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1080)
공작님, 회개해주세요!-1081화(1081/1105)
1081회
103. 공작님과 황제 (2)
– 똑똑똑똑똑
꽥꽥이가 문을 마구 쪼아대며 꽥꽥거렸다.
레버형 문고리였다면 직접 열고 나왔을 터이나, 하필 돌려서 여는 원형 문고리라 욕실에 갇혀버린 모양이다.
수도꼭지도 돌리는 형태면 물을 못 틀 텐데.
아니, 어차피 자신은 오리가 아니라고 꽥꽥댄 직후라 자존심 때문에 물놀이는 못 하려나?
“드디어 방해꾼이 사라졌군.”
저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지도 않는지 세르펜스가 만족스레 중얼거렸다.
황당해서 말이 안 나왔지만, 그래도 물어볼 건 물어봐야겠지.
조금만 더 시간을 끌면 꽥꽥이가 문을 태우고 탈출할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대체 뭘 하려고 가구랑 꽥꽥이를 치운 거야?”
“눈을 가린 채 감각을 끌어 올려 주변의 기척을 감지하는 훈련이다. 내가 기척을 줄인 채 방 안을 돌아다닐 테니 한번 잡아 봐라.”
세르펜스의 입에서 나온 훈련법은 나도 익히 알고 있는 놀이였다. 심지어 자주 해 봤다.
이 놀이는 ‘까막잡기’라는 이름으로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눈 가리고 하는 술래잡기다.
녀석이 워낙 의기양양하게 굴며 나를 위해 고안했다길래, 대체 어떤 훈련법인가 기대했건만.
솔직히 말해서 김이 팍 샜다.
하지만 그것을 티 낼 수는 없었다.
“와! 그거 정말 재밌으면서도 획기적인···.”
“썬! 그거 네가 어렸을 적 친구들과 자주 했던 놀이 아냐?”
“······.”
모르는 척하며 세르펜스를 띄워 주려 했었는데, 내가 꽥꽥이에게 너무 많은 것을 얘기했나 보다.
욕실 문 너머에서 들려온 꽥꽥거림에 세르펜스의 표정이 굳었다.
자신에게는 들려준 적 없는 얘기를 꽥꽥이에게는 해줬다는 사실에 1차로 충격받고.
나와 이 놀이를 함께한 첫 번째 사람이 자신이 아니라는 사실에 2차로 충격받고.
자기가 날 위해 고안해낸 훈련법이 이미 세상에 존재하던 것이란 사실에 3차로 충격받아, 완전히 얼이 빠져나간 모습이다.
“어, 그게···. 내가 이 놀이를 해 보긴 했는데, 이게 훈련에도 도움이 될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어! 정말이야! 원래 익숙한 것일수록 생각의 전환을 하는 게 쉽지 않···. 아, 아니, 그렇게까지 익숙한 건 아니야! 안 한 지 한참 됐거든! 이야~, 어린 시절 추억의 놀이를 세르펜스와 함께 할 생각을 하니 너무너무 신난다~!!”
사실 대학 새내기 때 MT에서도 해 본 적 있긴 하지만, 지금 내 나이는 스물아홉이다.
스무 살이면 충분히 어리다. 더군다나 9년 전이면 반올림하면 10년이고, 10년은 강산이 변하는 세월이다.
나는 진심을 듬뿍 담아 세르펜스를 추켜세웠다. 그러자 녀석의 굳은 얼굴이 차츰 풀리는 게 보였다.
“···정말 신이 나는가?”
“물론이지!!”
“그럼 선우가 어린시절 했던 놀이를 내게도 전부 알려다오.”
“알았어. 일단 지금은 훈련해야 하니까, 이따 밤에 잘 준비 마치고 침대에 누워서 얘기해 줄게.”
“기대되는군.”
세르펜스가 가까이 다가와 내 안경을 벗기더니 그것을 제 상의 주머니에 쏙 집어넣었다.
생글생글 웃고 있는 거로 보아 기분이 다시 좋아진 모양이다.
꽥꽥이도 안대의 사용처를 듣고 마음이 놓였는지 더는 문을 쪼아대지 않았다.
정말 다행이다.
“지금부터 시작이다.”
내게 안대를 씌우고 매듭을 단단히 묶은 세르펜스가 놀이의 시작을 알렸다.
그와 동시에 나는 녀석이 서 있던 방향을 향해 손을 뻗었다.
물러나는 발소리도 듣지 못했건만, 녀석은 이미 자리를 옮겼는지 손끝에 스치는 건 공기뿐이었다.
“혹시 내가 못 잡을 만큼 빠르게 움직이는 건 아니지?”
{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천천히 걷기만 할 거다. 기척도 완전히 죽이지 않고 조금씩 흘릴 터이니, 잘 하면 나를 잡을 수도 있겠지. }
내가 기척이 아닌 소리를 듣고 자신의 위치를 알아챌세라, 세르펜스가 생각을 통해 대답해왔다.
원하던 답을 들었으니 이제 진짜 집중해 봐야겠다.
나는 신성력을 끌어올려 전신에 고루 퍼트렸다.
