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uke, Please Repent! RAW novel - Chapter (1087)
공작님, 회개해주세요!-1088화(1088/1105)
1088회
103. 공작님과 황제 (9)
“이제 설명해 봐.”
“선우도 알다시피 악마들은 영혼에 큰 결함이 있다. 악마가 다른 존재의 영혼을 탐하는 건 강해지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영혼의 결함을 메꾸려는 본능의 영향도 있지 않을까 한다. 하지만 다른 존재의 영혼을 집어삼킨들 영혼이 완전해질 리가 없지. 오히려 더욱 혼탁해지고 불안정해지는 악순환을 겪게 될 뿐이다.”
세르펜스가 꽥꽥이를 지그시 바라보며, 마치 실시간으로 영혼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말했다.
아니, 아마도 보고 있는 게 맞을 거다.
타락펜스만 해도 내 영혼을 희미하게나마 보았으니까.
신과 인간 사이의 경계에 걸쳐진 세르펜스의 눈에는 영혼의 모습이 선명하게 보일 테다.
나는 마왕에게서 꽥꽥이의 영혼을 쟁취했을 당시의 기억을 떠올려 보았다.
그때 잠깐 본 꽥꽥이의 영혼은 누더기를 주워다 얼기설기 기워 놓기라도 한 것처럼, 너저분한 모양새였다.
분명 다른 악마들의 영혼 또한 비슷한 꼴을 하고 있겠지.
마왕이 악마들의 영혼을 마구 갈고 섞어댄 결과물이다.
“그런 얘기를 한다는 건, 네가 꽥꽥이의 영혼적 결함을 치료할 수 있다는 뜻이지?”
“사실 플람의 영혼은 지금도 서서히 안정되고 있다. 하지만 저대로 둔다면 최소 이삼백 년은 족히 걸릴 거다. 나는 그 시간을 줄일 수 있다.”
영혼을 볼 수 있게 되었으니 치료도 가능해진 게 아닐까, 그런 생각으로 던진 질문에 긍정적인 답변이 돌아왔다.
덤으로 꽥꽥이의 영혼이 자연 치유 중이라는 정보도 얻었다.
혹시 알고 있었을까 싶어 꽥꽥이를 쳐다보자,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눈을 깜박거리는 깜찍한 모습이 시야에 잡혔다.
하기야 마왕이 악마들의 영혼을 갈고 섞고 쉐낏한다는 사실을 꽥꽥이가 알게 된 건, 내가 룩스메아와 면담한 내용을 들려줬을 때다.
아마 악마들은 다른 존재의 영혼을 탐할수록 자신의 영혼이 망가진다는 것도 몰랐을 테다.
“잠깐만, 세르펜스. 근데 그 얘기를 왜 지금 꺼내는 거야?”
“당연히 윈스톤 경에게 힘을 주는 대가로, 영혼을 안정시키는 것을 돕겠다고 제시하기 위해서···.”
“아니, 그게 아니라. 꽥꽥이의 영혼이 저 모양인 것도 알고 치료도 가능한데, 왜 그 얘기를 이제야 꺼내는 거냐고.”
“그, 그게···. 치료 방법을 알게 된 건 극히 최근의 일이다. 이것저것 뒤섞인 영혼이 하나로 융합되려면, 신성력이 어떤 식으로 작용하는지 지켜봐야 했으니까.”
“최근이면 어쨌든 오늘이 되기 전에 알았다는 거잖아.”
“으, 으음···.”
세르펜스가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며 내 시선을 피했다.
그것이 뜻하는 바는 명확했다.
“설마 꽥꽥이를 치료해 주기 싫어서 입 다물고 있었던 거야?”
“더, 덕분에 이렇게 거래 조건으로 제시할 수 있게 되었잖은가? 그리고 굳이 내가 치료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낫고 있으니 괜찮지 않을까 하여···.”
“아이고, 이 화상아···!”
아무리 꽥꽥이가 싫어도 그렇지, 아픈 상처가 눈에 보이고 치료할 능력도 있는데 모르는 척해 왔다니.
