녀들이 수도 제일의 디저트 가게의 메뉴들을 분석해가며 자발적으로 연구에 힘쓸 텐데···.
하여간 제 욕심을 어지간히도 못 차리는 녀석이다.
‘세르펜스는 아도르에게 사과해라! 아도르는 세르펜스에게 회개하라!’
갈등하는 그의 얼굴을 보면 두 종류 모두 양보해주고 싶지만, 자꾸 그러면 버릇이 나빠진다.
아쉬운 걸 알아야 스스로 고쳐 볼 생각도 하지.
그나마 단맛이 덜한 새하얀 우유 푸딩을 내 쪽으로 끌어왔다.
당연하게도 준비된 숟가락은 하나뿐. 하지만 푸딩을 주문할 때 예상했던 바다.
품속에 챙겨온 작은 티스푼을 꺼내 들어 푸딩을 한술 떠서 입으로 가져갔다. 부드러운 푸딩이 입안에서 녹아내리듯 으깨어졌다.
“아무튼, 하시던 얘기나 계속해봐요.”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갈등하고 있으면 둘 다 양보받을 줄 알았던 건지, 그가 심통한 얼굴로 혀를 차며 캐러멜 푸딩을 제 앞으로 가져갔다.
“시국이 시국이니만큼 서로 싸워봤자 득 될 것 하나 없는 상황입니다. 이번 대는 이쪽, 다음 대에 그쪽이 권력을 쥐는 게 좋지 않겠느냐며 타협안을 내걸고, 그쪽이 양보해준 만큼 편의를 많이 봐주겠다며 구슬리거나. 정 안되면···.”
잠시 말을 멈춘 세르펜스가 디저트 스푼으로 캐러멜라이즈 된 찐득한 설탕 시럽이 흐르는 커스터드 크림을 살짝 떠서 입에 넣었다.
“굳이 이런 상황에서 이미 정해진 황위 계승자 자리를 두고 내분을 유도하는 저의를 물으며, 혹 제국을 어지럽히려는 악마 숭배 세력의 끄나풀이 아니냐는 의문만 던져도 상대방의 입은 자동으로 다물릴 거다.”
애먼 가문 하나를 매장할 만한 소리를 하면서, 입안을 맴도는 푸딩의 달콤함에 세르펜스가 슬쩍 미소를 흘렸다.
앞으로 이런 얘기를 할 때는 얘한테 단것을 먹이면 안 되겠다.
“즉, 오풀렌스 가문 측에서는 2황자가 황자비를 들이는 것 보다 황태자의 행실을 바로잡는 것이 더 중요한 문제라는 얘기다.”
선택의 날, 레니에가 질투심 하나만으로 멀쩡한 약혼자의 분신을 가사 상태로 만든 건 아닌가 보다.
돌멩이 하나를 던져 두 마리 새를 잡은 격인가? 보통이 아니다.
“그런데 어째 황태자 전하의 그곳이 무탈하다는 것을 전제로 깔아두고 하는 말 같네요?”
“정말 문제가 있었다면, 진작에 파혼했겠지. 오풀렌스 백작 영애는 고작 감정에 휘둘려서, 아무 이득도 없는 약혼 관계를 계속 유지할 만큼 어리석은 자가 아니다.”
연애 한 번 못 해본 놈이 말은 잘한다.
“왜요? 사랑하면 그럴 수도 있지! 세르펜스가 사랑을 알아요?”
“······.”
할 말을 찾지 못한 듯, 괜스레 푸딩을 떠서 입에 넣는다. 지금은 푸딩을 먹는 중이라 말을 할 수 없다는 시위였다.
“문학 작품에도 자주 나오잖습니까? 사랑에 눈이 멀어 어리석은 선택을 하는 사람들. 이 세계에선 안 그래요? 우리 세계에선 완전 단골 소잰데.”
“그건 어디까지나 허구 아닌가? 정말로 그런 선택을 한다고?”
“암요, 그렇고 말고요!”
내가 단언하며 말하자, 세르펜스가 크게 깨달음을 얻은 표정을 지었다.
물론, 그가 갑자기 사랑의 위대함을 알게 되었다는 뜻은 아니다.
“그렇다는 건 황태자는 정말로···.”
“아니, 왜 얘기가 그쪽으로 튀는 겁니까?!”
나는 그에게 휴마누스의 건재함을 알렸다.
* * *
내가 왜 휴마누스의 그곳 사정을 세르펜스에게 설명해야 하는가, 살짝 현타가 왔으나 오늘 프레드릭의 모습을 보니 그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형 때문에 고생이 많다.
“저라고 결혼을 안 하고 싶어서 안 하는 것은 아닙니다. 솔직히 말해, 제 앞에서 형님이 예비 형수님과 염장질을 하는 꼴을 볼 때마다···. 흠, 흠-. 사이 좋게 오손도손 대화를 나누시는 모습을 볼 때면 저도 마음이 적적하고 외롭습니다.”
눈꼴시려 죽겠다는 표정으로 프레드릭이 말했다.
어딘가 울컥한 목소리가 과연 이대로 휴마누스를 계속 감싸주는 것이 맞는지, 회의라도 느낀 게 아닐까 싶다.
“하지만 저를 허수아비로 세워놓고 이용해 먹겠다는 속셈이 뻔히 보이는데. 그대로 넘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지 않습니까.”
“옳으신 말씀입니다.”
“심지어는─.”
무언가 말하려는 도중, 프레드릭이 갑자기 말을 멈추고 이쪽으로 시선을 보냈다.
“시온 경이라면 믿을 만한 분입니다.”
그 시선의 의미를 눈치챈 세르펜스가 재빨리 나를 변호하였다.
“물론 공작께서 뽑으신 분이니 당연히 그럴 거라 생각했습니다. 의심하려던 생각이 아니라, 입에 담기에 조심스러운 이야기인지라···.”
“혹, 그들 중 직접 황위를 입에 담은 자라도 있는 겁니까?”
“······.”
상정한 범위 내면서 ‘설마···. 에이, 그럴 리 없어. 아니지?’라고 말하는 듯한 표정으로 세르펜스가 질문하자, 프레드릭이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저를 황제로 만들어주겠다는 소리를 한 가문도··· 있었습니다.”
저딴 얘길 꺼내면 보통 역모죄 아닌가?
세르펜스가 놀란 마음을 억지로 진정시켜 가다듬는 척하며, 애써 차분하게 가라앉힌 목소리를 연기하며 물었다.
“그곳이 어딥니까?”
“···마사날 백작가.”
들어본 적 있는 가문 명이니 중앙 귀족인 것은 분명한데, 도통 뭐 하는 가문인지 기억나지 않는 것으로 보아 별 볼 일 없는 가문임이 틀림없다.
“마사날 백작가에는 그럴 힘이 없습니다. 한데, 어째서 그런 말을···?”
역시나. 세르펜스 또한 그 점이 무척이나 의심스럽다는 듯 짚어냈다.
“과한 욕심에 눈이 멀어 내뱉은 말이라기엔 걸리는 점이 많아, 우선은 생각해보겠다고 말해두고 돌려보낸 상태입니다.”
“훌륭한 판단이십니다.”
뒷배가 있을 가능성이 99.9%에 육박하니, 뒤를 캐보자는 얘기를 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냥 대화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공작저에 돌아가는 대로 바로 조사에 착수할 게 분명했다.
‘···둘이 알아서 잘하겠지.’
나는 그냥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