정말로 기척을 완전히 죽인 게 아닌지 미심쩍을 정도로 느껴지는 게 아무것도 없다. 고요한 방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라고는 내 숨소리뿐이었다.
신성석에서 좀 더 신성력을 꺼내어 퍼트리자, 그제서야 내 것이 아닌 다른 존재의 숨소리가 두 군데에서 들려왔다.
‘저쪽은 욕실이니까 꽥꽥이의 숨소리일 테고···. 이쪽인가?”
나중에 헷갈리지 않도록 꽥꽥이의 위치를 확실히 해 두고, 다른 쪽에서 들려온 소리를 따라 더듬더듬 나아갔다.
세르펜스는 발걸음 소리 하나 내지 않고 이리저리 움직였다.
나는 그런 녀석을 잡느라 갈팡질팡했다.
{ 미리 가구들을 치워 두었으니, 부딪힐 걱정하지 말고 좀 더 과감하게 움직여 봐라. }
“부딪히는 게 문제가 아니라 집중력이 흐트러지니까 그렇지···.”
어차피 내가 벽을 향해 돌진하면 세르펜스가 붙잡아 줄 텐데 뭐가 무서우랴.
하지만 녀석의 말대로 내가 너무 소심하게 움직이고 있긴 한 것 같다.
세르펜스가 천천히 걷는다고는 했지만, 녀석은 나보다 키도 크고 비율이 좋다.
이게 무슨 소리냐? 다리가 길어 보폭도 넓다는 소리다.
녀석이 한 걸음 걸을 때 나도 한 걸음씩 움직이면 평생 가도 못 잡는다.
‘일단 신성력을 퍼트려 놓긴 했으니까, 그냥 고정만 하면 돼.’
천재인 세르펜스와 비교할 것도 없다.
일반 성기사들만 해도 이 상태를 유지하며, 적과 무기를 맞대고 결계도 펼치고 다치면 치료도 해 가며 할 거 다 한다.
어쩌면 내가 신성력을 움직이는 것을 너무 의식해서 더 안 되는 걸 수도 있다.
리듬 게임 같은 것도 ‘내가 이걸 어떻게 하고 있지?’라고 의문을 품는 순간, 콤보가 끊기게 되지 않던가?
신성력을 제자리에 붙들고 있는 이 상태를 익숙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나는 신성력의 움직임보다 세르펜스의 숨소리에 좀 더 의식을 집중했다.
내가 쫓던 걸 멈추고 가만히 서 있자, 녀석도 움직이지 않고 얌전히 서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이 기회다, 한걸음에 뛰어가서 잡자!’
우선 방향을 조준하고 다리에 힘을 주어 힘껏 녀석에게로 뛰어들었다.
세르펜스는 내가 달려드는 타이밍에 맞춰 몸을 옆으로 틀어버렸고, 내 손은 또다시 허공을 움켜쥐었다. 서둘러 방향을 전환했으나 결과는 같았다.
대체 어떻게 움직인 건지, 세르펜스는 약 올리듯 내 등을 손가락으로 콕 찌르고는 거리를 벌렸다.
불의의 기습을 당한 까닭에 ‘흐악!’ 하는 소리를 내며 소스라치게 놀라자, 조금 떨어진 곳에서 쿡쿡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원래 까막잡기가 술래를 놀리는 재미로 하는 놀이라지만, 정말 얄밉다.
게다가 방금 한 건 놀리는 게 아니라 놀라게 하는 거 아닌가?
{ ···그렇게 대놓고 달려들 거라고 티를 내면 어떡하나? }
내가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느라 녀석을 쫓지 않고 가만히 서 있자, 삐친 거라고 오해했는지 세르펜스가 머쓱하게 말을 걸어왔다.
“지금 하는 건 감각을 예민하게 끌어올리는 훈련이지, 눈 가리고 싸우는 훈련이 아니잖아?”
{ 하지만 이건 상대방을 붙잡는 놀이잖은가? }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방금 한 것처럼 고급 회피 기술을 남발하는 건 너무하잖아! 언제 내 등 뒤로 돌아간 거야? 그런 건 눈 뜨고도 못 잡을걸?”
{ 으음···. 알겠다. 그럼 움직임에 제한을 두는 대신 기척을 조금 더 숨겨 보겠다. }
대답이 들려오는 동시에 녀석의 숨소리가 사라져버렸다.
숨을 아예 안 쉬는 건 아닐 테고, 천천히 호흡하며 숨을 조금씩 들이마시고 내쉬는 거려나?
괜히 불만을 제기했다가 난도를 더 높여버린 건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긴 했지만, 일단 되는 데까지 노력해 보고 나서 난도를 재조정하든 말든 해야겠다.
무언가가 느껴질 때까지 신성석에서 신성력을 꺼내어 전신에 퍼트렸다.
다행히도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신성력 양을 넘기기 전에, 미약한 공기의 흐름을 읽을 수 있었다.
녀석은 가만히 멈춰있지 않고 내 주변을 뱅뱅 맴돌고 있었다.