내가 애를 잘못 키운 건가 싶어 한탄이 절로 나왔다.
지은 죄가 있다는 걸 아는지 세르펜스가 내 손을 자신의 옷깃에 가져다 댔다. 화가 풀릴 때까지 제 멱살을 잡고 흔들라는 뜻이다.
“내가 잘못했다. 다시는 치료가 필요한 이를 외면하지 않겠다.”
“알겠어, 반성한다니 믿어 볼게. 꽥꽥이한테도 사과해.”
“그···, 죄송합니다.”
세르펜스가 잠시 반항적인 표정을 지었다가, 내가 눈을 부릅뜨자 꽥꽥이를 향해 고개를 푹 숙였다.
벌을 줬으니 이제는 상을 줄 차례다.
나는 녀석에게 잡힌 손을 빼내어 가만가만 등을 토닥여 주었다.
내 화가 풀렸다는 걸 깨닫고 세르펜스가 안도하며 헤실 웃었다.
“그러니까 내가 윈스톤에게 힘을 주는 대가로 세르펜스가 내 영혼을 치료해 준다는 거지? 딱히 와 닿지가 않는데···. 이제까지 문제없이 잘 살기도 했고.”
“영혼이 안정되면 악마였던 시절보다 더 강해질 겁니다.”
“당장 계약해!”
세르펜스의 말에 꽥꽥이가 눈을 빛냈다.
그나저나 세르펜스 이 자식은 영혼이 안정되면 꽥꽥이가 강해진다는 걸 알면서도, 말을 안 했다 이건가?
나는 등을 토닥거리던 손을 치우고 녀석을 빤히 노려보았다.
자신을 향한 내 시선에 담긴 의미를 알아챘는지 세르펜스가 움찔하며 변명했다.
“내가 돕는다 해도 최소 10년은 걸릴 거다.”
진작 치료를 시작했더라도, 마왕이 소환되기 전까지 꽥꽥이가 되찾을 수 있는 힘은 얼마 되지 않을 거라는 뜻이다.
더욱이 꽥꽥이는 윈스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할 정도로 매우 작은 편이다.
마왕을 향해 날아가는 꽥꽥이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용맹하다기보다는 무모하게 느껴졌다.
어차피 힘이 회복되더라도 오리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는 이상, 꽥꽥이에게 전면전은 무리다.
그리고 현재 꽥꽥이가 약한 건 가용할 수 있는 신성력의 총량이 적어서일 뿐, 힘을 다루는 능력 자체는 여전히 뛰어나다.
내가 신성력을 계속 공급해 주면 대악마였던 시절 못지않게 강력한 불을 피워낼 수 있으니.
원거리 지원은 지금도 문제없다.
“이번만 넘어가 줄게. 그 대신 대충 하지 말고 잘 치료해 줘.”
“선우가 그리 말하지 않아도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윈스톤 경과 계약을 한다면, 플람의 힘이 곧 윈스톤 경의 힘이나 마찬가지잖는가?”
세르펜스가 꽥꽥이를 윈스톤을 강화하는 도구쯤으로 여기기 시작한 것 같은 건, 필시 내 착각이 아니리라.
조금 떨떠름한 기분이 들긴 했으나 이유가 뭐 그리 중요할까.
세르펜스가 최선을 다해 꽥꽥이의 영혼을 치료해 주기로 했으니 잘 된 일이다. 더불어 윈스톤도 강해질 수 있으면 더더욱 잘 된 일이고.
그렇게 생각한 순간.
“하하! 잘 됐네, 세르펜스. 앞으로도 윈스톤 경과 함께할 방도가 생겨서.”
황제누스가 웃으며 세르펜스에게 말을 붙였다.
세르펜스에게 친구임을 부정당한 게 불과 몇 분 전 일인데도,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 퍽 친근하고 산뜻한 말투다.