나는 세르펜스가 움직이며 만들어낸 그 흐름에 집중하다가, 녀석이 나아가는 방향을 고려하여 달려들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허탕이었다.
세르펜스는 움직임에 제한을 두겠다고 했지, 아예 피하지 않겠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바로 잡을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곧바로 녀석의 기척을 쫓아 방향을 전환하려는 순간, 몸 안에 퍼트려 둔 신성력의 균형이 무너져 버리는 바람에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다.
동원한 신성력의 양이 늘어난 만큼 제자리에 붙들어 놓기도 쉽지가 않다.
{ 참고로 말하자면 나는 진행 방향으로 나아가는 대신, 잠시 멈췄다가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선우가 내 기척을 놓치지 않고 곧장 손을 뻗었다면 잡을 수 있었다. }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건만.
내가 또 이의를 제기할 거라고 생각했는지, 세르펜스가 자신이 어떻게 움직였는지 변명조로 설명했다.
그 친절한 설명에 고마운 마음은 들지 않고 오기가 샘솟았다.
저녁 시간이 되어 신관이 부르러 오기 전까지 기필코 세르펜스를 붙잡고 말리라.
그렇게 결의하며, 슬금슬금 신성석으로 돌아가려는 신성력에게 제발 자리를 지켜달라고 사정사정했다.
‘지금 세르펜스랑 놀고 있잖아! 그러니까 협조 좀 해 줘라, 응?’
간절하게 부탁한 효과가 있는 건지. 아니면 그냥 내가 신성력을 잘 통제한 건지는 모르겠으나, 다시 신성력이 전신에 고루 퍼졌다.
무뎌졌던 감각이 예리하게 벼려졌고, 미세한 공기의 흐름이 피부에 와 닿았다.
팔을 뻗으면 닿을 정도로 가까이에서 세르펜스가 맴돌고 있었다.
‘이번에야말로!’
팔을 뻗은 순간, 녀석이 뒤로 몸을 빼는 게 느껴졌다.
따라붙으며 다시 팔을 내뻗었다. 이번엔 녀석이 상체를 옆으로 기울여 피하며 뒷걸음질을 쳤다.
이번에는 두어 걸음 따라붙었으나 금세 위기가 찾아왔다. 또다시 신성력이 자리를 이탈하려 한 것이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신성력을 재정비하는 한편, 세르펜스의 기척에 집중했다.
계속 움직이며 공기의 흐름을 만들어내던 녀석이 돌연 우뚝 멈춰 섰다.
그 탓에 기척이 사라지긴 했으나 녀석의 위치는 이미 파악해 둔 상태다.
내가 신성력을 재정비하면서도, 자신의 기척을 놓치지 않았는지 시험해 보려는 걸지도 모르겠다.
이건 기회다.
나는 속으로 셋을 세고 세르펜스가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위치로 달려들었다.
“잡았···!!”
{ 쉿, 조용히. 청각에 집중해 봐라. }
분명 내가 세르펜스를 잡았다고 생각했는데, 어째서인지 역으로 잡혀버렸다.
녀석은 내 입을 틀어막으며 영문 모를 소리를 했다.
갑자기 왜 이러는 건가 의아하긴 했으나 아무 이유 없이 이러는 건 아닐 테니, 일단 녀석이 하라는 대로 했다.
‘지금은 움직이지 않아도 되니까 신성력을 좀 더 꺼내 볼까?’
가장 먼저 들리는 건 내 숨소리와 심장 박동이었다.
그다음으로 세르펜스의 숨소리와 심장 박동이 들려왔다. 내 것에 비해 매우 작고 느렸다.
기척을 줄이려면 심장 박동도 임의로 조절할 수 있어야 하는 건가 싶어, 놀라움을 금치 못하던 그때.
“··· 고작 ······밖에 안······, 언제······.”
무척이나 희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세르펜스가 제 심장 소리나 들으라고 청각에 집중하라 한 건 아닐 테니, 내가 들어야 할 건 분명 저 목소리겠지.
하지만 신전 숙소의 방음이 내 생각보다 뛰어난 건지, 말을 하는 사람이 웅얼거리는 건지.
소리가 너무 작아서 뭐라고 하는 건지 도통 못 알아듣겠다.
고개를 살짝 모로 기울이며 어깨를 으쓱여,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다는 뜻을 세르펜스에게 전달했다.
그러자 세르펜스가 내 몸 안에 신성력을 추가로 넣어 청각을 더 활성화 시켰다.
“···이번에도 그에게 무거운 짐을 떠안길 생각인가?”
이제 확실히 들렸다. 이건 휴마누스의 목소리다.
대체 그는 누구에게 질문을 던진 걸까? 휴마누스가 저런 고압적인 말투로 따질 만한 대상이 있었나?
의문이 떠오른 그때 대답이 들려왔다.
“나도 그러고 싶지 않아. 그래서 늘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힘겹게 쥐어짜내는 듯한 이 목소리는 내가 아는 사람의 것이었다.
상대가 누구인지 알게 되었으나 의문이 해소되기는커녕 더 깊어졌고 혼란이 더해졌다.
이번에 들려온 목소리 또한 휴마누스의 것이었던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