당연하게도 세르펜스는 그런 그를 고운 눈으로 쳐다보지 않았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아예 눈길조차 주지 않고 무시했다.
“그럼 플람, 계약을 하려면 무엇을 준비해야 합니까?”
싫어하는 꽥꽥이에게 말을 걸면서까지 황제누스를 무시하는 걸 보면, 화가 나도 단단히 난 모양이다.
자고로 미친놈은 자극하지 않는 게 상책이건만.
나는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황제누스의 눈치를 살폈다.
다행히 그는 화를 내고 있지 않았다. 흐뭇함과 씁쓸함이 뒤섞인 표정으로 미소 지으며 세르펜스를 바라볼 뿐이었다.
“딱히 준비할 건 없고, 그냥 썬이 힘을 잠깐 빌려주면···.”
“윈스톤 경은 제 기사이고, 저는 대가를 제공하는 주체로서 계약의 한 축을 담당하게 되니. 그냥 제가 하는 편이 낫지 않습니까?”
“계약을 단순화하려면 그게 낫긴 해. 내가 내키지 않아서 그렇지.”
“참으십시오. 저도 그쪽의 추하다 못해 혐오스러운 영혼을 자세히 들여다보며 치료하고 싶지 않았는데, 이렇게 나섰잖습니까?”
“내 영혼이 그렇게나 끔찍하게 생겼다고? 살펴보는 것조차 싫을 정도로?!”
꽥꽥이가 크게 충격받은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아니라고 부정해주길 바라는 것 같았지만, 나는 차마 그가 원하는 대답을 들려줄 수 없었다.
내가 여기서 아니라고 말하면 세르펜스가 괜히 꽥꽥이를 비난한 게 되어버리니까.
“지금은 아파서 그런 거잖아. 의사펜스 선생님이 깨끗하게 치료해 줄 테니까, 너무 충격받지 마.”
“너도 내 영혼을 봤어?”
“당연하지, 안 보이는 걸 어떻게 붙잡아서 마왕에게 빼앗기지 않고 버텼겠어?”
“그런데도 나를···.”
꽥꽥이가 말끝을 흐렸다.
자신의 영혼이 불쾌하게 생겼는데도 붙잡아 줘서 고맙다고 말하려니, 민망해서 부리가 떨어지지 않는가 보다.
친구끼리 그런 것에 고마워하는 거 아니라고 말하려던 그때.
그의 부리에서 예상치도 못한 말이 튀어나왔다.
“나를···, 잘도 이런 모습으로 만들었구나?”
“네가 생각해도 지금 그 모습이 귀엽긴 한가 봐?”
“인간은 작고 연약해 보이는 존재를 귀엽게 여기는 특이한 습성이 있으니, 그 기준대로라면 이 모습이 귀여운 게 맞겠지.”
그래서 꽥꽥이의 기준에서는 현재 자신의 모습이 귀엽다는 건지, 안 귀엽다는 건지 모르겠다.
그보다 윈스톤은 저 작고 귀여운 생명체를 언제까지 우악스레 붙들고 있을 생각인 걸까?
두툼한 팔근육을 보고 있자니 저대로 힘을 주면 꽥꽥이의 몸이 펑 터질 것 같아 무섭다.
물론 윈스톤은 적당히 힘 조절을 하고 있을 테고, 꽥꽥이는 꽥꽥이대로 신성력으로 몸을 보호할 수 있겠지만.
“윈스톤, 이제 꽥꽥이는 그만 놔 주는 게 어때요? 계약하겠다잖아요.”
“크흠···!”
윈스톤이 공연히 헛기침을 하며 꽥꽥이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자신이 얼마나 절박하게 꽥꽥이를 붙들고 있었는지 이제야 자각했나 보다.
자유를 되찾은 꽥꽥이가 타다다닥 달려서 내 무릎 위로 올라왔다.
‘어떻게 오리는 달리는 소리마저 이렇게 귀여울 수 있는 걸까? 오리발이 귀엽게 생겨서 그런가?’
하지만 귀여운 것과 별개로 그는 번지수를 잘못 찾았다.
나는 잘못 배달된 꽥꽥이를 올바른 수령인에게 넘겼다.
세르펜스는 불쾌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꽥꽥이를 받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 윈스톤에게로 다가갔다.
과연 꽥꽥이는 뭐하러 내가 있는 곳까지 달려온 것인지, 그 의미가 사라지는 순간이다.
뭐, 귀여웠으니까 됐나?
“계약을 진행하기에 앞서, 경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
꽥꽥이를 든 세르펜스가 짐짓 위엄 있는 어조로 말했다.
얼굴이 워낙 신성하고 경건하게 생겨서 그런가, 손에 오리를 들고 있는데도 그림이 된다. 세르펜스의 미모 효과로, 녀석에게 들린 꽥꽥이도 덩달아 신성한 존재처럼 보였으니 무슨 말을 더 하랴.
세르펜스가 저리 나오자 윈스톤이 한쪽 무릎을 꿇어 자세를 낮췄다.
주군의 명을 받드는 기사의 모범적인 자세라 아니 말할 수 없다.
“말씀하십시오.”
“우선 경의 충성에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위험하다는 걸 알면서도 우직하게 따라와 줘서, 영혼을 걸 정도로 내 곁을 지키겠노라 말해 줘서 정말 고맙다.”
“세르펜스 님께서 제게 베풀어주신 은혜에 비하자면 별것 아닙니다.”
“경은 내게 있어 소중한 존재이니, 그리 말하지 말아다오. 그리고 내가 아닌 다른 자에게 영혼을 바치는 건 삼갔으면 좋겠군. 충성은 내게 바치면서 영혼은 다른 자에게 내어주다니,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나?”
“죄, 죄송합니다.”
세르펜스가 살짝 뚱한 표정으로 질투심을 내비쳤다. 그러자 윈스톤이 당황한 표정으로 말을 더듬으며 고개를 푹 숙였다.
녀석이 나와 유지스를 누구에게도 내주지 않겠다며, 홀로 경쟁심을 불태우는 모습을 봐 왔으면서.
자신 또한 독점욕의 대상이 되리라곤 생각지도 못했나 보다.
“그리고 계약에 관해서도 할 말이 있다. 내가 원한 것도 아니고 불쾌하기 이를 데 없지만, 일단 플람 이자 또한 일단은 내게 예속된 존재다.”
“꽥?! 나도 원한 적 없거든?”
“아무튼 그러하니, 계약을 하여 플람에게 힘을 받더라도 윈스톤 경이 내 기사라는 점은 변함이 없다. 그저 임시로 소속을 옮긴···. 으음, 아니다. 경은 여전히 내 직속이고, 플람은 그저 나와 새로운 계약을 맺기 위한 서류 같은 거라고 생각해라.”
세르펜스가 꽥꽥이의 꽥꽥거림을 무시하며 제 할 말을 했다.
꽥꽥이를 윈스톤 강화 도구쯤으로 생각하는 줄 알았거늘. 이제 보니 그보다 더하다.
서류 쪼가리는 너무 심하지 않나? 그보다 이런 얘기를 하고 싶어서 무게를 잡았던 거야?
“가능하면 선우에게 그리한 것처럼, 내가 직접 힘을 건네주고 경을 천사로 만들고 싶지만···. 현재 신의 힘을 지닌 건 선우이기도 하고, 선우가 천사가 된 건 우연이라 해야 할지 기적이라 해야 할지···. 원하던 일이긴 하나 의도된 건 아니었다. 이해해 주길 바란다.”
그 전에 윈스톤에게 천사가 되고 싶은지 물어보는 게 먼저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으나 토 달지 않고 가만히 듣기로 했다.
윈스톤이 감격한 표정을 짓고 있었기 때문이다.
천사가 되어 자신에게 영원한 충성을 맹세해 달라고 세르펜스가 말하면, 깊이 생각해 보지도 않고 냅다 고개를 끄덕일 것 같다.